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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잘랐을 때, 메두사의 피가 대지에 스며들었다.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소스는 거기에서 나왔다. 아테나는 이 말을 잡아 길들인 뒤에 〈무사이〉 여신들에게 주었다. 무사이들이 사는 헬리콘 산에는 〈히포크레네〉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은 페가소스에게 걷어차인 땅에서 솟아올랐다고 한다.
키마이라는 불을 뿜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이 동물의 앞 부분은 사자와 산양을 합친 모습이었고, 엉덩이에는 용 꼬리가 나 있었다.
코린토스의 영웅 벨레로폰1)
이 괴물이 뤼키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자 이오바테스 왕은 온 나라에 방을 붙여 이 괴물을 퇴치할 용사를 널리 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벨레로폰이라는 젊고 용감한 무사가 이오바테스 왕의 궁전을 찾아왔다. 이 벨레로폰은 이오바테스 왕의 사위인 프로이토스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편지에서 프로이토스는 벨레로폰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고, 더없이 용감한 영웅으로 치켜세운 뒤에, 편지 말미에다 그러니 장인께서 좀 죽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프로이토스가 벨레로폰을 죽여 달라고 한 까닭은, 아내 안테이아가 이 용사를 지나치게 칭송하는데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벨레로폰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사형 집행 영장을 가지고 왔다는 이 고사(故事)에서 〈벨레로폰의 편지〉(Bellerophonic letter)라는 말이 생겨났으니, 이 말은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몹시 불리한 편지〉라는 뜻이다.
이오바테스 왕은 이 편지를 읽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몹시 당혹해했다. 손님을 해코지하면 안 된다는 오래된 관례를 깨뜨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사위의 청을 모르는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사이 아홉 자매2)
며칠을 고민하던 이오바테스의 머리에 묘안이 떠올랐다. 벨레로폰을 시켜 키마이라를 퇴치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벨레로폰은 이오바테스의 제안을 순수히 받아들였다. 벨레로폰은 키마이라와 싸우러 가기에 앞서 예언자 폴뤼이도스를 찾아갔다. 예언자 폴뤼이도스는 벨레로폰에게, 가능하면 천마 페가소스를 손에 넣은 연후에 키마이라와 싸우는 편이 좋겠다고 권했다.
폴뤼이도스는 이어서 그날 밤을 아테나 신전에서 지새면 좋은 수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벨레로폰은 폴뤼이도스의 말에 따라 아테나 신전에 들어가 거기에서 잠을 잤다. 과연 꿈에 아테나가 나타나 황금 고삐를 건네 주었다. 벨레로폰이 놀라 깨어보니 꿈을 꾸었는데도 말고삐만은 손에 남아 있었다. 아테나는 또 페가소스가 페이레네 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벨레로폰이 페가소스를 찾아가자, 이 날개 달린 천마는 황금 고삐를 보고는 부르기도 전에 다가와 목을 내밀었다. 벨레로폰은 페가소스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라가 키마이라를 찾아내고는 큰 힘 안들이고 이 괴물을 잡아 죽였다.
벨레로폰은 키마이라를 잡아 죽인 뒤로도 불친절한 주인 이오바테스 왕 때문에 갖가지 시련과 고통을 겪었으나 페가소스 덕분에 그 시련과 고통을 모두 이겨낼 수 있었다. 이윽고 이오바테스 왕은 벨레로폰이 신들의 특별한 가호를 받은 영웅임을 인정하고 자기 딸과 짝을 짓게 하여 왕위 계승자로 삼았다.
그러나 벨레로폰은 그뒤 자만심과 오만에 사로잡혀 방약무인으로 구는 바람에 신들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3) 전설에 따르면, 오만해진 벨레로폰이 날개 달린 천마 페가소스를 타고 하늘에 오르려 하기까지 하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제우스가 한 마리 등에를 보내었고, 이 등에는 페가소스를 쏘아 등에 탄 벨레로폰을 떨어뜨리게 했다.4) 벨레로폰은 하늘에서 떨어져 절름발이에다 장님이 되고 말았다. 벨레로폰은 후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을 피하여 알레이온5)을 외로이 방랑하다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밀턴은 『실락원』 제7편 첫머리(1~2행)에서 이 벨레로폰 전설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소서, 우라니아6)여,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합당하였다면.
당신의 거룩한 음성을 좇아
내 올륌포스 산보다 더 높은 곳,
페가소스의 날개도 미치지 못할 곳까지 올라가겠나이다.
당신에게 이끌려,
지상에서 올라간 하늘 중의 하늘 손님으로
(당신이 길들인) 정화(淨化)의 공기를 숨쉬게 하고,
다시 당신에게 이끌려
지상에 있는 내 집으로 내려오게 하소서.
내가 이 고삐도 없는 천마에서(그보다 훨씬 낮은 데서 떨어진 벨레로폰처럼)
알레이온 들판으로 떨어져 버림받은 채 홀로 헤매다 죽지 않도록.
영7)은 『밤의 명상』(Night Thoughts)에서 무신론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고 이렇게 쓰고 있다.
미래를 부정하는 맹목적인 자는,
벨레로폰이여, 그대같이 자기에 대한 고발장(告發狀)을 전하는 자다.
제 몸에 제 스스로 선고를 내리는 자다.
사랑의 마음을 읽는 자는 불멸의 생명도 읽어 낸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연은 제 자식을 속이며 신화를 썼다.
인간이 거짓을 말하였다고.
페가소스는 무사이 여신들의 말이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늘 시인들의 섬김을 받았다. 쉴러는, 페가소스가 어느 가난한 시인에 의해 팔려가 마차나 쟁기를 끌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굴레 쓴 페가소스』를 썼다. 페가소스는 그런 일에 버릇들여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멍청한 말 주인은 말을 제대로 부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한 번만 타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젊은이가 말등에 오르자, 처음에는 우둔해 보였고, 다음에는 기가 온통 꺾여 있는 듯하던 말은 당당하게 정령처럼 신처럼 일어나 빛나는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롱펠로우도 이 유명한 천마의 모험을 『우리에 갇힌 페가소스』(Pegasus in Pound)에 기록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도 『헨리 4세』(Henry IV)에서 페가소스를 노래하고 있다. 즉 버논이 헨리 왕자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헨리 왕자를 보았다. 투구의 턱마개를 올리고,
넓적다리 가리개를 하는 등 씩씩하게 무장하고
날개 달린 처럼 땅을 차고 뛰어올라
말 잔등에 사뿐 내려앉더라.
흡사 천사가 구름 속에서 내려와
사나운 페가소스의 고삐를 채어
놀라운 마술(馬術)로 인간의 눈을 어지럽히는 것 같았다.
1 코린토스의 영웅 벨레로폰이 하늘을 나는 말 페가소스에게 물을 먹이고 있다. 〈페이레네〉 샘은 지금도 고대 도시 코린토스에 남아 있다. 로마, 스파다 광장에 있는 돋을새김.
2 히포크레네 샘 앞에 서 있는 예술의 여신들 무사이 아홉 자매. 〈히포크레네〉는 〈말의 샘〉이라는 뜻이다. 말은 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스의 수도 아크로폴리스에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말이 발길질로 팠다는 샘이 있다. 신화집의 삽화.
3 신화의 영웅은 거의가 이 오만(hybris) 때문에 상승의 정점에서 급전직하한다.
4 〈지나친 욕망〉이라는 뜻의 라틴 어〈오이스트룸(oestrum)〉은 〈등에〉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5 〈방랑의 들〉이라는 뜻이다.
6 아홉 무사이 가운데 하나로 천문시(天文時)를 담당한다.
7 Edward Young. 영국의 시인(1683~1765).
옛날 옛적 테쌀리아에 아타마스와 네펠레라고 하는 왕과 왕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 남매가 있었다. 그러나 남매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타마스는 아내 네펠레를 멀리 하더니 결국은 본처와의 인연을 끊고 새 아내를 맞이했다.
네펠레는 남매가 계모로부터 구박이나 받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계모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아이들을 피신시킬 대책을 강구했다. 헤르메스가 네펠레를 도와주려고, 모피가 황금으로 된 숫양, 그러니까 〈금양(金羊)〉 한 마리를 보내 주었다. 네펠레는 이 금양에 남매를 태워,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을 신들에게 기도하고는 금양을 떠나보냈다.
금양은 남매를 등에 태운 채 하늘로 날아올라 진로를 동쪽으로 잡았는데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가로놓인 해협을 건너다 그만 딸아이를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딸 아이 이름이 헬레인데 이 바다는 그 뒤로 헬레스폰토스1)라고 불렸다. 오늘날의 다다넬즈 해협이 바로 이곳이다.
금양은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 드디어 흑해 동해안에 있던 콜키스라는 나라에 당도했다. 금양은 여기에다 네펠레의 아들 프릭소스를 내려놓았다. 프릭소스는 이 나라의 왕 아이에테스로부터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프릭소스는 금양을 산 제물로 제우스에게 바치고 금양의 모피는 아이에테스에게 선사했다. 왕은 그 금양모피를 신에게 봉헌한 숲속에다 두고 잠들지 않는 용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했다.
테쌀리아에는 아타마스 왕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은 아타마스 왕의 친척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 나라의 국왕 아이손은 정치가 귀찮아져 아들 이아손3)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아들이 너무 어려 망설이다가,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달아 아우 펠리아스에게 잠정적으로 왕위를 물렸다.
금양을 탄 프릭소스와 헬레2)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이아손이 숙부에게 왕위를 요구하자 펠리아스는 기꺼이 왕위를 물려줄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먼저 저 황금 모피를 찾는 명예로운 모험 여행을 떠나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황금 모피는 분명히 콜키스 왕국에 있고, 그것이 아이손 왕국의 국보(國寶)가 분명한 이상 마땅히 찾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아손은 이 제안을 쾌히 수락하고 곧 원정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그리스 인들이 알고 있던 항해술은 나무 둥치를 파내고 만든 조각배나 카누 같은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아손이 아르고스5)에게 명하여 자그만치 50명이나 태울 수 있는 배를 짓게 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이윽고 배짓기가 끝나자 이아손은 지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 배를 〈아르고〉라고 명명했다. 이어서 이아손은 모험을 좋아하는 온 그리스 땅의 젊은이들을 이 여행에 초청하고 자신은 이 용감한 젊은이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되었다. 이들 젊은 용사들 대부분은 후일 그리스의 영웅 및 신인(神人)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저 유명한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네스토르도 여기에 들어 있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배의 이름 그대로 〈아르고나우테스〉6)라고 불린다.
〈탱글우드 이야기〉의 삽화4)
이러한 영웅들을 승무원으로 태운 아르고 호는 테쌀리아 해안을 떠나 렘노스 섬에서 기항하고, 뮈시아를 건너 트라키아에 당도했다. 이곳에서 일행은 현인(賢人) 피네우스를 만났고 그로부터 차후의 항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아르고 호는 〈충돌하는 바위〉라는 뜻을 지닌 〈쉼플레가데스〉를 지나야 한다. 현자 피네우스의 도움으로 이 바위 사이를 지나자 바위는 더 이상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이 쉼플레가데스는 흑해와 에게해 사이에 있는 다다넬즈 해협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바위가 더 이상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은, 흑해가 더 이상은 미지의 바다가 아니게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피네우스는 옛 에우크세이노스 해7)가 두 개의 조그만 바위 섬으로 막혀 있다고 했다. 곧 이 두 개의 바위 섬은 해상에 떠 있다가 상하 좌우로 움직이며 서로 부딪치는데 그 사이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산산조각으로 부숴 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섬은 〈쉼플레가데스〉, 곧 〈충돌하는 섬〉이라고 불린다는 것이었다.
피네우스는 아르고나우테스들에게 그 위험한 해협을 통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이 방법에 따라, 바위섬 가까이 접근하자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 보았다. 비둘기는 바위 섬 사이를 날았는데, 꼬리깃을 조금 뽑혔을 뿐 무사히 그곳을 통과했다. 이아손과 부하들은 충돌했던 바위가 그 반동 때문에 다시 열리는 순간을 이용해서 전력을 다해 노를 저어 대체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통과한 직후에 바위 섬이 다시 충돌하는 바람에 배의 고물을 조금 다쳤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아르고나우테스 일행은 해안선을 따라 배를 몰아 마침내 바다의 동쪽 끝에 이르러 콜키스 왕국에 상륙하는데 성공했다.
이아손이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에게 입국한 목적을 말하자 왕은 황금 모피를 내놓겠다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이아손이 불을 뿜는 두 마리의 놋쇠 발 황소에 쟁기를 매어 밭을 갈고, 거기에다 카드모스 왕이 퇴치한 저 용8)의 이빨을 뿌리는 데 성공하면 황금 모피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리면 무장한 병사들이 돋아나 뿌린 자에게 칼을 들이댄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이아손은 아이에테스 왕이 내건 조건을 수락했다.
이윽고 이아손이 시련을 당할 날까지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아손은 그 전에 이 수단 저 방법을 다 써서 자기 생각을 아이에테스 왕의 딸 메데이아에게 털어놓는 데 성공했다. 이아손은 이 메데이아 공주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메데이아와 함께 헤카테의 신전으로 가서는 여신의 이름을 걸고 결혼할 것을 서약했다.
메데이아도 이 약속을 믿게 되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을 빌려(메데이아는 훌륭한 마술사였다) 불을 뿜는 황소와 무장한 병사들의 창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마력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그날이 오자 사람들은 전쟁신 아레스에게 바쳐진 문제의 숲에 운집했다.
국왕은 왕좌에 앉았고 신민들은 산허리를 메우고 앉거니 서거니 했다.
이윽고 놋쇠 발 황소가 콧구멍으로 불길을 뿜으며 들어오자 길가의 풀이 타죽었다. 황소 두 마리가 다가옴에 따라 용광로 안에서 쇳물이 끓는 소리가 났고, 생석회에 물을 뿌린 것처럼 연기가 피어 올랐다.
이아손은 담대하게 두 마리 황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스의 영웅들 중에서도 영웅인 이아손은 황소가 내뿜는 불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황소의 노기를 가라앉히고는 두려움을 모르는 손으로는 그 목을 어루만졌다. 이어서 이아손이 솜씨 있게 멍에를 채우고는 쟁기를 끌게 했다. 콜키스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그리스 인들은 함성을 질렀다. 이아손은 이어서 용의 이빨을 뿌리고 쟁기로 이빨 뿌린 밭을 갈기 시작했다. 곧 무장한 병사들이 돋아났다.
〈헤카테〉는 〈멀리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헤카테는 저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땅의 여신이다. 이 대리석 돋을새김은 올륌포스 신들을 도와 기간테스〔巨人〕들을 퇴치할 때의 모습이다. 〈거인〉을 뜻하는 영어의 〈자이언트(Giant)〉는 〈기간테스〉에서 온 말이다.
무장한 병사들은 흙 위로 솟아나자마자 무기를 꼬나잡고 이아손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리스 인들은 영웅의 안위를 염려하느라 전율했고, 이아손의 호신 대책을 세우고 이를 자세히 일러주었던 메데이아까지도 두려움으로 파랗게 질렸다.
이아손은 잠시 칼과 방패로 이들을 대적했으나 곧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자 메데이아가 가르쳐 준 호신 방법을 썼다. 돌멩이를 하나 집어, 땅에서 솟아난 병사들 한가운데로 던진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저희들끼리 베고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얼마 가지 않아 전멸했다. 그리스 인들은 그들 영웅을 껴안았으니, 그럴 용기만 있었더라면 메데이아도 그를 껴안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황금 모피를 지키고 있던 용을 잠재우는 일뿐이었다. 그것도 간단했다. 메데이아가 미리 준비해 준 약을 몇 방울 용의 주위에 뿌리면 되는 일이었다. 이아손이 그 약을 뿌리자, 용은 그 냄새를 맡고는 노기를 가라앉힌 뒤, 잠시 꼼짝도 않고 서 있다가는 한 번도 감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그 크고 둥근 눈을 감고 모로 누워 잠들고 말았다.
이아손은 그 황금 모피를 취한 뒤, 아이에테스 왕에게 출항을 저지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서둘러 친구들과 메데이아를 데리고 배를 몰아 테쌀리아로 돌아왔다.
무사히 귀환한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펠리아스에게 건네주고 〈아르고 호〉는 해신 포세이돈에게 봉헌했다. 그 금양모피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모르기는 하나 그 금양모피 역시 손에 넣는 데 필요했던 수고에 비기면 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최근의 어떤 작가가 말했듯이, 상당한 허구가 흘러들어가 있긴 하나 그 바탕에는 역시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신화적인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 아르고 호의 원정은 어쩌면 인류사 초기의 중요한 해외 원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역사에서 읽고 있듯이, 모든 나라에서 있었던 이런 유의 원정은 반은 해적질 성격을 띠고 있다. 아르고 호 원정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원정대가 풍부한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다면 이런 모험담은 다분히 금양모피 전설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박학다식한 신화학자 브라이언트9)는, 이 이야기를 〈노아의 방주 이야기〉10)를 꼴바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아르고(Argo)라는 이름은 방주(ark)와 비슷한데다 저 비둘기의 등장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포프(Pope)는 『성 세실리아11)의 날 음악에 부치는 송가』에서 아르고 호의 진수와 오르페우스에 의한 음악의 힘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다(38~43행).
저 대담무쌍한 최초의 배가 바다로 들어갈 때
트라케인12)은 고물에 서서 수금을 뜯었다.
아르고 성좌가, 저와는 동족인 나무가
헬리온 산에서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신인(神人)들은 그 가락에 망연자실했고 병사들은 그 소리에 영웅처럼 담대해졌다.
다이어13)의 『모피』(The Fleece)라는 시에는 아르고 호와 그 승무원을 노래한 대목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이 원시적인 해상 모험의 양상을 알 수 있다.
에게 해 연안 각지에서
용사들이 모여들었다. 저 유명한 쌍둥이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음악의 명수 오르페우스,
바람같이 빠른 제테스와 칼라이스, 강한 헤라클레스,
그 밖의 유명한 장사들이.
이들은 이올코스 해변 모래판에 모여 투구를 번쩍이며
원정의 불길로 가슴을 태웠다.
이윽고 월계수 밧줄과 바위가 갑판에 오르자
범선의 돛줄이 풀렸다.
놀라우리 만큼 긴 용골은 아르고스의 솜씨가
이 자랑스러운 원정을 위해 다듬은 것.
그 미끈한 용골 위로 돛대가 우뚝 섰고,
돛은 남김없이 바람을 받았다. 영웅들에게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일행은 처음으로
넓은 바다로 나가 대담한 항해술을 익힌 것이다.
케이론이 하늘에다 박아 둔 금빛 별들에 이끌리어.
헤라클레스는 뮈시아에서 원정대를 이탈했다. 평소에 아끼던 휠라스가 물을 길러 갔다가, 그 미모에 마음을 빼앗긴 샘의 요정들에게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소년을 구하러 갔다. 그가 떠나 있을 동안 아르고 호는 그를 놓아둔 채 떠나고 말았다.
무어(Moor)14)는 이 일을 아름다운 글로 노래하고 있다.
휠라스는 물단지를 들고 샘으로 물을 길러 갔는데,
꽃빛 환한 들판을 지나고, 흥겨운 마음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목장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가다,
길 옆에 핀 꽃을 보느라 심부름도 잊었다.
이런 사람들은 나처럼, 젊은 시절에 〈철학〉의 신당 옆을 흐르는
샘물을 맛보아야 하는데
물가에 핀 꽃을 보느라고 귀중한 세월을 허송하는 바람에 내 단지처럼
그들 역시 단지가 비어 있구나.
금양모피를 되찾아 온 것을 기념하여 잔치가 벌어졌지만, 이아손은 마음 한 곳이 허전해서 그 자리에 흥겹게 어울릴 수 없없다. 아버지 아이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손은 노환으로 그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내여, 내 그대 마법의 도움으로 오늘 이런 광영을 입고 있으나, 아직도 세상이 비어 보이는 것을 어쩌리오, 다시 한 번 나를 위해 그 마법을 써 줄 수 없겠는지요. 바라건대 내 수명에서 몇 년을 빼내어 아버지 수명에다 붙여 주었으면 하오.」
그러자 메데이아가 대답했다.
「그런 희생을 치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마법이 제대로만 들어준다면, 그대의 수명에서 빼지 않고도 아버님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메데이아는 보름달이 밝은 밤, 산 것은 모두 잠들어 있는 틈을 타서 홀로 일어났다. 사위는 고요했다. 메데이아는 먼저 별에게 기원하고 달에게 기원했다. 그리고는 지옥의 여신 헤카테와 대지의 여신 텔로스에게 기원했다. 이러한 여신들의 힘이 마법에 쓰이는 식물을 키우기 때문이었다. 메데이아는 숲이나 동굴, 산과 골짜기, 호수와 강, 바람과 대기의 신들에게도 힘을 빌려줄 것을 기원했다.
메데이아가 이렇게 빌자 별들이 한층 더 빛나면서, 날개 달린 뱀이 끄는 이륜차 한 대가 나타났다. 메데이아는 이 이륜차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원방각지를 다니며 그 땅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 중에서 자기가 겨냥하는 일에 필요한 것만을 모았다. 메데이아는 아흐레 밤낮을 약초 찾는 데 보냈다. 그 아흐렛 동안은 궁전의 문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과도 일체 만나지 않았다.
약초를 다 모은 메데이아는 제단 둘을 만들었다. 하나는 헤카테의 제단이었고 또 하나는 청춘의 여신 헤베를 위한 것이었다.
메데이아는 이 제단에다 검은 양 한 마리를 산 제물로 바치고 우유와 포도주를 제주(祭酒)로 헌작했다. 이어서 메데이아는 하데스와, 하데스가 노략해 갔던 신부15)에게, 노인의 생명을 너무 빨리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
이윽고 아이손을 모셔 들이게 한 메데이아는 주문을 외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고는 신선을 모시듯이 약초를 깐 침상에 눕혔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은 물론 잡인을 모두 그곳에서 물리쳤다. 부정(不淨)한 눈이 비법(秘法)을 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준비를 거의 마친 메데이아는 머리를 풀고, 불을 붙인 나뭇가지로 산 제물의 피를 휘저으면서 제단을 세 바퀴 돌고, 그 나뭇가지를 제단에다 쌓아놓고 불을 지폈다. 그 동안 솥에 앉힐 약제가 준비되었다. 메데이아는 솥에다 여러 가지 약초와 짜면 쓴 즙이 나오는 씨앗이나 꽃, 먼 동방에서 가져온 돌,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대양의 해변에서 퍼 온 모래, 달빛 아래서 모은 흰 서리, 올빼미 머리와 날개, 이리의 내장 따위를 집어 넣었다. 잠시 후에는 거북 껍질 조각, 수사슴의 간장(둘 다 생명력이 왕성한 동물이었으므로)과, 인간의 아홉 세대를 넘게 산 까마귀 머리와 부리를 넣었다. 메데이아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이 밖에도 〈이름도 없는 것들〉16)을 넣고는 마른 올리브 가지로 저으면서 끓였다.
그런데 대체 이것이 무슨 조화인가! 그 가지를 솥에서 꺼내고 보니, 파랗게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가지에서 잎이 돋고 올리브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닌가! 솥 안에서 즙이 끓다가 방울이 더러 주위로 튀자, 그 즙방울이 튄 잎은 봄 풀잎처럼 파랗게 싹을 틔우는 것이었다.
이 모든 준비를 끝낸 메데이아는 아이손의 결후(結喉)를 찢어 온몸의 피를 모두 쏟아내고는 입과 상처 구멍을 통해 솥에다 끓인 즙을 부어 넣었다. 그 즙 모두가 몸 속으로 들어가자 노인의 흰 머리카락과 수염은 그 흰 색깔을 버리고 검어지기 시작했다. 창백했던 낯빛, 초췌했던 기색도 사라지고 혈관은 피로 넘쳤고, 수족은 활기와 헌걸찬 기운으로 부풀어올랐다.
건강 상태가 40년 전의 한창 시절과 같게 되었으니 깨어난 아이손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경우는 메데이아가 자기 마법을 선한 목적에 쓴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다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메데이아가 이 마법을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의 숙부로,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를 나라 밖으로 쫓아 보낸 자다. 그러나 그런 펠리아스에게도 좋은 점은 있었던 모양이다. 딸들이 이 아버지 펠리아스에게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니까 하는 말이다.
이 딸들은 메데이아가 아이손을 회춘시키는 것을 보고는 자기 아버지에게도 같은 마법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메데이아에게 부탁했다. 메데이아는 이 부탁을 들어주겠노라면서 전같이 솥을 준비했다. 메데이아는 늙은 양 한 마리를 솥에다 넣게 했다. 뚜껑을 닫자 곧 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메데이아가 뚜껑을 열자 새끼 양 한 마리가 톡 튀어나와 근처 목장으로 도망쳐 버렸다.
펠리아스의 딸들은 이 실험에 크게 만족해하고, 저희 아버지가 이 회춘 시술을 받을 일시를 정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솥에 넣을 것을 준비했다. 말하자면 솥에다 여느 물과 잡초를 넣었을 뿐이었다.
이윽고 밤이 되자 메데이아는 그 딸들과 함께 펠리아스 왕의 침실로 들어갔다. 곧 왕과 호위병들은 메데이아의 주문에 걸려 잠들고 말았다. 딸들은 단검을 빼어들고 침대 모서리에 시립하고 있었다. 딸들은 메데이아가 찌르라고 해도 차마 찌를 수가 없었던지 자꾸만 머뭇거렸다. 메데이아가 딸들의 우유부단을 꾸짖었다. 딸들은 고개를 돌리고 단검으로 아버지의 몸을 마구 찔렀다. 아버지 펠리아스는 잠들어 있다가 눈을 번쩍 뜨고는 소리쳤다.
「얘들아,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아비를 죽이려는 것이냐?」
딸들은 엉겁결에 들고 있던 단검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메데이아가 회심의 일격을 가하여 그 입을 다물게 했다.
메데이아는 왕을 솥에 넣고는, 이 시왕(屍王)의 반역이 드러나기 전에 뱀이 끄는 이륜차를 타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더라면 펠리아스 딸들의 복수를 당했으리라. 요컨대 메데이아는 그 복수를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이런 악행을 저지르면서까지 이아손을 도왔지만 도운 보상은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메데이아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녀 크레우사를 아내로 취하려고 메데이아를 버린 것이다. 메데이아는 이 배은망덕한 처사에 분개하여 신들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신부에게는 선물로 독약을 칠한 옷을 보낸 다음, 제 자식을 죽이고 궁전에는 불을 지른 뒤 뱀이 끄는 이륜차를 타고 아테나이로 도망쳤다.
메데이아는 아테나이에서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왕과 결혼했다. 뒷이야기는 테세우스의 모험을 이야기할 때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메데이아의 마법은 독자 여러분에게 『맥베드』(Macbeth)에 나오는 마녀들의 마법을 상기시킬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귀절은 메데이아 이야기를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떠올리게 하는 일절이다.
솥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라,
유독한 내장을 넣어라.
늪의 뱀 토막도
솥에다 끓이고 구워라.
도롱뇽 눈깔에 개구리 발가락
박쥐 털에 개 혓바닥.
살무사 혀, 도마뱀 독니.
파충류 다리에 올빼미 새끼 깃털.
주린 상어 밥통에 한밤중에 캔 독미나리.
『맥베드』 제4막(4~25행)
또 이런 구절도 있다.
맥베드 :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세 마녀 : 무명지사(無名之事, Things 〈without a name〉).
메데이아 이야기에는 한 대목이 더 있다. 고금의 시인들은 잔학한 행위를 모두 마녀의 소행으로 돌리지만, 마녀의 소행이라고 기록하기에도 소름이 돋을 만큼 잔혹한 이야기다.
메데이아는 콜키스에서 도망쳐 나올 때 동생 압쉬르토스를 데리고 나왔다. 이윽고 추격해 온 아이에테스 왕의 배들이 아르고 호를 바싹 따라붙자 메데이아는 이 동생의 몸을 아홉 토막으로 난자하고 그 수족을 바다에 버렸다는 것이다. 아이에테스는 이 학살당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흩어진 토막을 모아 가까운 항구로 들어와 장례를 치렀고, 아르고 호는 이 틈을 타서 멀리 도망쳤다는 것이다.
캠벨17)은 에우리피데스18)가 쓴 메데이아의 비극을 다룬 합창곡 가사를 번역한 바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시에서 잽싸게 자기 고향 아테나이를 뜨겁게 칭송하고 있는데 첫부분은 다음과 같다.
오, 처량한 왕비여! 그대는 어찌하여 친족의 피에 젖은 채
그 빛나는 이륜차를 아테나이로 몰았던가?
저주받은 골육살해의 죄를 묻으려고
〈평화〉와 〈정의〉가 영원히 사는 나라로 갔다는 말인가?
1 〈헬레의 바다〉라는 뜻.
2 금양(金羊)을 탄 프릭소스와 헬레. 신화에서 이 쌍둥이 남매는 보이오티아에서 콜키스까지, 이 금양을 타고 날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금양이 바다를 헤엄쳐 건너고 있다.
3 로마 이름 〈야손〉, 영어 이름 〈제이슨(Jason)〉.
4 이아손은 어린 시절 펠리온 산으로 올라가 무사 수업을 받고는 하산(下山)하다 한 노파를 만난다. 이 노파가 바로, 노파로 둔갑한 헤라 여신이다. 이아손은 노파를 업고 강을 건너다 신발을 한짝 물에 떠내려 보내게 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모노산달로스〉, 즉 〈외짝신 사나이〉라는 뜻이다. 이아손의 숙부 펠리아스는 헤라 신전의 기둥 뿌리를 뽑은 일이 있는데, 헤라 여신은 이 일을 기억하고, 왕위를 찾으러 조국으로 돌아가는 이아손을 도와주러 나타났던 것이다. 1920년에 발행된 〈탱글우드 이야기〉의 삽화.
5 눈이 백 개인 거인 아르고스가 아님.
6 〈아르고나우테스(Argonauts)〉, 즉 아르고 원정대라고 불린다.
7 흑해를 말함.
8 『카드모스 왕』 편에는 〈큰 뱀〉으로 되어 있다.
9 Jacob Bryant. 영국의 고전학자, 1715~1804년.
10 구약성서 『창세기』 6~9장 참조.
11 음악의 수호 성인.
12 오르페우스를 가리킨다.
13 John Dyer. 웨일즈 태생의 시인(1700~1756).
14 『아일랜드의 노래』에서.
15 페르세포네. 저승 왕비.
16 Things 〈without a name〉.『맥베드』 4막 1장 50행 참조.
17 Thomas Campbell. 스코틀랜드 시인(1777~1844).
18 Euripides. 그리스 시인, 극작가(기원전 484?~406).
올륌포스로 오르는 헤라클레스의 영혼1)
헤라클레스2)는 제우스와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헤라는 인간을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남편의 자식이면 누구나 미워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태어났을 때도 이 아이에게 선전을 포고했다. 헤라는 두 마리 독사를 보내어 요람에서 자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 조숙한 아기는 독사를 한 손에 한 마리씩 잡아 목졸라 죽여 버리는 바람에 헤라는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뒷날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간계에 말려 에우뤼스테우스의 부하가 되었다. 말하자면, 에우뤼스테우스가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야 할 입장으로 몰린 것이다. 에우뤼스테우스는 목숨을 내놓고 해도 해내기 어려운 임무를 차례로 헤라클레스에게 맡겼으니 이것이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난사(難事)라는 것이다.
첫번째 난사는 네메아 사자와 싸우는 일이었다. 네메아 골짜기에 무서운 사자 한 마리가 출몰했는데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이 괴물의 모피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헤라클레스는 곤봉으로 때려도, 활로 쏘아도 뜻대로 되지 않자 맨손으로 이 괴물의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헤라클레스가 죽은 사자를 둘러메고 오자 에우뤼스테우스는 그 죽은 사자를 보고, 이 영웅의 괴력에 기겁을 하고는 앞으로 모험의 결과를 보고할 때는 도시 바깥에서 하라고 명했다.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두 번째 난사는 휘드라(물뱀)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이 괴물은 아뮈모네 샘 가까이에 있는 늪지에 살면서 아르고스 땅 사람들을 못살게 했다. 아뮈모네 샘은 이 나라가 가뭄에 시달릴 때 아뮈모네가 발견한 샘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뮈모네를 사랑했던 포세이돈이 아뮈모네로 하여금 자기 삼지창으로 바위를 찌르게 하자 거기에서 세 줄기의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소중한 샘에 휘드라가 도사리고 있어서 아르고스 인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헤라클레스는 바로 이 휘드라를 퇴치해야 하는 것이었다. 휘드라는 머리가 아홉 개나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불사(不死)의 운명을 타고난 머리였다. 헤라클레스가 곤봉으로 머리를 차례로 쳐 떨어뜨렸으나 떨어진 자리에서 두 개씩 새로 돋아났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이올라오스라고 하는 충복의 손을 빌려 휘드라의 머리를 모두 태워버리고, 아홉 번째의 불사의 머리를 커다란 바위 밑에다 묻어 버렸다.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는 헤라클레스4)
세 번째 난사는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치우는 일이었다. 엘리스의 왕 아우게이아스는 3천 마리의 황소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 외양간은 자그만치 30년간 한번도 치워진 적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알페이오스 강과 페네이오스 강을 끌어들여 단 하루 만에 이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해 버렸다.
네 번째 난사는 몹시 까다로운 임무였다. 곧 에우뤼스테우스 왕의 딸 아드메테는 아마존 족5)의 여왕이 허리에 매고 있는 허리띠를 몹시 갖고 싶어했는데,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그것을 좀 빼앗아 오라고 명한 것이었다. 아마존 족은 여자들뿐인 종족이었다. 이들은 전쟁을 몹시 좋아하는 종족으로, 몇 개의 번창한 도시를 거느리고 있었다.
여자 아이만을 기르는 게 이들의 관습이었기 때문에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이웃 나라로 쫓아 버리거나 죽여 버리거나 했다.
헤라클레스는 수많은 지원병을 데리고 천신만고의 모험 끝에 이 아마존 나라에 도착했다. 여왕 히폴뤼테는 헤라클레스를 따뜻하게 영접하고 허리띠를 풀어 주겠다는 말까지 했는데, 헤라가 아마존 족의 한 여자로 둔갑하여 동네방네 다니며 외국인들이 자기네 여왕을 납치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을 들은 이들 아마존 족들은 무장하고 헤라클레스가 타고 온 배를 나포하려 했다. 이에 노한 헤라클레스는 히폴뤼테가 무슨 음모를 꾸민 것으로 알고, 여왕을 죽여 허리띠를 빼앗고는 배를 타고 돌아와 버렸다.
헤라클레스에게 맡겨진 또 하나의 난사는, 게뤼오네우스의 소떼를 끌고 오는 일이었다. 이 게뤼오네우스의 소는 몸뚱이가 셋이나 되는 괴물로 당시 에뤼테이아 섬6)에 살고 있었다. 이 섬은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지는 해에 물들어 그런 이름으로 불리었다. 묘사의 문맥으로 보아, 오늘날의 스페인을 지칭하는 듯하다.
게뤼오네우스는 그 나라의 왕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여러 나라를 횡단하여 마침내 리비아와 유럽의 경계선에 이르렀다. 이곳에다 헤라클레스는 칼레 산과 아빌레 산을 세워 그가 다녀갔다는 기념비로 삼았다. 하나의 산을 둘로 쪼개고 이를 양쪽으로 나누어 세워 오늘날의 지브랄타르 해협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이 두 산은 〈헤라클레스의 기둥〉(Pillars of Hercules)이라고 불린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뤼티온이라는 거인과 개를 죽이고 소를 에우뤼스테우스에게로 몰고 왔다.
열두 가지 난사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웠던 일은 헤스페리스들이 지키고 있는 황금 사과를 따 오는 일이었다. 우선 그 사과 있는 곳의 위치가 묘연했다. 사과는 헤라가 결혼할 때 대지의 여신(가이아)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헤라는 그것을 헤스페로스(샛별)의 딸들에게 지키게 하고, 그 딸들에게 잠들지 않는 용 한 마리를 붙여 준 바 있다.
헤라클레스는 온갖 모험 끝에 아프리카에 있는 아틀라스 산에 이르렀다. 아틀라스는 신들과 맞서 싸운 저 티탄 족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패배하자 신들이 그에게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게 했던 것이었다.7) 아틀라스는 헤스페리스들의 아버지였다.8)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헤스페리스들이 지키고 있는 사과를 따다 자기에게 갖다 줄 이는 아틀라스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틀라스를 부려먹자면 그 동안 누군가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자기 어깨로 하늘을 대신 떠받치고 아틀라스를 시켜 사과를 따 오게 했다. 오래지 않아 아틀라스는 사과를 따 가지고 왔다. 아틀라스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고, 헤라클레스로 하여금 그 사과를 가지고 에우뤼스테우스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밀턴은 『코무스』에서 헤스페리스들을, 헤스페로스의 딸이며 아틀라스의 질녀들이라고 쓰고 있다(981~983행).
저 헤스페로스의 아름다운 뜰에서
황금 나무를 노래한다.
세 딸과 더불어.
시인들은 해가 질 때 서쪽 하늘이 아름답게 물드는 걸 보고는 서방에 있을 광휘와 영광의 나라를 상상했다. 그들은 축복받은 자들의 섬, 게뤼네이우스의 빛나는 소떼가 풀을 뜯는 붉은 에뤼테이아 섬, 헤스페리스들의 섬 같은 것을 생각해 냈다. 따라서 예의 황금 사과도 당시의 그리스 인들이 전해 들었던 스페인의 오렌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헤라클레스가 해낸 난사 가운데서도 유명한 난사 중의 하나는 안타이오스와의 싸움이었다. 물론 헤라클레스는 이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로, 힘이 장사며 거인인데다 씨름의 명인이었다. 이 사내의 힘은, 어머니인 대지에 발을 붙이고 있을 동안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는 자기 나라로 오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싸움을 거는데, 자기를 이기면 보내 주거니와 지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안타이오스와 맞붙었다.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몇 번 집어던져보다가, 집어던져서는 그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안타이오스는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새로운 힘을 얻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번쩍 들어올려, 공중에서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카쿠스는 아벤티누스 산9) 동굴에 사는 거인으로, 그 인근 땅을 유린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헤라클레스가 게뤼네이우스의 소떼를 끌고 귀국하는 도중에 이곳에 들렀는데, 헤라클레스가 잠들어 있을 동안 이 카쿠스가 그 중의 소 몇 마리를 훔쳐갔다. 카쿠스는 상대가 소의 발자국을 보고 뒤따라 올 것을 염려하여 소의 꼬리를 잡아 끌면서 제 동굴로 돌아갔다. 헤라클레스는 이 계략에 말려들어 도난당한 소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남은 소를 이끌고 동굴 옆을 지나자 동굴 안에서 도둑맞은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헤라클레스는 이로써 소를 되찾았고 카쿠스는 헤라클레스의 손에 맞아죽었다.
헤라클레스가 마지막으로 치른 난사로는 저승에서 케르베로스를 데려온 일이 꼽힌다. 그는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안내를 받아 하데스의 나라로 내려갔다.
하데스는 아무 무기도 쓰지 않는 조건으로 케르베로스를 끌고 갈 수 있으면 끌고 가 보라고 했다. 헤라클레스는 이 괴물의 저항이 보통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에우뤼스테우스에게 데리고 갔다가 다시 저승으로 데려다 주었다. 헤라클레스는 하데스 나라에 있을 때, 평소에 자기를 존경하여 영웅 흉내까지 내던 테세우스를 풀어 주었다. 테세우스는 저승 왕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달라고 조르러 왔다가 실패하고 그곳에 억류되어 있었던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한때 홧김에 친구인 이피토스를 죽인 일이 있다. 이 죗값으로 그는 3년간 옴팔레 여왕의 종살이를 했다. 이 영웅의 성격은 종살이하면서 완전히 변해 버린 듯했다. 헤라클레스는 유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나날을 보냈으니, 그 동안 여자 옷을 입고 나다니는 일도 있었고 옴팔레 여왕의 시녀들과 함께 양털로 실을 잣기도 했다. 오히려 여왕이 그의 사자 모피옷을 입고 다녔다.
그는 종살이가 끝나자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여 3년간 행복하게 살았다.
결혼한 지 3년쯤 되던 어느 날 헤라클레스는 아내를 데리고 여행하다 강을 건너게 되었다. 이 강에는 켄타우로스[半人半馬] 족속인 네쏘스가 규정된 사례금을 받고 길손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자기는 얕은 곳을 그냥 건너고,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네쏘스로 하여금 업어 건너게 했다. 그런데 네쏘스는 데이아네이라를 업은 채 도망치려고 했다.
헤라클레스는 아내의 비명을 듣자마자 활로 네쏘스를 쏘아 죽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이 켄타우로스는 데이아네이라에게 자기 피를 조금 받아 두라면서, 혹 남편이 한눈을 팔 때면 그 피가 부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데이아네이라는 켄타우로스 네쏘스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데이아네이라에게 그 부적이 필요할 때가 왔다. 헤라클레스가 원정을 다니다 이올레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포로로 잡아온 일이 있는데, 그는 이 처녀를 데이아네이라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헤라클레스가 자기 승리를 감사하여 신들에게 산제물을 드리려고,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사람을 보내어 흰 예복을 가져오게 했다. 데이아네이라는 사랑의 부적을 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예복에다 켄타우로스의 피를 묻혔다. 그리고는 피얼룩이 보이지 않도록 그 옷을 다시 깨끗이 빨았다.
우리가 추측하기로는, 피얼룩은 지워졌으나 그 부적의 마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 같다. 헤라클레스는 이 옷을 입었다. 체온을 받자 이 옷에 묻어 있던 독기가 헤라클레스의 몸으로 스며들어가 그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했다.
고통으로 인해 분별을 잃은 헤라클레스는 예복을 가져온 심부름꾼 리카스를 바다에다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는 그 예복을 벗으려 했다. 그러나 예복은 몸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살점째 그 옷을 뜯어내 버렸다.
헤라클레스는 그 모습 그대로 배를 타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데이아네이라는 자기의 허물이 뜻밖에도 남편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알고는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매어 죽었다.
헤라클레스도 죽을 결심을 하고는 오이테 산으로 올라가, 자기 몸을 화장할 나무를 쌓아 올리고는 활과 화살을 필록테테스에게 물렸다. 헤라클레스는 장작더미 위에 누워 평소에 즐겨 쓰던 곤봉을 베고는 사자 모피로 몸을 덮었다. 그리고는 축제날 식탁 앞에서 식사라도 하려는 듯한10) 얼굴로 태연하게 필록테테스에게 불을 지피라고 명령했다. 불길은 삽시간에 타올랐으니, 장작더미와 그의 몸을 태우는 것도 잠깐이었다.
밀턴은 헤라클레스가 분별을 잃고 있을 때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11)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오이칼리아에서 온
저 알케이데스12)가,
예복에 독이 묻은 것을 알고는
고통을 못 이겨 테쌀리아 소나무를 뽑고,
오이테 산에서 에우보이아 바다로
리카스를 집어 던졌을 때처럼.
신들 역시 이 지상의 전사가 그 삶을 이런 식으로 마감하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제우스만은 밝은 얼굴을 하고 신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대들이 내 아들을 이렇듯 관심 가지시니 참으로 반갑소. 뿐만 아니라 내가 이렇듯이 충성스러운 신들의 지배자라는 사실이 대견스럽고, 내 자식이 여러분의 호감을 얻고 있었다니 만족스럽소. 여러분이 저 아이를 눈여겨 보는 까닭이, 내 아들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아이가 땅에서 위업을 이룬 데 있다는 것 또한 만족스럽소. 하나 내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가슴 아파할 것은 없소. 모든 것을 정복한 저 아이가, 여러분이 내려다보고 있는 저 오이테 산의 불꽃 따위에 정복될 리 있겠소?
저 불꽃이 비록 저 아이가 제 어미에게서 받은 것(육체)은 태울 수 있을지언정 아비인 나에게서 받은 것을 태울 수는 없을 터이니 그것은 영원불멸일 것이오. 나는 지상에서 죽은 저 아이를 천상으로 데려올 생각인즉 그대들도 저 아이를 따뜻이 맞아 주었으면 하오. 그대들 가운데엔 저 아이가 이러한 명예를 얻게 된 것을 슬퍼할 자가 있을지언정 이만한 명예에 값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자는 없으리라 믿소.」
신들은 뜻을 모아 찬성했다. 단지 헤라만은 이 마지막 말을 듣고 심히 불쾌하게 여겼다. 꼭 자기를 겨누고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뿐, 남편의 결정에 토를 달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불꽃이 헤라클레스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을 소진시키자, 그의 신성한 부분은 불꽃에 조금도 손상당하지 않은 채 새로운 생명으로 불길을 나왔다. 그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제우스는 그를 구름으로 감싼 다음,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 데려와 별 사이에다 박아 주었다. 헤라클레스가 하늘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자, 아틀라스는 이 별자리의 무게를 덤으로 느낄 수 있었다. 헤라는 결국 헤라클레스와 화해하고 딸인 청춘의 여신 헤베를 주어 혼인하게 했다.
독일 시인 쉴러는 『이상과 인생』이라는 시에서,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대조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데 그 마지막 두 연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비겁자의 노예로 전락해 있으면서도
용감한 알케이데스는 끝없이 싸우며 괴로운 가시밭길을 걸었다.
휘드라를 죽이고 사자의 힘을 빼고,
친구를 이승으로 데려오기 위해 죽음의 강에 조각배를 띄웠다.
헤라의 증오는 지상의 모든 고뇌를 지상의 모든 수고를 그에게 부과했으나,
운명의 생일로부터 저 장렬한 최후의 날까지 그는 이 수고를 훌륭하게 참아 내었다.
이윽고 지상의 옷을 벗어 던진 신의 모습이
불길에 탄 인간의 모습에서 떨어져 나와,
하늘의 가득한 정기를 마셨다.
일찍 맛보지 못하던 몸의 가벼움에 기뻐하면서
지상에서 어둡고 무거운 고통을 죽음에다 버리고,
천상의 빛을 향하여 비상했다.
올륌포스 신들은 그를 맞으러 사랑하는 아버지의 대전으로 모이니,
빛나는 청춘의 여신은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지아비된 그에게 신주(神酒)를 헌작했다.
S.G. 벌핀치 역
헤라의 딸이자 청춘의 여신인 헤베는 신들에게 드리는 헌주 담당 여신이기도 했다. 흔한 이야기로 이 헤베는 헤라클레스의 아내가 되면서부터 그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주장도 있다. 미국의 조각가 크로포드13)는 이 이설(異說)을 좇아 오늘날 아테니엄 갤러리14)에 소장되어 있는 〈헤베와 가뉘메데스〉를 조각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헤베가 어느 날 신들에게 술을 따르다가 술을 엎질러 이 직책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뒤로는 트로이아 소년 가뉘메데스가 신주를 따랐다. 이 소년이 이데 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독수리에게 실려와 헤베의 뒤를 이었다는 것이다.
테니슨은 『예술의 전당』에서, 이 이야기를 그린 벽의 장식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가뉘메데스가 그려져 있다.
장밋빛 다리를 반은 독수리 깃털에다 파묻고,
혼자 유성처럼 하늘을 날아,
기둥만 우뚝우뚝 선 천상의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셸리의 『프로메테우스』에는 제우스가 이 새 헌주관(獻酒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15)
천상의 미주(美酒)를 따르라, 이데 산의 가뉘메데스여.
다이달로스가 만든 술잔을 불길처럼 남실거리게 따르어라.
〈헤라클레스의 선택〉(쾌락을 버리고 미덕을 취하여 고난 끝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타틀러』16) 제 97호에 실려 있다.
1 승리의 여신 니케의 마차를 타고 올륌포스로 오르는 헤라클레스의 영혼.
2 〈헤라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라는 뜻이다.
3 제우스가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유부녀 알크메네의 방으로 숨어들고 있다. 이날 밤의 동침으로 알크메네는 헤라클레스를 낳는다. 하지만 헤라가 그렇게 태어난 헤라클레스를 그냥 두고 볼 것인가? 기원전 4세기의 병 그림.
4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신화에 따르면 그는 몽둥이로 사자를 때려잡은 것으로 되어 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병 그림.
5 Amazons. 한쪽 젖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호전적인 여인족(女人族).
6 〈붉은 섬〉이라는 뜻.
7 페르세우스가 내민 메두사의 머리에 의해 돌로 화했다는 설도 있다.
8 헤스페리스들이 헤스페로스의 딸들이란 설도 있다.
9 로마에 있는 7개의 언덕 중 맨 남쪽에 위치해 있는 언덕.
10 옛날 그리스 인들은 비스듬히 누운 채로 식사했다.
11 『실락원』 제2편 542~546행.
12 헤라클레스의 별명.
13 Thomas Crawford(1813~1857).
14 Athenaeum gallery. 오늘날의 보스턴 미술관.
15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제1장 25~26행.
16 The Tatler.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발행되던 정기 간행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