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기도할래요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시절이다. 우리 속담에 “중복에는 입술에 붙은 밥풀도 무겁다”는 말도 있다. 무더위가 계속되면 건강을 상하기 십상이다. 특히 밤잠을 설치게 하는 열대야는 일상의 균형을 깨뜨린다. 열대야란 밤 최저기온이 25°C 이상일 때를 가리키는데, 올해 열대야 일수는 30년 만에 최고라고 한다. 아무래도 1994년의 무더위는 ‘넘사벽’인 모양이다. 그해 대구의 7월 평균 기온은 30.2°C, 서울도 28.5°C로 기상관측 사상 역대급이라고 한다.
무더위를 이기는 처방 중 하나는 잘 먹는 것이다. 그래서 복더위에 전통적인 보양식을 권한다. 한국건강관리협회가 뽑은 5대 여름보양식은 ‘삼계탕, 전복, 장어구이, 추어탕, 들깨칼국수’이다. 지난 중복 다음 날, 미국에서 온 친구와 광화문 4거리에서 만났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은 모처럼 먹는 한국 음식이 한 끼 한 끼 소중하다. 그래서 무엇을 대접할지 미리 생각하고 친구더러 선택하게 하였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고려삼계탕, 명동칼국수 콩국수, 경복궁역 소담분식 그리고 적선시장 거리표 음식’이었다. 역시 사람대접은 만족스럽게 잘 먹는 것이다.
<라블레의 아이들>(요모타 이누히코)에서 저자는 “즐겨 먹는 음식을 말해보게! 그러면 자네의 성향을 알려줄 테니”라고 말한다. 부제가 ‘천재들의 식탁’인데, 예술적 천재들이 즐겨 먹는 요리를 통해 그 천재적 성향을 추측해 나간다. 그 요리를 재현하여 직접 시식한 후에 그 인물의 성향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신이 먹은 음식이 당신이 누군가를 알려 준다”는 말이다. 아마 평범한 우리도 내가 즐겨 먹어 온 음식에 따라 내 체질과 인격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모든 음식은 단지 한 끼용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두 평생을 쓸 수는 없듯이, 아무리 비싼 음식이라도 두 끼를 한꺼번에 먹을 수는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처럼의 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 더 고급스러운 것을 찾는다. 맛집과 먹방은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상식적인 대화 소재가 되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음식의 맛과 멋을 사랑하고, 어머니 손맛이니 음식기행이니 할 만큼 자랑스런 추억의 토속 음식이 다양하다.
몇 해 전 일이다. 누군가 연락하여 MBC 무한도전을 꼭 보라면서, 반가운 얼굴이 여럿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유명한 프로그램에 내가 알 만한 사람 여럿이 출연할 리가 없을 텐데 싶으면서도, 시간에 맞추어 TV 앞에 앉았다. ‘배달의 무도’라고 한국의 고향 음식을 세계 다섯 대륙으로 배달하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유럽은 독일의 광부 간호사들에게, 그것도 내가 목회하던 복흠으로 배달하였다. 과연 배달의 민족답다.
무한도전이 찾아간 곳은 복흠한인교회 별관으로 사용하는 ‘한국인의 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곳에서 얼마나 많이 잔치를 열고, 회의를 하고, 손님을 맞았던가? 마음껏 풍물을 배우고, 밤새도록 생일잔치를 할 만한 여유있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한국 남해마을에 사는 동생이 독일에 사는 넷째 언니에게 음식을 보냈다. 19살에 고행을 떠난 언니는 당시 일흔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나그네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함께 모여 배달한 음식을 먹는 옛 교우들을 보면서 우리 부부도 그들 속에 어울려 있는 듯, 즐거웠다. 먼 곳까지 찾아준 음식이 반갑고 고마워 그만 울컥하였다.
음식에는 그만큼 사회성이 충만하다. 어린 시절 먹은 음식을 평생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듯역사성이란 인이 박혔다. 어쩌면 사람의 배고픔은 굶어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배고픔이나 목마름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영혼의 허기가 있다. 다만 그 배고픔과 목마름을 무시하고 살 뿐이다. 현대인들은 매일 먹지만 단지 끼니를 메우거나, 즐거움을 만끽하는 물질적인 것일 뿐, 여기에 담긴 정신적 의미를 찾지 않는다. 실은 영혼의 허기는 하나님을 만날 기회이다. 성찬식의 한 조각 빵과 한 모금 포도주에서 영혼의 위로를 얻는다면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틀째 여름성경학교가 진행 중이다. 어린 학생들, 교사들, 식당봉사자들이 각각 8명씩 같았다. 비록 적은 규모지만 이상적인 교육 환경이다. 주제는 ‘기도할래요’인데, 교재를 보니 대체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소재로 삼고 있었다. 햄버거, 피자, 감자칩 등을 매개로 성경을 가르치고, 공작 활동을 하였다. 쉽게 호기심을 느끼고 친밀하게 접근하려는 방식일 것이다. 일찍부터 아이들은 또래의 음식문화에 젖어 산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성경학교 식단도 김밥과 컵라면, 스파게티, 햄버거, 돈까스 등 글로컬(Global+ Local)하였다.
음식이 얼마나 소중하면 ‘소울 푸드’란 말도 한다. 아마 세자르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파니스 안젤리쿠스)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본래 ‘천사의 빵’이란 뜻에 담긴 의미는 누구나 갈구하는 진심 어린 생명성이다. 지금 가난하든 혹여 넉넉하든 천사의 음식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그래서 일용할 양식과 영혼의 양식을 위해 기도한다.
“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마음이 빈자에게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