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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이 이끄시는 참된 부흥(행2:41-47)
2012.4.22(김상수목사)
“41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1-47)
우리는 성경적인 참된 부흥을 열망한다. 아마 각 성도들 개인적으로도 내적인 부흥을 갈망하고, 교회적으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오래전에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장애인 복지사역을 하는 형제가 있다. 그런데 그 형제와 영적인 기본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중에 그 형제가 이런 말을 하였다.
“맞습니다 목사님. 저희들도 시각장애들을 교육할 때,
길을 잃어버리면 당황하지 말고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와서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교육시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다. 처음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영적으로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기본은 뭔가? 다른 것이 아니다. 성경말씀이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이 기준이다. 이것은 영적인 성도의 삶에서도 그렇고 교회의 사역도 그렇고 세상사의 모든 원리가 다 여기 해당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철저하게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에 쩌들대로 쩔어있다. 흔히 말하는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세상풍조가 교회 안에서 많이 스며들어 온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스며들어 왔다기 보다, 세상적인 방법과 이론들을 스스로 끌어온 경향도 많은 것 같다. 수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성공주의에 물들어서 세상적인 방법을 쓴다. 그래서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교회도 일종의 기업이다’, ‘일반 경영원리를 도입하여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사역을 장사에 비유하고, 성도들은 손님에 비유한 표현들을 거침없이 쓰고, 심지어는 ‘목사님을 CEO에 비유하고, 어떤 사람들은 ’목사가 주인이냐 성도들이 주인이다‘라는 등의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은 목회자도 성도도 아니다. 예수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움직여 나가야 한다.
그런가하면 교회 안에서 세상적인 방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성경속에서의 교회조직을 이루는 시스템이나 방법론을 발견하고 적용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의 원리를 응용한 각종 프로그램들 실시, 시스템 구축, 이벤트, 선물공세 등을 쉬지 않고 하기도 한다.
어느 도시에 있는 모(某)교회 목회자는 ‘홍보의 귀재, 이벤트의 천재, 차세대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라는 등의 별명이 있었다. 그 교회출신 전도사님께 직접 들었던 이야기다. 그 목사님은 기업에서 제품을 홍보하는 이론을 교회에서 끌어들이고, 부흥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나 프로그램이라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 평소지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 센스있는 말솜씨나 외모, 매너, 복장까지 연예인을 뺨치는 기생오라비처럼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 그분 주위에는 늘 오빠부대를 방불케하는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성도가 몇 명 안되는 작은교회일 때 부터 시간시간 1부에서 6부까지 예배드리는데, 각 시간마다 성도들을 중복해서 참석하게 했다. 이유는 처음 나오신 분들의 눈에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작은행사 하나만 있어도 온 시내를 플랭카드로 도배하며 엄청나게 뭔가 있는 듯한 교회로 보이게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타교회에서 이동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단기간에 교인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외부에는 새롭게 부흥된 교회의 모델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某)신문에 기사도 나고, 여기저기 강사로 다니고, 교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결국은 몇 년 가지 않아서 섹스 스캔들과 헌금유용으로 인해서 그 교단에서 제명 처분되었고, 성도들은 뿔뿔이 떠나가고,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을 들었다. 참된부흥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하는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모레 위에 지은 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들 때문에 김용민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목사까운 입고, 찬송가를 개사하면서 교회를 욕하지 않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나 개인의 심령이 소생되고 부흥하는 됨에 있어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본질이 무엇이겠는가? 외적인 부흥(숫자)? 맞다. 틀린 말이 분명히 아니다. 교회는 외적으로 부흥해야 한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래야 작은교회가 할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각종 프로그램과 이벤트들? 이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탁월한 전도방법? 말할 나위 없이 필요하다. 견고한 조직? 맞다. 성경적인 조직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견고한 조직과 시스템은 마치 기름을 담는 그릇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몸으로 많은 체험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교회 안에서 필요한 것들이고, 또 부족한 부분들은 보완도 해야겠지만, 그러나 부흥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아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말씀이 우리 성도들의 내적인 부흥이나 교회의 부흥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봐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기록된 사도행전 2장1-4을 먼저 살펴보자.
“1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이 말씀을 보면 오순절에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가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기름 부어졌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입은 제자들이 여러 방언들을 했고, 특히 사도 베드로는 성령에 사로잡혀서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했다.
그랬더니 그날 하루에만 무려 삼 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돌아왔다. 그래서 처음교회가 탄생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최초 처음교회의 모습이다.
“41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1-47)
사도행전2장 42절 이하에 보면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고, 그들은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모여서 떡을 떼었다. 성전과 집에서의 모임들로 인해서 처음교회의 시스템이 생겼다. 47절에 보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이것은 주변 안믿는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기까지 했다. 다른 것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데,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47절에 보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다.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초대교회의 모습인데, 그 당시에 이처럼 부흥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이 시대에 적용하기 위해서 여러사람들이 연구했다. 초대교회의 조직이나 모임진행 방법들을 연구해 냈다(소그룹, 대그룹, 4W, 각종 성장원리 시스템, 아이스브레이크, 각종 훈련프로그램, 수 많은 행사 이벤트 등). 그래서 그 방법들대로 적용해서 어느 정도하면, 처음에는 좀 된다 싶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지치게 되고, 그럴수록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더욱더 달달 볶게 되고, 지친 성도들이 영적피로감에 싸이고, 그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 더 강하고 자극적인 언어와 구호들을 외치고, 특별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눈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혹한 경품을 건 이벤트성 행사들을 반복적으로 하고, 직분자들과 부사역자들을 쉼없이 내어몬다. 그러다 결국은 담임목회자는 물론이고 부사역들까지도 영성은 형편없이 땅에 떨어지고, 영적으로 탈진하고, 암(癌)같은 질병에 걸리고, 뭐가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파악도 못하고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서 이단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성도들을 빼가려고 덤벼든다. 이것이 요즘 한국교회에 많이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가? 성경적인 시스템을 발견해내고 그대로 해보려고 시도한 것이 잘못되었는가? 성도들은 나름대로 교회에서 시키는대로 다했는데 그게 문제인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성경적인 조직이나 방법들, 질서와 권위에 순종하는 자세는 이 시대에 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 바로 순서가 바뀐 것이 문제다.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세상적이든 아니면 성경 속에서 뽑아낸 시스템이나 방법, 프로그램들이든 간에, 이런 것들이 갖춰지면 그것들에 의해서 성도든 교회든 저절로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문제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위해서 엄청 비용과 사람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도행전에 나타는 처음교회는 분명히 시스템이나 방법론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부흥의 출발의 첫번째는 아니었다. 오순절 이후에 삼천, 오천, 수다한 무리가 회개하고 돌아온 것은 방법이 좋아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령충만한 결과였다. 사도행전2장에서부터 시작된 처음교회의 부흥의 시작은 시스템이 아니라, 오순절의 성령충만에서 부터다. 주님은 이 땅에 살아계실 때, 3명의 핵심제자, 12명의 제자, 70명의 제자, 120명의 제자 등 조직적으로 훈련시키셨다. 그러나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분명히 말씀하신 것은 사도행전 1장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배웠다해도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성령충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아직은 그 어떤 준비도 안된 것이다. 이것은 지금 이 시대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단적인 실례로 그 당시 사도 베드로를 보자. 그는 3년 반을 주님께 직접 배웠다. 그는 제자 중에 제자였다. 그는 예수님이 누군지 아주 잘 알았다. 그야말로 직접 온몸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현장까지 철저하게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이다. 이러한 베드로가 그가 정작 복음을 위해 결정적으로 쓰임받기 시작한 것은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충만을 받은 이후였다. 결국 성령충만을 받기 전에는 그가 가졌던 것들은 마치 연료주입이 안된 로켓이나 전기코드가 꼽히지 않은 첨단 전자제품 같았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처음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유무상통하며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었겠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적인 가치나 물질만능적인 사고로 보면 도저히 이해 될 수 없는 미친 짓들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이 성령충만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 지금 우리들 개인의 내적인 회복이나 외적인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모습처럼 먼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흥의 출발이요 본질이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은혜를 넘치기 해주시고, 그 넘치는 은혜가 흘러가야 한다. 이것이 없는 수 많은 시도들은 사람을 힘들게 할 뿐이다. 심지어 그 방법론을 성경에서 응용했더라도 말이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충만하여 넘쳐서, 마침내 우리 속에 있는 복음의 비밀, 기쁨과 소망의 이유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될 때, 비로서 참다운 증인이 되어지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증인은 되는 것 이전에 성령충만의 결과도 되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디자인하시고, 이 시간 우리들을 향해 주님이 원하시는 부흥의 본질이다. 외적으로 숫자가 늘고, 건물 사이즈가 커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령님이 목적이 되어야 참된 부흥이 일어난다. 이것이 안되면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각종 방법론을 동원하고, 선물공세와 각종 프로그램, 이벤트들을 벌려서 숫자가 늘어났다해도, 그것은 불법이요,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교회는 바로 이 본질에 충실한 복음학교, 성령학교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통화할 때, ‘나는 지금 성령학교에 입학했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계속해서 우리를 소생시키고 부흥시키시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간구하자. 오순절의 사도 베드로와 같은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인 리더십을 간구하자. 내가 변하면 다 변한다.
19세기 중반인 1857-59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엄청난 대부흥운동이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19세기 미국의 ‘대각성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기의 부흥을 기점으로 수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고, 이 영향으로 수 많은 사역자와 선교사들이 배출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영향으로 미국선교사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대각성운동의 출발이 되었던 출발점이 있다. 그것이 1857년 뉴욕에서 시작된 정오기도회라는 것이다. 정오기도회를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은 제러마이어 람피엘이라는 뉴욕에 사는 비즈니스맨이었다. 이 사람은 그 당시에 유명한 설교가인 찰스피니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다. 그런데 이 제러마이어 람피엘이라는 평신도 비즈니스맨에게 성령님께서 주변 직장인들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점심시간에 정오기도회를 갖고 싶은 마음을 부어주셨다. 그래서 그 뜨거운 성령의 감동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께도 말씀드리고, 그 교회에서 첫 기도회를 시작했다. 첫날(1857.9.23)에는 아무도 없이 혼자 1시간 30분동안 기도하는데, 기도가 끝나갈 무렵에 6명의 사람들을 예배당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기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20명, 40명으로 늘어났다. 이것이 점점 소문이 나고 마침내는 전 뉴욕에 그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아침기도회도 생겼다. 이렇게 시작된 정오기도회는 불과 6개월 만에 6000명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도의 불길은 주변 도시인 워싱턴, 빌라텔피아, 피츠버그 등 전 미국으로 번져나갔다. 얼마나 성령님의 역사가 강력했던지 당시 매주 5만명의 사람들이 회심하며 돌아왔다. 이 당시에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슨도 정오기도회에 참석할 정도였다.
당시에 기록에 보면, 어떤 때는 뉴욕항을 향해 오던 배에서까지 성령님이 이끄시는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다. 무려 160Km 밖 해상에서 뉴욕항을 향해 오는 중에 선원들은 뉴욕항이 가까울수록 뭔가 숙연함을 느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으로 스스로 회개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뉴욕항에 입항하기 전에 이미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변화되어 있었다. 당시 수 많은 상점들이 “기도회가 끝난 다음에 영업을 개시함”이라는 푯말을 붙였고, 필라델피아의 제인홀에는 매일 6000명이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고, 4개월 동안 15만명이 모였다. 제러마이어 람피엘이라는 한 평신도가 성령님의 감동으로 시작한 정오기도회에서 시작된 대각성 운동으로인해서 수 많은 사역자들이 나왔고, 그 사역자들의 집회를 통하여 또 다른 수 많은 헌신자들 나오고 또 나왔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이끄시는 부흥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부흥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 당시에 조지 더필드(G.Duffield)는 이 감격적인 장면을 보면서 우리들이 잘 아는 찬송가 390장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를 썼고, 호프만(E.A. Hoffman) 목사님은 361장 “주의 주실 화평 믿음얻기 위해 너는 정성껏 기도했나”를, 심프슨(A.B Simpson)목사님은 콜린스(C.Cullins)라는 사역자의 집회에서 신유체험을 한 후에 감격하여 498장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을 썼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다시 올 때가 심히 가까운 이 시대, 수 많은 사람들이 부흥을 갈망한다. 우리도 갈망한다. 아니 우리보다도 주님께서 더 원하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영적인 기본으로 돌아가자. 부흥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시다. 성령충만이 부흥의 본질과 출발이다. 오순절에 성령충만이 임했을 때, 그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했다. 바로 이것이 방언이다. 방언이 뭔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영혼구원이었다. 우리는 도구일 뿐이다. 성령님의 강력한 이른비와 늦은비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준비는 하나님이 하신다. 성령충만한 성도, 성령충만한 구역, 성령충만한 기관과 교회가 될 때, 비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준비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도록 간구해야 한다.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 우승팀은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팀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현재는 국가대표 감독도 되었다. 그런데 우승할 때, 최강희 감독의 ‘닥공’ 전술은 유명하다. 닥공 즉 닥치고 공격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뭐가 필요한가? ‘닥기(닥치고 기도)’가 아닐까? 이 시간을 두 손을 모으자.
(멘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기본으로 돌아갑시다. 성령충만이 출발입니다. 성령님이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자리에 수 많은 천군 천사들이 우리의 머리에 하나님의 은혜를 쏟아붓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모든 능력과 생명의 원천이신 우리 주님으로부터 내려오는 그 은혜의 강물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제 기도로 그 수문을 열면 됩니다. 사도 베드로처럼, 성령충만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들도 성령의 사람이 되어지게 해달고, 이 시간 내 속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 더 뜨거운 성령님이 친히 이끄시는 부흥을 달라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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