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2:1,2 충성된 자에게 부탁하라 24.9.8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충성된 자에게 부탁하라”입니다. 충성된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문화재가 대략 17만점이 된다고 합니다. 그중에 2만 점 정도는 국내에 있지만 나머지 15만 점 정도가 국외에 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이 많았으니 힘이 없어서 빼앗긴 것일까요? 놀랍게도 약탈당한 것보다는 팔아넘긴 것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일제 식민치하에서도 소유자가 생각하기에는 집에 있는 고문서나 물품 등의 값이 십만 원 정도 될 줄 알았는데 일본의 골동품 상인이 와서 그보다 다섯 배나 더 준다고 하니 팔아버린 것입니다. 정확한 가치를 몰랐으니까요.
문화재 중에서도 국가의 보물로 정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국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보 1호는 숭례문(남대문)입니다.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가 그렸을까요? 추사 김정희가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200년도 안 되었지만 열 명의 손을 거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손창근 씨가 4년 전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하여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귀양가 있던 시절,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이상적이 북경에서 귀한 서책을 어렵게 구해와 유배지까지 갖다 주었는데, 추사 김정희가 자신의 처지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여 답례로 그려준 것입니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리고 "가장 추울 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있구나."라는 글을 써 넣었습니다.
그림을 받은 제자 이상적은 아주 이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상적은 그림을 가지고 청나라로 건너가서 대표 문인 열여섯 명에게 보여주고 극찬을 받고 돌아왔는데, 국내에서도 문인 세 분에게도 극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세한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게 된 것입니다. 책을 낼 때 추천서를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누가 추천서를 썼느냐에 따라 책의 가치가 확 달라지게 됩니다.
세한도라는 제목은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매함이 드러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한결같은 인격과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은 이상적 사후에 민 씨 일가로 넘어갔다가 일본 경성대학의 교수이자 고미술수집가였던 후지스카 치카시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후지츠카는 추사의 글과 그림만 고가로 수집하고 있었는데 추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세한도를 구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당시 유명한 서예가인 손재형씨가 알고 세한도를 반드시 찾아오기로 결심하고 거금을 마련하여 동경으로 건너갔습니다. 손재형씨는 ‘서예’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서도, 서법으로 부르던 것을 서예라는 단어로 승격시킨 사람입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도쿄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손재형은 공습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후지스카 집을 매일 찾아갔습니다. 그는 후지스카 교수를 만날 때마다 세한도를 사러 왔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안부를 전하고 차를 마시며 추사의 글을 구경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친분을 쌓으며 매우 가까워지자 그는 세한도가 조선 땅에 있어야 한다고 애원하며 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간청한지 100여 일 만에 후지스카는 결국 세한도를 내줍니다. 후지스카 교수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은 세한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손재형씨야말로 세한도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되자 감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가를 주고 샀던 세한도를 인사비 정도나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양도해주었습니다. 손재형씨야말로 세한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기에 더 잘 보존하고 관리해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손재형씨가 세한도를 갖고 돌아온 지 석 달이 지난 1945년 3월, 도쿄 대공습으로 후지스카의 서재가 폭격을 당하여 모조리 불타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 수집한 추사의 많은 작품들도 한 순간에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세한도만 기적처럼 불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아들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자에게 부탁하라”고 합니다. ‘내게 들은 바’는 바울에게 들은 복음을 말합니다. 이것을 충성된 자들에게 또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합니다. ‘충성된 자’는 신실한 자, 믿음직한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부탁하라’는 것은 맡기라, 의탁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바울의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해봅니다. ‘너는 내게 들은 이 복음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말고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자에게 맡기라’ 은혜의 가치를 아는 자가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가치를 아는 자가 구원을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아는 자가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합니까. 국가와 민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자가 충성하지 않습니까. 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부모의 위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가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자가 어찌 효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진실로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가 복음을 위해 충성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된 자는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택하셨습니다. 우리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예수님은 비록 죄인인 인간이지만 희생을 지불하고서라도 능히 바꿀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치입니까.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영혼의 가치! 그 영혼의 가치를 알았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손재형씨가 세한도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꺼이 동경으로 건너갔던 것처럼 예수님은 그 귀한 한 영혼, 한 영혼이 바로 하나님의 보석이고 보물이고 보배인 줄 알았기에 그 귀한 보배를 찾아서 기꺼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손재형씨가 세한도를 살 만한 거금을 마련하여 일본으로 건너간 것처럼 예수님은 거금이 아니라 가장 귀한 목숨을 내어주고 피값으로 우리를 얻을 작정을 하시고 내려오신 것입니다.
마13:44에서 예수님은 보물을 발견한 한 농부에 대한 비유를 하셨습니다. 한 농부가 남의 밭을 갈다가 보물항아리가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집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보물이 더 귀한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을 취하려고 밭을 통째로 사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가치를 알면 그에 상응하는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에 대한 가치,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도 기꺼이 순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가던 영혼이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확신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14:1이하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천국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이 먼저 가셔서 우리를 위해 예비한 곳입니다. 반드시 먼저 가셔서 우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영접하겠고 너희도 나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이어서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길을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절) 그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곧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요5:24에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당이 맞이한 것은 십자가 뒤에 있는 영광을, 결과를, 가치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까지도 순종한 것입니다.
세한도가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 그림의 가치를 아는 한 사람, 손재형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 것도 복음의 가치,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가치,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고 구원의 가치를 아는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수고와 희생을 통해서 된 것입니다.
누구보다 복음의 가치를 알았던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가치를 알았기에, 하나님이 죄인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가치를 알았기에, 십자가 사랑을 알았기에 그가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빌3:7이하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알고 그동안 자신이 유익하게 여겼던 것들, 자신이 의롭게 여겼던 것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갈 6:14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처럼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길 축복합니다.
불행하게도 손재형씨는 그 후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급전이 필요하여 세한도를 담보로 거금을 대출하게 됩니다. 세한도를 담보로 맡겨서라도 권력과 명예를 쥐고 싶었던 야욕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국회의원에 두 번이나 당선되었지만 결국 세한도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그 가치를 알아본 또 다른 사람 손세기씨와 그 아들 손창근씨에 의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손재형씨는 세한도의 가치를 알고 일본까지 가서 찾아왔지만 이유야 어찌하든 그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말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가치를 이용해서라도 권력과 명예를 얻는 길을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후지스카 교수는 손재형씨가 세한도를 자신의 영욕을 위해 담보로 잡힐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 맡겼을까요. 결단코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으나 구원을, 은혜를 끝까지 붙잡지 못하는 사람들, 신실하지 못하고 충성되지 못한 사람들이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구원의 가치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가치, 구원의 가치를 알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충성된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충성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