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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47_전남 광양시 옥룡면 중흥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50 12.02.26 15: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부터 백운산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낸후 이제 솔이네와 헤어져 창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가운데 가는길에 옥룡의 볼만한곳을 찾던중 옥룡사지와 중흥사를 찾게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어둡기전에 빨리 돌면 두군데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욕심을 내어 달렸다. 추산마을이 진입해 삼거리에 동백림이라는 팻말과 함께 옥룡사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솔길 같이 꼬불거리는 길에 좌우로 7ha에 걸쳐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동백림이 자리한다.
 
땅의 기운을 살리기위해 심은 동백나무가 7000여그루에 이른다고 하며 천년이 흘러간 지금에도 이렇게 많은 나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을 정도이다. 정말 봄에 동백이 만발할 때 이곳에 오면 어느곳 보다도 더 아름다운 동백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차를 세우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 많은 나무를 어찌 심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울창한 동백림이 입구에...]

[발굴중인 옥룡사지...]

옥룡사지는 통일신라 말의 뛰어난 고승이자 한국풍수지리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 머무르면서 수백명의 제자를 가르치다 입적하신 곳으로, 우리나라 불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천년의 불교성지이다. 옥룡사지는 옥룡면 추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옥룡"이라는 지명은 도선의 도호인 "옥룡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옥룡사지를 싸안고 있는 백계산(505.8M)은 주산인 백운산(1,218M)에서 뻗어 내린 지맥으로 형성된 아담한 산으로 백운산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옥룡사는 신라 말에 조그만 암자였던 것을 도선국사가 864년에 중수하여 거처하였으며, 수백명의 사문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자 몰려들어
 
"옥룡사파"란 지파가 형성되자 몰려드는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인근에 운암사라는 사찰을 추가로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룡사는 몇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세를 이어 오다가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찰 되었으며 현재 서 있는 대웅전은 1969년에 건립되었다.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와 수제자인 통진대사의 비와 탑이 세워져 있었으나 1920년경에 모두 없어져 버리고 비문만이 탁본되어 "동문선"등에 전해온다. 고 네이버검색에 쓰여있다. 그리고 옥룡사지는 사적제407호 - 옥룡면 추산리 302번지 외 라고....

[1969년 새로 건축된 옥룡사 대웅전...]

[발굴중인 옥룡사지...]

[옥룡사지 문화재 지정 안내판...]

[발굴중인 옥룡사지...]

[옥룡사지 발굴된 석물들...]

옥룡사지와 어마어마한 동백림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좁은 길을 빠져나와 옥룡쪽을 내려선다. 옥룡에서 운평리쪽으로 들어선다. 이길로 가면 성불계곡과 이어지는 길목이다. 조금 들어가 가파른 언덕으로 오르는길이 나선다. 조심해 오르지 않으면 사고 위험이 따르는 그런 길이다. 지그자그로 한참을 오르니 언덕에 정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밑에 약수터가 있다. 정자 이름은 "세심정"이다. 우물에 흔히 붙는 이름인데 이곳은 샘은 밑에있고 정자는 산마루에 있다. 고개를 넘어 산골짜기로 한참을 오르니 우측으로 공사가 한창인 사찰이 보이고 위로는 저수지가 보인다. 포크레인 굉음속에 주차를 시키고 올라가니 흑벽을 쌓느라 한창이다. 많은 양의 흙을 반죽해야 하기에 포크레인이 반죽을 대신하고 있었다.
 
[세심정밑에 약수터가...]

[중흥사 입구언덕에 세심정이...]
 
중흥사는 전라남도 광양시(光陽市) 옥룡면(玉龍面) 운평리(雲坪里) 중흥산자락에 위치한다고 적혀있다. 역사를 알아보니 중흥사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중흥산성 내에 세웠다고 하며, 중흥사 경내 위에는 아담한 저수지가 있으며, 주위에는 삼나무 밭이 우거져있고, 산세가 중후하다. 중흥사에는 세 개의 유명한 석조물이 있는데, 쌍사자석등(국보 제103호), 3층석탑(보물 제11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지방유형문화재 제1 42호)이 있으며 쌍사자석등은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 중이라 한다.
 
"임진왜란때 왜군과 의병의 격전지였던 중흥산성 옛 터전에 둘러싸여있는 호국사찰 중흥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임진왜란때 화재로 폐사되어 이후 작은 암자가 건립되어 여승의 힘으로 유지되어 오다 1936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폐사가 되었다. 1963년 독지가 하태호에 의해 재 중건되어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었다." 고 광양 송월 마을 홈페이지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중흥산성 삼층석탑 (보물 제112호) - 옥룡면 운평리 산 23...]

[중흥산성 삼층석탑에...]

[중흥산성 삼층석탑에...]

[중흥산성 삼층석탑(일층 사면엔 부처님이)...]

[고풍스럽게 지어진 건물...]

[중흥사 대웅전을 옆에서...]

[신축건물 인데도 오래된 것 같은 맛이 나게 지어진...]

[건물 넓이에 비해 지붕의 용마루가 높지를 않아 보여...]

[고풍스러운 모양과 색채가...]

[문의 문양과 경칩이 세련되게...]

[문살과 문고리의 아름다움...]

[나무 광술에서 나오는 진의 색이...]

[고풍스러운 맛이 더욱 인상적인 건물...]

[중흥사 종각에 매달릴...]

[중흥사 대웅전...]

[건물 기둥의 나무결이 느껴지는 방식으로...]

[중흥사 해우소 가는길...]

[중흥사 해우소...]

좀더 많은 것을 알고도 싶었고 또 이 커다란 사찰을 증축하게 만든 하태호라는 사람의 업적도 알고 싶다. 많이 알려진 고찰들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다녀온 것 보다 더욱 자세하고 실감나게 감상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고찰이면서도 요즘말로 매스컴을 안탄 사찰들은 따로 이런 맛에 자주 찾게 되는 이점도 있다고 본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찌 하다 보니 사찰위주로 여행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한지역에서 검색을 하면 제일 첫째로 뜨는 것이 사찰인 까닭도 있다 하겠다.

벌써 시간은 4시반을 가리킨다. 이제 어두워 지기 전에 하산을 하여 고속도로를 올라서야 창원으로 7시까지 도착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오늘같이 밀리는 고속도로는 요즘 들어 처음이다. 이유인즉슨 사고 때문이다. 레커차가 수도 없이 지나간 것으로 보아 몇 중 추돌 사고인 것으로 보였다. 마산 쪽 거의 다가서 또한 번의 대형사고 여파로 세시간은 걸려서야 창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일은 일요일, 솔이네 식구와 화왕산 억새를 보러 갈 계획이다. 예솔이가 화왕산성 까지 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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