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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3일(성령강림절 후 여덟 번째 주일)
민수기 27:12~23
사람을 남길 때 사명은 계속됩니다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
본문 접맥적 주제설교 형식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 하나님은 모세를 대신해서 여호수아를 세워주셨다.
*설교 목적: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사람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what's problem?
한 소녀가 정신 병동 독방에 격리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여덟 살 때,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함께 보호소에서 지내던 동생마저 죽게 되자, 이 소녀는 정신을 잃고 자해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소녀의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그래서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소녀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된 한 은퇴 간호사가 소녀를 찾아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간호사의 관심과 사랑에 소녀는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고, 어느 날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간호사의 말에 소녀도 “나도 사랑해”라며 말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간호사가 2년 동안 소녀를 극진히 보살핀 결과, 소녀의 정신질환은 완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파킨스 시각 장애아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녀를 사랑으로 돌본 간호사는 로라(Laura)였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이름은 앤 설리번(Ann Sullivan, 1866~1936)이었습니다. 설리번 선생님은 우리에게 친숙한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의 스승이었습니다. 설리번은 자신을 돌본 간호사 로라의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각, 청각 장애인이었던 헬렌 켈러를 돌봤습니다.
-출처: 최혁중,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5년 2월호), 272쪽에서 인용.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누군가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언젠가 사람은 죽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은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신 장면입니다. 이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두 번째 인구조사를 명령하시고, 가나안 땅 분배를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아바림 산은 산맥개념입니다. 이 산맥의 북쪽 고지대에는 비스가 산이 있었습니다. 고지대 중에 가장 높은 산이 아마 느보 산일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성경에는 모세가 오른 산이 아바림 산, 비스가 산, 느보 산 등으로 번갈아 소개됩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아바림 산에 올라가 약속의 땅을 본 후에는 그 형 아론처럼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모세는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광야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하나님은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모든 사람보다 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점을 인정해 주셨습니다(민 12:3). 하나님만 모세를 인정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보다 1,400년 후에 살았던 히브리서 저자마저도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신실하였다”라고 모세를 인정했습니다(히 3:5). 이처럼 온유하고 신실했던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 지금까지 수고하고 애쓴 모세에게 매우 섭섭하고 불편한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일생 주를 위해 살았던 사람이 끝에 가서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은퇴하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사건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로 인해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백성들의 목전에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 모세는 혈기를 부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낸 것이 아니라,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냈습니다. 모세는 물을 내시는 하나님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힘으로 물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백성들은 반석에서 물이 나왔다며 환호성을 쳤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동기와 행동을 저울질해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했으며, 여호와의 거룩함을 백성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않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14절). 그로 인해, 모세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죽음을 예고 받아야만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은퇴와 죽음을 예고 받고 모세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who?
놀랍게도 모세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16~17절).”
역시 모세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사람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생명의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살고 죽은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혹시 우리에게 죽음의 소식이 들려오더라도, 우리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안위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안위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모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의 역할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새롭게 새워질 지도자는 군사적 지도력을 가진 자여야 했습니다. “그로 백성들 앞에서 출입한다.”라는 의미는 군사적 지도력을 행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크고 작은 많은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세워질 지도자는 군사적 지도력을 가진 자여야 했습니다.
또한, 새롭게 세워질 지도자는 목자의 지도력을 가진 자여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양과 같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백성을 이끌 지도자에게는 목자와 같은 지도력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세의 기도를 좋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로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여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모세의 모든 권위는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위탁될 것입니다.
과연 여호수아가 누구입니까? 여호수아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열두 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불 신앙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음과 같은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민 14:7~8).”
여호수아가 열두 정탐꾼으로 선발된 이유는 그가 지파 내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백성을 이끌었던 경험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 아말렉 군사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군사를 맡겨 아말렉과 싸우게 했습니다. 그 대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이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일이 있었습니다(출 17:9~11).
훗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전쟁의 승리가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군사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였던 여호수아의 수고도 중요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을 때, 이 죄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았을 때, 산 중턱에서 40일간이나 모세를 기다리던 사람은 다름 아닌 여호수아였습니다(출 32:17).
또한,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던 자였습니다. 모세가 회막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 여호수아 역시 회막을 떠나지 않던 자였습니다(출 33:11). 여호수아가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던 자였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아직 모세처럼 영적으로 성숙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아야 했고, 자기 안에 있는 시기심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 한 예가 엘닷과 메닷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할 때, 여호수아가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말려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했던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예언하는 일이 모세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염려했지만, 모세는 여호수아의 동기가 시기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민 11:25).
what?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아직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그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을 이끌기 위해 잘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가 성령의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18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신 점은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라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 영(루아흐)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영”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의미의 ‘영’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 영을 ‘성령’으로도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여러 조건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혹시 교회를 이끌 지도자로서 다른 조건이 부족하더라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그는 지도자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일곱 집사를 선발한 기준을 생각해봅시다. 사도행전 6장 3~4절에 의하면, 일곱 집사를 선출할 때의 기준이 ‘성령과 지혜의 충만함’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3~4)”
우리 교회에도 실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회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을 꺾고 항상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대신 대제사장 엘르아살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흉패 안에 있던 우림과 둠밈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백성들을 이끌 것입니다.
비록 모세는 죽지만, 모세를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비록 모세는 죽지만, 모세에게 주신 사명은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훗날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합니다. 이후 여호수아도 나이가 많아 늙게 되었습니다. 늙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아놓고 여호와와 언약을 맺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정했습니다.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게 되었는데,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습니다(수 24:31).
비록 모세는 죽었지만, 그의 사명이 여호수아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그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이 죽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이어졌던 사명이 그의 후대에는 전수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how?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에는 교향곡 작곡가를 꿈꾸나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는 홀랜드가 나옵니다. 그는 4년만 하려던 교사 생활을 무려 30년이나 하고 정년퇴직을 하게 됩니다. 홀랜드는 퇴임식을 앞두고 복잡한 마음으로 강당으로 향합니다. 홀랜드 밑에서 클라리넷을 배우며 열등감을 극복한 소녀가 주지사가 되어 퇴임식 축사를 합니다.
“선생님은 유명한 교향곡 작곡가가 되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한테만 유명하실 뿐입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가 선생님의 음악입니다. 우리가 바로 선생님이 작곡하신 교향곡입니다.”
커튼을 열어젖히니 그곳에 지난 30년간 그를 거쳐 간 제자들이 교향악단을 구성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이 유일하게 작곡한 교향곡 <아메리칸 심포니>의 초연을 제자들이 몰래 준비한 것입니다. 영화는 홀랜드의 지휘로 감동적인 음악을 선물하면서 끝이 납니다.
홀랜드가 평생 애써서 만든 ‘작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제자들’이 아니었을까요? 결국, 사람이 진정한 유산입니다.
-출처: 원용일, 「크리스천, 책임을 생각한다」(두란노, 2016); 「생명의 삶」(두란노, 2017년 7월호), 81쪽에서 재인용.
우리가 후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바림 산에서 죽었지만, 그는 여호수아를 남겼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사명을 내려놓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남겨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처럼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가득한 사람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성령 충만한 젊은 성도들과 청년, 학생들, 어린이들을 세워주시기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 전파의 귀한 사명이 믿음의 후대를 통해 계속 이어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