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물원, 멸종위기 히말라얀타알 번식 위해 우리에 투입
발정기 암컷 찾기 … 다른 동물 이용한 시도 국내 첫 성공
옆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온몸이 새까만 털로 덮인 흑염소(7세) 한 마리가 펜스 너머로 히말라얀타알 암컷 무리를 지켜보고 있다. 가슴에 빨간 크레용을 매달고 있어 ‘크레용 맨’으로 불리는 이 흑염소는 히말라얀타알의 암컷 우리와 수컷 우리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동물원 용환율 동물연구실장(수의산과학 박사)은 “히말라얀타알의 인공 번식을 위해 토종 흑염소를 대리부(父)로 이용하는 연구가 최근 성공했다”고 밝혔다. 히말라얀타알 암컷 무리 가운데 발정기에 있는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흑염소 수컷을 투입한 것이다. 종이 다른 동물을 이용해 발정기를 알아내는 시도가 국내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히말라얀타알은 멸종 위기에 처한 국제보호동물. 서울동물원은 1984년 미국에서 6마리를 들여와 자연번식에 성공해 현재 28마리를 사육 중이다. 하지만 구제역·광우병 등의 문제로 초식동물 수입 절차가 까다로워져 인공 번식의 필요성이 커졌다.
용 실장은 “인공 번식을 위해 수컷의 정액을 확보해 놓았지만, 암컷의 발정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또 “아무 때나 인공수정을 시도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고 동물들의 스트레스가 커진다”며 “발정기를 정확히 알아내, 제때 임신시키는 것이 인공 번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흑염소와 히말라얀타알은 종이 다르지만 폐쇄된 상태에서는 교미한다는 점에 착안해 ‘크레용 맨’ 아이디어를 냈다.지난달 12일, 정관을 절제한 흑염소 수컷을 ‘대리부’로 정해 가슴에 빨간 크레용을 매달아 히말라얀타알 암컷 우리에 들여보냈다.
히말라얀타알 수컷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만, 개체 수가 적어 함부로 정관절제술을 시행할 수 없었다. 반면 흑염소는 구하기 쉽고 체력이 좋아 교미가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며칠 후 등에 빨간 크레용이 묻은 암컷이 발견됐다. 용 실장은 “흑염소가 발정기의 암컷과 자연스레 스킨십을 하면서 크레용이 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동물원은 내년 초 본격적으로 ‘크레용 맨’을 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