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공부의 길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는 언덕에 오르고 산에 올랐다 하고,
누군가는 뒷산에 오르고 산에 올랐다 하고,
누군가는 백두산에 오르고서야 산에 올랐다고 말합니다.
깨달음의 세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두가 같은 층위의 깨달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용수 보살 이후, 공성(空性)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수많은 종파를 탄생시켰습니다.
따라서 불교 철학을 공부하려는 이는 각 학파의 관점과 깨달음의 층위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특히 티베트 불교는 중관학파와 유식학을 세밀하게 나누어 이를 체계화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한 물건도 없다’거나 ‘희론의 적멸’ 수준에 닿기 위해 『중론』은 필수적입니다.
또한 『회쟁론』을 통해 공성을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오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를 돕기 위한 필독서로
달라이 라마의 『중론의 열쇠』 / 공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책
김성철 교수의 『중관사상』,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의한 해탈』, 『중관학 특강 색즉시공의 논리』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 4구 비판의 논리를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성을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몽중일여(夢中一如)’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적 이해’의 층위보다 ‘신체적 반응’의 층위가 훨씬 깊기 때문입니다.
이는 평생 왼손잡이였던 사람이 "반복된 숙달"을 통해 오른손잡이가 되어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입보리행론』의 저자 샨티데바 역시 공성의 달인이었으나, 단순한 이해만으로는 습기(習氣)를 다스리기에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나’라는 강력한 자아의 습을 길들이기 위해 자타상환(自他相換)과 ‘적이야말로 스승’이라는 대치법을 제시하며 처절하게 수행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티베트 불교 수행의 핵심 지침이 된 이유입니다.
이러한 수행의 여정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바로 달라이 라마입니다. 그분의 흔적을 따라가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해의 단계(30대): 1966년(31세) 저술한 『중론의 열쇠』를 보면, 이미 30대에 공성에 대한 논리적 이해는 정점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체험의 단계(50대): 그러나 법문(BTN 영상)에 따르면, 50세가 되어서야 오온(五蘊)이 자성이 없다는 사실을 실재적인 체험으로 깨달으셨다고 회고합니다. 논리적 이해 후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체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y8gzao7AtkY&t=3937s [1:04:30초]
진입의 단계(80대): 최근 부다가야 법문(법계찬탄문 영상)에서는 사마타(止)를 완성하여 이번 생 안에 반드시 ‘가행도(加行道)’에 진입하겠다는 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dyI3x-WrwI [18:35초]
가행도 이후 견도(見道)에 이르기 위해서는 첫 번째 무량겁의 공덕을 쌓아 제7지 보살의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달라이라마의 지혜명상, 지혜품』 참조)
이처럼 공성의 이해가 단박에 신체적 반응과 습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달라이 라마께서 공성보다 ‘보리심’을 강조하고, 80대의 고령에도 여전히 가행도 진입을 말씀하시는 것은 겸손이 아닌 진실한 수행의 기록입니다.
공성을 안다는 것은 시작일 뿐이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보리심을 닦아 자아의 습을 굴복시키는 과정이야말로 불교 공부의 진정한 여정임을 우리는 달라이 라마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