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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 3일,
알래스카가 미국의 49번째 주로 합병
1912년부터 미국의 준 주였던 알래스카가 1959년 1월 3일, 정식 주로 편입돼 미국의 49번째 주가 됐다.
주 승격은 '알래스카 주법'이 한 해 전에 의회에서 통과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서명과 알래스카
주민들의 찬반투표를 거쳐 이뤄졌다.
알래스카는 1741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에게 고용된 덴마크인 비투스 베링(Vitus Jonassen Bering,
1681-1741)이 발견한 뒤, 러시아 모피 상인이 서서히 이주해 왔으며, 18세기 말에는 러시아-아메리카
회사가 모피무역을 독점하고 싯카를 건설하여 19세기 초에 번영을 누렸고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
참고로 아시아와 아메리카 두 대륙 사이의 해협의 이름은 당시 탐험가 베링의 이름을 따 베링해협이라
했고 러시아인들은 그를 이반 이바노비치라고도 불렀다.
당시 알래스카 수도 노보아르한겔스크(현 시트카)에서는 중국산 옷감과 차, 심지어 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미국 남부에서 필요로 했던 얼음까지도 거래되었다. 이곳에서는 선박을 건조하고 공장을
건설했으며 석탄을 채굴했다.
Vitus Jonassen Bering
러시아 상인들은 원주민들과의 물물교환으로 구할 수 있는 값비싼 바다코끼리 상아와 해달 모피를
찾아 알래스카로 몰려들었다. 이 사업은 제정 러시아의 무역회사 러시아-아메리카 회사(RAC,
Russian-American Company)가 전담했다. RAC가 유능한 상인 알렉산드르 바라노프(Александр
Баранов)가 경영하던 시절에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는 원주민에게 순무와 감자 심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또 요새와 조선소를 세워 해달잡이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연로한 바라노프가 현업에서 물러나고 레온티 가게메이스테르(Леонтий Гагемейстер) 해군
대위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몰락의 길로 치달았다. 군 출신들이 RAC를 장악한 후 그들은 수익을
그들의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고 결국 수익을 더 늘리기 위해 원주민에게 매입하는 모피의 가격을 반
값으로 했다.
그 결과 이후 20년간 에스키모와 알류트족이 해달을 멸종시키다시피 해 알래스카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돈벌이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궁핍에 시달리게 된 현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러시아인들은
군함에서 해안 마을을 향해 포탄을 쏘면서 폭동을 진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그때 크림전쟁이 시작됐다. 영국과 프랑스, 터키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러시아는 알래스카에 물자를 공급해 줄 수도 알래스카를 방어해줄 수도 없음이
분명해졌다. 연합국 함선이 해로를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두아르트 스테클(Эдуард Стекль) 워싱턴 주재 러시아 공사가 황제의 지시에 따라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 1801-1872) 미국 국무장관과 협상을 시작했다.
"전신도 개통하고 금광도 개발하는 등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이 땅을 어떻게 팔아 넘긴단
말인가?" 당시 러시아 신문은 매각에 반대했다. 한편 미국에서도 “이 '얼음이 가득한 궤짝'과 아침식사로
대구 간유를 마시는 5만 명의 에스키모 야만인이 왜 미국에 필요한가?"라며 반대했다.
결국 1867년 10월 18일 미국의 슈워드 국무장관이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구입했다. 이 지역을
1에이커 당 2센트로 환산해서 계산한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이 거래를 가장 어리석은 거래라고 하며,
이를 `슈워드의 어리석은 행위`(Seward’s Folly)라고 불렀다.
슈워드의 어리석은 행위`(Seward’s Folly)
그런데 1890년대 후반 알래스카 북부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알래스카의 가치는 급 상승하였다.
국경을 맞댄 캐나다 유콘주 도슨 시티에서 처음 발견된 금광은, 1898년 알래스카 서북부 놈,
1902년 중부 페어뱅크스에서도 잇달아 ‘잭팟’을 터뜨렸다. 미국 시애틀에서 알래스카로 출발하는 배는
‘황금의 꿈’을 갖고 배에 오른 젊은이와 그들의 가족으로 만석을 이뤘다. 조그만 마을이던 놈과
페어뱅크스는 알래스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큰 도시로 성장했다. 대로에는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판잣집들이 이어졌고, 골목 뒤편으로는 술집과 홍등가가 형성됐다.
Fairbanks,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인해 개발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각종 행사와 오로라
관광으로 유명해졌다.
인구가 너무 적고 도로도 거의 없어, 편입시켜봐야 정부 지원금만 나가게 된다며 알래스카 편입을 미뤄오던
미국 정부는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을 겪으며 알래스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
알래스카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진 알류산 열도는 일본과 닿았고, 알래스카 최북단은 베링해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마주하고 있었다. 미국은 1950년까지 2만6000명의 병력을 알래스카에 주둔시킨다.
한국 전쟁 기간에는 알래스카에 매년 2억5000만달러를 군수비로 쏟아부었다. ‘스워드의 얼음 상자’는
‘북방의 수호자’가 됐다. 냉전이 격화된 59년, 알래스카가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참고로 미국의 첫 번째 주가 된 것은 델라웨어주(1787년 12월 7일)이고, 마지막 50번째 주가 된 것은
하와이주(1959년 8월 21일)이다.
January 3, 1959 - President Eisenhower signs the Alaska
Proclamation admitting Alaska as the 49th state. Front Row L to
R: Vice President Richard Nixon; DDE; House Speaker Sam Rayburn.
Back Row L to R: Rep.-Elect Ralph Rivers; Sen.-Elect Ernest Gruening;
Sen.- Elect E.L. Bartlett; Secretary of the Interior Fred A. Seaton;
Wayne Hendrickson; and David W. Kendall, Special Counsel to the President.
Alaska is admitted to the Union.
알래스카 주 편입을 알리는 신문 기사, 제목이 WE’RE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