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도덕을 말하는 SF 영화, <할로우 맨>

[희야]

<할로우 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케빈 베이컨이 주역을 맡은 이 영화는 <할로우 맨>(공허한. 속이 빈)이라는 제목답게 투명 인간을 다룬 영화였는데 인간이 보이지 않으면 어떤 욕망이 모습을 드러내는가를 다룬다는 점에서 어쩌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비슷할지도 모른다.

주인공 케인은 투명인간을 연구하다가 동물 실험에 성공한다. 실험대상이 사라져가는 과정이 어찌나 실감나는지 그건 오직 그래픽 덕분일게다. 뛰어난 그래픽은 실험대상이 투명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과학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살갗이 사라지고 근육과 힘줄이 드러난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뼈가 드러나고 내장이 드러난다. 이윽고 차례로 사라지는데 그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워 실험대 위에 묶인 상태로다. 그 하나하나가 무서울 정도로 실감났다.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투명인간이 된 과학자는 필요에 의해서 행동하지만 그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적인 것보다는 사적인 것으로 흐른다. 그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평소 은밀히 숨겨두었던 욕망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옆집 여인을 범하고 자신의 애인의 생활을 엿보고 친구와의 사이를 의심하며 마침내 갈등을 일으켜 지인들과 맞서 싸우기에 이른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류의 오랜 소망인 보이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 기술을 실현하는 과정만 보면 이 영화는 SF 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투명 인간이 된 이 과학자가 어떤 모습을 드러내는가에서 이 영화는 인간의 심리를 그린 영화로 돌변한다. 그의 범죄, 그의 분노, 그의 악행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처럼 투명인간이 되었다면 그 권력을 이용해서 그는 좀 더 큰 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호기심과 분노는 친구에게로 애인에게로 향한다.

영화를 처음 보고 든 의문은 왜 그는 친구와 애인을 질투하고 그들에게 분노하는가였다. 왜 그는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특권을 좀 더 큰 곳에 사용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적국과의 싸움이 있을 것이고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면 은행에 가서 큰 금액을 훔친다던가. 그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과 사투를 벌일 뿐.

못내 궁금했던 그 의문은 그의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에 생각이 미쳤다. 인간은 가까운 사람들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그들을 알기에 그들이 나를 알기에 그들을 온전히 내것으로 내편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오랜 세월 내 감정을 투영하고 생각을 나누어 온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내게 그들이 가치있는 존재이듯 나 또한 그들에게 가치있는 존재이므로 내 가치를 누구보다도 그들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족이 밉고 누구보다도 가족이 사랑스러우므로 그들에게 분노를 혹은 내가 가진 욕망을 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투명인간은 남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을 가진 일종의 특권 혹은 권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하자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권력을 쥐기 전까지 인간은 누구나 같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평범한 혹은 비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을 배려한다. 그러나 그런 의식들이 권력을 손에 쥐게 되면 달라진다. 욕망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의 외관은 이제 문제되지 않는다. 그의 내면이 문제되기 시작하는 것인데.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권력을 쥔 뒤 그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평가된다. 권력의 맛에 도취되어 자신에게 권력을 쥐어준 이들의 소망 혹은 자신이 가진 권력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 그는 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저 할로우 맨처럼 욕망을 드러내는데 급급하다면 범부보다 못한 삶이 되는 것이다.

역사는 무수한 할로우 맨들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안타깝게도 할로우 맨들이 더 많은 요즘이고 현실이다. 그래서 할로우 맨은 단순한 SF영화가 아닌 도덕 영화로 급부상했다. 적어도 내게는.

할로우 맨 (2000)

Hollow Man

감독	폴 버호벤
출연	엘리자베스 슈, 케빈 베이컨, 조쉬 브롤린, 킴 디킨스
개봉	독일, 미국 | 스릴러, SF, 공포 | 2000.09.02 | 15세이상관람가 | 112분

[도라지]

할로우맨처럼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권력이 있을까 싶어 씁쓸하네요...권력을 가지느냐 그러하지 못하느냐는 죽느냐 죽임을 당하느냐인 우리의 역사를 보면... 희야님의 글을 보면서 난 투명인간이 되면 뭘 해볼까 상상해봅니다...

[희야]

글쎄 무얼 하시겠어요? 남의 비밀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ㅎㅎ

[정가네]

그렇군요. 인간은 가까운 사람들을 통제하고 싶어한다는 게 맞는가 봐요. 더 큰 것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인가 봐요. 그는 틀림없이 큰인물이 못 되고 작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일 겁니다. 저 높은 곳에 앉은 누구처럼 말입니다.

[희야]

어머니는 아이를 통제하고 싶어하고 가장은 가족을 통제하고 싶어하고....기관의 장은 직원들을 통제하고 싶어하고....한 나라의 장은 국민들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바라지]

40대의 여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이 세상에서 외도를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면 외도를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거라고...그때 저는 30대여서 참 뜬금없는 상상이다 했었는데...

[희야]

ㅎㅎ 그 분 절실하셨군요. 담엔 제 어린 친구 이야길 해드릴게요. 외도 관련해서 ^^

[책보는콩쥐]

속담중에 화장실 갈 때 맘하고 나올 때 맘 다르다 잖아요..

[희야]

오잉...오잉. 오잉.......^^

[창넘어하늘]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사람하고 친한 걸 볼 때...샘나고 속상하지요. 그사람 마음속에 정말 내가 있는지 궁금한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저도 투명인간이 된다면 우선 남편하고 아이들 뒤부터 따라 다닐 것 같습니다^^ 낮에 가끔 TV 채널 돌리다 보면 케이블 OCN에서 할로우맨 방영합니다^^

[희야]

ㅎㅎ 창님 정말 솔직하세요. ^^ 근데 저희집엔 케이블 티브이가 없어요. ㅠ.ㅠ (주머니가 얇아서리...)

[더바]

이 영화는 중대한 실수를 했습니다. 투명인간은 맹인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잘 보이는 것처럼 만들었으니까요. 빛이 통과해 버리니 보일 수가 없는 거죠. ㅋㅋ 넘 썰렁하죠??

[희야]

정답입니당! 아이구. 교장샘이 저렇게 교장샘답지 않게 장난기가 그득해서 어떻게 하지요? 언제 뵈면 맛난 커피 사주실 거죠? (벼르고 있어요)

[더바]

교감입니당. ㅠㅠ 함부로 승진시키지 마세욧~!^^ 교장은 판공비가 있기 땜에 비싼 거 사달라고 하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