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라'는 적극적이고 호기로운 택시기사였고, 또한 반사신경도 좋은 사람이었다. 30년도 넘은 낡은 벤츠가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 가방에서 나의 카메라를 꺼내자, 방금전까지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가 싶다가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려 살피곤, 카메라임을 확인하자 안심하고 다시 운전을 하였다. 모로코에는 택시강도사건이 상당히 자주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 자가 자기 차로 자가용 영업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탄 대형 벤츠 차량은 '그랑 택시'라는 기종으로서 페스의 그랑택시는 택시캡이 없는 형태로 다니고 있었다. 그와 함께 거의 티코 크기의 자그마한 빨간색 소형택시도 영업을 하는데 훨씬 저렴하다)
그러다가 다시 택시비가 12유로 맞지? 하고 내가 재차 확인을 하였더니 무슨 소리를 하냐며 15유로가 맞다고 우겨댔다. 결과적으로 그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틀림없이 택시 타기전에 "12"라고 확인을 두번이나 하였는데.. 저렴하게 불러놓고 말바꾸기라는 생각이 들수 밖에 없었다. 20분 정도를 달려 택시는 메디나 근처에 도착을 하였고, 아디라는 자신의 휴대폰에서 내가 묵을 호텔인 'Riad la Perle de la medina(리아드 라 페를르 드 라 메디나)'의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자랑스럽게 보여주고는 전화를 걸어 직원을 밖으로 불러냈다. 나는 동전까지 다합쳐 이것밖에 없다며 14.5유로를 주었고, 아디라는 더이상 언쟁하기도 지쳤다는 듯 "Bon chance(당신 운이 좋은줄 알아요)."라고 말하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페스의 어둠속으로 굉음을 내며 사라졌다.
나를 마중나온 직원은 하얀 아랍식 옷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쓴 덩치가 좋고 키가 큰 사람이었다. 거리에는 밤이었는데도 할일없이 서성대거나 무리지어 있는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는 지경이었다. 또한 치안이 허술하다하니 나는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덩치 큰 호텔직원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나를 안내했다. 얼핏봐도 4-5m는 되어보이는 높다란 담장이 있는 골목을 따라 막다른 곳에 이르자, 커다랗고 육중한 대문이 우리를 막아섰고, 그 문을 열자 우리는 아늑한 호텔 안으로 안내되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다. 오늘의 모든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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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출발하기 며칠 전 나는 venere.com을 통해서 호텔을 예약하고 있었는데, 모로코의 전통 숙박시설인 '리아드(Riad)에서 묵어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검색에 들어갔고, 마침내 그 중 가장 평이 좋은 리아드 라 페를르(진주 pearl이라는 뜻)를 골라서 예약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여행자의 후기에서 리아드들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고, 우연히 묵게 된 세계적인 저가호텔체인인 '이비스'가 가장 맘에 들었으며 그곳에 가서야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요지의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읽고 말았다. 나는 내가 십 몇 만원을 주고(모로코에서는 절대 싼 가격이 아님) 예약한 그 리아드에서 최악의 서비스를 경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고, 마침내 취소를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venere.com에 들어가보니 취소를 하는 방법을 잘 알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취소는 도착 15일 전까지 가능한데, 나는 도착 10일 전에 예약을 했으므로 애시당초 취소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음. 또한 그들은 이런 경우, 취소할 수 없습니다 같은 안내문구를 띄워야 하는데 취소 버튼을 찾아서 누르라는 원론만 명기해놓았음. 그리고 나와 같이 15일 미만의 기간이 남은 경우는 아예 '취소버튼'이 활성화되지 않아 애꿎게 사이트 안에서 '취소버튼' 찾아 헤메는 사태가 발생하였음) 그러다가 1일치 페널티를 물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깝지만 하는 수 없이 그냥 리아드 라 페를르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레알 '기우'에 불과했다. 리아드의 첫 느낌은 괜찮았으며 아름다운 아랍식 장식이 가득한 고급 숙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스마트하고, 공손했다. 나는 다행히도 '숙소 뽑기'가 잘된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페스 시내 관광에 대해서 직원에게 문의를 하고, 아침식사를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너무나 근사한 식사가 나와 완전 감동이었다. 시간차를 두고 빵과 음식이 하나씩 나오는데, 특히 노르스름하고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팬케익은 정말 촉촉하고 감동적인 맛이었다. 씹는 순간 입안에서 케익 육질의 기포가 '뽁뽁' 하며 터져나왔다. 서빙을 하던 메이드에게 그 빵의 이름을 물었는데 잘 모르겠어서 적어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crepe'이란다. 그렇다, 그것은 크레페였다. 한국에서 먹던 밀가루 반죽의 종잇장처럼 얇은 빵이 크레페가 아니었구나.. 나는 진정한 크레페를 만날 수 있었고, 여러가지 과일잼과의 화려한 향연을 즐겼다. 또한 오렌지 주스는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놀라운 맛이었다. 한국의 콜드같이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절대 아니었다. 단 맛이 억제되어 있었지만 부드러웠고, 과육이 잘 갈아져 있어 반 고형 형태의 그 주스는 한 모금 마시면 두 모금 째를 마시게 하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미리 예약을 했던 가이드와 함께 페스 거리 관광에 나섰다. 페스의 구시가지는 수천개의 미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지인이라도 길을 잃을 수 있다 한다. 그래서 구시가지 입구에 가면 비공인 가이드를 20디르함 정도에 구할 수 있다고 했으나, 왠지 모르게 호텔에서 제대로 된 가이드를 불러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250디르함을 주고 가이드를 고용한 것이었다.
페스 구경의 시작이 되는 곳, 정문인 부즈 루드(Bouj Loud)의 모습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저 너머에 페스의 찬란한 고건축물들이 보인다.
페스에서의 나의 사진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위축'이었다. 사진찍히는 것을 싫어하다 못해 극도로 혐오하는 모로칸들의 특성으로 인해 나는 거리사진조차 찍기가 망설여졌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러자면 자연히 사람이 뷰파인더에 들어오기 마련이며, 내가 카메라를 집어들면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다. 그러다보니 나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뒷 모습이나 텅빈 골목을 찍게 되었다. 나는 멀찍이 서서 찍을 수 밖에 없었고, 사진은 산만했다. 무엇을 찍으려 한 것인지 의도가 모호한 사진들이 담기게 된 것이다.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더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로버트 카파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천년 정도 되었다는 페스의 대학.
같은 불어를 써서인지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이 특히 많았는데, 그들은 가이드 투어를 받느라고 북새통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가이드에게 여기를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싫어한다는데 굳이 트러블을 만들기 싫었고, 남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기 싫었다.
페스의 어린이 집의 모습. 어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다만 선생님께서 낡은 칠판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만이 보였다.
생뚱맞게도 페스 메디나 안에 이태리 문화원 같은 것이 있었다.
어느 고급 리아드의 정문의 모습.
페스의 메디나 안에는 그 어떤 교통수단도 진입하지 못하며 오로지 이 당나귀만이 오가며 짐을 나를 수가 있다고 한다. 당나귀와 그 주인인 노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가이드인 무스타파는 공식 가이드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그가 아는 모든 지식을 나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분주히 두뇌를 회전해야 했다. 사실 페스 구경을 제대로 하기 위해 가이드를 고용한 것인데, 그러다보니 사진에만 몰두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고 나면, 최선의 사진을 찍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식이 된 것이다. 무스타파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고, 어차피 내가 고용한 사람이니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내가 아주 마음놓고 찍은 골목 사진들. 이태리 골목들과 느낌이 약간 유사하지만 그보다 더 낡았다.
이 곳도 내가 아주 반겨했던 장소. 왜냐하면 사진찍기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예전에 숙박시설이었는데 지금은 공장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앞마당이 마치 주성치 영화 쿵푸허슬의 장소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곳들도 모두 사진이 허용되는 곳들. 대장간인데 이렇게 특산품을 만드는 곳은 사진이 허용되는 것 같았다.
이 분은 총을 만드는 분인데 자신의 총으로 왕이 사냥을 했다고 한다. 걸려있는 사진이 왕의 모습.
이제 그 유명한 염색공장(Tannery)에 가까와 오는데 무스타파가 여기서부터는 사진을 맘대로 찍지 못하며 찍을 경우 약간의 사례를 해야 한다고 엄포아닌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진정한 염색장인들이 노란 염색 하는 장면을 찍지 못하고 서성이며 구경만 하고 왔는데, 왠 청년이 자신의 사진을 찍으라고 하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염색 장인의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냉큼 찍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돈을 요구했다. 4디르함을 주고 가면서 생각해보니 짜증이 슬며시 밀려왔다. 이녀석은 그냥 지 청바지를 빨고 있었을 뿐인데 난 왜 돈을 주면서 까지 사진을 찍었을까. 아무래도 페스에서 내 판단력이 살짝 흐려진 모양이었다.
첫댓글 당나귀 사진 좋네요.음...저도 사진을 배우고 있어요.전시회도 했구요^^사진적으로... 충분히 자극해 주는 멋진 피사체로 가득한 곳이라 생각되네요.그런데 그들과 소통하여 좋은 사진을 얻기에는 적지않은 시간이 걸리겠구나 하는 느낌도 있네요.결론은...역시 지중해소년님의 여행기는 반갑다는...^^
엇, 사진 전시회라니.. 실력이 보통이 아니신가봐요.. 전시회 한 사진 좀 보여주시지.. 감사합니다..
1편과의 텀이 길어서 프롤로그만 올리고 또! 잠수 타시는거 아닌가 -_- 마음 졸였는데 이렇게 판타스틱한 사진을 동반한 여행기 올려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ㅋㅋ근데 어린이집 선생님 복장은 아무리 봐도 의사 가운 같은데 패션 취향 특이하네요;;
ㅋ 잠수에의 유혹도 있으나 약속이 약속인 만큼.. ㅋ 이거 미리 못을 박으니 잠수 못타겠구만요. 그러게요. 근데 애들이 안보여서 조금 아쉽..
상세한 설명도 좋고
이국적이 사진들이 마음을 설레이게 하네요~
아침식사 테이블의 식기도 탐나요 ^^
저도 저 식기들은 탐이 났는데 감히 살수는 없었죠. 식기 구입하러 함 다녀오심이..
우리나라 콜드와 다른 오렌지쥬스 맛보고 싶은데요??
저 청바지들고 잇는 청년은 단지 저 포즈 하나 취하고
돈을 벌다니..나쁜것들..ㅎㅎ
한번 다녀오심이 어떠할지요. ㅋ
청바지 청년... 음... 눈빛이 먼가 교활해 보이는데요 ㅋㅋㅋ
잘 읽고 갑니다.자세한 설명을 들으니,,,더욱 생생한 느낌 입니다.
앞부분의 묘사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듯 했어요~ 재미있게 잘 읽고 있으니 계속 고고~~
크레페 맛을 어쩜 이렇게 맛있게 묘사해 주셨는지요. 소년님은 글씨도 잘 쓰시지만 "글쟁이" 기질도 있으신것 같아요./ 청바지 빠는 총각은 시실리 카타냐 시장의 마피아주차요금 뜯기요원 같이 생겼군요. 그런데 하는짓은 우리가 이집트 여행시 피라미드 앞에서 만났던 고약한 늙은이 같구요(갑자기 사진찍는 내 카메라 앞에 나타나서 손을 흔들더니 돈 내놓으라 그래서 카메라 보여주고 그 늙은이 들어있던 사진을 확 지워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