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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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핑커 (사이언스북스, 2014)
서문
- 폭력의 역사적 궤적은 인류의 오랜 고군분투 속에서 더 나아졌을까 나빠졌을까? 개인주의, 세계주의, 이성, 과학의 힘이 가족, 부족, 전통, 종교를 잠식하는 현상으로 규정된 근대성(modernity)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오늘날의 세상을 악몽(범죄, 테러, 집단 살해, 전쟁)으로 보느냐 아니면 역사적 기준으로 보아 유례없이 평화로운 공존과 축복의 시기로 보느냐에 따라 많은 문제가 결정된다.
-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기나긴 세월 동안 폭력이 감소해 왔고, 어쩌면 현재 우리는 종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주장. 이 생각 자체가 회의와 불신과 때로는 분노마저 일으킨다.
우리는 타고난 인지적 도구 때문에 오늘날이 폭력의 시대라고 믿기 쉽다. 우리는 사건의 확률을 어림할 때 구체적 사례를 얼마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좌우. 노령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모습보다는 방송에 나오는 사건, 테러 장면이 기억에 새겨짐.
위험 감각을 왜곡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우리의 도덕 심리이다. 지금껏 누구도 사태가 좋아졌다는 말로써 대의에 헌신할 활동가를 모집하지 않는다(지금이 위기다! 담론이 필요). 우리의 지적 문화는 문명, 모더니티, 서구 사회에 조금이라도 좋은 구석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저자는 이런 선입관에 맞서, 숫자로 여러분을 설득할 것. 폭력의 세계적 추세는 거의 모든 차원에서 현재로 올수록 하강하는 곡선을 그림.
- 흔히 폭력의 역사를 도덕적 무용담으로 - 악에 맞선 정의의 영웅적 사투로 -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다른 접근법. 현상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찾는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로 과학적. 어떤 경우에는 도덕 운동가들의 노력을 평화 진작의 원인으로 볼 수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기술, 통치, 상업, 지식 면에서의 변화처럼 더 평범한 설명이 있을 것.
- 마음이란 뇌에 갖춰진 인지적, 감정적 능력들로 구성된 복잡한 체계. 뇌의 기본 설계는 진화 과정의 산물. 이런 능력 중 일부는 우리를 갖가지 폭력으로 이끌지만, 또 다른 능력들은 - 링컨의 말을 빌리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협동과 평화로 이끈다. 과거의 문화적, 물질적 환경 변화들 중 무엇이 온화한 동기를 우세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곧 폭력 감소를 설명하는 길.
- 시공을 불문하고 늘 더 평화로운 사회일수록 더 부유하고, 건강하고, 교양 있고, 건전하게 통치되고, 여성을 존중하고, 통상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이런 특징 중 무엇이 선순환을 개시한 요인이고 무엇이 편승한 요인인지 가리기 힘들다. 순환 논리의 유혹(폭력의 감소는 덜 폭력적인 문화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설명) 역사적 변화를 가장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길은,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외생적 변수를 찾아내는 것. 외생적 힘은 기술, 인구 구성, 상업과 통치 메커니즘의 변화와 같은 현실 영역에서 비롯. 때로는 지적 영역에서도.
- 폭력 감소의 6가지 경향성
1) 평화화 과정 : 5천 년 전부터 수렵, 채집 사회에서 도시와 정부를 갖춘 농업 문명으로 전이. 만성적 습격과 혈수가 줄었고, 폭력적 사망의 비율이 1/5로 감소.
2) 문명화 과정 : 중세 후기부터 20세기까지, 500여 년에 걸친 과정. 유럽 국가들의 살인율은 과거의 1/10-1/50로 줄어듬. 사회학자 노르베스트 엘리아스 <문명화 과정>에서 이 놀라운 감소는 조각조각 나뉘었던 봉건 영토들이 중앙 권력과 상업 하부구조를 갖춘 큰 왕국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라 주장.
3) 인도주의 혁명 : 17-18세기 이성의 시대 및 계몽시대에 수백 년 규모로 펼쳐짐. 전제 정치, 노예제, 결투, 사법적 고문, 미신적 살해, 가학적 처벌처럼 사회적으로 용인된 폭력을 철폐하려는 조직적 움직임 등장, 체계적 평화주의도 이때 처음 시작.
4) 긴 평화 : 2차 세계 대전 끝난 뒤, 50-60년 동안 강대국들과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음. 역사학자들은 이 축복 받은 정세를 긴 평화라고 부름.
5) 새로운 평화 : 냉전이 끝난 1989년 이래 모든 종류의 조직적 충돌(내전, 집단 살해, 독재 정부의 억압, 테러)이 세계적으로 감소. 다행스러운 임시적 변화.
6) 권리 혁명 : 1948년 세계 인권 선언 이후 더 작은 규모의 공격성, 소수집단, 여성, 아이, 동성애자, 동물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짐. 시민권, 여성권, 아동권, 동성애자 권리, 동물권 옹호.
- 폭력의 감소를 인식하면, 과거는 덜 순수해 보이고, 현재는 덜 사악해 보인다. 우리가 오늘날 이런 평화를 누리는 까닭은 옛 세대들이 당대의 폭력에 진저리치며 그것을 줄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 시대의 남은 폭력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폭력의 역사적 감소를 깨우치는 것이야말로 그 노력의 가치를 굳게 확신시키는 요소.
-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함은 오래전부터 도덕적 설교의 소재였다. 그런데 이제 무언가가 그 잔인함을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우리는 그것을 인과의 문제로 다뤄도 좋을 것. ‘왜 세상에는 전쟁이 있을까?’라고 묻는 대신, ‘왜 세상에는 평화가 있을까?’라고 물어야.
1장 낯선 나라
- 과거는 낯선 나라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다르게 산다.
- 과거가 낯선 나라라면, 충격적이리만치 폭력적인 나라인 셈이다. 우리는 과거의 삶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과거의 일상에 잔학성이 얼마나 깊숙이 구석구석 있었는지 곧잘 잊는다. 문화의 기억은 과거를 평화롭게 미화하여, 피투성이였던 원래 모습이 탈색되어 창백해진 기념품만을 우리에게 남긴다.
- 상대의 군대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표적으로 삼는 총력전은 현대에 발명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족국가, 보편주의 이데올로기, 원격 살해 기술이 등장함으로써 총력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묘사에서 고대 그리스의 전쟁은 현대의 어떤 전쟁 못지않게 총력전이었다(고고학, 민족지학, 역사적 사실과 실제로 합치).
; 저들 중 아무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어미의 뱃속에 든 아이조차도, 그런 아이까지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죽은 자들을 생각하며 눈물지을 사람 하나 남지 않게 하라.
; 얕은 쾌속선을 저어 해변에 내린 뒤, 이웃 마을 사람들이 방어를 도우러 오기 전에 해안 마을을 약탈했다. 남자는 보통 다 죽였고, 여자는 데려가서 승리자들에게 성적, 육체적 노역을 바치게 했다. 호메로스 시대의 남자들은 늘 느닷없고 폭력적인 죽음의 가능성을 품고 살았고...
- 결투는 유럽에서 르네상스시기에 등장한 관습으로, 귀족들과 그 수행원들 사이의 암살, 보복, 시가전을 줄이려는 조치.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상대에게 공식적으로 결투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폭력이 한 명의 죽음으로 마감될 것이고, 패배한 사람의 일족이나 측근에게 악감정이 남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신사계급은 명예를 어찌나 진지하게 여겼던지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일이라면 거의 모두 명예 훼손으로 여겼다. 어느 영국인들은 자기네 개들이 싸운 것 때문에 결투하고 등등. 결투는 18세기에도, 19세기에도 이어졌다. 교회가 그 행위를 탄핵했고 많은 정부가 금지했는데도 말이다.
결투의 성쇠는 우리가 종종 마주칠 수수께끼 같은 현상들의 좋은 예시이다. 어떤 종류의 폭력이 수백 년 동안 인류 문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난데없이 사라지는 현상이다. 결투에 응했던 신사들은 돈, 여자 때문이 아니라 명예 때문에 싸웠는데, 사실 명예란 참 이상한 것이다. 명예는 모두가 남들이 그 존재를 믿는다고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위신을 추구하는 행동이나 규범에 대한 집착과 같은 인간 본성의 몇몇 부분은 그 거품을 부풀리지만, 유머 감각과 같은 본성의 다른 부분은 그 거품을 뻥 터뜨린다. 공식적인 결투제도는 영어권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는 그 몇 십 년 뒤부터 사라졌다. 역사학자들은 법적 금지나 도덕적 반대보다는 조롱의 말이 제도의 쇠락에 더 기여했다고 본다. “신사가 엄숙하게 결투장으로 나서서 기껏 젊은 세대의 비웃음을 사는 형편이니, 아무리 전통으로 굳은 관습이라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이다.
2장 평화화 과정
- 홉스의 <리바이어던> : 저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들은 경쟁과 싸움이 불가피. 이러한 무정부적인 자연적 상태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명시한 것. 리바이어던은 개인들의 의지를 구현하는 동시에 폭력 사용을 독점하는 군주 혹은 정부를 말함. 리바이어던은 공격자를 처벌함으로써 개인들의 공격 동기를 제거. 그러면 전반적으로 선제공격에 대한 불안이 완화되고, 자신의 보복의지를 증명하기 위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어진다.
리바이어던 이론은 법이 전쟁보다 낫다는 것으로, 인류 역사에서 약 5000년 전에 나타남. 정주하던 농부들이 서로 뭉쳐 최초의 도시와 나라를 만들었고, 최초의 정부를 발달시킴. 홉스의 이론이 옳다면 이런 변화는 역사상 최초로 폭력을 상당히 감소시켜야만 한다. 이 발전을 평화화 과정으로 칭함.
- 루소(1712-1778년) : 원시 상태의 인간보다 더 온화한 인간은 없다. 미개인들은 인류가 영원히 그 상태에 머물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하고, 이후의 모든 발달은 종의 쇠락을 향한 단계였다고 말하는 듯하다. 소위 ‘고귀한 야만인’ 이론.
20세기 후반 들어 사람들은 루소의 낭만적 이론이 인간 본성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학설이라고 믿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원시인’에 대한 과거의 인종주의적 학설에 반대하는 뜻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인간 조건을 좀 더 희망차게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평화 인류학자’들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에게 동족을 죽이지 않으려는 강한 억제 능력이 있다고 주장. 전쟁은 최근의 발명이고, 원주민끼리의 싸움은 그들이 유럽 식민주의자들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의례적이고 무해했다고 주장.
저자는 폭력에 대한 생물학적 이론은 모두 숙명론이고 낭만적 이론은 모두 낙관론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거꾸로 라고 생각. 국가 이전 시대의 폭력에 대한 홉스와 루소의 말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소리였다.
- 폭력성은 내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쓰이는 속성이라는 진화 이론의 예측, 달리 말해 잠재적 이억이 크고 위험이 적은 상황에서만 폭력이 사용된다는 것.
- 만일 내가 특정 시대에 살았다면, 폭력 피해자가 될 확률은 얼마였을까? 국가의 등장을 구분선으로 삼아 한쪽에는 수렵 채집 사회, 그 밖의 부족 사회를 놓고 반대쪽에는 정착 국가를 놓아서 비교.
-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보면, 그래프에서 제일 뚜렷한 간극은 무정부적 군 사회 및 부족 사회와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를 가르는 선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 수렵 채집인 중 폭력적 외상의 징후가 있는 경우는 13.4%였고,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 도시 거주자 중에서는 2.7%로 21세기 이전 국가들의 수치와 비슷. 다른 여러 요인들이 같을 때, 문명 속 삶은 폭력 피해자가 될 확률을 1/5로 줄여줌.
-수렵 채집 집단은 65-70퍼센트는 최소 2년 마다 전쟁을 했고, 90퍼센트는 최소 매 세대마다 전쟁을 했으며, 그렇지 않은 집단도 거의 모두 과거의 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을 갖고 있었다.
-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개인 대 개인의 복수가 흔했고 식민정부나 민족국가의 평화화 효과를 겪지 못한 부족사회에서는 친족 대 친족의 혈수가 흔했다. 반면 중앙 집권적 정부의 통제를 받는 사회, 혹은 자원 기반이나 증여 패턴 때문에 사회적 안정을 추구할 동기가 큰 사회에서는 판사와 법정에 의존하는 심판이 흔했다.
- 오늘날 평화로운 수렵 채집인들은 대체로 엄청나게 고립되거나 남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끊거나 달아나서 숨는 방식으로, 혹은 무력에 항복하거나 패배하여 길들여지거나 강제에 못 이겨 평화로워지는 방식으로 평화로운 삶이라는 숙제를 해결했다.
- 20세기 후반부의 한 가지 비극적 아이러니는 발전 노상에 있던 식민지들이 유럽의 지배에서 해방된 뒤 왕왕 도로 전쟁으로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현대적 무기, 조직화된 군벌, 부족 장로들을 거역할 자유가 주어진 상황이다 보니 전쟁이 예전보다 격화되었다. 이런 현상은 폭력의 역사적 감소를 거스르는 역류인 동시에 리바이어던의 폭력 감소 효과를 증명하는 예시이다.
- 모두가 우러러볼 공통의 힘이 없었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전쟁이라 부를 만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끊임없는 두려움과 폭력적 죽음의 위험을 겪으며 살았다는 주장도 대체로 사실이었다.
- 그러나 수렵 채집을 포기하고 처음으로 정착 농업을 택한 사람들도 대가를 치렀다. 하루 종일 쟁기를 잡고 있는 것, 전분성 곡물을 주식으로 삼는 것, 가축과 이웃 수천 명과 다닥다닥 붙어사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 최초의 도시 거주자들은 수렵 채집인들 보다 빈혈, 감염, 충치에 더 많이 시달렸고 키가 6.5cm 가까지 더 작아졌다. 그러나 충치, 종기, 키 몇 센티미터는 창에 맞아 죽을 확률이 1/5로 낮아지는 데 대한 대가로는 별것 아니었다.
- 예전에는 우리가 범죄로 괴로웠지만 이제는 법으로 괴롭다(by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
- 최초의 리바이어던은 폭력의 문제를 하나 풀었으나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살인과 전쟁과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줄었지만, 대신 독재자, 성직자, 도둑 정치가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평화화 과정이란, 단순히 평화를 가져오기만 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강압적인 정부가 절대적인 통제를 가하는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