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5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길라드 살리트 상병 AP통신 / 2011.10.18.
믿어지지않는 1명:1027명 포로교환
이스라엘 3년간의 의무 복무를 위해 군에 입대한 샬리트는 19세 때인 2006년 6월 25일 가자지구 남부 인근의 이스라엘군 초소에서 근무하던 중 하마스 대원의 기습 공격을 받고 납치당해 1994년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에 처음으로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로 기록됐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가자지구에 군부대를 투입해‘샬리트 상병 구하기’를 위해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협상 테이블에도 앉았지만 평행선만 그었다.
샬리트는 피랍 후 가자지구에 억류됐지만, 구체적인 소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마스는 국제적십자사 등의 샬리트 접견도 허락하지 않았다.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자필 편지와 동영상을 통해 간간이 생존 사실을 알렸다. 샬리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오르면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1대1072’의 기적같은 포로교환. 그 뒤에는 자국민은 물론 적군의 마음마저 녹인 애절한 부정이 있었다.
꽉 막혔던 석방 협상에 불을 지핀 건 아버지였다. 노암은 2009년 9월 아들의 생존을 확인한 뒤 집 밖으로 나섰다. 1973년 중동전쟁 때 쌍둥이 형제를 잃었던 노암은 아들마저 전장에서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노암 부부는 지난해 6월 아들의 사진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12일간 국토를 횡단했다. “이스라엘의 아들은 아직 살아 있다.”고 시위하기 위해서다. 200㎞를 걸어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에 도착했고 이후 텐트를 치고 노숙했다.
다급한 부정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2008년 4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찾자 “아들 석방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을 얻으려 현지 언론을 통해 ‘아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또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병사를 직접 찾았고 이스라엘 감옥에서 투옥 중인 팔레스타인 군인의 부모를 만나 자식과 헤어진 고통을 서로 위로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민심은 점점 아버지 편에 섰다. 모든 청년이 3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하는 이스라엘에서 노암의 고통은 모든 부모의 두려움이기도 했다. 결국 네타냐후 내각은 표결 끝에 포로 교환을 승인했다. 징병제가 시행되는 이스라엘에서 포로가 된 병사를 되찾아 오라는 국민적 여망은 정치인들이 무시하기 어려웠다.
이스라엘에서는 샬리트가 어떤 수단을 동원하거나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귀환시켜야 하는 인물로 자국 내에서 인식됐다. 이스라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의 귀환 문제도 하마스와 협상 때 주요 이슈였다.
2011년 5월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포로가 된 길라드 샬리트 상병 한사람을 석방시키기위해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1,027명을 풀어주는 결단을 내렸다.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 양측은 이집트와 독일의 중재로 샬리트와 이스라엘 교도소에 있는 팔레스타인 재소자의 교환 협상을 벌인 끝에 타결, 샬리트는 납치된지 5년 4개월여 만에 마침내 이스라엘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이러한 멋진 국가의 결단이 세계최강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고, 지형상 적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생존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튼튼한 안보를 위한 군사력이란 단순히 병력수와 무기체계 확립만으로 결정되는것은 아니다. 병사의 사기는 국가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지켜 주리라는 믿음이 우선 되어야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가정책은 병사들이 목숨을 다하여 나라를 위하여 싸울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