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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비물을 저장하는 꿀단지 개미들의 방은 벨로캉에서 가장 최근에
성취한 혁신의 하나이다. '꿀단지' 기술은 남쪽의 개미들에게 빌러
온 것이었다. 삼복 더위가 시작되면 남쪽의 개미들은 언제나 북쪽으
로 올라온다.
그 개미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을 때, 밸로캉 연방의
개미들이 그들의 꿀단지 개미의 방을 발견했었다. 곤충의 세계에서
전쟁이란 발명의 원천이자, 발명을 널리 퍼뜨리는 매개자 역활을 한다.
그때 그 현장에서 벨로캉 병사들은 꿀단지 개미들을 발견하고 경
악을 금치 못했다.
평생 천장에 매달려 살도록 되어 있는 일개미들
이 있었는데, 머리는 아래쪽으로 두고 있고, 배가 어찌나 뚱뚱한지
여왕개미 배보다도 두 배는 커 보였다.
남쪽 개미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 일개미들은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개미들로서, 어마
어마한 양의 꽃꿀이나 이슬이나 분비꿀을 싱싱하게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당분 덩어리라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모든 개미들이 영양 교환을 가능케 하는 갈무리 주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갈무리 주머니'라는 개념을 극단으로 밀고 가서
'꿀단지 개미'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실용화한 것이었다. 개
미들이 와서 그 살아 있는 저장고의 배 끝을 건드리면 꿀단지 개미
는 자기가 저장하고 있는 소중한 액체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주거나
줄줄 쏟아서 나누어주는 것이다.
남쪽 개미들은, 그런 꿀단지 개미가 있는 덕분에, 열대 지역을 휩
쓰는 지리한 가뭄에도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동을 할
때, 꿀단지 개미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이동 기간 내내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꿀단지 개미는 알 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벨로캉 개미들은 꿀단지 개미라는 기술을 차용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양의 먹이를 신선하고 위생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
음에 들었던 것이다.
도시의 모든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당분과 수분을 가득 섭취하기
위해서 꿀단지 개미의 방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살아
있는 꿀 덩어리 앞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날개 달린 개미들이 줄
지어 서 있다. 327호나 56호가 흠뻑 단것을 빨아들이고 나서 물러난다.
모든 생식 개미들과 포수 개미들이 지나가고 나자, 저장 개미의
몸이 텅 비어진다. 그러자 일단의 일개미들이 꽃꿀과 이슬과 분비꿀을
신속하게 다시 가져와, 훌쭉해진 그들의 배가 작은 공처럼 빛나는
제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채워놓는다.
니콜라와 필립과 장은 어떤 감독 선생에게 들켜서 함께 벌을 받았
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고아원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세 아이는 대개 식당의 텔레비젼 앞에 붙어 있었다. 그날은 마침
아이들이 '자랑스런 외계인'이라는, 방영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된 연
속극을 보고 있었다.
극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우주 비행사들이 어떤 행성에 도
착했는데 그 행성에 거대한 개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장
면을 보면서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팔꿈치로 옆 사람을 쿡
쿡 찌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구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즈귀 별의 거대한 개미들입니다.
그 뒷얘기는 늘 보던 것과 비슷했다. 즉, 거대한 개미들은 정신
감응을 일으키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메세
지를 보내어 서로서로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지구의 마지
막 생존자가 모든 것을 깨닫고 적의 도시에 불을 지른다. 운운....
그 결말에 만족한 아이들은 달착지근한 맛을 내던 개미들을 잡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그들이 잡은 개미
들에게서는 지난 번과 같은 달콤한 맛이 나지를 않았다. 이번 것을
더 작고 신맛이 났다. 레몬 즙을 농축시킨 것 같은 맛이었다. 우웩!
정오 무렵에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아침 공기에 다사로운 기운이 감돌자마자, 포수 개미들이 도시 꼭
대기 주위를 화환처럼 두르고 있는 방호 구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
다. 새들이 곧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서, 포수 개미들이 꽁무니를 하
늘로 치켜들고 대공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포수 개
미들은 사격 때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배를 작은 나뭇가지들 사이에
끼워넣고 있다. 그렇게 하면 과녁을 별로 빗겨가지 않고 똑같은 방
향으로 두세 차례의 일제 사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자기의 방 안에 있다. 시녀 개미들이 암개미의 날
개에 침을 발라주고 있다. 소독력을 지닌 침이다.
'당신들은 위대한 '바깥 세상'에 나가본 적이 있어요?'
일개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가본 적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곧 여왕개미가 될 이 암개미는 잠시 후면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터인데, 밖에는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암개미는 더듬이 접촉으
로나마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한시라도 먼저 알고 싶다고 한사코
때를 쓴다.
일개미들은 그래도 여전히 암개미의 몸단장에만 신경을 쓰고 있
다. 일개미들은 암개미의 다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당겨보기도
하고, 몸을 비틀게 해서 가슴마디와 배마디에서 오도독거리는 소리
가 나게 하기도 한다. 또 암개미와 모이주머니를 눌러서 분비꿀 한
방울이 나오는 걸 보고, 모이주머니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 그 꿀이 암개미로 하여금 몇 시간 계속되는 비행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드디어 56호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 다음 암개미를 준비시킬 차례
이다. 한껏 치장을 하고 향기를 듬뿍 머금은 공주 개미가 규방을 떠난다.
327호 수개미가 그 모습을 보면 56호를 딴 개미로 착각할는지도
모른다. 그 맵시가 정말 곱다.
56호는 날개를 들어올리는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요 며칠 사이
에 날개가 어찌나 빨리 자라든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이제는
날개가 너무 길고 무거워서 땅에 질질 끌린다.... 웨딩드레스 같다.
다른 암개미들이 통로의 출구에 나와 있다. 수백 마리의 그 처녀
개미들과 함께 56호가 벌서 둥근 지붕의 잔가지 속을 돌고 있다. 너
무 흥분한 어떤 암개미들이 잔가지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면 네 날
개에 줄무늬의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구멍이 나기도 하며 아예 뽑혀
버리기도 한다.
그 불행한 암개미들은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가 없다.
설사 올라간다 해도 날아오를 수는 없으리라. 안타까운 일이지
만, 그 암개미들은 5층으로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난쟁이개미의
공주들처럼, 그 암개미들은 결혼 비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볼
썽사납게도 밀폐된 방에서 그것도 땅바닥에서 교미를 하게 될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아직 무사하다. 56호는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서, 그리고 여린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
면서,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강중거린다.
다른 암개미 하나가 56호에게 다가와 더듬이 접촉을 하자고 청한
다. 그 암개미는 말로만 듣던 수개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수벌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파리처럼 생겼을까?
56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문득 327호와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이젠 모든 게 끝났다. 일을 함께할 세포가 없다. 설사 있
다해도 수개미와 자신은 이제 그 일을 나설 수가 없다. 이제부터 모
든 일은 103683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애잔한 아쉬움을 느끼며 56호는 지나간 일들을 되새기고 있다. 도
망치던 수개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었다.... 통행냄새도 없이!
그와 나누었던 최초의 완전 소통.
103683호와의 만남.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도시의 밑바닥에 갔던 일.
그들의 '군대'가 될 수도 있었던 병정개미들의 시체로
가득찼던 은신처.
모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통로....
56호는 걸어가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돌이켜보고, 자신은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도시를 떠나가기도 전에 그렇게 파란만장한 일
들을 겪은 암개미는 하나도 없을 터였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그렇게 많은 개미가 가담하고 있는 걸 보면, 미친 자들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흰개미들 편에 서서 첩자질하는
용병들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기엔 아귀가 안 맞
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첩자의 수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거니와,
그렇게 잘 조직되어 있을 수도 없다.
설사 그럴 수 있다 해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다.
도시의 밑바닥 밑에 왜 식량을 저장해 둔단 말인가? 첩자들을 먹이
기 위해서? 아니다. 그만한 양이라면 수백만을 배불리 먹일 수 있
다.... 첩자가 수백만이 될 리 만무하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던 그 로메슈제는 또 어떤가. 로메슈제는 지
표에 사는 곤충이다. 것이 제 발로 걸어서 지하 50층까지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곤충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곤충에게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그 발산물의 포로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 괴물을 보들보들한 나뭇잎 같은 것으로 폭 싸서
조심스럽게 아래까지 운반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꽤 강력한
어떤 집단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떤 엄청난 수단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놓고 보면,
겨레의 일부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같은 구성원들에
게조차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낯선 암개미들과의 접촉이 56호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한다. 56
호가 걸음을 멈춘다. 동료들이 보기에는 56호가 결혼 비행 전의 흥
분을 이기지 못하고 졸도한 것만 같다. 그런 일이 이따금 일어난다.
그만큼 생식 개미들은 예민하다. 56호는 더듬이를 입 쪽으로 가져간
다. 그간의 일들이 다시 빠르게 스쳐간다. 첫 원정대의 죽음, 비밀
무기, 병정개미 30마리의 죽음,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비축되어 있는 양식.... 아뿔싸! 56호는 문득 깨달았다. 56호가 오
던 길을 되돌아 달려간다. 너무 늦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개미의 교육
개미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 이루어진다.
-제1일에서 제10일까지. 대부분의 어린 개미들은 알 낳는 여왕개
미의 시중을 든다. 어린 개미들은 여왕개미를 보살피고 핥아주고 애
무해 준다. 그 대신에 여왕개미는 영양이 풍부하고 소독 효과를 지
닌 침을 어린 개미들에게 발라준다.
-제1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이 고치를 돌볼 수 있게 된다.
-제2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을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들
을 돌보고 먹이를 준다.
-제31일에서 제40일까지. 일개미들은 어머니인 여왕개미와 번데기
들을 돌보면서, 도시 안의 일과 길 닦는 일에 종사한다.
-제40일째 되는 날이 중요하다.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고 인정을
받은 일개미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제41일에서 제50일까지. 일개미들은 경비 보는 일이나 진딧물 분
비꿀 짜는 일을 하기도 한다.
-제51일에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일개미들은 개미 도시의 일원으
로서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사
냥을 나간다든가 미지의 지방을 탐험하는 일 같은 것이다.
주: 제11일부터 생식 개미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식 개미들은 대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결혼 비행을 하는 날까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혀 지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도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더듬이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수개미들은 너나없이 암개미들 얘기만 하고 있다.
암개미들을 본 적이 있는 개미는 아주 적다. 그나마도 금단 구역의
통로에서 슬쩍 훔쳐본 게 고작이었다. 많은 수개미들이 나름대로 암
개미들을 상상해 보고 있다. 그들은 고혹적인 향기와 넋을 잃게 할
만한 관능을 지닌 암개미들을 상상하고 있다.
수개미 하나가 자기는 암개미하고 영양교환을 한 적이 있노라고
떠 벌리고 있다. 그 암개미가 나누어 준 분비꿀은 자작나무의 수액
과 같은 맛이었고, 성호로몬 냄새는 노란 수선화 줄기를 잘랐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고 한다.
다른 수개미들은 그 수개미를 부러워하며 묵묵히 듣고만 있다.
327호야말로 어떤 암개미(그것도 보통 암개미가 아닌)가 나누어준
분비꿀을 맛본 적이 있기에, 그것이 일개미나 꿀단지 개미가 나누어
주는 분비꿀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대화에 끼여들지 않는다.
다른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딴 생각을 하고 있는 탓이다. 한 가지
엉큼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암개미 56호에게
미래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정자들을 실컷 주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다. 56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56호하고 군중 속에서 다시 만나려면, 서로를 찾아낼 수 있
는 페로몬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다.
그때 암개미 56호가 수개미들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모든
수개미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암개미가 여기에 오는 것은
겨레의 법도에 어긋난다. 수개미와 암개미는 결혼 비행 전까지 서로
만나서는 안 된다. 여기는 난쟁이 개미들의 도시가 아니다. 통로에
서 교미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암개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수개미들은 정작
암개미가 들어오니까 일제히 비우호적인 냄새를 풍겨서 56호가 이
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시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56호는
결혼 비행을 준비하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는 그 북새통의 한가운데
로 계속 나아간다. 56호는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면서 사방으로 페
로몬을 발산하고 있다.
'327호! 327호! 327호! 어디에 있지?'
수개미들은 56호를 보고 대뜸, 교미할 수컷을 그렇게 대놓고 고르
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힐책한다. 그러고는, 원하는 수개미가 있어
도 참아야 한다고, 상대방을 고르는 게 아니라 우연에 맡기는 거라
고, 몸가짐을 좀 정숙히 하라고 타이른다. 그런 얘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암개미 56호는 끝내 자신의 수컷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수개
미는 죽어 있었다. 위턱에 맞아 머리가 잘린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