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환상처럼 quasi una fantasia
-에빌 킬레스의 moonlight를 들으며
김선우
내 혈관을 짚으며 외계가 물었다
"다음 꿈, 인간입니까?"
대답이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정성껏 말했다
"가장 오래된 울음이 피 도는 몸인 걸 압니다.
노래가 여기서 나오는 걸 압니다."
혁관악기, 라고 기록되었다
본 적 없는 촉각의 문자였으므로 혀를 대보았다
비릿한 노을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절망마저 진부하다면 노래를 그칠 겁니까?"
나는 그만 문을 닫으려 했다
"인간을 지속하길 원합니까?"
문밖이 조금 초초한 듯했지만
다음 꿈, 인간일까?
지금껏 저질러온 인류사만으로도
인간과 꿈은 지독히 먼데
"살아있는 동안 쓰는 일을 계속할 뿐입니다."
시를 쓰는 자로서의 내 유일한 능력은
무엇이 되려는 꿈을 흩어버릴 수 있다는 것
관 밖에서 누군가 훌쩍거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노래를 이어가기로 했다
오늘 밤은 피아노에 어울리는 혈관악기로서
개가 짖는 이유
나는 나의 말입니다
나는 나의 언어란 말입니다
나는 말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르시겠어요?
왜 말을 않느냐고 자꾸…
왜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자꾸…
내 표정이
내 행동이
내 몸이
말이란 말입니다
말과 몸이 분리된 지 오래인
당신 종족이 이해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果然, 혹은 과일의 자연
꽃이 앉았던 그 자리
영원하다는 듯
비어 있다
지금 비어 있는 그곳
몸서리, 친다
몸부림, 친다
세계의 바깥은
차오른다
영원이란 없다는 듯
바깥이 안이 되어
나로 영그는 순간
반드시 온다
<뱔견> 2019,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