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저편에 최초의 은행나무는
내가 어린 시절 자라던 행촌동에 있던 은행나무입니다.
그 은행나무는 권율장군의 집터에 있는 은행나무입니다.
행촌동 권율도원수집터와 420년된 은행나무
늘 그 은행나무아래를 지나서 정동에 있는 서대문국민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때 사직공원쪽에 있는 매동학교로 전학을 갔지요...
비를 지금도 무척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비를 좋아했나 봅니다.
비오는 날에는 다락방에 올라가 엎드려 다락방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였고..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스르르~잠들기도 했지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맞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때입니다.
고집스럽게 큰우산을 쓰겠다고 떼를 부려서 어른들이 쓰는 큰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갔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내 키가 아마도 110이나 되었을까?
일학년때 전교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다는데 그때 키가 1미터라고 했던 것 같아요.
암튼 무척 작은 꼬맹이였지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거세게 내렸어요
아마도 비바람도 몰아쳤던 거 같아요.
작은 꼬맹이가 큰우산을 들고 오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나요.
그것도 우산의 손잡이는 땅에 끌리고 위를 잡고 간신히 쓰고 가는데..
사람들이 우산만 걸어가는 것 같다고 하면서 웃으면서 바라보곤 하는데
어린 마음에도 나를 구경삼아 보는 것이 싫었던 모양입니다.
우산을 접고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마침, 저 은행나무아래를 걸어갈 무렵에 어떤 어른들이
저를 보기를 아마도 고독을 씹는 어린아이로 보았던 모양입니다.
웃으면서 '아가야.. 비를 즐기나 보다...' 그런 식의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렇게 보였을 것 같아요..
큰우산 질질 끌면서 걸어가다보니 힘도 들었을 것이고..
비는 맞아 흠뻑 젖은채로 고뇌에 가득한.. 우울한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을 테니...
두번째 내 기억의 은행나무는 한참 사춘기시절의 중학교 교정에 있던 은행나무입니다.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배화여중고 교정에는 '은행다방'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그 아래 빈의자.... 그리고 공중전화박스도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그 은행나무 아래에서 책도 읽고 시도 짓고.. 했던 시절..
혜랑이라는 친구랑 매일 시를 써서 서로 교환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허접한 수준......
빨간벽돌모양의 고등학교 건물 저쪽 편에 보이는 한아름 은행나무가 보입니다.
아마도 배화여중고를 나온 학생들은 누구나 저 은행나무 아래서의 추억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 카페의 이름이 저 은행나무에서 착안해서 '은행나무 아래 빈 의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요~ ㅎ
세번째 내 기억속에 아픔과 그리움으로 그려지는 은행나무가 있으니
바로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수종사의 은행나무입니다.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아래를 지팡이를 짙고 걸어 올라오시는 연로한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유난히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수종사의 저 은행나무는 이제 아버지를 보듯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나에게 있어 은행나무는
인연과 인연의 고리역할을 해주는 나무인 것 같습니다.
은행나무에 관한 속담중에 '은행나무도 마주서야 연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은행나무의 수나무와 암나무가 서로 바라보고 서야 열매가 열린다는 뜻으로,
사람이 마주 보고 대하여야 더 인연이 깊어짐을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좋은 인연을 맺기 바랍니다.
tip
은행나무 이야기
거리마다 노란 은행나무 단풍이 한창이다.
바람따라 우수수 낙엽을 떨구며 닥쳐올 모진 추위를 예감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환한 노란빛으로 물들 수 있을까!
알고 보면 은행나무는 대단한 나무이다.
우선 세계적으로 은행나무과에는 오직 은행나무 1종 만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온 세상에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나무이면서도, 그 오랜 옛날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단한 생명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은행나무를 화석 나무라고도 한다.
은행나무의 한자 은행(銀杏)은 열매가 살구를 닮았지만 흰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 이름도 실버 어프리코트(Silver apricot) 또는 메이든 헤어 트리(Maiden hair tree)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 열매를 손자대에 가서야 얻는다고 하여 공손수(公孫樹)라고도 한다.
은행나무는 또 징코민이라는 혈액순환촉진성분이 발견되어 의약품화되어 팔리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 자란 은행나무만이 유효성분이 많아 제품화 해서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한반도는 참 특별한 땅이다.
현재 남아있는 은행나무 자생지는 중국 절강성의 양자강 하류 천목산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 들어 온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불교나 유교와 함께 들어 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국에서 은행나무를 공자의 행단(杏壇)에 많이 심어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본따 문묘나 향교, 사찰 경내에 많이 심었다.
또 이 천심이 내려지는 신목이라고 하여 악정을 베푸는 관원들을 응징하기 위해 관가의 뜰에 많이 심기도 하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가운데도 가장 많은 게 은행나무로 19건이나 되며 노거수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것은 자그마치 813그루에 달한다.
그 중에는 육십미터가 넘어 동양에서 가장 크고 1,300살에 달해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진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숫나무가 따로 있다.
암나무에는 암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수나무에는 수꽃이 피고 열매가 없다.
하지만 암꽃 혼자 결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암나무 근처 어디선가 숫나무가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만 수분이 가능하다.
첫댓글 이 카페의 이름이 저 은행나무에서 착안해서 '은행나무 아래 빈 의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요~ ㅎ== 그렇군요..그런전설이~~ 어쨋든 카페 이름 이쁘다는 거 다 알거예요..훗
전설따라 삼천리...대대로~~~ ㅎ
지금도 은행나무 아래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모두들~~쥔장님의 그런 추억들이,,, 특히 지팡이 짚고 올라오시는 모습,옆에는 알 줍는 모습,,
은행나무 많이 사랑해주세용~! ♡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은행나무는 할아버지댁에 있던 큰 은행나무... 그리고 영화 `은행나무침대`하고... 아버지를 보는듯하다는 은행나무가 어쩐지 슬프게 느껴집니다...
할아버지댁이 마당이 넓었나 봐요. ㅎㅎㅎ 아버지와 수종사에 갔을때에는 차를 타고 그 높은데까지 올라갔는데 다음엔 등산로따라 올라가볼까 해요... 넘 멋진 곳이라서..
집주위로 밭 대밭등이 다 할아버지땅...은행나무는 마당이 아니라 바깥 사랑채 옆에 있었고요. 추억의 장소를 가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던데요. 할아버지댁은 지금은 빈집이고 한번씩 아픈 가족들의 휴양지로 쓰입니다.
내어린시절 고향엔 가로수마냥 은행나무가 쭈~욱 심어져있는 산길이 있었어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주어다가 책갈피에 넣기두하구 그곳에서 딩굴며 놀던 생각이 나네요 ...그래서 이곳 은행나무아래 빈의자 ...카페가 더욱 정겹고 고향같은 느낌이라 너무좋아요 ^^ 그리고 빛님은 언니같이 참 푸근하구요 ...카페 회원님들도 너무 정겨워요 ..이곳이 오래오래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있었음 하는 제바램 이루어지길 기도하면서 ...회원님 모두모두 좋은일만 가득하길 바래요 ^^
가을에 은행잎이 떨어지면 정말 가을빛 찬란한 황금빛 융단 같아요. ^^ 이 은행나무가 또한 회원님들에게 추억속의 은행나무가 된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죠.. 저도 그리 되었으면 좋겠답니다. ^^ 저는 다정님을 친구로 생각하는데...한살차이라서... ^^
은행나무 나무가 오래되어 신목같기도 하던 나무....제가 자라든 곳에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어 노란은행잎을 책갈피에 넣고 다니든 기억이 새롭네요....수종사 은행나무도 너무 좋더군요...언제 가서 오래보고 싶은나무입니다...한강을 바라보며...
은행나무 기억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늘진 추억같은 아름다운 유년시절을 보내셨군요... 저 역시 나름의 은행나무의 좋은 느낌이 있어 농장에 80년생. 100년생이 넘은 관산목 2구루를 올해 심어 답니다... 세롭게 싹이 나오고 무척 내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