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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2016, 1, 10
로마서8 : 13
며칠 전 분당에서 교인의 수가 수 만 명에 이르고 그 목사님의 설교에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는 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분의 12월 20일 주일 설교를 인터넷을 통해서 들어보았습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생각하기를 우리 분당침례교회 여러분들에게 우리 교회와 그 교회를 놓고 자유롭게 은혜 받는 교회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우리 교회에 과연 남아 있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분당침례가 하나님 앞에 옳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확실하다는 것을 지금부터 변명을 좀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우리 분당침례교회에서 그 교회에 여러분들을 빼앗기지 않을 것 아닙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우리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옳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교회라는 정당한 이유와 하나님의 뜻을 밝혀야 여러분들이 사람의 인정에 붙잡혀 이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니고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 있음을 밝혀야 할 것 같아 불가피하게 변명할 수밖에 없는 내 심정을 조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을 내가 그분의 설교 내용을 하나하나 꼭꼭 짚어 가면서 하나님 앞에 육신의 소리에 불과 하다는 것을 지적해 드려야 내가 시기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을 이해시키는데 훨씬 더 쉬울 것 같은데 차마 그리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내가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저 설교에 일반 성도들은 물론 다른 목사님들도 모두가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겠구나 하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저 설교의 목적도 성경이해도 적용도 잘 못되어 있음을 알겠는가?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꿰뚫어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그분의 설교는 성경에 대한 이해도 적용도 잘 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누가 저 설교의 잘 못된 것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왔습니다.
내가 하는 설교와 그 목사님이 하는 설교를 듣고 교회를 택하라고 하면 누가 우리 교회를 택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어 오늘 이 설교를 불가피하게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허구한 날 사람을 치는 설교만 하는데 누가 사람을 위로하는 교회를 놔두고 우리교회를 택하겠습니까?
내가 생각해 보아도 사람들은 우리교회보다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씀을 전하는 그 교회를 택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을 얻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교회를 택해야 한다고 강변을 드리는 바입니다.
왜 우리가 교회를 출석하고 다녀야 하는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하나님을 알고 생명을 얻고 성령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세워진 목적은 생명을 얻게 하고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 전하는 설교는 순전히 육신적인 설교요, 그 목적부터 잘 못된 설교입니다.
사람의 육신을 위로하기 위해 전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육신을 위로하시기는커녕 육신을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성경 어느 성경 어느 장을 펴도 육신을 죽이라고 말씀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육신을 위로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 목사님들은 거의 사람을 위로하는 설교를 합니다.
또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큰 교회를 이루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를 하는 목사님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이 하는 설교를 교본으로 삼아 그분들처럼 설교 하려고 여러 가지로 분석하며 애들을 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를 세워주고 위로하는 말을 듣기 원하고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뜻과 목적은 사람의 생각과 아주 다른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100%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는 말씀과 위로하고 격려하는 육신의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거듭났어도 성령을 알지 못하면 마찬 가지로 사람을 위로하는 설교와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는 말을 듣기를 아주 원합니다.
성령님을 알고 그 실체를 분명히 잡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위로하는 말을 들어야 힘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사실은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로하는 말을 기대하고 교회에 나오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거듭나서 성령을 알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동행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결단코 사람을 위로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피할 것입니다.
그 설교는 사람의 말이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로 말미암아 사는 그리스도인은 자나 깨나 원하는 것은 주와 함께 동행 하는 삶이요, 성령 충만한 삶이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 목표요, 자기 육신을 죽이고 정결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을 위로하는 말을 듣는 것을 괴롭게 생각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뜻과는 다른 설교를 하는 목자들의 말을 듣고 절대로 은혜 받지 못합니다.
첫 째로 사람을 위로하는 설교는 순전히 육신적인 설교입니다.
육신적이란 말은 사람의 자기 자신과 세상을 위주로 하여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육신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5-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은 성영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그 다음 말씀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는 자들이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육신의 생각 그 자체가 죄에 근거를 두고 있고 사망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거룩한 새 생명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또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하나님께 가까이도 데리고 가지 못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 직접 대리고 가지는 못합니다.
육신의 설교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생명의 길로 인도 하기는 커녕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위로하고 세우는 설교는 하나님의 뜻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임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육신을 위로 하는 자들의 설교를 듣고는 결단코 거듭나지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 그 자체가 사망이요 육신의 생각 그 자체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성령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육신의 설교로 한 번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또 어느 때에는 성령으로 설교하여 생명을 얻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겠습니까?
한 번은 사망으로 인도하는 말씀을 전하고 또 한 번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항상 육신에 속한 말을 전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항상 영에 속한 말을 전합니다.
성령을 아는 사람이라면 육신의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좋게 하지도 않고, 또 사람을 기쁘게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도가 하는 말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 된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뜻도 아니고, 사람의 생각도 아니요, 더 더욱 사람의 육신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고 성령 받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두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 말씀과 주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사람의 이해와 지식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주의 말씀과 주의 행하심을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이해한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땅의 사람의 입장에서 사람의 지혜로 사람의 설득력 있는 말로 전하면 듣는 모든 이들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을 지혜 목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설교를 듣고는 거듭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설교는 그가 비록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서 전했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얻을 뿐입니다.
또 다른 입장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의 입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주의 십자가를 전할 때 종종 이런 말을 하지요?
당신이 지금 믿음으로 주의 십자가 밑으로 가서 "주여 주께서 내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 사실입니까?" 하고 물으라고 했지요?
그래서 주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주 앞으로 인도하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게 하고 또 주의 말씀을 여러분이 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전한다는 것은 자기가 주께 받은 것과 경험한 모든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주의 영이십니다.
주의 영으로 인하여 경험하고 아는 그 실제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전하는 것과 주의 영으로 경험하고 아는 그 실제를 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는 사람의 생각이요, 다른 하나는 주의 영으로 행하고 경험한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을 실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주님께 인도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람을 축복하는 말과 위로 하는 말을 전합니다.
그들은 많은 예화와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또한 유머까지 동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설교하면 잘 듣고 위로 힘을 얻습니다.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듣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말씀은 주의 영으로 주의 말씀을 전할 때입니다.
주의 영으로 주의 말씀을 경험하고 아는 그 실제를 전할 때 거듭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그에게 주의 말씀이 실제 되어 있다면 성령께서 그에게 실제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실제 된 그 말씀을 전할 때 주의 성령이 함께 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주의 영으로 자기에게 실제 된 주의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 중에 성령께서 은혜로 귀를 열어 주심으로 듣는 사람이 있고 눈을 떠서 보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듣고 본 말씀을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을 얻는 것은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그 때입니다.
말씀이 주의 영이요 생명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주의 말씀을 경험하고 그 말씀의 실제 됨을 전하고 자기에게 생명 되고 지혜 되고 능력이 되어 있으며 인격이 된 그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사람 중에 그 말씀을 은혜와 감동과 믿음과 기쁨으로 가슴에 와 박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주의 말씀을 통하여 주의 영과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주의 영과 주의 생명의 씨를 받는 때입니다.
주의 생명을 얻고 주의 영이 들어온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지혜와 분별의 영을 주십니다.
주의 영은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해서 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그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바꾸어 사용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생각을 넣어서 변질 시키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바꾸지 못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주의 영과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을 넣어서 변질 시킨 말씀은 절대로 생명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비밀을 아는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 본래의 의미를 절대로 혼잡하게 하지 않습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을 낳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주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 안에 들어가서 주의 영과 생명이 되는 경우는 사람의 영혼을 죽이면서 들어갈 때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때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죽이고 뽑아내고 들어가는 말씀만이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과 생각을 부인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는 경우는 자기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어진 경우입니다.
이전의 자기 마음과 생각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지혜가 되고 양심이 되고 인격이 된 그 사람에게 주의 말씀이 그에게 생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자기 마음과 생각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있고, 주의 말씀도 그의 마음에 있는 사람은 주의 말씀은 다만 지식으로 이해로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이 언젠가 새로운 은혜와 감동으로 와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죽이고 주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 되고 인격이 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영이 되고 생명이 되고 인격이 되는 경우는 다만 우리들의 육신의 마음과 생각이 뽑히고 죽임을 당한 그 자리에 주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 성장해 간다는 것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육신을 살리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 다시 말해 우리들의 육신의 마음과 생각을 격려 하는 말은 육신을 세우는 말로 결코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씀이 아니요, 사망으로 인도하는 말이라는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시종일관되게 육신의 생각을 부인하라 벗으라 죽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명과 육신의 생각은 언제나 죄로 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3절과 14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셨습니다.
너희가 육신에서 나오는 마음과 생각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서 육신에서 나오는 생각과 육신의 행실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과 행실을 죽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주의 말씀대로 행하면 사는 것뿐 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신 것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고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확실한 실체가 되게 하시고 인격이 되게 하셔야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나타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영적인 많은 것을 경험하고 또 주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을 은혜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양심이 되어 산영으로 나타나고 인격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주의 생명이 실체를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사실이듯이 여러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한 생명이 계시는 것도 확실하게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