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구년에 익산 총부를 처음 건설한 후 가난한 교단 생활의 첫 생계로 한 동안 엿(飴) 만드는 업을 경영한 바 있었더니, 대종사 항상 여러 제자에게 이르시기를 [지금 세상은 인심이 고르지 못하니 대문 단속과 물품 간수를 철저히 하여 도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일 도난을 당하게 된다면 우리의 물품을 손실할 뿐만 아니라 또한 남에게 죄를 짓게 해 줌이 되나니 주의할 바이니라.] 하시고, 친히 자물쇠까지 챙겨 주시었으나 제자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관계로 미처 모든 단속을 철저히 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밤에 엿과 엿 목판을 다 잃어버린지라, 제자들이 황공하고 근심됨을 이기지 못하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근심하지 말라. 어제 밤에 다녀간 사람이 그대들에게는 큰 선생이니, 그대들이 나를 제일 존중한 스승으로 믿고 있으나, 일전에 내가 말한 것만으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이제부터는 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크게 주의를 할 것이니, 어제 밤 약간의 물품 손실은 그 선생을 대접한 학비로 알라.]
☆어구 해석
익산 총부 : 원불교 중앙총부의 옛 이름. 현재 전북 익산시 신룡동 344-2에 자리잡고 있는 원불교 중앙총부가 익산시에 편입되기 전에는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였으므로 익산총부라 불렀다. 1924년(원기 9) 2월, 봉래정사에서 내려온 소태산 대종사는 이해 4월 29일(음)에 익산시 마동에 있는 보광사라는 조그마한 절을 잠시 빌려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한 후 제자들과 함께 익산시 부근을 답사하고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에 총부 건설기지를 정하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빈 주먹이라 건설기금이 큰 문제였는데, 마침 제자 서중안이 3천여 평의 임야를 구입 희사하고, 건축비 일부까지도 부담하였다. 이에 각처에서 제자들도 건축금을 희사하고, 영광과 봉래정사를 거쳐 온 제자들의 근로작업으로 이 해 9월(음)에 공사를 시작해서 11월(음)경에 목조 초가 2동 17간을 완공하였다. 이것이 익산총부 건설의 시초이다. 당시 이곳은 인가가 드물고 행인도 별로 없는 야산지대였다. 이때부터 전무출신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고, 만석평의 소작농사짓기와 엿장수라는 교단 창립의 어려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원불교 중앙총부와 원광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중요기관이 설립되어 있고, 우리나라 굴지의 종교 본산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심 : 번뇌 망상에 끌려다니고 삼독 오욕에 불타는 중생의 마음. 생로병사에 끌려다니고, 희로애락에 흔들리며,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중생의 마음 변하기를 잘 하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 인간의 자연적 감정 백성들의 마음. 대중들의 마음.
간수 : 상하거나 도난당하지 않도록 물품을 보살피고 잘 지키는 건
엿 목판 : 엿을 담는 속이 얕은 목판.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