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3,1-6.9-12; 마태 11,25-27
+ 오소서 성령님
비가 많이 오네요? 무더위가 잠시 멈춰서 다행입니다만, 비 피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어제 독서에서 모세는 동족 히브리인을 때리는 이집트인을 때려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탄로나서 파라오가 모세를 죽이려 하자 모세는 미디안으로 도망쳤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치포라와 결혼하고, 이제 장인의 양 떼를 치게 되었습니다.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간 모세는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떨기나무는 뜨거운 지역에서 자라던 가시나무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떨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스네’라고 하는데, 호렙산의 다른 이름인 ‘시나이’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호렙산에서 보이는 것은 바위와 떨기나무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강하고 단단한 바위에서 나타나시지 않고, 약하고 부스러지기 쉬운 떨기에서 당신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Douglas K. Stuart, Exodus: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H Publishing Group 2006, 112) 이 떨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태양이 아들이라고 불렸는데, 사막 지역에서 태양의 존재는 무시무시했습니다. 약한 떨기가 태양열에 불이 붙어 타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이 붙었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는, 파라오의 억압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닮았습니다. (필로; Peter Enns, Exodu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2000, 96). 하느님께서 이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나타나셨다는 것은, 고난받는 사람들의 연약한 삶 한가운데 나타나셨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김이곤, 출애굽기의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9, 48-49).
또한, 불에 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는, 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홍해를 건널 때, 물속에 있으면서도 물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건 제 생각)
하느님께서는 “모세야, 모세야!”하고 두 번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이름을 두 번 부르시는 것은 애정과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모세가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장소에 들어서면서 예를 갖추라고 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통해 약속을 주신 하느님이 바로 당신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무척 놀라운 부르심을 주십니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당시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고, 파라오는 그 나라의 통치자였습니다. 그 파라오가 모세를 죽이려 하기에 모세는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이집트로 돌아가서 파라오에게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빼내오라니, 모세는 너무나 놀라 말씀드립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감히’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야 하는 저는 누구입니까?”
모세는 여기서 그런 명령을 받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하느님께 여쭙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을 받고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으시는 성모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모세는 “저는 누구입니까?”라고 여쭈었는데, 하느님께서는 ‘네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 말씀은 탈출기는 물론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히브리어에는 미래 시제가 따로 없기 때문에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내가 너와 함께 있다’와 같은 말로 표현됩니다. 내가 너에게 직접적으로 특별한 도움을 주고, 인도해 주고, 보호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호렙산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이집트의 권력을 신처럼 숭배하던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하느님께 대한 참된 신앙으로 옮아갈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은 오늘 모세에게 이루어졌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때리는 이집트인을 때려죽일 만큼 정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그것을 하려 했기에 그는 실패했고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고 힘이 빠져 양 떼를 몰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려오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제 힘도 자신감도 없습니다. “제가 누구입니까?”라고 하느님께 여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제 모세에게 일을 맡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던 모세가 철부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저는 누구입니까?”라고 여쭈었는데, 하느님께서는 ‘네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데려 내오는 것은 모세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 기운이 빠졌다고 생각할 때, 이제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포기할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새롭게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자기 일을 하려던 내가, 이제 하느님의 도구로 일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지고 좌절하는 것만큼 큰 준비는 없습니다. 실패의 끝에서 우리는 주님께 “저는 누구입니까?”라고 여쭙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https://youtu.be/LKaXY4IdZ40?si=QwJM414FfGti9pAC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당신이 믿을 때 (이집트 왕자)
세바스티앙 부르동, 불타는 떨기, 1650년
출처: Bourdon, Sébastien - Burning bush - Burning bush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