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 설립의 전초전, 1907년 금융위기
1903년, 폴은 유럽 중앙은행의 ‘앞서가는 경험’을 미국에 소개하기 위한 행동 강령을 야곱 쉬프에게 전달했다.
이 문건은 곧 뉴욕 내셔널시티은행(오늘날의 씨티은행)의 제임스 스틸먼 행장과 뉴욕 금융계에 전해졌다.
폴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사람들은 마치 정수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문제는 미국에 민영 중앙은행을 줄곧 반대하는 정치 세력과 민간 세력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공업계와 중소업주들 사이에서 뉴욕 금융계 인사들의 평판은 아주 형편없었다.
의원들은 은행가들의 민영 중앙은행 설립 제안을 몹쓸 전염병이라도 되는 양 피해 다녔다.
이 같은 정치 분위기에서 은행가에게 유리한 중앙은행 법안을 통과시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이렇게 불리한 정세를 뒤엎기 위한 거대한 금융위기는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구성되었다.
먼저 신문과 언론에 새로운 금융 개념을 홍보하는 글을 대량으로 게재했다.
1907년 1월 6일에는 ‘우리 은행 시스템의 결점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폴의 글이 발표되었다. 이때부터 폴은 미국 중앙은행 제도 설립을 제창하는 선봉에 섰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야곱 쉬프는 뉴욕 상공회의소에
“신용 자원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중앙은행을 세우지 않으면 장차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1837년, 1857년, 1873년, 1884년, 1893년과 마찬가지로 금융재벌들은 경기가 과열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거품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 또한 시중에 돈을 많이 풀어서 생기는 필연적 결과였다. 이 모든 과정은 금융재벌이 어항 속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과 같았다.
금융재벌들은 마치 어항에 물을 붓듯 시중에 돈을 풀어 경제주체에게 대량으로 화폐를 주입했다.
돈을 풀면 각계각층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욕심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서 부를 창출하는데, 어항 속의 물고기가 각종 양분을 열심히 흡수해 점점 살이 오르는 것과 같다.
금융재벌들이 수확의 시기가 왔음을 알고 어항의 물을 빼면, 물고기들은 잡혀 먹히는 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항의 물을 빼고 고기들을 처분하는 시기는 몇 개의 대형 은행들만 알고 있었다.
한 나라가 민영 중앙은행 제도를 설립한 이후로는 은행재벌들이 물을 대고 빼기가 더 수월해지므로 수확도 한층 많아질 것이다.
경제의 발전과 쇠퇴, 재산의 축적과 증발은 모두 은행재벌들이 진행하는 ‘과학적 사육’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다.
모건과 그의 배후에 있는 국제 금융재벌들은 이번 금융위기로 예측되는 성과를 정확하게 계산했다.
첫째,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사실’로 증명할 것이다.
둘째, 소규모의 경쟁 금융기업을 도산시켜 합병한다. 특히 자산신탁회사, 즉 투신사는 은행가들의 눈엣가시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오랫동안 군침을 흘려온 중요 기업을 손아귀에 넣는 것이다.
당시 잘나가던 투신사들은 은행이 못하는 업무를 많이 다뤘으며 정부의 규제도 느슨했다.
이런 이유로 투신사들은 사회자금을 지나치게 흡수하고, 리스크가 큰 업종과 증시에 투자했다. 1907년 10월 위기가 터질 때까지 뉴욕의 은행 대출 절반 정도가 고수익을 내는 투신사에 흘러 들어가고, 투신사는 그 돈을 리스크가 큰 증권과 채권에 투자하는 바람에 금융시장에는 극도의 투기 바람이 불었다.
몇 달 전부터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휴식을 취하던 모건은 국제 금융가들의 빈틈없는 계획을 듣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투신사인 니커보커트러스트가 곧 파산하리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 소문은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뉴욕 전체를 휩쓸었고, 돈을 날릴까 걱정하는 투자자들이 인출을 요구하며 몰려드는 바람에 투신사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다.
은행들은 투신사에 즉시 대출을 상환하라고 독촉했고, 양쪽에서 시달리던 투신사들은 하는 수 없이 증권시장에서 돈을 빌렸다.
그러자 대출 금리는 단숨에 150%까지 치솟았다.
10월 24일, 주식 거래는 거의 중단 상태였다.
이때 모건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뉴욕 증권거래소장이 모건의 사무실로 찾아와 구조를 요청했다.
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오후 3시 전에 2,500만 달러의 결제를 막지 못하면 최소 50개의 거래 기업이 파산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증권시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후 2시에 모건은 긴급 금융인 회의를 소집했고, 16분 동안 은행가들은 돈을 모았다.
모건이 즉시 증권거래소에 사람을 보내 금리 10%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자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긴급 구조 자금은 바닥이 났고, 금리는 미친 듯 치솟았다.
8개의 은행 및 투신사가 이미 도산했다.
모건은 뉴욕 청산 은행으로 달려가서, 임시 화폐로 어음을 발행해 현금 부족을 해소하라고 요청했다.
11월 2일 토요일, 모건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계획을 실천에 옮겨 파산의 위기에 몰린 무어&실리사를 구제하기로 했다.
2,500만 달러의 채무 때문에 도산을 눈앞에 둔 이 회사는 테네시석탄 철강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무어&실리가 도산한다면 뉴욕 증시는 완전히 붕괴할 테고,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모건은 뉴욕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들을 자신의 도서관으로 불렀다.
상업은행 대표들은 동쪽 서재에, 투신사 사장들은 서쪽 서재에 있게 했다. 그들은 언제 끝장날지 모르는 자신들의 운명에 초조해하며 모건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모건은 테네시석탄철강회사가 보유한 테네시 주, 앨라배마 주, 조지아 주의 석탄 및 철강 자원이 장차 자신이 창건한 철강의 거두 U.S.스틸의 독점적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해주리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반독점법의 제약 때문에 모건은 이 군침 도는 먹이를 삼키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위기가 모처럼의 합병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모건의 조건은 무어&실리와 다른 금융회사들을 살리고자 투신사들이 2,500만 달러를 추렴해 붕괴를 막고, U.S.스틸은 무어&실리로부터 테네시석탄철강회사의 채권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극도의 조바심과 파산 압박에 몰려 밤새도록 한잠도 못 자고 기진맥진한 투신사의 사장들은 어쩔 수 없이 모건에게 백기를 들고 그 조건을 수락했다.
마침내 테네시석탄철강회사를 손에 넣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건의 앞에는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반독점법을 강력히 추진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11월 3일 일요일 밤, 모건은 워싱턴으로 사람을 급파해서 다음 주 월요일 오전 증시개장 전에 대통령의 허락을 얻으라고 지시했다.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도산하고, 평생 모은 저축을 날린 시민들은 연일 분노를 터뜨리는 상황이었다.
극심한 위기를 느낀 루스벨트는 부득이 모건의 힘을 빌려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했고, 결국 승인 문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때가 월요일 증시 개장을 불과 5분 앞둔 시간이었다.
뉴욕 증시의 주가는 이 소식에 다시 급상승했다.
모건은 겨우 4,500만 달러라는 헐값으로 테네시석탄철강회사를 인수했다.
무디스의 설립자 존 무디의 평가에 따르면, 이 회사의 잠재적 가치는 최소한 10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모든 금융위기는 오래 전부터 준비된 정확한 각본에 따라 발생하며, 번쩍거리는 은행 빌딩은 하나같이 수많은 파산자의 희생 위에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