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초 쿠션` 힌트는 주차도장에서 나왔다
K뷰티 열풍 이끈 아모레퍼시픽의 `혁신 70년`

"에어쿠션 주세요." 화장품 브랜드를 불문하고 어느 화장품 매장에서든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사실 에어쿠션은 화장품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의 '쿠션 화장품'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많은 소비자들은 아모레퍼시픽이 아닌 다른 화장품 브랜드 매장에 가서도 에어쿠션을 찾고, 또 해당 브랜드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자사 쿠션 화장품에 해당하는 제품을 고객에게 내놓는다. 마치 코크(코카콜라), 포스트잇, 지프, 포클레인, 롤러블레이드처럼 특정 브랜드 제품명이 곧 상품의 보통 명칭처럼 쓰이게 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08년 '아이오페 에어쿠션'이라는 메이크업 제품을 출시해 쿠션 타입 메이크업 화장품 시장을 최초로 개척하는 혁신에 성공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에어쿠션을 최근 혁신 사례로 꼽으며 지난달 20일 100대 혁신기업 명단에 아모레퍼시픽을 28위로 올렸다. 또 포브스는 아모레퍼시픽을 '아시아 50대 기업(Asia's Fab 50 Companies)' 중 하나로 꼽으며 중국에서 보이고 있는 성장세에 주목했다. 보통 긴 역사를 지닌 기업은 혁신에 무뎌지기 마련인데 아모레퍼시픽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해 국내 화장품 기업으로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어떻게 아모레퍼시픽은 혁신에 성공했을까. 우선 연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직 문화가 이유로 꼽힌다.
◆ 연상적 사고-주차 확인 스탬프를 화장품에 적용
아모레퍼시픽 연구원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덧바를 수 있으면서 기존 메이크업을 보완해줄 수 있는 자외선 차단제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자외선 차단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게 돼 차단제를 지속적으로 바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된 메이크업 위에 튜브형이나 펌프형 화장품을 이용해 자외선 차단제를 덧입히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연구원들은 가지고 다니기 쉬우면서 바르기도 편리한 다른 제품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최경호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실장은 주차장에서 방법을 찾았다. 잉크가 흐르지 않고 균등하게 주차 티켓에 찍히는 주차 확인 스탬프 원리를 이용하면 언제든 동일한 양을 얼굴에 찍어 바를 수 있는 화장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스탬프 타입 자외선 차단제인 쿠션을 떠올린 혁신의 출발점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발상 과정을 연상적 사고(Associative thinking)로 설명한다. 천영준 연세대학교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연상적 사고는 어떤 형태의 유사성이나 주제의 근접성 등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추론 없이 직관적으로 비슷함을 떠올려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접근 방식"이라며 "이것이 가능하려면 창의적 발상과 상품 기획 절차가 잘 이어져야 하고, 조직 관성에 의해 아이디에이션(ideation·관념화)에 대한 저항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연구개발(R&D)센터인 기술연구원 내에 C-Lab(Cushion Laboratory·쿠션연구소), 아시안뷰티연구소 등 다양한 연구소를 두고 조직원들이 창의적 사고를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문제에서 답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답을 먼저 내놓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발상적 문제 해결 과정을 가질 정도로 조직 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이런 혁신을 통해 메이크업베이스와 파운데이션, 선크림 등 기초 메이크업 제품을 특수 스펀지 재질에 복합적으로 흡수시켜 팩트형 용기에 담아낸 제품 유형인 쿠션이 탄생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내 아이오페 에어쿠션, 라네즈 BB쿠션 등 13개 브랜드를 통해 출시된 쿠션 제품은 지난해 국내외에서 총 2600만개 넘게 팔리며(국내 2300만개·국외 300만개) 9000억여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 아시아 뷰티를 차별화하다-아시안뷰티연구소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아모레퍼시픽은 스스로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Asian Beauty Creator)'로 명명한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한 아시아 미(美)의 정수를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목표의 표현이다.
올해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안 뷰티 연구개발(R&D)을 강화하기 위해 '아시안뷰티연구소(ABL·Asian Beauty Laboratory)'를 기술연구원 내 신설 조직했다. 아시안뷰티연구소는 전 세계 고객의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아시안 뷰티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고객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전하는 창의적 연구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쿠션 제품은 아시안뷰티연구소를 통해 국가별 특징에 따라 더 세분화하고 있다.
한국·중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베트남·인도 여성의 피부색을 연구하고 국가별 환경 차이를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아시아 주요 15개 도시에 대한 심화 연구를 통해 연교차와 연 강수량 등 기후 요소를 바탕으로 4개 그룹으로 분류하고, 그룹별 맞춤 제품 개발과 함께 지역 맞춤형 인체적용시험·미용법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넓은 영토만큼 인구가 많은 중국은 화북·화동·화서·화남으로 권역을 더욱 세분해 환경에 따른 소비자 특징과 요구를 연구해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덕분에 2014년 전체 해외 매출액은 2013년 대비 52.8% 증가한 8325억원, 중국 시장 매출은 37.9% 증가한 4673억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