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정으로 《어린이와 문학》이 내년부터 휴간한다. 이번이 ‘어린이와 문학상 마지막 심사’라고 생각하니, 심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에 함께 심사를 해주신 선생님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이번 ‘어린이와 문학상’은 동화 · 청소년 소설 부문은 1차 예심을 거쳐 동화 3편, 청소년 소설 3편 총 6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전체적으로 주제와 소재가 다양하고,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이 많아 심사위원들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쉽지 않았다.
「거침없이 파쿠르」
도시에 살던 고양이가 시골에 살게 되면서 많은 생명을 만나고 그들의 굶주림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따뜻하다. 작가는 공생에 대한 주제를 고양이, 개, 참새 등 익숙한 동물들을 등장시켜 어린이들이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몰입감 있게 재미있게 읽힌다. 도시의 삶이 자신만의 길을 찾는 삶이었다면 시골에서의 삶은 다른 동물들과 함께 더불어 살며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임을 고양이의 파쿠르 찾기로 비유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참신하다. 자신만의 길을 찾는데 멈추지 말고, 좀 더 시야를 넓혀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준다. GDP 2200조 원의 세계 10위 안팎 경제 대국에서 아직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이웃이 있는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담긴 파쿠르의 의미가 잘 전달이 안 되어 아쉬웠다는 의견이 있었다. 파쿠르의 의미를 더 살릴 수 있는 에피소드가 추가되면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안녕, 언니」
일 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언니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설정이 흥미롭다. 갑자기 사고로 죽은 언니와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주인공은 언니의 모습으로 나타난 외계인의 도움으로 비로소 언니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게 되는데, 한 존재를 추억과 기억으로 인식하는 부분에 깊은 공감이 된다. 기대와 어긋남의 교차를 통해 간극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구조가 이 작품의 장점이다.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죽음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 주인공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설정이 조금은 억지스럽고, 주인공의 심리가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작가의 메시지를 좀 더 녹여내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마지막 치킨버거」
로봇에게 버거 아르바이트 자리를 뺏긴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손주에게 연애상담을 하는 할아버지 캐릭터가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기계와 인간이 공조하는 시대 사회상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끌고 가는 점도 이 작품의 장점이다. 그러나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소재가 그다지 새롭지 않고, 작가의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는 평가가 있었다.
「슛」
서로 다른 이유로 농구를 하는 두 소녀의 대립과 갈등, 화해를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외래종 붉은 목 거북이 소재를 활용해 비유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기존에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과는 접근 방법을 달리 한 점도 이 작품의 장점이다. 모처럼 만난 완성도 있는 현실주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단편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주인공 강지이가 처한 상황들이 복잡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강지이와 현이의 갈등에서 설득력이 약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장편으로 풀어낼 이야기를 단편으로 함축해서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장편으로 풀어냈을 때 더 빛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물에 발을 담근 채」
관계와 대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좋아하는 이성이 안드로이드였다는 사실 앞에서 혼란을 겪는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좋아했던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현실에서 도피한다. 작가는 나와 타자에 대한 이해와 무엇이 인간적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감상적인 문장이 잘 읽히지 않고, 주인공의 감정이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 든다. 청소년보다는 어른들 감정과 정서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으로 마지막 결말이 모호하고, 작가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아 아쉬웠다는 평가가 있었다.
「슬아가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
십 대 청소년의 심상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청소년의 고민을 현실감 있으면서도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 바퀴벌레처럼 미미하고 존재감 없다고 느끼는 주인공은 학교에 오지 않는 윤슬아를 찾아가며 동질감을 느낀다. 주인공과 윤슬아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며 위안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따뜻하다. 경쟁에 치이고 상처받아 바퀴벌레처럼 어두운 곳에 숨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견디며 작게나마 자기 존재 가치를 찾아가려는 청소년의 의지가 읽혀서 좋았다. 특별한 서사가 없어서 다소 밋밋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화려한 서사 없이 작가는 세심한 필체로 청소년의 고민과 심리를 담담하게 끌고 가 더 진정성 있고,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지금의 청소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슬아가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를 올해의 ‘어린이와 문학상’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어린이와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리며, 그동안 《어린이와 문학》에 소중한 작품을 투고해주신 모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비록 《어린이와 문학》이 긴 겨울잠에 들게 되었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찬란한 봄과 함께 다시 태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산문 심사 : 김리리, 오시은, 임어진 (김리리 대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