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경비: 1인 158천원-가이드팁,선물,공항까지 차량, 발마사지, 현지제경비등 일체포함)
ㅇ 떠나기 전에
이슬이네와 작년 여름휴가로 중국 사천성 아미산-북경으로 휴가로 다녀오면서
올해에는 사천성 구채구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였는데, 올 봄 중국 사천성에
발생한 지진으로 구채구 여행을 포기하고, 일본 오사카 또는 샷보로로 여행을
할 예정이였는데, 강호동의 1박 2일의 영향때문인지 이슬이네가 백두산으로
가자고 하고, 작년에 사랑이와 함께 백두산에 올랐지만 제대로 天池를 보지 못하였기에
작년에 갔든 코스가 아닌 백두산 서파 관광과 고구려 유적지 일주여행을 코스를 잡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여러 상품을 검토하든중에 M여행사의 상품이 코스와 비용면에
좋은 것 같아 예약을 하였으나 모객이 너무 많이 되어 걱정도 되었지만 ......
ㅇ 주요일정
여행 첫째날 [ 7월 15일 ] - 화요일 : 비와 안개 [현지 가이드] 김광화 <134-7007-2255>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차를 가지고 집을 출발하여
이슬이네와 지수네 아파트에서 함께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여 중대앞에서 김밥을
사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인천공항에서 다른 일행과 만나 티켓팅과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신고후에 쇼핑도 하고 ..... 인천공항을 9시 40분에 출발
기내에서 김치볶음밥으로 간식후 한시간여만에 대련에 도착[09:55]후
성해공원[해변공원]과 성해광장을 관광하고 .....
▒▒ 대 련(DA LIAN)▒▒
요동반도 남단에 자리잡은 중국 북방 최대 항구도시로 동쪽으로는 황해(黃海), 서쪽으로는 발해(渤海)를
바라보고 있다.『북해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12,000㎢의 면적에
인구는 480만명 정도 된단다. 해안선의 길이는 약 8,000㎞로 곳곳에 암초와 작은 섬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해수욕장, 해변 공원, 동물원, 화원등의 관광객을 위한 시설도 갖추고 있다.
▶[성해공원] 시중심 서남 5km 밖에 있는 유명한 해변 공원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성해광장] 해변 도시 대련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원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광장
아쉽게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중간에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어디론가 ......
대련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로 출발하면서[7/15 10:27]
- 성해공원과 광장을 구경하고, 한식당으로 이동하여 한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고구려 유적지 관광에 나서 .... 비사성으로 이동하여 관광을
시작할려는데 비가 많이 오고 안개가 앞을 가리는데, 우리가 탄 관광버스로
비사성을 오를 수가 없단다.
- 우리는 비를 맞고 .... 성을 향해 오른는데 ..... 가이드가 차량을 수배하여
중간지점에서 차량으로 비사성을 올랐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볼 수 있다는
대련시내 조망이나 천혜의 요사 절벽등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 성해공원
면적이 15만㎡인 성해공원은 대련 시내에서 10㎞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공원과 해수욕장이 함께 있는 해변공원입니다. 다양한 모양의 단과 울창한 숲, 운치있는 정자가 자랑거리로서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작은 동산에는 바다까지 뚫려 있는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 곁에는『성석(星石)』이라는 이름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하여 성해공원의 이름도 여기 유래한 것입니다. 대련의 4대 해수욕장 중에 하나이며 100년의 역사를지닌 공원으로 관광. 오락, 휴가, 피서를 즐길 수 있는 명승지입니다.
성해광장은 성해공원 동쪽 성해상업무역중심에 위치해 있고 총면적은 4.5만㎡로서 대련에서 제일 큰 광장입니다.다. 이 광장의 내원직경이19.99m인데 의미는 1999년 대련건설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것이라고하며 광장중앙에 세워진 높이 19.97m의 전국최대 백옥 탑은 1977년 홍콩복귀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고, 광장중심의 각종 조형물은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중국의 기백을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장은 푸른 잔디, 꽃, 바다 등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나타내고 있어 손님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대협곡은 백두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킬 때 용암이 흐르던 자리가 오랜 세 풍화에 씻겨 이루어진 것으로 협곡 주위로는 원시림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협곡 바닥에는 맑은 물이 흘러간다. 협곡의 크기는 폭이 평균 120미터이며 깊이는 평균 80미터이고 길이는 10킬로나 되어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운다. 물이 급하게 흐르는데 그 아래에는 만강(漫江)이라는 하천과 마을이 있어서 대조를 이룬다. 협곡 주위 원시림에는 두그루 나무가 한 뿌리를 두고 자라는 것과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고사목의 뿌리에서 새로운 세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기현상도 볼 수 있다. 협곡까지 가는 도로에는 곳곳에 작은 협곡들이 있는데 길가에 제자하(梯子河)라는 좁은 협곡이 있다. 협곡을 지나 더 오르면 금강폭포(錦江瀑布)로 가는 길이 있다. 이 폭포는 서쪽 면에서 가장 큰 폭포인데 30미터와 40미터, 2단으로 떨어져서 길이로는 장백폭포를 능가한다. 폭포로 가는 길은 나무다리가 무너져서 도보로 이동하기에 시간이 다소 걸린다.
금강대협곡 입구에서[7/17 13:37]
화산재가 굳어 바위가 되고
협곡과 바위 .... 그리고 멋진 숲의 조화
잘 정비된 이동로
천지로 오르면서[7/17 14:49]
천지는 해발2,200m 높이에 위치한 화산의 분화구로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의미에서 '천지'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둥근 모양을 하고 있고 전체 면적은 10㎢, 호수주위의 길이가 13㎞ 정도이다. 중국과 북한이 경계에 놓여있다. 천지의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되고 평균수심은 200m이다. 중국에서 가장깊은 화구호(칼데라호)로 알려져 있다. 연평균기온은 -7.3도, 평균수온은 0.7 - 11도 이며, 11월에 얼어붙었다가 6월이 되어서야 녹는데, 겨울철 천지의 얼음 두께는 자그만치 1.2m에 이른다. 또한 천지의 수질은 그냥 마실 수 있을만큼 아주 깨끗하며 지하수와 강수량으로 채워진다. 천지에는 기후변화가 심해서 거센바람과 폭풍우 발생이 빈번하기 때문에 모든 방문객들의 이곳의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가이드가 집안으로 가는 중간에 친구가 장뇌삼농장을 한다고 오라고 했으니, 필요한 사람은
사란다. 상술이겠지만 우리는 9시경 장뇌산 장사하는 조선족을 만나 다시 6뿌리를 구입하여
한뿌리씩 먹고 .....
환도산성 입구의 총에서[7/18 10:12]
- 이곳 집안에는 2만여기의 귀족 총[돌로 쌓은 무덤]이 있다고 한다.
[ 환도산성 ]
유리왕 21년 국내성으로 이전한 후 676m의 반원형 산봉우리와 주위 능선을 이용해 만든 총둘레 7km의 산성이다. 환도산성은 집안시 북쪽 통구강을 따라 약 2.5km 떨어진 환도성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성이 평성인 도성인 반면 환도산성은 유사시 적군과 대치하기 위해 쌓은 군사적 위성으로 '산성자산성' 혹은 '위나암산성'이라고도 불린다. 발말굽 모양의 불규칙한 타원형 형태의 돌로 쌓아롤린 산성 입구에는 현재 석각으로 된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환도산성에는 현재 약 5m 높이의 북쪽 화강암 성벽과 말에게 물을 먹이던 음마지, 전투를 지휘하던 점장대를 비롯해 병영터와 궁전터 흔적들이 일부 남아있다
국내성터[앞은 강이다]
[국내성 성벽]
국내성은 압록강가에 있는 통구분지(通溝盆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북쪽에는 장백산맥의 한 갈래인 노령산맥의 줄기가 동북-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므로 가파른 봉우리들이 첩첩이 솟아 있고 그 사이에 험악한 골짜기들이 수없이 많다. 자세히 살펴보면 성 동쪽 6㎞ 지점에는 용산(龍山), 북쪽 1㎞ 지점에는 우산(禹山), 그리고 서쪽으로 1.5㎞를 가면 칠성산(七星山)이 있어 뒷면과 좌우가 모두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앞쪽에는 압록강이 흘러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천연요새이다. 오늘날 국내성 내의 고구려 건축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사라져 버렸지만 우리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고구려 당시의 웅대한 기상을 느끼게 하는 유적이 단 한 곳 남아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국내성 성벽이다. 국내성 성벽은 고구려 성벽의 한 형식으로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그 축조수법이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성벽들이 무너져 없어졌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국내성 성벽 유적은 고구려식 성벽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에서도 국내성을 성급 문물 보호단위(省級文物保護單位)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광개토 대왕비 앞에서[7/18 11:06]
[ 광개토대왕비 ]
고구려의 제19대 왕이였든 광개토대왕(391~412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장수왕에 의해 414년에 세워졌다. 높이 6,39m 폭1.34m~2m의 거대한 비석 사면에는 광개토왕의 업적을 담은 1775자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현재는 1600여 자만이 판독이 가능한 상태라 한다. 비문의 내용은 고구려의 약력과 비석의 건립 경위, 광개토와의 영토확장 과정, 광개토왕의 고령등으로, 당시 고구려가 동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위치, 부여.신라.백제.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광개토대왕릉에서[7/18 11:32]
[광개토왕릉]
광개토대왕비에서 북서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광개토대왕릉이 있다. 무덤 안쪽으로 벽돌건물이 하나 있는데, 태왕향 조선족 소학교 건물이다. 그 옆으로 거대한 자갈산이 나타나고 둘레에 화강암들이 흩어져 있다. 이 자갈산이 바로 광개토대왕릉이다. 고분 위에는 자갈돌 사이로 풀들이 삐죽이 솟아있다. 표면에 쌓았던 돌들이 거의 없어진 자갈산이지만 원래는 장군총처럼 둘레를 계단식으로 쌓아올리고 현실을 상부에 만든 아름다운 방형계단석실묘였다. 높이가 18m에 한면의 길이가 66m이니 엄청난 크기이다. 동방의 금자탑이라는 장군총보다 무려 네배가 큰 대형 고분이다. 아마 장군총처럼 7층의 계단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장군총보단 후대에 만들어 졌을 것이다. 무덤 뒷쪽에는 정호석 이었던 5m정도 크기의 돌이 있다. 한 면에 5개씩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거의 유실된 상태이다. 현실 위로 올라가면 발밑에 개정석이 밟힌다. 눈 앞으로 압록강의 유장한 풍경이 펼쳐진다. 임강총이 보이고, 멀리서 용산 아래의 장군총도 보인다. 현실로 들어가 보자. 새로 해 단 철문을 지나면 현실이 있고, 전등불을 켜서 보게 되있다. 현실은 그리 크지 않아( 2,8*2m)오히려 장군총보다 작다. 내부에는 관대가 있고, 한쪽에는 관에 사용된 듯한 대리석 석재들을 불규칙하게 쌓아 놓았다. 장군총이 광개토대왕릉이었다는 설이 한 때 인정을 받았었다. 현재 남아있는 것 가운데서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피라미드형 고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당시 최고의 대왕이었던 광개토대왕의 무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였다. 그런데 집안에는 장군총보다 더 큰 장군총류의 무덤들이 있었다. 천추릉, 서대총, 태왕릉 등이다. 지금은 겉에 덧쌓았던 큰 돌들이 다 벗겨져 없어졌기 때문에 단순한 돌무지 무덤으로만 보이지만 사실은 장군총과 똑같은 형태의 무덤들이었다. 정호석이라든가 각진 돌덩이들의 일부가 현장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무덤들이 만약 장군총처럼 그대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면 인류가 만든 일대 걸작품들임에 틀림없을 텐데. 어쨌든 이 무덤이 장군총보다 더 큰 것이라면 이젠 크기만으로 장군총을 대왕의 무덤이라고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 태왕향에 있는 이 거대한 고분에서 전돌이 발견되었다. 그 곳에는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다른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선 태왕이란 칭호를 얻은 임금은 광개토대왕뿐이다. 그렇다면 이 고분은 광개토대왕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장수왕릉 앞에서[7/18 12:40]
-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이슬이가 나와 사랑이 사진을 찍은 후에 왕릉에 올라 왕릉을 들린후에
왕릉 정상에서 사진을 찍는데, 이상하게 지금까지 찍은 사진이 감쪽같이 없어지고, 사진에
일련번호가 1번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찍은 180여장의 사진이 없어지면
............. 왕릉을 내려와 사진기를 점검해 봐도 이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진에 일련번호는 있는 것 같은데, 사진에 현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 저것 다시 찍어 보고, 디스켓을 다시 꽂아 보고 .... 하니 사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조금전에 찍은 사진은 있는데, 처음 시작된 번호에 사진은 어디론가 ..... 사라지고 .......
없는 것이다. 혹시나 하여 다른 디스켓으로 교환하여 사진을 찍고 ... 집에 와서 보니
역시나다 ..... 처음찍은 성해공원에서의 사진은 ..... 장수왕릉에 선물로 주고 왔는지 ........
[장수왕릉]
화강암의 표면을 정성들여 가공한 절석(切石)을 7단의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기단(基壇)의 한 변의 길이는 30m, 높이 약13m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너비 4m로 돌을 깔았으며, 그 바깥둘레에 너비 30m의 역석을 깔아 능역(陵域)을 표시하였다. 널방은 화강암의 절석을 쌓아 지었는데, 천장석이 있는 구식이며 2개의 널받침이 있다. 5단 중앙의 구멍을 통해 길이와 너비가 각각 5m, 높이가 5.5m인 공간에 직사각형 석관 두 개가 안치되어 있고 피라미드 정상부는 잘다듬은 약 50t의 거대한 돌로 덮여있다. 이러한 돌무지돌방무덤[積石石室墓]은 대체로 3세기 말∼4세기 초로부터 5세기에 나타나며, 기와를 통해서는 4세기 중엽 이후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므로 이 장군총의 연대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현지 학자들은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다.
압록강 보트위에서[7/18 14:06]
- 장수왕릉 관광까지 마치고, 집안에서 시내의 진주불고기 집에서 송아지 불고기로 점심을 해결하고,
북한과 마주한 압록강에서 스피드 보트를 탄다.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마주하고 있지만
말과 문화는 전혀 다른 두곳 이고, 북한 주민에 모습을 직접 볼 수가 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압록강 표지석앞에서[7/18 14:22]
- 당초 압록강 관광은 단동에서 단교와 압록강 유람선 관광이 있기에 현지 옵션으로 진행하였기에
일부는 유람선을 타지 않았지만, 단동의 날씨가 좋지 않아 유람선운항이 중지되어 유람선관광으로
대체되었다. 그리하여, 보트를 타지 않은 몇 사람은 나중에 차선물로 처리 ....
- 압록강 관광을 마치고 나와 화장실을 갈려는데, 화장실 입장료가 5각(75원)이란다. 그래서
우리일행 6명의 요금으로 10원짜리 위안화를 주었든이 한국사람이라 잘 몰울줄 알고,
5원만 준다. 2년전 산동성 공림옆에서 꼬치를 구입하고, 잔돈이 몰우는 줄알고
55위안을 주어야 하는데, 35위안만 주기에 꼬치를 사지 않을려고 하자 잔돈을 주든
기억이 ....
- 오후 2시 30분경 집안을 출발하여 단동으로 향하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마을이 계속된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마을이[7/18 14:41]
단동의 압록강과 단교를 배경으로[7/18 18:29]
북한강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열차
- 압록강 단교 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 하려가는 중간에 잡화점에서 단체로 북한산 잦[3만원]도 사고,
조개말린것[7천원]도 사고, 일부는 참깨[2.5만원]도 하고 .....
- 가이드가 장사가 되지 않는지 투덜대기에 우리는 고량주 네병[한병2만원]을 사서,
한병씩은 가지고 가고, 저녁에 한병을 먹기로 하고 .....
북한식당에서 북한식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공연을 즐기는데
- 이곳 북한식당에서 한창 공연이 잘 진행되는데, 중국노인이 과음으로 화장실에서
쓰려져 중국 119과 출동하는 바람에 여흥이 .....
북한식당의 미녀들과 함께[7/18 20:32]
- 우리는 첫날 묵은 홍원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9시 30분경 호텔뒷편 야시장에서
소고기와 새우, 감자 등으로 맥주와 고량주도 한병마시고 ..... 마지막 여정을 ....
23시반경 꿈나라로 ........
야시장에서 마지막 여정을[7/18 21:53]
여행 다섯째날 [ 7월 19일 ] - 토요일 : 구름과 비
-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간단하게 샤워하고, 4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대련으로 출발
하는데, 아침으로 식당4개와 쏘세지 4토막, 삶은 계란 한개, 비닐봉지 우유 하나를 준다.
- 중간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후에 8시 40분경 대련공항에 도착하여 보딩을 할려는데
9시 10분경부터 보딩을 시작한단다. 30여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인솔자도 동행하지 않았는데, 이놈의 가이드는 알아서 가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인지 먼저 가버린다. 별 문제야 없겠지만 33명의 많은 인원 뿐만아니라 수없는 여행을
해 보았지만 고객이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가 먼저 가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 그래도 같은 동포라는 이유때문에 때로는 필요없는 기본쇼핑 이라도 도와 줄려고 하는데,
이놈은 그런 것도 몰우는 것인지 .....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 9시 15분 출국장으로 입장하여 보딩을 하고,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앞에서 샌드위치[4,500원]
와 커피[6,000원]을 시켜 먹는데, 맛도 없는데 너무나 비싸다. 합계액이 378위안이다.
- 비때문인지 출국이 다소 늦어져 11시 10분경 대련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13시 35분경 도착
차량을 회수하여 이슬이네 집앞에서 버섯칼국수와 소주 한잔하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 20분이다.
- 여행이 끝나고 나면 항상 여행이란 무엇일까? 라는 의문점이 남는다.
하지만, 그 답은 항상 같지가 않다. 혼자하는 여행과 함께 하는 여행은 또 다른 답을 나에게 주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