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타워는 한때 '사고 타워'로 불렸다. 공사 과정에서 싱크홀이 생겼고 인부 사망 등 안전사고도 있었다. 5년간 송사(訟事)에 휘말렸고 성남공항 안전성 문제로 무산 위기에 처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기사회생했지만 특혜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그룹 내에서도 대부분 반대였다. 경제성이 없어 망할 것이라고 했다. 신 총괄회장이 세상을 뜨면 백지화될 것이란 말도 공공연했다. 모든 난관을 돌파한 것은 오로지 신 총괄회장의 집념이었다.
▶롯데월드타워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 총괄회장의 1인 작품이었다. 입지, 설계, 시공까지 직접 지휘했다. 사흘 연속 롯데월드타워 보고만 받은 적도 있다. 디자인도 23번이나 바꿔가며 붓을 형상화한 지금 모양으로 확정 지었다. 23번 디자인 변경에 3000억원 들었다고 한다. 병세가 완연해진 뒤에도 갑자기 현장에 가겠다고 해 비상을 걸곤 했다. 휠체어에 앉아 두 번 현장을 방문했다. 공사장 꼭대기에서 초점 없는 눈길로 인천 쪽을 바라보는 사진이 신문에 실려 사람들을 착잡하게 했다.
▶신격호는 '문청(문학청년)'이었다. 글로 밥 먹을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책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롯데라는 사명(社名)도 베르테르가 사랑한 연인 '샤를로테'에서 따왔다. 롯데월드타워 앞 광장에 괴테 동상까지 세웠다. 그는 베르테르란 인물에 탐닉했다. 샤를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정열처럼 일에 열정을 쏟아부으라며 '베르테르 경영'을 설파하곤 했다. 신격호에겐 롯데월드타워가 샤를로테였다. 인생을 던진 불멸의 사랑이었다.
▶어제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했다. 신격호의 30년 사랑이 실현된 것이다, 그는 빌딩이 완성되면 맨 위쪽에 집무실을 만들겠다 하곤 했다. 정작 개장식에 그의 모습은 없었다. 그를 모시는 장남(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참석을 막았다고 롯데 측은 주장했다. 형제간 분쟁이 아버지 필생의 꿈까지 어지럽히고 있다. 유부녀 샤를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신격호 월드타워 스토리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그렇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