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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 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 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 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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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부활 피정기 – 비움, 순명하신 예수님 따라...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 그분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하느님과 동등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신분을 가지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
< 필립비서 2, 6~8 >
우리 자신은 하나의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인간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약한 인간존재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의 빛으로, 하느님의 조명으로 살고 일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 존재들의 허물, 약함, 한계를 다 아십니다.
하느님은 겸손하고 의탁하는 우리 인간에게 사랑, 빛, 힘, 위로를 주십니다.
하느님은 겸손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빛과 힘을 주십니다. (Fr. David M., OFM Conventual)
피정의 날들이 지나면서 하느님과 사랑과 위로를 느낀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느낀다.
오랜만에 내적인 기쁨을 가지면서, 죄 많고 부당한 영혼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구원을 느낀다.
우리 인간은 다 동등하다.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든지 간에,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영혼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비움, 순명의 영혼이 받아들여진다.
우리 구원의 창시자인 예수님께서 바로 그러하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잘 정돈된 수도원의 정원을 산책하고 묵주기도를 드린다.
아침 바람이 상쾌하게 옷깃에 불어오고,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다.
저 멀리에서 이 땅위로 밝아져오는 아침햇살을 바라다본다.
새로움이다.
이 하루와 아침이 새로움이고, 이 아침의 바람이 새로움이며, 이 아침의 시간도 새로움이다.
모든 것은 매일 매일, 매 순간 매 순간 새로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과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또한 지금도 창조를 계속하신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
오늘 아침 미사를 수도원 형제들과 함께 드리면서, 그들 젊은 영혼들의 순수와 맑은 눈동자들을 바라다본다.
하느님의 빛이, 하느님의 사랑이, 하느님의 기운이 그들 속에 살아 있다.
새롭게 다가서는 아침미사이다.
새롭게 봉헌하는 부활주간 목요일 아침미사이다.
수도원 사제들이 다른 곳에서 미사일정이 있어서, 어제와 오늘도 나 자신이 미사주례와 짧은 강론을 했다.
필립비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자신의 교만(驕慢)한 심성(心性)들과 겸손하지 않게 살아온 나의 일들과 삶을 성찰한다.
나 자신이 그러하다.
나 자신이 그러했다.
많이 그리고 종종 초심(初心)을 잃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초심, 한 사제로서의 초심, 한 소임자로서의 초심을 잃고서 살고 일하곤 했다.
나 자신의 모습, 삶, 일, 만남, 관계성, 마음, 영혼을 성찰하고 고백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과 일들 안에서 다른 분들과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기 보다는, 나 자신의 목소리로 자주 아집(我執)을 내세웠다.
이 또한 성찰하면서 반성(反省)하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면서 또한 하느님 앞에 단독자(單獨者)이다.
경청, 수용, 조화, 인내, 화목은 우리 인간 공동체와 삶에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오늘 새롭게 다짐한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자신을 비우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 필립비서 2, 6~8 >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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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자료 >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최종)
-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 승인 -
♣ 나가면서...
지난 3년 동안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와 각 교구 단위로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어 왔고, 그 결실을 위와 같이 제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성을 보여 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표시가 바로 모든 성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자 성당을 찾아왔을 때 차갑게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닫혀 있지 말아야 할 문들은 또 있습니다.
누구나 어떻게든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성사들의 문도 어떠한 이유로든 닫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 자체가 ‘문’인 세례성사가 그러합니다.
성찬례는 성사 생활의 충만함이지만 완전한 이들을 위한 보상이 아니라 나약한 이들을 위한 영약이며 양식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우리가 신중하고도 담대하게 숙고하도록 부름 받고 있는 사목적 귀결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자주 은총의 촉진자보다는 은총의 세리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입니다.”(「복음의 기쁨」, 47항).
교회가 이러한 자비로운 아버지의 집이 되고, 그 참된 개방성을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표지가 바로 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요한 복음서는 성체성사 제정의 심오한 뜻을 밝히는 가운데 세족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요한13,1-20).
이것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친교와 봉사의 스승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분열되어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1코린 11,27; 27-34).
또한 참된 죄의 용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주간 첫날 저녁에,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잠그고 떨고 있던 제자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평화와 죄의 용서를 선포하십니다(요한 20,19-23).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이 귀하디 귀한 선물, 인간의 언어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이 선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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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 생명주일 / 성소주일
2017. 5. 7
요한 10, 1~10
♠ 복음 공부
※ 복음 안내 : 예수님께서 자신이 양우리로 들어가는 문으로, 착한 목자로 비유하는 이 설교는 소경의 눈을 고친 사건(9장) 파문을 계기로 유대인 지도자에게 향한 공격으로 시작된다.
* 1~6절 : 양우리의 비유-예수님은 자신을 양을 지키고 인도하는 ‘양의 목자’ , 양들의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 , 그리고 ‘양우리에 있는 문’에 비유하시면서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하신다. 유대 지도자들이 공무를 행할 때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하시는데, 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고 개구멍으로 들어가 양을 훔치는 사람은 도둑이나 강도들이며, 정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양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양의 목자라고 하신다.(1.2절) 동시에 양의 목자는 ‘양의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 역할도 했다.(3절) 아우구스티누스는 문을 진리이신 그리스도로 보고 문지기를 진리로 이끄시는(요한16,13) 성령으로 이해한다. 목자되신 예수님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유가 이어진다. 양들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듣고 앞서가는 목자를 따라가지만, 낯선 자의 소리를 들으면 놀라서 도망을 친다.(4.5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을 끝냈을 때, 도대체 왜 이 말씀을 자기들에게 하시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이해하지 못하리라.” (70인역 이사7.9) 예수님은 스스로 목자라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행동이 참된 목자로서의 행동이 아니라, 강도와 같은 행동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 7~10절 : 예수님께서 자신이야말로 양에게 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문’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양들이 들어가야 할 유일한 ‘안전한 문’이 자기 자신임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이 참된 길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아, 그들은 도둑이며 강도여서 양들에게 접근할 때 목자처럼 정당한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예수님과 유대인 지도자와의 관계를 비교하는(7.8절) 반면에, 9.10절에서는 ‘양이 드나드는 문’ 과 ‘양’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예수님은 구원의 문이시다. 사람들은 이 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이 구원을 받고 들어와서 나가는 이에게 생명의 빛으로 양들이 푸르른 풀밭으로 나가 자신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넘치도록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한편, 양들을 ‘훔치고 죽여서 버리려는 도둑’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 복음 요약 및 대화 방향 (다음을 읽고 대화를 나누세요...)
- 교회는 1964년 부활 4주일을 성소주일로 정하고 전에는 착한목자 주일이라고 했다. 성소하면 먼저 사제, 수도자성소를 떠올리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성세성사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 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얼마나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신앙생활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여기서 양의 목자는 예수님이시며, 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양은 눈이 나쁘고 후각도 별로 예민하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서 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자신을 보호할 마땅한 수단도 없어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목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양은 귀가 밝아 자신을 돌보는 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특별한 소리를 내면 양들은 그 소리를 알아듣고 양우리에 나와 두려움이 많고 방향감각이 둔한 양들이지만 목자가 이끄는 대로 목자를 따라간다고 한다. 그런 특성을 아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목자로 우리 신자들을 ‘양’에 비유해서 앞장 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오라고 부르신다. 양처럼 나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시고, 내 이름을 불러서 인도해주신다. 목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그분을 따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요즘의 매스컴과 혼탁한 밖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진리가 예수님의 것처럼 가장한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마음과 영으로 듣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분의 현존과 은총의 충만한 영적인 눈으로 귀가 열리려면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식별할 수 있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드는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라고 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나를 따라오라’는 부르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초대하신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잘 따라 살고 있는지...? 그 말에 귀를 막고는 있지는 않는지요...?
♠ 참고 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요한 복음서 ( 요한 하클 외2명 저 / 오영숙, 안창호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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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2017. 5. 14
요한 14, 1~12
♠ 복음 공부
※ 복음 안내 : 믿음에 대한 권고 - 14장은 명령문을 많이 사용하여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예수님이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킴
* 1~4절 :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제자들을 극도로 불안해하고 산란해질 것을 예견하시고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고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 (요한은 ’신앙‘ 대신 ’믿는다‘ 를 사용) 하시면서 이제 자신은 너희들이 거할 곳을 예비하러 아버지께로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집‘ 은 하느님의 영역으로 머물 곳이 많은데, 당신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기 위하여 떠나신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당신 아버지와 하나되어 영원히 머물 수 있는 ’내가 있는 곳‘ 은 어디일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곳을 ’예수님 자신‘ 이라고 말한다. 그분 자신이 영원한 생명이고, 그분이 우리를 당신께 맞아들일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 5~12절 :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몰이해 --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신다는 말을 유다인처럼 이해하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토마스의 질문은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이러한 제자들의 심정은 사도행전 2장의 성령체험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토마스의 질문에 “나는 아버지께 가는 길이다.(Egwv eiimi)” 정식을 이용하여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선언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아버지께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며 계시자로 죽음에 까지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여정이다. 최종 목적지는 아버지와 하나 됨이다.(5-7절) 예수님을 보고 아버지를 알게 된 사람은 예수님은 혼자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함께 일하신다는 예수님의 보충 설명에 이어 필립보는 토마스와 같이 “저희에게” 라고 함으로 다른 제자들 역시 같은 입장임을 대변하여 제자들이 흡족할 수 있도록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한다. 이미 6.7절에서 필립보는 호숫가에 많은 군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려 한 적이 있다. 예수님은 필립보를 꾸짖고 당신과 함께 보낸 시간을 돌아보게 하시며, 자신을 믿을 것과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신 것을 믿고, 믿어지지 않거든 이미 행한 일들을 통해서라도 믿으라고 하신다.
♠ 복음 요약
- 예수님에 대한 오해, 풀이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만으로 만족하지 못했고, 하느님의 뜻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예수님을 통해 성취하게 될 소원과 욕망에 초점이 있었던 제자들의 오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상당히 가까이서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특히 토마스와 필립보의 발언 내용들은 우리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신앙이란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고, 결국 이승에서 마감할 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우리 인생의 결론에 대한 것이며, 이 세상이 아닌 당신 아버지와 하나되어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아버지의 집이다. 토마스의 태도는 요한이 그리스도론을 종합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여전히 내 욕망애 대한 성취를 위해 방법과 수단, 실천요강에 정신을 쏟고 걱정한다. 그 대신에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다.”란 말씀을 망각하여 예수님을 우리 손에 쥐고 마음대로 흔들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응해야 한다. 뒤이어 필립보의 오해가 나온다.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심원한 종교적 열망을 표현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아,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인데 눈을 뜨고 너의 삶 안에서 예수님을 뵙고 그 안에서 현존하심을 보지 못한단 말이냐? 흐릿하고 어떤 때는 막막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체험 바로 그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발견할 줄 모르는 사람의 애로가 그토록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한다.
♠ 대화 방향 : 토마스와 필립보의 태도가 내 태도가 아닌지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이 받아드리기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 체험을 나누어 보세요.
♠ 참고 문헌 : ▪ 요한복음 성서묵상 ( C.M.마르띠니 지음 성염 옮김/성바오로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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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일
2017. 5. 21
요한 14, 15~21
♠ 복음 공부
※ 복음 안내 :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 15절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 여기서 예수님은, 사도들더러 그분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다. 신자가 그의 계명을 지킴이 곧, 그를 사랑함이다. "계명을 지킬 것이다" "지킨다"는 말은 보배를 지키며 보관함에 대해 쓰는 말이다. 이것은 계명을 중심에서부터 사랑하여 지킴이다. 계명 지킴과 기도 응답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마술적 의미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 윤리적 내용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그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실이 있어야 그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이다.
* 16절 : ‘보호자’ 란 말을 위로자란의미도 가진다. 그가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음과 마찬가지의 힘과 평안과 기쁨과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실 그분의 역사를 가리킨다.
* 17절 : ‘진리’가 성령님의 것이라는 뜻이다. 세상이 그 분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이 육안에 보이는 데로만 무엇을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그를 받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때문이다.
* 18~19절 : 예수님께서 여기서 ‘나는’ 이란 말씀을 사용하신 이유는,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 자신의 속죄 사업의 연장이요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삼위일체 안에서 성령과 일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있을~’ 이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영적으로 살려 주시는 근원이 되심을 보여준다.
* 20~21절 : 20절은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한 관계를 말하고, 21절은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새 계명’ 을 가리키는데, 신자들이 서로 사랑할 계명이다.
♠ 복음 요약 : 예수는 제자들에게 우선 ‘보호자’ 파견과 자신의 귀환을 약속하면서 그들을 위로한다. 이 위로의 말이 이 고별담화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앞서 살펴본 고별담화가 ‘떠나간다’는 이별의 말에 관심을 두고 전개되었다고 한다면 여기서는 ‘돌아온다’는 위로의 말로써 전개된 셈이다. 특히 ‘사랑한다’ 또는 ‘사랑받는다’는 표현과 ‘계명을 지킨다’는 표현이 두드러지게 언급되면서 믿음도 아울러 촉구한다. 예수는 또한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제자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자신이 과거에 말한 것도 상기시킨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내용을 요약, 반복하면서 평화의 약속과 더불어 제자들을 위로하며 “일어나 여기서 떠나자” 란 말로써 고별담화를 매듭짓는다. 위 고별담화는 요한 복음사가의 이원론적인 관점도 시사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세상과 아버지의 대조가 그것이다.
♠ 대화 방향 : 사람들은 많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물론 세속적으로 돈을 얼마나 벌고 싶다. 무엇을 더 배우고 싶다. 어디까지 승진하고 싶다... 등등의 꿈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꿈은 얼마나 꾸고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꿈이야말로 진정한 꿈이고 희망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 희망은 분명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함께 가려고 노력한다면 그 희망에 대한 보답은 하느님께서 해주시리라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만일 내가 성서형제회에서 꿈과 희망의 역할을 맡는다면 나는 우리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
♠ 참고 문헌 : ▪ 200주년기념 성서주해서 ▪ 청년성서모임 묵상지 보득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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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 홍보주일 / 청소년주일
2017. 5. 28
마태오 28. 16~20
♠ 복음 공부
* 16-17절 :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배반자 유다를 제외한 열한제자가 처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전도를 시작하셨던 갈릴래아 산 위에서 모임이 이루어진다. 목자와 작은 양떼가 다시 함께 모였다.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께서 밤에 호수 위를 걸어오시면서 당신이 폭풍우의 주님이심을 보여 주셨을 때와 같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한다. 그러나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18절 :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아버지에 의해 그분에게 주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순명을 넘치도록 후하게 보답해 주신다. 예수님의 권한은 죄의 용서(9, 6)나 교리 (21, 23 ), 병, 마귀 등 그 원한이 미치는 여러 가지 영역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 그것은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보편적인 권한이며, 그분이 종말에 심판자로 오시게 될 사람의 아들로서 행사하시는 권한까지 내포한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메시아성을 확인해 주셨다는 것을 선포할 수 있는 뛰어난 표현들이다.
* 19절 : 제자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그분의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받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강화의 정점이다.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이 제자들의 직분에 모든 민족이 참여하도록 전도를 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이것은 모든 민족이 주님을 믿고 따르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전도를 한 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믿어야 하고, 세례를 받으면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르며, 생활 속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될 때 비로소 참된 제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20절 : 세례 받은 자들에 대한 교육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것은 복음서 안에 들어 있으며, 특히 대 강화들 속에 들어 있다. 참다운 제자가 되는 것에 관한 가르침과 하느님의 참된 뜻을 성취하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이다. 모든 민족을 빛으로 인도하는 그 중대한 일은 인간의 힘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복음서에 지적되고 있다. 제자들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 까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 복음 요약 :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분부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가르치라고 하시는데 세례는 삼위일체 하느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한 후 제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올바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하신다.
♠ 대화 방향 :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뜻에 따르는 삶에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어떻게 결심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복음 (성 요셉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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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봉사자 월례회합 스케치 >
화사한 날씨 당산동에서 월례회합을 보다...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서기보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필자는 오늘 개인적인 일로 인하여 다소 들뜬 상태로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달리 정장차람으로 집을 나선 것이다. 늘 당산동으로 가는 지하철이지만, 그날따라 무척이나 달리 보이는 차창 밖의 모습이었다.
어제 읽은 책이 유난히 머리에 맴돈다.
예수님과 베드로이다. 이는 예수님 앞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드로의 모습을 성서는 기록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베드로의 이야기일 수는 있었지만, 아마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예수님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하고 잠시 후, 여러 곳에서 오신 분들이 모였다. 그리고 데레시아 수녀님과 팜필로 형제님도 오셨다.
‘환희의 신비’ 의 묵주기도로 시작한 우리는 코이노니아를 한다.
이번 주의 말씀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을 그리지만, 주로 ‘토마의 믿음’을 상징하는 모습들이 발견된다. 여기서 요한 공동체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그리려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일들을 그가 속한 요한 공동체를 통해 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마치 우리가 제자들 무리중의 하나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자들 중에서 토마가 될 수가 있고, 다른 사도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몇 분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데레시아 수녀님의 훈화를 들었다. 사실 제가 녹음을 했는데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 느낌은 살아오는 듯하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시대에도 쉽게 믿음이 있지 않지만, 그때 토마의 모습도 그러했으리라 여긴다.
첫날에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둘째 날에는 함께 했다. 토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그날, 주님은 토마에게 다가서서 그의 부족한 믿음을 나무라시지 않으시고, 기꺼이 몸을 내어주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전에 천호성지에서 사비오 형제님이 하신 ‘미사 때의 성체’를 ‘하느님의 몸이라고 믿느냐’ 에 대한 물음과 창설자 신부님의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삶이 오버랩 되면서 우리 공동체의 성격이 드러나는 듯하다.
우리는 여기서 두 신부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전국조정 봉사자의 두뇌가 바쁘게 돌아간다.
천안에 계시는 정 신부님을 뵈러 가야하는데, 그리고 우리 윤 신부님이 계시는 양평으로 가야할 터인데 말이다. 즐거운 생각이 드시는 것 같다.
당산동에서 마련해 주시는 정찬을 먹었다.
아마도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식탁이었던 같았다.
오후에 조카 결혼식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어서
오후 일정을 참가하지 못한 채 당산동을 떠났다. 그날따라 그 이전에 열심했던 노트정리도 하지 못하였다.
그 다음날 하루 종일 나바위에서 본당식구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한 탓인지 몸이 너무 피곤해서 이제야 마음이 가는대로 허접하게 몇 자를 남긴다.
요한복음사가를 흉내 내 본다면, 제가 기록하지 못한 일들이 주님의 능력으로 월례회의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날은 그러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다.
끝으로, ‘주님 자비의 주일’ 이자 ‘원곡성당 본당의 날’ 열차 순례피정중 야외미사 강론 중에서 나바위성지 신부님이 하신 강력한 말씀이 들렸다... 중국에서 무동력배인 라파엘을 타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그 일행은 원래 갈려고 하던 인천이 아니라, 풍랑을 만나서 도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나바위 근처라고 한다.
주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신부님이 그곳에 도착하셔서 교우들을 돌아보시고, 1년 동안 사목을 하실 수 있었던 것이 다 주님의 은총임을 말한다고 하셨다.
만일 풍랑을 만나지 않아서 연평도로 해서 직접 제물포로 갔었더라면 육지에 내리는 순간 체포되었고 신부님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 여긴다고 성지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 주님이 주신 풍랑 때문에 아마도 우리가 겪고 있는 힘든 일이 있다면... 주님의 그러한 이유일 것이라 여겨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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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사순절을 보내면서...
전주, 남곡bio 형제님
+ 찬미 예수님!
- 나를 따라 오너라 ! -
종교계, 비종교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최고의 수맥의 대가는 현존하시는 임 신부님과 예전에 선종하신 김영일(아오스딩)신부님으로서 두 분은 자타가 공인한 분들이십니다.
당시 김 신부님은 파티마성당(현재 효자동 본당)에 주임신부님으로 계시면서 수많은 신자, 비신자가정을 방문하셔서 수맥이 있는 곳에서 잠자리를 피하도록 알려주시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당시 신부님은 저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거주하고 계셔서 저에게 수맥을 알게 해주시고 전수받는 큰 행운을 주셨습니다.
그 즈음 어느 날 당시 전주교구장이셨던 김재덕 주교님이 계신 교구청을 신부님과 함께 방문하여 주교님과 면담하던 중 주교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문득 떠올려 봅니다.
주교님께서 웃으시면서 "신부님은 천당에 제대로 가시겠네요?" ( "왜요? 주교님..." )
"내가 요... 예수님 따라서 천당에 한번 가봤는데요...
예수님께서 여기저기 좋은 곳을 다 보여 주시다가, 또 다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셔서 그 곳을 바라다보니, 거기엔 귀만, 입만 주렁주렁 걸려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 여쭈니, "몸은 아직도 연옥에 있는데, 그나마 입과 귀는 좋은 일을 하였으니, 그냥 놔둘 수 없어서 이곳에 와 있다."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신부님은 본당사목도 잘하시고 이렇게 손, 발로 수맥도 봐주시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시니 말입니다." 하시면서 두 분이 크게 웃으시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 뒤 신부님께서 늘 저에게 하신 말씀은 항상 인자하게 웃으시며
"주교님 말씀 같이 들어서 알지? 요한이도 다음에 천당올 때 온몸이 함께 오도록 봉사도 많이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해라~" 하신 신부님 말씀 항상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모든 걸 버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시며, 온 몸으로 사랑실천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는 살아갈 수 없어도 각자 신앙 안에 주어진 능력, 아끼지 말고 봉사, 실천해서 행동하는 신앙인 되시길요~
F.B를 알게 되어 ‘F.B의 정신’ 마음 가득 채우고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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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7년 3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