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 김효정
선루프를 울리던 빗방울 연주가 멈춘다. 비가 그치자 햇살에 부끄러운 듯 풀잎이 가볍게 몸을 턴다. 대롱대롱 풀 끝에 영롱이던 이슬이 마법처럼 사라진다. 조심조심, 자작자작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로 갑자기 한라산이 꼬물거린다.
사시사철 꽃이 넘쳐나는 제주, 4월에는 유명 관광지에 벚꽃과 더불어 사람들이 출렁인다. 한라산 언저리에도 육지의 꾼들이 고사리를 꺾으러 모다든다*. 아예 캠핑카를 몰고 입도하는 무리도 볼 수 있다. 한라산 중산간 도로나 둘레길 언저리에 세워둔 차량은 십중팔구 고사리 꺾는 사람들이 타고 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4~5월 두 달 동안 연한 고사리를 꺾으면 수입이 짭짤하다. 제주 농협 마트에서 매수해주니 밑천 없이도 할 수 있는 괜찮은 한 철 장사다. 가족이 합심하면 1인 천만 원을 웃도는 수입이라고 한다. 육지에 가져가서 팔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돈벌이가 사라진 노년층에게 이보다 더 좋은 합법적 유혹이 있을까. 시골서 자라면서 고사리를 꺾었던 경험이 있던 사람들에게 괜찮은 일터이자 수입원이다.
남원읍 수망리는 고사리 축제가 열릴 만큼 유명한 곳이다. 해마다 4월 말경에 고사리 축제가 열렸는데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 동안은 자동 휴식년이었다. 사람이 덜 붐볐으니 개체 수가 얼마나 많아졌을까. 올해 4월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이 모여서 북적였다.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울려 보물찾기를 한 하루였다. 굳이 수망리를 가지 않더라도 한라산 언저리나 오름, 숲길 여기저기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나도 고사리 꺾는 초보자가 되었다. 제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마음씨 좋은 아낙을 따라갔다. 제주살이 7년 차, 반백이 넘는 동안 경기도가 삶의 터전이었던 그녀는 말씨부터 나긋나긋 애교가 넘쳤다. 차를 얻어 타고 우리 집에서 가까운 들판으로 갔다. 이 만평이 넘는 넓은 들판의 흙에서는 붉은 에너지가 스멀스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보드라운 봄 햇살이 물방울을 머금은 연두 잎새 위에서 팰롱팰롱* 빛났다. 봄내음을 뚫고 자리 잡은 여린 쑥 이파리와 세 잎의 토끼풀이 웬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고 수군수군하였다.
도시서 자란 나에게 고사리 꺾기는 첫 경험이다.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처럼 풀 속에 숨은 고사리순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언니, 그냥 지나갔네. 요기 있잖아요. 눈 크게 뜨고 찾아보세요.”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그녀는 많이 해본 솜씨로 여기저기를 샅샅이 훑으면서 ‘툭’ ‘툭’ 재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얼마나 자주 왔는지 풀숲을 안방처럼 누비며 나아갔다. 고사리나물만 먹을 줄 알았지, 잎이 피기 전 고사리 모습에 별 관심도 없고 제대로 관찰한 적도 없으니 첫 경험인 나에겐 어려운 보물찾기다.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거기 언니 발밑에 있네. 얘들은 뭉쳐서 자라요. 잎이 핀 고사리 부근을 잘 살펴봐요.”
라고 힌트를 준다. 눈을 크게 뜨고 고사리 순을 찾았다. 깜깜한 영화관에 들어갈 때 우리는 잠깐이지만 맹인이 된다. 수정체가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더듬거리듯 수풀 속에서 나는 한동안 고사리를 찾는 눈 뜬 장님이 되었다. 풀과 꽃을 어느 정도 구별하자 어설픈 나에게도 하나둘 고개 숙여 웅크리고 있던 녀석들이 보였다. 멈추면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고개 숙이고, 몸을 낮추면 보인다. 선문대할망에게 자연스럽게 고맙다고 고개 숙이며 몇 백 번의 절을 하면서 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종종 안창마을로 소풍을 갔다. 지금은 안창마을이 개발되어 야산도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섰으나 당시는 농촌 같은 풍경이 많았던 장소였다. 계곡물도 흐르고, 다양한 들꽃도 피어났고, 우거진 나무도 많았다. 도시 속 시골 숲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서 매번 했던 단골 게임은 보물찾기였다. 눈을 크게 뜨고 탐정처럼 여기저기를 샅샅이 훑었다. 풀잎 뒤에, 돌멩이 아래에,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있던 종이쪽지를 찾았을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릴 적에 느꼈던 커다란 행운이었다. 보물찾기로 받은 선물은 연필, 공책, 지우개 등이었지만 학용품이 귀했던 시절이라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었다.
“똑! 똑!”
고사리 꺾을 때 나는 소리를 감지한다. 고사리 따기, 고사리 캐기라고 안 하고 왜 고사리 꺾기라고 하는지 손맛을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경쾌하게 ‘톡’하고 소리 날 때의 쾌감에 힘든 줄 모르고 보물을 찾으러 몇 번이고 가게 된다.
운이 좋으면 야생도라지도 캐고, 두릅도 따고, 달래도 캔다. 쑥은 지천으로 널렸지만 주 목표는 고사리다. 들판 입구에서 시작한 나는 점점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가시 돋은 나무 아래, 산딸기 잎 뒤에 숨어있는 고사리는 더 보드랍다. 무덤 주변에서 따스한 햇볕에 힘입어 우후죽순처럼 시샘하며 뽐내던 순을 모조리 꺾는다. 보따리 한가득 묵직하다. 기분 좋은 보물찾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같은 장소라도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고사리가 되돌아오면서 훑으면 보인다. 다음 날, 한참 뒤에 가도 꺾고 지나간 자리에 또 다른 고사리가 올라온다. 참 고맙다. 두 번 세 번을 가도 시기가 다르게 올라온 고사리 순이 ‘나 좀 봐줘’라는 듯이 자라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6월까지 여전히 봉지 한가득 채워올 수 있다.
주변에 널린 보물이 참 많다. 맑은 공기, 빛나는 햇살, 변화무쌍한 바다 등. 흔하지만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들이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맑은 공기는 내가 제주로 간 가장 큰 보물찾기이다. 제한된 교실 공간은 먼지투성이다. 청소하고 창문을 열어도 몸속에 자리 잡은 티끌은 나를 점점 병들게 하였다. 명퇴하고 작년에 몇 번을 제주로 들락거리면서 한달살이도 즐겼다.
결국 올해 봄에 이주하였다. 부산과 다른 향기 나는 공기를 마시고, 쏟아지는 햇살을 붙잡고, 옥색 바다를 만난다. 숲에서 오름에서 바다에서. 고사리도 꺾고, 산딸기도 따고, 미역도 줍는다. 날마다 다른 보물찾기로 하루가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