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개미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개미가 완벽한 전체주의의 체제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면서 흥미를 느낀다. 사실 밖에서 보면 개미 둥지에서는 모두 똑같이 일하고, 모 두가 전체의 이익에 따르며, 모두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인간의 전체주의 체제는 현재로 서는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모듬살이 곤충을 흉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나폴 레옹의 휘장이 꿀벌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개미 둥지 전체를 하나 의 생각으로 통일시켜 주는 것이 페로몬이라면, 오늘날인 인간 사회 에서는 세계적인 방송망을 가진 텔레비젼이 그런 역활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면서 모두가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완벽한 인간 사회가 이루 어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라 만상의 이치는 그런 것 이 아니다. 자연은 다윈 선생의 주장과는 달리, 가장 좋은 것이 지 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게다가 좋고 나쁜 것을 어떤 기준으로 가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힘은 다양성 속에 있다. 자연 속에는 선한 자, 악한 자, 미치광이, 절망에 빠진 자, 팔팔한 자, 병자, 곱추, 언청이, 쾌활한 자, 슬픔에 빠진 자, 영리한자, 어리석은 자, 이기주의자, 도량이 넓은 자, 큰 것, 작은 것, 까만 것, 노란 것, 빨간 것, 흰 것 등등 이 다 있어야 한다. 갖가지 종교, 갖가지 철학, 갖가지 광신, 갖가 지 지혜를 가진 자들이 다 있어야 한다. 다양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한 종류가 다른 종류 때문에 소멸당하는 것, 위험이라면 오직 그것 뿐이다. 어떤 밭에 옥수수가 있는데 그 옥수수들을 가장 좋은 이삭(즉, 물 을 더 적게 필요로 하고, 결빙에 가장 잘 견디며, 알곡이 가장 실한 이삭)의 덩이 수꽃술로만 인공 수분을 시키면, 아주 하찮은 전염병 이 돌아도 다 죽어버린다. 그에 반해서, 옥수수 한그루한그루가 저 마다의 특성과 약점과 비정상성을 지니고 있는 야생의 옥수수 밭에 서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옥수수들 스스로 찾아낸다. 자연은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한다. 자연은 바로 그 다 양성 속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둥근 지붕을 향해서 56호가 시름에 겨운 발걸음을 조금씩조금씩 옮겨 놓고 있다. 암개미 방 가까이에 있는 한 통로에서 두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56호의 적외선 홑눈에 감지된다. 바위 냄새를 풍기 는 암살자들이다.
커다란 병정개미와 다리를 저는 작은 개미가 있다! 그들이 56호 쪽으로 곧장 다가오자, 56호는 날개를 붕붕거리면서 절름발이 개미의 목덜미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56호를 꼼 짝 못 하게 만들어버렸다. 56호를 당장 처단해 버릴 수 있을텐데도,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더듬이 대화를 하자고 강요한다. 암개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차피 결혼 비행을 하고 나면 죽게 될 327호 수개미를 왜 죽였느냐고 따진다. 그를 왜 암살했는가? 두 암살자가 암개미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일 중에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한시바삐 해치워야 할 일이 있 다.
겨레가 계속 정상적으로 움직여나가기를 바란다면, 비난받을 만 한 임무가 나쁘게 생각되는 행동일지라도, 그것을 수행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순진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벨로캉의 단결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희생이 따라도 어쩔 수 없다. 아니 그렇다면, 이들은 첩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이들은 첩자가 아니라고 한다. 한술 더 떠서 겨레의 안전 과 건강을 지키는 요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주 개미가 분노의 페로몬을 사납게 뿜어낸다. 327호가 겨레의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를 죽였단 말인가! 두 암살자가 그렇 다고 대답한다. 지금은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거라면서 .... 이해할 거라고? 도대체 뭘 이해한단 말인가? 겨레의 한 가운데에 치밀하게 조직된 암살자 집단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고? '겨레의 생 존이 걸린 위급한 일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수개미를 죽여놓고, 겨 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란 말인가? 절름발이 개미가 나서서 해명한다. 그의 이야기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악성 스트레스를 막는 병정개미들'이라는 것 이다. 스트레스에는 유익한 스트레스와 악성 스트레스가 있는데, 유 익한 스트레스는 겨레를 발전시키고 사기를 복돋워주지만, 악성 스 트레스는 겨레를 자멸에 빠뜨린다.... 정보들 중에는 겨레에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은 것도 있다.
어떤 정보들은 '형이상학적인' 고뇌를불러일으키는데, 그런 고뇌에는 아직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겨레는 고민만 하고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기력이 쇠잔해진다. 그것은 모두에게 아주 해롭다. 겨레에 독성 물질이 생겨나 모두를 중독시켜버린다. 사실을 아는 건 '잠깐'이지만, 겨레의 생존은 '영 원'하다. 따라서 겨레의 영원한 생존이 더 중요하다. 눈 하나가 어 떤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유기체의 다른 모든 부분에 해가 된다면 뇌가 그 눈을 무시해 버리는 편이 낫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절름발이 개미가 늘어놓 자, 덩치 큰 병정개미가 나서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는 눈을 파낸거라네. 우리는 신경 자극을 잘라버린거라네. 우 리는 고뇌를 끊어버린거라네. 그들은 더듬이로 페로몬을 계속 발하면서, 모든 유기체는 그와 같 은 안전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기체는 두려움 때문에 죽거나 고뇌스러운 현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자살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56호는 무척 놀라기는 했으나 냉정을 잃지 않는다. 참으로 그럴듯 한 페로몬이다! 그러나 적에게 비밀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들 이미 너무 늦지 않았는가. 그 비밀 무기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는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해도, 라숄라캉이 이미 그것 때문 에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고 있는 사실이다.... 두 병정개미는 여전히 침착하게 56호의 목을 조르고 있는 채로 설 명을 계속한다. 라숄라캉에 대해서는 다들 벌써 잊어버렸다. 승리가 호기심을 잠재운 것이다. 정 의심스러우면 통로의 냄새를 한번 맡아 보라. 독성 물질의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을 것이다. 온 겨레가 신 생의 축제를 차분하게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 왜 머리를 이렇게 짓누르고 있는가? 아래층에서 쫓고 쫓길 때 개미 하나가 더 있었다. 병정개미였다. 그 자의 신분 번호가 어떻게 되는가? 그제서야 56호는 왜 암살자들이 자기를 바로 죽이지 않았는지 깨 달았다. 대답하는 척하면서 암개미는 덩치 큰 병정개미의 눈을 더듬 이 끝으로 찌른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고는 해도 더듬이 끝이 그렇게 박히고 보면 몹시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그 서슬에 놀라 절 름발이 개미가 당황하면서 잡고 있던 것을 반쯤 풀었다. 암개미가 달아나기 시작한다. 처음엔 달려가다가 나중엔 더 빨리 가려고 날개짓을 한다. 날개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자 추격자들이 길 을 잃고 헤맨다. 빨리 둥근 지붕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56호가 신생의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고 있다. 이제 56호 앞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장난감 개미집의 판매 금지 입법을 청원하며 (국회 조사 위원회에서 에드몽 웰즈가 행한 연설을 발췌한 것임.) 어제 저는 어떤 가게에 들렀다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새로운 장난감을 보았습니다. 흙이 채워진 플라스틱 상자였는 데, 흙 속에는 개미 300마리가 들어 있었고 그 중에는 알 낳는 여왕 개미 한 마리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장난감을 통해서 개미들이 일하는 것이며, 땅 파는 것,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 장난감은 매력적입니다. 아이는 아마 하나의 도시를 선물로 받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거 주자들이 아주 작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것은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 습니다. 그 거주자들은 자치 능력을 지닌, 수백 개의 작은 자동 인형과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자신도 그와 비슷한 개미집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개미 연구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저는 생물학자로서 개미 연구를 제 직업의 일환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개미집들을 어항에 들여앉 히고 공기가 잘 통하는 판지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미집 앞에 있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을 느끼곤 합 니다. 마치 자신이 개미들의 전지전능한 신이 된 듯한 느낌 말입니 다. 내가 먹이를 빼앗아버리면, 제 개미들은 모두 죽어버릴 것입니 다. 문득 비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들면, 물 한 컵을 물뿌리개에 담아 그들의 도시 위에 뿌려주면 그뿐입니다.
개미집 안의 기온을 높여주고 싶으면, 개미집을 난방 장치 위에다 올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또 현미경으로 관찰하려고 그중의 한 마리를 납치하고 싶으면, 핀셋을 어항 안에 집어넣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개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해치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개미들은 자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말하자면 그 미물에 대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힘을 행사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작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습니다. 저는 그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떨까 요.... 아이들 역시 개미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따금 어떤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모래 도시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혹시 이게 우 리의 도시는 아닐까? 혹시 우리는 어떤 어항 안에서 갇혀 있고 다른 거대한 존재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무대 장치를 만들어 아담과 이브를 넣어놓고, 실험용 흰쥐를 관찰하 듯 '구경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은, 단지 갇혀 있던 어항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노아의 대홍수라는 것도 기껏해야 신이 조심성이 없거나 호 기심이 많아서 그저 물 한 컵 쏟은 걸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겠지요? 글쎄.... 개미집과 우리가 사 는 지구가 차이가 있다면, 개미들은 유리벽 안에 갇혀 있고 우리는 물리적인 힘, 즉 지구의 인력에 의해 갇혀 있다는 점뿐입니다. 제 개미들은 갇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어항의 주둥이를 막고 있 는 판자를 베어내고, 벌써 몇 마리는 도망을 쳤습니다. 우리는 어떻 습니까? 우리도 중력을 벗어나는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습니다. 어항 안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개미들을 상대로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관대하고 자비로우며 개미들을 지나치리만큼 소중히 여기는 신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습니다. 제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개미들에게 행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천 개의 개미집이 팔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만한 수의 아이들이 어린 신이 될 것입니다. 그 아이들 모두가 저 만큼 너그럽고 자비로울 수 있을까요?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나의 도시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이 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미집의 주인이 됨과 동시에, 개미들에게 먹이를 주고,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 주며, 장난으로 개미들을 죽이 지 않을 의무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일로 불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 히, 아주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문제입니다. 불만의 원인은 학교 성적일 수도 있고 부모의 꾸지람이 나 동무와의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몹시 화가 났을 때, 아이들은 '어린 신'의 의무를 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럴 때 아이들의 손아귀 에 있는 '피통치자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장난감 개미집을 규제하는 이 법안을 가결해 주십 사고 부탁드리는 것은, 개미에 대한 연민 때문도 아니고 개미에게도 동물로서의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한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 한 권리도 없습니다.
우리가 동물들을 키우고 돌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것들을 희생시켜 우리의 소비에 충당하려는 것이겠지요. 제 가 거대한 존재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있는 포로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구가 어느 날 어떤 무책임한 어린 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넘겨져도 괜찮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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