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
보름달
추풍령 상공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어린 날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추풍령 고개가 얼마나 높았으면 ‘기차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오른다’고 했을까. 겨울이면 고향 소도시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것도 추풍령에 막혀 눈구름이 제대로 고개를 넘지 못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낙동강 지류인 감천의 드넓은 백사장이 온통 백설로 뒤덮이기라도 하는 밤이면 그 은빛 세상을 교교하게 적시던 달빛. 그럴 때마다 추풍령에서 골을 타고 불어오는 눈바람은 차갑고 매서웠다. 감천과 직지천이 만나는 천변에 살았기에 나는 해마다 겨울을 지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11월 중순인데도 추풍령 공기는 겨울처럼 차가웠다. 추풍령을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것도 고속도로 덕분일 터. 갓 입사하여 대전에서 일할 땐 열차통근을 하는 바람에 추풍령을 수도 없이 넘고 또 넘었다. 하지만 직접 추풍령에 발을 디딜 수는 없었다. 추풍령역에서도 고개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어스름이 내릴 무렵 고속도로에 들어선 것이 추풍령 상공의 보름달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추풍령휴게소를 들어선 것은 달빛의 유혹도 있었지만 그보단 고향에 대한 향수가 발길을 이끌었을 것이다.
오늘은 한반도 전역에서 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에 완전히 들어가 검붉게 변해 보이는 개기월식이 펼쳐지는 날이었다. 다음번 개기월식은 3년 뒤에야 있다면서 소식을 알려왔었다. 개기월식 시간을 지나 휴게소에 들어선 게 아쉬웠고 공기마저 맑질 못하니 달빛도 예전만큼 교교하질 못했다. 달은 휴게소 마당에서 볼 땐 경부고속도로 준공탑 위에 떴다가 계단을 올라 준공탑 앞에 서자 탑 밑으로 내려앉는 조화를 부렸다. 추풍령휴게소는 상하행선이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이곳이 몇 년 전 신문에 떴었다.
진인 조은산이 상소문으로 파직을 간청한 김현미 때문이었다. 조은산의 “역적 김현미를 파직하소서!” 상소문은 별로 아름다운 얘기가 아닌지라 언급을 자제해야 마땅하겠지만 경부고속도로 준공 반세기를 기념한다는 명분 아래 현미인지 백미인지 하는 인간 말종이 어찌 자신의 이름을 이곳 비석에 새길 엄두를 냈을까. 좌빨로 치면 원조격인 김대중이 나라 망하는 짓한다고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 바닥에 드러누워 생난리를 친 걸 그는 벌써 잊었단 말인가. 준공탑에 새겨진 건설역사는 건설 당시를 떠올리게 하면서 고향을 찾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안전장구나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 촉박한 공사기간에 쫓겨 모든 걸 준공날짜에 맞추느라 희생된 일꾼들도 많았을 터이다. 도로를 직접 건설한 주원과 이한림 두 건설부장관은 "경부고속도로 420km 곳곳에는 대한민국의 번영을 꿈꿨던 건설역군 890만 명의 혼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반세기 세월에 건설역군들 이름을 모두 확인할 순 없지만 굵은 땀방울 쏟으며 묵묵히 일했던 손길들을 기억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겠노라 다짐하고 있었다. 세계고속도로 건설사상 2년 5개월이란 가장 짧은 기간에 준공했고 고속도로 중간지점이자 가장 높은 위치에 세운 30m 높이의 준공탑이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황악산이지만 그 절정은 시월 하순에 이미 끝났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낙동강 상류인 감천을 지나면 바로 김천 시가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서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시가지는 사라지고 한반도 등뼈라 불리는 백두대간이 눈앞에 위용을 드러낸다. 물론 황악산도 그 안에 들었다. 북상하여 추풍령휴게소로 접근할수록 산의 모습은 점점 또렷해진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 보러 한양으로 가면서 주로 넘었다는 괘방령도 이 안에 들었다. '추풍낙엽처럼 과거시험에서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더 낮은 추풍령 고개를 두고 힘든 괘방령을 넘었다니 당시 선비들 애환이 읽혀진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친 걸 알 리 없는 추풍령 하늘은 짙은 어둠을 안고 적막에 휩싸였다. 오랜만에 지나치는 고향이라 더욱 만감이 교차한다. 누군가는 사색의 계절 가을엔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고 했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그리기도 하고 깊은 가을밤 오래된 주소록을 펼쳐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리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했다. 내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 떠난 60년 세월 동안 동창 모임에 얼굴 한 번 내밀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동안 바람결에 접한 먼 길 떠난 친구들 비보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