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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시론으로 시 텍스트 읽기·�
시인의 시론詩論으로 읽는 시인의 시세계詩世界·4
──김춘수의 시론과 시·1
정유화
1. 들어가는 말
김춘수(1922~2004) 시인은 경남 충무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중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하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과 창작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사상혐의로 헌병대에서 1개월, 세다가야 경찰서에서 6개월 유치留置되었다가 결국 다시 서울로 송환되고 만다. 1946년 이후 통영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조향, 김수돈 등과 동인지 『로만파魯漫派』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간행하였다. 이후 제2시집 『늪』, 제3시집 『기旗』, 제4시집 『린인隣人』 등을 출간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1954년 시선집 『제1시집第一詩集』을 거쳐 1959년 『꽃의 소묘』를 출간하면서 시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가게 된다. 그런 가운데 1969년에 출간한 『타령조·기타』, 1974년에 출간한 『처용』은 문단의 큰 이목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문단의 입지를 확고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 후에도 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80년대의 『처용이후』(1982)를 거쳐 90년대 말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 2000년대 초의 『쉰 한 편의 비가』(2003)를 출간한 그의 시력詩歷이 이를 증명하고 남는다.
더불어 그는 시창작 이론에 대한 시론을 깊이 있게 탐색한 시인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가 독자와 문단으로부터 큰 이목과 조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도 있다. 예컨대 그는 감성적 차원인 시창작과 이성적 차원인 시론의 통합을 통해서 시적 차원의 폭을 넓혀가면서, 동시에 그것을 늘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는 1952년 시 비평지 『시와 시론』에 「시 스타일 시론試論」을 발표하면서 차츰 그의 독자적인 시론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한 결실로 탄생한 것이 예의 1958년에 출간한 『한국현대시형태론』이다. 그는 이어서 1961년에 시론집 『시론』(시작법을 겸한)을 출간하였고, 1972년에도 동일한 제목으로 『시론』(시의 이해)를 출간하기도 했다. 1976년에는 인구에 회자되는 그 유명한 『의미와 무의미』를 출간했으며, 1979년에도 시론집 『시의 표정』을 출간하기도 했다. 물론 80년대 이후에도 시와 관련된 크고 작은 시론을 줄곧 피력해 왔다.
그러므로 김춘수의 시는 그의 시론과 밀접한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감성)와 시론(이성)이 상호 대립과 수용 과정을 통해서 정련된 시작품을 산출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는 그의 시론적 영향이 짙게 배어있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의 시론에는 시적 세계가 주는 영향이 짙게 배어있기 마련이다. 예의 김춘수의 시는 ‘의미의 시(비유적 이미지)→ 의미와 무의미 융합의 시(비유적 이미지+서술적 이미지)→ 무의미의 시(서술적 이미지)’라는 과정을 밟아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시론도 ‘의미 시론→ 의미+무의미 시론→ 무의미 시론’이라는 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시와 시론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초기 시와 초기 시론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중·후기시와 시론은 다음호에서 모두 탐색하기로 한다.
2. 김춘수의 초기시론인 ‘의미의 시’
다음의 글은 김춘수 시인 스스로가 언술한 자기 시론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나의 시작과정을 그냥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의 입장에서 과거의 나의 시작을 다소 비판적으로 따져 보려는 것이다.
구름과 장미
1947년에 낸 나의 첫시집의 이름이 『구름과 장미』다. 이 시집명은 매우 상징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구름은 우리에게 아주 낯익은 말이지만, 장미는 낯선 말이다. 구름은 우리의 고전시가에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장미는 전연 보이지가 않는다. 이른바 박래어舶來語다. 나의 내부는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작은 금이 가 있었다. 구름을 보는 눈이 장미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구름은 감각으로 설명이 없이 나에게 부닥쳐왔지만, 장미는 관념으로 왔다. 장미도 때로는 감각으로 오는 일이 있었지만, 양과자를 먹을 때와 같은 <손님이 갖다 주는 선물>로서 왔지, 제상祭床에 놓인 시루떡처럼 오지 않았다. 장미를 노래하려고 한 나는 나의 생리에 대한 반항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이국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반항의 자각을 지니지 못했다. 몇 년 뒤에 그것은 관념에의 기갈과 함께 왔다. 그때로부터 나는 장미를 하나의 유추로 쓰게 되었다.”(…생략…)
유추로서의 장미
나이 서른을 넘고서야 둑이 끊긴 듯 한꺼번에 관념의 무진 기갈이 휩쓸어 왔다. 그와 함께 말의 의미로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비로소 청년기를 맞은 모양이다. 나의 <자기내自己內 세계>의 시절이다.
나는 나의 관념을 담을 유추를 찾아야 했다. 그것이 장미다. 이국취미가 철학하는 모습을 하고 부활한 셈이다. 나의 발상은 서구 관념철학을 닮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플라토니즘에 접근해 간 모양이다. 이데아라고 하는 비재非在가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시야를 지평선 저쪽으로까지 넓혀 주기도 하였다. 도깨비와 귀신을 나는 찾아 다녔다. 선험先驗의 세계를 나는 유영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환원還元과 제일인第一因으로 파악해야 하는 집념의 포로가 되고 있었다. 그것이 실재를 놓치고, 감각을 놓치고, 지적으로는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져들어 끝내는 허무를 안고 딩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50년대도 다 가려고 할 때였다. 30대의 10년 가까이를 나는 그런 모양으로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청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하나의 사치요 허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겉도는 체험 끝에 사람은 또한 뭔가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지도 모른다.
──『김춘수전집 2-시론』, 문장, 1984. 381~383쪽.
3. ‘장미’로써 시 텍스트 읽기
김춘수의 초기 시론의 핵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호는 다름 아닌 ‘구름’과 ‘장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상징 기호가 서로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서로 상반된 의미를 지녔다고 하는 데에 있다. 요컨대 이항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기호이다. 왜냐하면 구름은 감각적인 시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상징하고, 장미는 관념적인 시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통시적인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아의 정서와 인식을 쉽게 대변할 수 있지만, 후자는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공시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자아의 정서와 인식을 대변해 주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양자가 대립하고 있을 때, 김춘수는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예의 전자의 시론으로 시를 쓴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감각적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시를 쓰게 될 것이다. 부연하면 서술적 이미지로서의 시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후자의 시론으로 시를 쓴다면 전자와 달리 관념적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시를 쓰게 될 수밖에 없다. 부연하면 비유적 이미지로써의 시인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론에 의하면, 김춘수는 비유적 이미지에 봉사하는 관념적 이미지를 동원하여 추상적인 의미의 시를 쓰게 될 것이다. 형이하의 의미가 아니라 형이상의 의미로써 말이다. 다음의 시를 그런 차원에서 감상해 보도록 한다.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갈대 섰는 풍경」 전문
김춘수 시인은 감각을 버리고 관념에 도취하여 비유적 이미지로써 시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비유적 이미지는 추상적인 의미의 세계를 나타내준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상에 대한 존재적 의미를 말한다. 그래서 그것은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몸으로 느끼는 구체적인 감각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이성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인식의 세계, 지식의 세계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김춘수는 시를 통하여 인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텍스트에서 “푸른 달빛”은 감각적 이미지이다. 그러다보니 텍스트 내에서 시적 의미를 구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예의 부차적인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텍스트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들판이 저처럼 울고 있다”라는 비유적 이미지이다. “푸른 달빛”은 그 “들판”을 위해 주변부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쏘대던 바람”도 ‘들판’과 만나면서 비유적(유추적) 이미지로 전환되고 만다. 마지막 연에 가면 들판을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그 관념적 세계의 절정을 보여준다. 들판이 왜 그렇게 울고 있을까? 이에 대하여 시인 스스로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언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불가지론’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 시를 통한 의미론적 탐구는 어려운 것이다. 다만 우리는 비유된 짐승에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짐승은 인위적이고 이기적인 인간과 대립한다. 말하자면 원초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들판은 원초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明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新婦여,
──「꽃을 위한 서시序詩」 전문
김춘수 시에서 관념의 세계 곧 의미론의 세계를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시는 아마도 「꽃을 위한 서시序詩」일 것이다. 성공적이라는 표현에는 몇 가지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얘기하자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미학적인 시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성에 의해 텍스트가 지향하는 의미론적 세계를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의 구성은 이항대립적인 체계로 되어 있다. 바로 ‘나-너’의 이항대립적인 구성이다. ‘나-너’의 코드는 대립하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생산해낸다. 가령 제1연에서 ‘나/너’는 “위험한 짐승인 나/ 까마득한 어둠인 너”로 대립한다. 우리는 이 대립에서 상호 결합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짐승의 층위와 자연(어둠)의 층위로 변별되니까 말이다. 제2연에서는 “한밤내 우는 나/ 피었다 지는 너”로 대립한다. 이 대립에서도 상호 별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분리된 존재라는 점이다. 결국 1,2연을 통합해 보면 나와 너는 결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나는 너를 알기를 원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표현된 ‘나/너’이지만, 이항대립 체계를 통하여 그 의미를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제3연과 제4연이 이항대립하게 된다. “돌 속에 있는 금金(나)/ 얼굴을 가린 신부(너)”로서 말이다. 이 대립 역시 상호 개별적으로 작용한다. ‘금’이라는 광물성의 층위와 ‘신부’라는 인간적인 층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나-너’가 결합할 수 없는 상태인 셈이다. 이 결합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의미의 심연이다. 김춘수 시인은 그 의미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위해 감각을 배제하고 이러한 관념, 즉 비유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예의 그 언어가 비유로 쓰일 때에는 그 의미가 언어의 배후로 숨겨지고 만다. 그럼에도 이 텍스트는 적어도 그런 관념의 상태를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 비유적 세계가 ‘금’과 ‘신부’라는 감각적인 대상으로 수렴되고 있기에 그러하다. 물론 해석적 차원으로 보면 ‘금’은 울음의 광물화로 영원한 침묵의 존재자를 의미할 것이고, 신부는 그러한 존재, 즉 광물화된 존재를 다시 인간적 존재로 불러내려고 하는 숨겨진 얼굴을 의미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생각할 것이 있다. 시인이 광물성의 세계에서 인간적인 세계로 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는 살기 위해서 더 이상 의미론적 세계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는 ‘의미’의 세계를 떠나 ‘무의미’의 세계로 갈 것이다. 그 무의미의 세계에 대한 것은 다음호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정유화 /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떠도는 영혼의 집』,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미소를 가꾸다』가 있고 중앙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며 서울시립대 강의전담 교수.
──김춘수의 시론과 시·1
정유화
1. 들어가는 말
김춘수(1922~2004) 시인은 경남 충무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중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하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과 창작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사상혐의로 헌병대에서 1개월, 세다가야 경찰서에서 6개월 유치留置되었다가 결국 다시 서울로 송환되고 만다. 1946년 이후 통영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조향, 김수돈 등과 동인지 『로만파魯漫派』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간행하였다. 이후 제2시집 『늪』, 제3시집 『기旗』, 제4시집 『린인隣人』 등을 출간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1954년 시선집 『제1시집第一詩集』을 거쳐 1959년 『꽃의 소묘』를 출간하면서 시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가게 된다. 그런 가운데 1969년에 출간한 『타령조·기타』, 1974년에 출간한 『처용』은 문단의 큰 이목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문단의 입지를 확고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 후에도 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80년대의 『처용이후』(1982)를 거쳐 90년대 말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 2000년대 초의 『쉰 한 편의 비가』(2003)를 출간한 그의 시력詩歷이 이를 증명하고 남는다.
더불어 그는 시창작 이론에 대한 시론을 깊이 있게 탐색한 시인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가 독자와 문단으로부터 큰 이목과 조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도 있다. 예컨대 그는 감성적 차원인 시창작과 이성적 차원인 시론의 통합을 통해서 시적 차원의 폭을 넓혀가면서, 동시에 그것을 늘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는 1952년 시 비평지 『시와 시론』에 「시 스타일 시론試論」을 발표하면서 차츰 그의 독자적인 시론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한 결실로 탄생한 것이 예의 1958년에 출간한 『한국현대시형태론』이다. 그는 이어서 1961년에 시론집 『시론』(시작법을 겸한)을 출간하였고, 1972년에도 동일한 제목으로 『시론』(시의 이해)를 출간하기도 했다. 1976년에는 인구에 회자되는 그 유명한 『의미와 무의미』를 출간했으며, 1979년에도 시론집 『시의 표정』을 출간하기도 했다. 물론 80년대 이후에도 시와 관련된 크고 작은 시론을 줄곧 피력해 왔다.
그러므로 김춘수의 시는 그의 시론과 밀접한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감성)와 시론(이성)이 상호 대립과 수용 과정을 통해서 정련된 시작품을 산출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는 그의 시론적 영향이 짙게 배어있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의 시론에는 시적 세계가 주는 영향이 짙게 배어있기 마련이다. 예의 김춘수의 시는 ‘의미의 시(비유적 이미지)→ 의미와 무의미 융합의 시(비유적 이미지+서술적 이미지)→ 무의미의 시(서술적 이미지)’라는 과정을 밟아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시론도 ‘의미 시론→ 의미+무의미 시론→ 무의미 시론’이라는 과정을 보여주게 된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시와 시론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초기 시와 초기 시론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중·후기시와 시론은 다음호에서 모두 탐색하기로 한다.
2. 김춘수의 초기시론인 ‘의미의 시’
다음의 글은 김춘수 시인 스스로가 언술한 자기 시론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나의 시작과정을 그냥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의 입장에서 과거의 나의 시작을 다소 비판적으로 따져 보려는 것이다.
구름과 장미
1947년에 낸 나의 첫시집의 이름이 『구름과 장미』다. 이 시집명은 매우 상징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구름은 우리에게 아주 낯익은 말이지만, 장미는 낯선 말이다. 구름은 우리의 고전시가에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장미는 전연 보이지가 않는다. 이른바 박래어舶來語다. 나의 내부는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작은 금이 가 있었다. 구름을 보는 눈이 장미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구름은 감각으로 설명이 없이 나에게 부닥쳐왔지만, 장미는 관념으로 왔다. 장미도 때로는 감각으로 오는 일이 있었지만, 양과자를 먹을 때와 같은 <손님이 갖다 주는 선물>로서 왔지, 제상祭床에 놓인 시루떡처럼 오지 않았다. 장미를 노래하려고 한 나는 나의 생리에 대한 반항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이국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반항의 자각을 지니지 못했다. 몇 년 뒤에 그것은 관념에의 기갈과 함께 왔다. 그때로부터 나는 장미를 하나의 유추로 쓰게 되었다.”(…생략…)
유추로서의 장미
나이 서른을 넘고서야 둑이 끊긴 듯 한꺼번에 관념의 무진 기갈이 휩쓸어 왔다. 그와 함께 말의 의미로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비로소 청년기를 맞은 모양이다. 나의 <자기내自己內 세계>의 시절이다.
나는 나의 관념을 담을 유추를 찾아야 했다. 그것이 장미다. 이국취미가 철학하는 모습을 하고 부활한 셈이다. 나의 발상은 서구 관념철학을 닮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플라토니즘에 접근해 간 모양이다. 이데아라고 하는 비재非在가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시야를 지평선 저쪽으로까지 넓혀 주기도 하였다. 도깨비와 귀신을 나는 찾아 다녔다. 선험先驗의 세계를 나는 유영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환원還元과 제일인第一因으로 파악해야 하는 집념의 포로가 되고 있었다. 그것이 실재를 놓치고, 감각을 놓치고, 지적으로는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져들어 끝내는 허무를 안고 딩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50년대도 다 가려고 할 때였다. 30대의 10년 가까이를 나는 그런 모양으로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청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하나의 사치요 허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겉도는 체험 끝에 사람은 또한 뭔가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지도 모른다.
──『김춘수전집 2-시론』, 문장, 1984. 381~383쪽.
3. ‘장미’로써 시 텍스트 읽기
김춘수의 초기 시론의 핵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호는 다름 아닌 ‘구름’과 ‘장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상징 기호가 서로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서로 상반된 의미를 지녔다고 하는 데에 있다. 요컨대 이항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기호이다. 왜냐하면 구름은 감각적인 시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상징하고, 장미는 관념적인 시세계를 지향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통시적인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아의 정서와 인식을 쉽게 대변할 수 있지만, 후자는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공시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자아의 정서와 인식을 대변해 주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양자가 대립하고 있을 때, 김춘수는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예의 전자의 시론으로 시를 쓴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감각적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시를 쓰게 될 것이다. 부연하면 서술적 이미지로서의 시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후자의 시론으로 시를 쓴다면 전자와 달리 관념적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시를 쓰게 될 수밖에 없다. 부연하면 비유적 이미지로써의 시인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론에 의하면, 김춘수는 비유적 이미지에 봉사하는 관념적 이미지를 동원하여 추상적인 의미의 시를 쓰게 될 것이다. 형이하의 의미가 아니라 형이상의 의미로써 말이다. 다음의 시를 그런 차원에서 감상해 보도록 한다.
이 한밤에
푸른 달빛을 이고
어찌하여 저 들판이
저리도 울고 있는가
낮동안 그렇게도 쏘대던 바람이
어찌하여
저 들판에 와서는
또 저렇게 슬피 우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보다 고요하던 저 들판이
어찌하여 이 한밤에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가
──「갈대 섰는 풍경」 전문
김춘수 시인은 감각을 버리고 관념에 도취하여 비유적 이미지로써 시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비유적 이미지는 추상적인 의미의 세계를 나타내준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상에 대한 존재적 의미를 말한다. 그래서 그것은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몸으로 느끼는 구체적인 감각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이성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인식의 세계, 지식의 세계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김춘수는 시를 통하여 인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 텍스트에서 “푸른 달빛”은 감각적 이미지이다. 그러다보니 텍스트 내에서 시적 의미를 구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예의 부차적인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텍스트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들판이 저처럼 울고 있다”라는 비유적 이미지이다. “푸른 달빛”은 그 “들판”을 위해 주변부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쏘대던 바람”도 ‘들판’과 만나면서 비유적(유추적) 이미지로 전환되고 만다. 마지막 연에 가면 들판을 “서러운 짐승처럼 울고 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그 관념적 세계의 절정을 보여준다. 들판이 왜 그렇게 울고 있을까? 이에 대하여 시인 스스로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언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불가지론’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 시를 통한 의미론적 탐구는 어려운 것이다. 다만 우리는 비유된 짐승에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짐승은 인위적이고 이기적인 인간과 대립한다. 말하자면 원초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들판은 원초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明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新婦여,
──「꽃을 위한 서시序詩」 전문
김춘수 시에서 관념의 세계 곧 의미론의 세계를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시는 아마도 「꽃을 위한 서시序詩」일 것이다. 성공적이라는 표현에는 몇 가지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얘기하자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미학적인 시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성에 의해 텍스트가 지향하는 의미론적 세계를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텍스트의 구성은 이항대립적인 체계로 되어 있다. 바로 ‘나-너’의 이항대립적인 구성이다. ‘나-너’의 코드는 대립하면서 여러 가지 의미를 생산해낸다. 가령 제1연에서 ‘나/너’는 “위험한 짐승인 나/ 까마득한 어둠인 너”로 대립한다. 우리는 이 대립에서 상호 결합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짐승의 층위와 자연(어둠)의 층위로 변별되니까 말이다. 제2연에서는 “한밤내 우는 나/ 피었다 지는 너”로 대립한다. 이 대립에서도 상호 별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분리된 존재라는 점이다. 결국 1,2연을 통합해 보면 나와 너는 결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나는 너를 알기를 원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표현된 ‘나/너’이지만, 이항대립 체계를 통하여 그 의미를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제3연과 제4연이 이항대립하게 된다. “돌 속에 있는 금金(나)/ 얼굴을 가린 신부(너)”로서 말이다. 이 대립 역시 상호 개별적으로 작용한다. ‘금’이라는 광물성의 층위와 ‘신부’라는 인간적인 층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나-너’가 결합할 수 없는 상태인 셈이다. 이 결합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의미의 심연이다. 김춘수 시인은 그 의미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위해 감각을 배제하고 이러한 관념, 즉 비유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예의 그 언어가 비유로 쓰일 때에는 그 의미가 언어의 배후로 숨겨지고 만다. 그럼에도 이 텍스트는 적어도 그런 관념의 상태를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 비유적 세계가 ‘금’과 ‘신부’라는 감각적인 대상으로 수렴되고 있기에 그러하다. 물론 해석적 차원으로 보면 ‘금’은 울음의 광물화로 영원한 침묵의 존재자를 의미할 것이고, 신부는 그러한 존재, 즉 광물화된 존재를 다시 인간적 존재로 불러내려고 하는 숨겨진 얼굴을 의미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생각할 것이 있다. 시인이 광물성의 세계에서 인간적인 세계로 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는 살기 위해서 더 이상 의미론적 세계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그는 ‘의미’의 세계를 떠나 ‘무의미’의 세계로 갈 것이다. 그 무의미의 세계에 대한 것은 다음호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정유화 /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떠도는 영혼의 집』,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미소를 가꾸다』가 있고 중앙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본지 편집위원이며 서울시립대 강의전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