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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교육문화연구학교-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에서 농사준비팀으로 모인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포천 평화나무농장을 다녀왔다. 포천 평화나무농장은 40년 동안 유기농업을 이어 오며, 14년 전부터는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계신 김준권, 원혜덕 선생님 부부의 농장으로, 지난 10월 8일 새들생명울배움터 연구소 친구들과 처음 방문했다. (후기 참고: http://cafe.daum.net/kyungdang/coIz/660)
근 2주 만에 두 분 선생님을 다시 찾아 뵙게 된 것은 10월 18일 원혜덕 선생님의 SNS를 통해 생명역동농업 실천연구회 정기 모임(4월, 10월 연 2회 실시)에서 증폭제를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원래 연구회 회원들을 위한 자리인데, 일정이 겹친 몇몇 분들이 갑작스럽게 취소를 하게 된 덕분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점심을 함께 먹고 시작하는 일정이었기에 도착하자 마자 식당을 향했다. 마침 우리가 먹을 소머리 국밥 다섯 그릇이 남겨져 있었다. 직접 키운 작물들로 만든 깍두기, 배추김치, 양파 절임도 준비되어 있었다. 두 분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정성스레 준비해 주신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에는 김준권 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졌다. 선생님은 강의보다 참석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이 설명하는 부분은 이미 책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 전에는 항상 소개하는 시간을 길게 갖는다고 했다.
덕분에 홍성 풀무학교에서 농사를 가르치고 계신 선생님들(그 중 오도라는 필명으로 ‘씨앗 받는 농사매뉴얼’을 쓴 분도 있었다. 끝나고 토종종자 채종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감사 인사도 나누었다.)과 그의 제자들도, 자녀가 곧 농사를 배우게 되는데 부모도 함께 알면 좋을 것 같아 참여한 의왕에 있는 발도르프 학교 학부모님들도, 앞으로 이야기 될 ‘소똥제제’를 뿌린 땅에서 지은 마늘의 상태가 월등히 좋아 근처 학교나 식당에서 다투어 납품을 받아간다는 이야기를 수줍게 하던 광주에서 오신 박영희님도, 우리 나라에 생명역동농법을 알리고, 정착시키는데 힘쓰며, 지금도 독일 본부와 연락하는, 홍성에서 오신 장구지님도, 장구지님이 생명역동농법으로 지은 쌀을 먹고 5년 만에 자녀가 생겼다는 두 부부와 아이도, 우리 정도 되어 보이는, 농사에 대한 마음이 큰 청년들도 알게 되었다. 또 이 곳에 담지 못한 많은 분들을 만났다.
오늘 일정과 증폭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준권 선생님과 이를 듣고 있는 참석자들
소개가 끝나자 김준권 선생님은 생명역동농법의 증폭제 일부와 오늘 하게 될 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셨다. 선생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물에 매우 중요한 기운들이 있는데 이것을 작물에게 전달해 줄 매개가 필요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있다고 했다. 슈타이너는 이것을 직관적으로 지목했다.
서양톱풀은 잎이 잘게 쪼개져 있는 식물로, 다른 식물의 고유한 형태와 조직을 잘 이루도록(조형력) 돕는다. 또 당근, 톱풀, 쇠뜨기처럼 잎이 아주 가늘고 잘게 쪼개져 있을수록 우주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한다. 서양톱풀증폭제는 톱풀을 숫사슴 방광 안에 넣고 6개월간 처마에 매달아 두었다가 땅에 묻고 6개월 뒤에 꺼내어 퇴비 더미 속에 넣어 사용한다.
카밀레증폭제는 카밀레를 소의 소장에 넣은 것을 땅 속에 6개월 간 묻어 두었다가 이용한다. 매번 도축장에서 소의 소장을 구입해 쓰다가 올해는 조만간 소를 잡을 계획도 있고, 이왕 직접 풀을 많이 먹여 키운 선생님의 소를 쓰자는 생각으로 구입하지 않아서 이 날 함께 만들지는 못했다.
쐐기풀증폭제는 쐐기풀을 봄에 꽃이 필 무렵에 베어서 반건조 시킨 후 절단해서 토기 그릇에 넣어 땅에 1년간 묻어두었다가 사용한다.
민들레꽃은 굉장히 빛에 예민한, 태양과 밀접한 관계의 꽃이다. 지상에 온기가 충분하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고, 해가 지면 꽃도 진다. 태양에 민감하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식물이기에 농작물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작물이 필요한 것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돕고 규산 흡수를 돕는다. 필요한 요소들이 멀리 있어도 민들레는 끌어올 있다. 민들레증폭제는 소의 장간막에 싸서 땅 속에 6개월 묻어 두었다가 내년 꺼내어 퇴비 더미 속에 넣어 사용한다. 아주 적은 양이어도 집채만한 퇴비 더미 전체에 서서히 퍼진다.
쇠뜨기증폭제는 묻어둘 필요 없이 쇠뜨기를 베어 건조시켜서 보관했다가 수시로 사용이 가능하다.
수정가루증폭제는 규석의 가루를 봄에 묻어 가을에 캐내어 사용한다. 태양처럼 빛과 온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일이나 곡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조량이 부족할 때에도 태양 대신 빛과 온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해 준다. 나머지 소똥증폭제, 떡갈나무(상수리나무)껍질증폭제는 직접 만들면서 배우기로 했다.
선생님은 양봉을 하는 것도 생명역동농법과 접목이 된다고 했다. 벌이 하는 주된 일이 꿀을 가지고 오는 것, 꽃가루를 전달하는 것, 벌집을 만들고, 새끼를 키우는 것인데 각각의 임무에 따라 좋은 때가 있다는 것이다. 채밀에 좋은 때는 생명역동농법이 말하는 열의 날(열매의 날)이다. 채밀을 많이 하려면 열의 날에 문을 열어 놓는다. 새끼를 키울 때에는 잎의 날 문을 열어두면 좋다. 화분을 많이 얻으려면 빛의 날(꽃의 날)에, 집을 튼튼히 짓게 하려면 흙의 날에 문을 열어둔다. 휴경일에는 문을 열어두지 않는다.
(열의 날, 잎의 날, 빛의 날, 흙의 날을 어떻게 아냐고? 걱정 마시라. 평화나무 출판사에서 독일의 시차를 계산에서 한국에 맞게 적용한 생명역동농법 파종달력을 출간하고 있다. 사진 참조)
지난 10월 8일 평화나무농장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생명역동농법 파종달력
질의 응답 시간을 통해 증폭제를 써야 생명역동농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규모가 작은 경작지는 물에 섞어 사용하는 살포용 증폭제(소똥, 수정가루, 쇠뜨기, 쥐오줌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파종 달력에서 회색 부분은 땅 속 활력이 크게 작용하는 시기로 옮겨 심기에 적기인 때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의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증폭제를 만들고 땅에 묻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의 트럭에 새끼를 낳은 암소의 뿔과 소똥, 민들레 말린 것, 서양톱풀 말린 것, 떡갈나무껍질, 소머리뼈, 장간막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 증폭제를 만드는데 쓰일 재료였다. 먼저, 소똥증폭제를 만들었다. 생명역동농법에서는 소의 뿔을 중요하게 여긴다. 소뿔은 속이 비어 있다. 슈타이너는 비어 있으면서도 뾰족한 소의 뿔에 좋은 기운이 모인다고 했다. 소똥증폭제는 그 신비한 공간에 소똥을 꾹꾹 채워 넣은 뒤 겨울동안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봄에 꺼내 물에 풀어 1시간 저은 다음 그 물을 밭에 뿌려 사용한다.
소똥증폭제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새끼를 낳은 암소의 뿔과 소똥
소똥증폭제에 이어 민들레증폭제, 떡갈나무껍질증폭제도 만들었다. 13년 째 함께해 오신 장구지님과 박영희님은 김준권 선생님 곁에서 민들레, 서양톱풀, 떡갈나무 껍질을 따뜻한 물에 적셨다가 물기를 쫙 빼는 등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셨다. 민들레는 평화나무농장 주변에 핀 꽃을 한 달간 따서 그늘에 말려놓았던 것이고, 서양톱풀도 봄에 심어 꽃이 피면 그늘에 말려둔 것이다. 떡갈나무 껍질은 가을에 나무들에 물이 내리기 전 산에서 미리 채취해 놓았다고 한다. 물에 적셔 물기를 뺀 떡갈나무 껍질은 소의 두개골 안에 넣은 뒤 그 소머리뼈를 근처 물이 흐르는 땅 속에 묻었다가 사용한다.
장구지선생님(왼쪽)은 민들레를, 박영희선생님(오른쪽)은 떡갈나무 껍질을 물에 적셔 뭉치고 있다.
증폭제 만들기를 마치고 그것들을 땅에 묻기 전에 선생님은 우리를 ‘소똥제제’가 들어있는 상자 앞으로 인도했다. 소가 자신의 똥을 밟기 전에 통에 모아, 유정란 껍질을 섞고,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퇴비용 증폭제 다섯 가지-서양톱풀, 카밀레, 쐐기풀, 떡갈나무, 민들레를 넣고 마지막으로 쥐오줌풀증폭제를 물에 희석해 뿌려주어 만든다는 소똥제제가 예전에 만들어 놓아 지금이라도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최근에 만들어 올 겨울을 난 후에 사용할 수 있는 것 두 통으로 나뉘어 담겨져 있었다. 다른 살포용 증폭제는 사용하기 전 물에 풀어 1시간을 저어야 주어야 하지만 이 소똥제제는 20분만 저으면 된다고 설명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신나 보였다.
소똥제제를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선생님이 소똥제제를 만들기로 마음 먹은 것은 남양주에서 열린 세계 유기농 대회에서 니콜라이 콕스라는 분의 발표를 들은 후부터였다. 그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체르노빌 땅 중에 경작지로 허용된 곳에서 소똥제제를 이용하여 생명역동농법으로 경작하는 곳이 그렇지 않은 곳과 자연 반감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방사능 수치가 반감되었다는 사례를 발표했다. 사실 선생님은 독일 본부로부터 파종달력 인쇄를 승인받으면서 마리아 툰의 소똥제제를 처음 추천 받았지만 그때는 9가지 증폭제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발표를 들은 후 원폭 피해를 입은 땅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소똥제제가 짧은 시간 내에 땅을 되살리는 것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비산동 텃밭 주변 땅들을 살릴 소똥제제를 담는 김성택님
평화나무농장을 함께 다녀온 김성택님은 이런 김준권 선생님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미 아홉가지 증폭제들을 만들고 계시면서도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에 늘 열려서 귀 기울이시고, 또 그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옮기는 것이 멋있다고 했다.
교육문화연구학교-생명의 교육, 생명의 마을의 농사준비팀은 지난 주(11/20)부터 생명역동농법의 근간이 된 슈타이너의 농업 강의를 담은 책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을 읽고 있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일곱번 째 시간이었던 지난 주 금요일(11/24)에는 각 분과별 모임을 가졌는데, 농사준비 분과는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의 머리말, 첫 번째 강의와 두 번째 강의를 읽어와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후기 참고: http://cafe.daum.net/kyungdang/coIz/682) 가장 핵심이 되는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느 정도 농사라도 지으려면 이렇게 사물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하는 농사의 기본 조건입니다." <p.70>
본질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이의 모습이 이러할까?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이 말한 "자신의 바깥 삶을 잃어버렸을 때 먼 우주 기운에 자신을 내어놓는 능력을 얻는다는 말"의 의미가 진리 앞에서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묵묵히 따르는 선생님의 모습과 겹쳐졌다.
소똥증폭제가 담긴 소뿔은 좋은 기운이 유실되지 않도록 뾰족한 부분이 위로 가게 하고 비스듬히 세워 묻는 것이 중요하다.
소의 장간막에 쌓인 민들레 증폭제. 가운데 기둥은 나중에 땅 속에서 캐낼 때 찾기 쉽게 하기 위한 장치다.
개울이 없어 처마 밑에 묻는다고 설명하고 있는 김준권 선생님. 이 날 EBS에서 촬영도 했다.
소 두개골에 떡갈나무껍질증폭제를 넣은 소머리뼈를 처마 밑에 묻고 있다.
참석자들이 김준권 선생님과 증폭제를 만들고, 묻고 하는 동안 원혜덕 선생님은 참석자들이 점심 식사한 자리를 정리하고, 그릇을 씻고, 또 증폭제 만들기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먹을 간식을 준비했다. 이 모든 것을 도움의 손길도 정중히 거절하시며 홀로 묵묵히 하다가 마지막 증폭제를 처마 밑에 묻을 때쯤 오셔서 지금까지 한 것들이 사진으로 잘 남겨져 있는지 궁금해했다. 특히 소뿔들이 주욱 놓여 있는 사진이 있었으면 했는데 마침 내게 그 사진이 있어 보내드리기로 했다.
두 분 선생님은 헤어질 때에도 정성 다해 한 팀, 한 팀 배웅하셨다. 헤어지면서 남긴 원혜덕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의식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삶을 선택하고 시도하지만, 꾸준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계속심이 중요해요."
계속심... 계속심.... 무언가를 계속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솔직히 말하면 "증폭제 만드는 날, 누구든 오라"는 원혜덕 선생님의 SNS를 봤을 때, 열흘 전에 다녀오기도 했고, 거리도 멀어 아예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농사준비팀의 몇 친구들은 혼자라도 가겠노라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꿈꾸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나 역시 꿈꿀 수 있었고 그 꿈이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계속심... 무언가를 계속하게 하는 힘은 내 곁에서 나를 살려주고 있는 증폭제와 같은 친구로부터 온다. 나 역시 누군가의 증폭제가 되는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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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계속심'과 '사물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남네요.
봄이 되면 저희 학교 앞마당에 쇠뜨기와 민들레가 잔뜩 피는데, 증폭제로 사용해보면 좋겠어요.
긴 시간 알차게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