|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민 6:22-2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분들 함께 축복합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동토의 땅 알타이, 뚜바에서 수고하시는 최정진 선교사님 오늘 우리와 함게 예배들 드리십니다. 우리 선교사님을 향하여 축복합니다. 저기 게시는데 선교사님을 향하여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그곳은 겨울에 추우면 섭씨 영하 60도가지 내려가는곳이에요. 상상이 안가죠?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고 2년넘게 지금 광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았겠죠? 몇일 캠핑갔다 온 분들이야 “정말 좋은 경험이다”… 쉽게 말할 수 있을거에요. 그런데 광야에서 벌써2년넘게,,,, 사막이에요 사막. 그것도 처음에는 금방 갈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직선길로 가는것도 아니었고 돌아서 돌아서 가는 길이었어요. 그런 사막길에서 계속 이동하면서 살림을 폈다 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먹고 자고 자녀도 낳고 기르고 그렇게 생활하며 살았으니 정말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하나님의 기적들을 보고 경험도 했어요. 그러나 당장 닥치는 자신들의 삶에서 경험하는 여러가지 광야의 힘든 환경, 수시로 몰아치는 모래폭풍, 닥치는 대적, 막연한 미래의 두려움, 이런 속에서 때로는 한 없이 작아지는 자신들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니다. 구름기둥 따라 불기둥따라 믿음으로 잘 가다가도 때때로 분명히 지치고 힘들어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선물이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셨어요. 모세에게 제사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축복하라” 말씀을 하신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용기를 받았을거에요. 또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자 그분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임을 가슴에 다시한번 새겼을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속에서도 여러분을 세우고 일으키는 영적 에너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것은 하나님 백성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에요. 여러분 어떤 마음입니까? 축복 하시는 마음이에요. 복 주시기를 기뻐 하시는 마음입니다. 22절 보니까 이렇게 시작하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되”…….. 이 축복을 직접 지시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나오는 축복문을 봐도 그렇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이 세번이나 언급이 됩니다. 각절의 시작마다 “여호와는, 여호와는, 여호와는” 이렇게 말씀 하고 있어요. 그 백성을 축복하시는 그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 한지를 알수 있어요. 광야생활 비록 힘들지만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 다른 무엇이 아닌 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으로 오는 그 은혜의 복으로 모든 어려움 인내하고 이기고 가나안에 이르라는, 절절한 아버지의 심정을 볼 수가 있는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이 이 시간 여러분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비록 광야 같은 인생길을 가지만 이 하나님의 마음이 늘 전달되고 그 축복을 우리가 깨닫고 그 축복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어떤 광야인생에서도 승리 할 수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오히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자 그런데 우리는 이 복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에 대하여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광야생활 고생안하고 바로 가나안으로 가는게 더 복 아닙니까? 더군다나 길이 없는것도 아니었어요. 한 열흘만 가면 되는 직선길이 있었어요. 힘들고 지친 광야생활 하면서 그 속에서 복주시고 지키시고 은혜주시고 평강 주시기를 축복 하기보다는 그 광야 스킾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빨리 들어가게 축복 하는게 더 절실한 축복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셩경말씀을 통하여 그게 정답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할 수 있는거죠. 자식 고생시키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자식이 생각도 못하는 진짜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것입니다. 에레미야 애가 33장 3절을 보면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의 본심”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사실이 그랬어요. 광야생활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것입니다. 광야에서 많은 일들을 만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시며 그 뜻하시는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조금씩 알아간거에요. 홍해광야길로 왜 돌아가게 하셨는지 그 이유도 깨닫게 되었어요. 마라의 쓴 물을 마시고 죽다가 살아났는데 그일로 오히려 여호와 라파 치유하시는 하나님도 알게 되었어요. 만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것도 배웠어요. 또 물질에 대하여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는 자세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전혀 준비가 안되었는데 아말렉과 전쟁이 터졌어요. 그런데 산위에서 두 팔을 높이들고 있는 모세와 그 팔을 잡고 있는 아론과 홀을 통하여 그들은 전쟁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어요.
이런 모든것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대하여 좀더 큰 시각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율법을 통하여, 성막을 통하여, 인구조사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 은헤가 무엇인지, 순종이 무엇인지, 희생이 무엇인지, 축복이 무엇인지, 감사가 무엇인지, 예배가 무엇인지, 어떻게 대적과 싸워야 하는제 계속 배워나갔어요. 하나하나 깊숙하게 진정한 축복의 자리로 이끄신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고 만나고 그 뜻을 이해하도록 성숙함의 자리로 계속 끌어 올리실려고 하신거에요. 그리고 드디어 오늘 준비된 그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알려 주시는것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축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는 이해 못해도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가 있게 된거에요. 제사장들을 통하여 자신들에게 내려지는 축복의 의미가 애굽에서 알던 그런 세상적인 신들과는 전혀 다른 축복임을 알게 된것입니다. 비록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키키는 그런 삶의에 관련한 축복 마저도 그 꼭지점에 가나안을 향한 하나님 뜻과 계획, 그리고 하나님 영광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와 연관하여 생각 할 줄 아는 그런 자리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신거에요.
물론 그 뒤에 나오는 백성들의 행태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축복을 다 이해 한 사람은 사실 얼마 안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그러한 성숙한 자리에 이르는 사람들로 인하여 연결고리를 이루어 왔습니다. 세상이 보고 말하는 그런 크고 높고 아름다운 영광의 자리가 아니에요. 순결과 거룩과 겸손과 낮아짐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지고 가는 눈물과 피가 있는 그런 자리를 통하여 하늘의 역사는 그 맥을 이어 왔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제일 큰 본심은 거기에 있어요. 그게 우리 인생이 가장 성공하는 축복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이런 하나님의 본심을 읽을 수 있는 자녀들임을 믿습니다. 설사 생각으로는 다 이해 못해도, 머리로는 다 알 수 없어도, 그러나 믿음으로 이해하는 사람인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러면서도 광야길을 가게 하시는 측량할 수 없는 본심. 이 두가지를 동시에 읽고 그리고 우리 가슴에 새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 생각할 것은 축복받을 권리와 축복할 권리에 대한 말씀이에요. 22절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먼저 축복 받을 대상을 살펴 봅니다. 누구에요? 이스라엘 자손이다. 여러분 성경의 이스라엘 자손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성령의 인침을 받고, 천국 시민이 되고,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된 예수 믿는 사람들, 영적인 이스라엘을 을 말하는 거에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거에요. 복 받을 대상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광야 인생길 가면서 이 사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세요. 우리가 무엇 잘해야 주시는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격 있어서 받는 복이 아니에요. 에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 되었기에 얻는 복입니다. 그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고 가슴에 품고, 그리고 구름 기둥 불기둥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광야 인생길에서 반드시 승리 할줄로 믿습니다.
다음은 축복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축복 할 수 있는 권을 오늘 말씀 보니까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대 제사장과 제사장들이었어요. 오직 그들에게 축복권을 주신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적용을 해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 대 제사장은 여러분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요. 히브리서 6장 19-20절 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것은 영혼의 닺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댁의 반차를 좆이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대 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그 음성을 들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복이 있을지어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여, 복 있을 지어다 애통하는 자들이여‘…신령한 하늘의 축복을 선포하시는거에요. 또 자녀가 받을 풍성한 땅의 축복도 말씀 하세요 “너희가 무엇이던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요, 구원 받은 우리 자신들을 또 무엇이라고 합니까?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어요.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읽어 드릴께요. 여러분 잘 아시는 구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여러분 우리도 제사장이에요.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가 제사장이란 말씀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축복권이 있다는 거에요. 하늘의 복을 알고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 이라면….. 또한 축복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이 축복을 선포하는 입술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자격있어서 하는것 아닙니다. 남보다 더 깨끗해서 하는것 아니에요. 비록 약하지만 비록 때때로 하나님앞에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예수 그 이름의 권세가 있으니 자신 있게 축복 하는거에요. 영적 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하나님으로 부터 위임된 권위를 가지고 축복하는 거에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하는거에요” 가족들간에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부모에게 축복하세요. 성도들간에 서로 축복 하라는 거에요. 세상을 향하여 긍훌한 마음을 가지고 축복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축복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 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을 선포하라고 하셨는가? 24절부터 26절까지 다시 읽습니다. 시작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첫번째 축복은 육신의 삶과 관련한 포괄적인 복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기를 축복한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선지자가 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자신은 감옥에 같혀 있었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권리자로서 땅을 사라는 조카의 말에 그 땅을 사고 증인을 세웠어요. 믿음으로 살지만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앞이 안보이는 현실을 보며 그는 이렇게 주님께 고합니다.“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인의 손에 붙인채 되었나이다.” 여러분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잇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엘 솨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세요.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주시고 지키실것을 약속 하시는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복을 우리는 소망으로 간직하는거에요. 그 분이 우리를 지키심을 믿음으로 간직하는것입니다. 그럴때에 사막의 모래폭풍속에서도 그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잇음을 믿습니다. 시편 37편 4절이에요.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 아십니다. 우리의 가는 길도 아세요. 여러분 이 여호와께 여러분의 가는 길을 믿음으로 철저히 맡깁시다. 의지하는거에요. 또한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계속되는 시편37편5절-7절이에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아멘!
두번째 축복은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로 비추사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러분 여호와께서 얼굴을 감추거나 돌리신다는것은 절망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극심한 환난에 처하여 광야에 숨은 다윗은 심지어 “여호와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나에게서 얼굴을 돌리셨나이까? 하고 비통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언제나 NO였어요. “아니야. 나는 한번도 내 사랑하는 백성 내 사랑하는 자녀를 잊은적 없어 한번도 얼굴 돌려 본적없어. 나의 얼굴은 언제나 네게 비추고 있단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절규의 마지막에 늘 외칩니다. “여호와의 생명과 구원과 기쁨이 나에게 있다. 그 은혜가 나에게 충만하다.” 그러기에 아픔과 절규로 시작햇던 모든 그의 시가 감사와 찬양으로 끝이나는것을 볼 수가 있어요. 이 다윗이 받은 은혜가 여러분의 광야길에서도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잠언8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자가 나를 만나리니” 여러분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서 그 분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놀라운 십자가 사랑을 이미 입었지만 그럴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광야생활하는데 필요한 또 많은 사랑의 은혜를 시마다 때마다 우리에게 부어 주실것을 믿습니다.
세번째 축복은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사 우리에게 임하는 평강이에요. 여러분 사람들은 마음의 평강을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으로 인한 참 평안이 있었습니까? 여러분 참 평안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서 45장 7절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7 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러분 우리는 광야 인생길 가며 모래 폭풍 만나고 길잃고 해 맬때도 있습니다. 한 치 앞도 예축 할 수 없는 미래에 관하여 불안해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사 하늘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한다는 거에요. 앞이 잘 보여서 얻는 평안이 아니에요. 모래 폭풍이 멈추어서 얻는 평안이 아닙니다. 방향도 모르지만 모래 푹풍 여전하지만 그 속에서 얻는 하늘로 부터 오는 평안 인것입니다. 우리 찬양하지 않습니까?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나를 위하여 고초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품안에서 얻는 평안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2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이 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 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 이름으로 축복한다는 말은 하나님 이름의 명예에 관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축복할자가 축복하고 축복 받을자에게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고 그 이름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시는거에요. 여러분의 평생에 이 축복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고 그 복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