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을 잊으셨나?
분노로 당신 자비를 거두셨나?
(시편77,10)
‘하느님의 잊으심’은 하느님의 나쁜 기억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의도적인 거절’을 뜻한다.시인은 하느님이 의도적으로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기로 작정하셨을까 봐 염려한다.또한 하느님이 분노하시어 자비를 거두신 것인지 의문을 가진다.그러나 하느님은 아무리 분노했어도 자비를 거둘 수 없는 분이시다.“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탈출34,6-7).하느님의 자비는 연민의 사랑이다.자비에 대해서는 시편51,3의 각주를 참조.악인들에 대해 분노한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나쁜 사람에게나 똑같이 자비를 베푸신다(아우구스티누스).예수님은,“하느님께서는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마태5,45)고 말씀하셨다.
시편77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77편은 밤을 배경으로 하는데(3.7절)주님이 시인의 눈꺼풀을 붙잡으시어(5절)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새운다.이 시편은 명백히 밤에 드리는 기도다.시인은 밤에도 손을 벌린 채 기도하며 밤새도록 묵상한다.그는 곤경을 당하며 의문에 휩싸인다.그는 주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옛날과 달리 지금은 하느님이 자애와 자비를 거두신 것 같다.옛날에는 많은 업적과 기적과 행적을 이루셨는데 지금 하느님은 변해버리신 것같다(11절).현재 자신을 곤경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신 하느님에 대해 의문이 드는 가운데서도 시인은 주님의 업적과 기적과 모든 행적을 되새기며 묵상한다.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양 떼처럼 이끌어 주셨다(21절).특히 모세와 아론이라는 두 지도자를 통해 당신 백성을 이끄셨다.이 시편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 가운데서 하느님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를 말해준다.오늘날의 교회와 수도회의 지도자들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이끄시기 위한 수단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시편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2 시편 42-89편/바오로딸)
151. 소속감,뿌리 의식,‘편안함’을 증진하는 공공장소,명소,도시 경관을 가꿀 필요가 있습니다.도시의 여러 지역이 잘 통합되는 것이 중요하고,또한 지역 주민들이 도시 전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라 여기지 않고 자기 동네에만 갇혀 살기보다는 하나라는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도시와 농어촌의 경관을 바꾸는 경우에 지역의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합니다.그래서 주님들이 이 전체적인 것을 풍부한 의미를 지닌 일관된 틀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을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더불어 사는‘우리’의 일부로 여길 수 있습니다.똑같은 이유로,도시와 농어촌에서 모두,일부 지역들을 인간의 개입으로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에서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152. 주택 보존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대도시만이 아니라 농어촌 지역에서도 심각합니다.국가 예산은 대개 수요의 일부만을 충족시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가난한 이들만이 아니라 사회의 다른 많은 구성원들도 집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집을 마련하는 것은 인간 존엄과 가정의 발전에 매우 중요합니다.이는 인간 생태론의 핵심 과제입니다.임시 판자촌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일부 지역에서,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기보다는 먼저 그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가난한 이들이 오염된 도시 근교나 위험한 집단 거주지에서 살아갈 때,“고통이 가중되지 않도록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야 할 경우에는 사전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여 알맞은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며,직접적인 관련자들을 그 과정에 참여시켜야 합니다.”동시에,창의력을 발휘하여 낙후된 지역을 살기 좋은 도시로 통합하게 해야 합니다.“해로운 불신을 극복하고 다른 이들을 온전히 받아들여 바로 이 통합을 새로운 발전 요인으로 만드는 도시들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건축 분야에서도,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으며 알아 가는 공간들로 가득 찬 도시들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153.도시에는 삶의 질이 교통 체계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이 교통 체계는 종종 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한두 사람만 승차한 많은 차량들이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교통 혼잡을 초래하고 공해를 악화시키며 엄청난 양의 비재생 에너지를 소비합니다.또한 도시의 경관을 망가뜨리는 많은 도로와 주차장의 건설이 필요하게 됩니다.많은 조치들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수용되지 못할 것입니다.많은 도시들에서 사람들은 과밀,불편, 긴 배차 간격,불안 때문에 품위 없는 대접을 견뎌야만 합니다.
154. 인간 고유의 존엄성의 존중은,사람들이 도시 생활에서 감내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생활과 흔히 마찰을 빚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소외와 무시를 당하는 농어촌 지역 주민들의 처지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농어촌에는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좀 더 존엄한 삶의 대한 권리도 희망도 없이 노예의 처지로 추락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합니다.
155. 인간 생태론에는 또 다른 심오한 측면도 있습니다.곧 인간의 삶과 우리 본성에 새겨진 도덕률이 맺는 필연적 관계,곧 더 존엄한 환경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사람은 존중해야 하며,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는 본성도 지니고 있다.”라는 사실에 토대를 둔 “인간생태론”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몸이 우리가 환경과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 직접적 관계를 맺게 해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우리의 몸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이며 우리의 공동의 집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그러나 우리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종종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피조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우리 몸을 받아들이며 돌보고 그 의미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또한 이성과의 만남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여성상이나 남성성을 지닌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이렇게 하여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의 작품인,나와 다른 남자나 여자라는 특별한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성적 차이에 대처하는 법을 모르니 그 차이를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건전한 태도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발췌)
“조선의 19세기는 천주교도를 박멸하는 고문과 학살로 시작되었다(1801년 신유박해).이 참극은 성리학의 왕조 조선이 서양 문물과 사상을 퇴치하는 문명창출이었고,체제를 수호하는 비상조치였고,왕조 내부의 권력투쟁이었고,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미리 본 사람들의 순교 사태였다.
1784년 4월 15일에 지식인 청년 세 명을 태우고 팔당나루를 떠난 돛단배 쪽으로 이 박해와 살육의 서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에 탄 청년 세 명은 어떠한 운명이 닥쳐오고 있는 줄 알지 못했으나 이날의 한강 뱃길은 신천지에 개안하는 푸르고 빛나는 청춘의 날이었다.
배를 타고 가던 중 이벽은 정씨 형제 두 명에게‘한 권의 책’을 보여 주면서,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해 주었다.정약용은 예순한살이 되어 그날을 회고하면서 말했다.
천지조화의 시초,사람과 神,삶과 죽음의 이치를 듣고 황홀함과 놀라움과 의아심을 이기지 못했는데,마치<장자>에 나오는 하늘의 강이 멀고 멀어 끝이 없다는 것과 비숫했다.
배 안에서 스물두 살 정약용의 마음은 학문에서 신앙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에 올라서 있다.정약용은 멀어서 끝이 안 보이는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정약전은 이날의 일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정약전도 배 안에서 이벽이 보여주는 그‘한 권의 책’에 빠져들었고,이 해 겨울에 이승훈으로부터 세례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 ‘한 권의 책’은 젊은 그들의 운명에 깊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허송 세월 228~229쪽/김 훈)
올해도 어느새
내리막에 속도가 붙는 중
초록 이파리를
단풍 들 날 멀지 않으니
불볕더위의 심술쯤
너그러운 맘으로 용서해 주자
(8월의 시/정연복)
폭염에 너무 열 받지 말자고요
특히 살면서 내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에 일일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가장 쓸모 없는 것 중에 하나임을...
나도 찜통 더위 너를 과감히 용서 해주마
행복한 날만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