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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zlKnpfkUtNU&t=1218s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은 뻐꾸기.
뻐꾸기는 왜 우는가?
-애틋한 '부정(父情)' 실은 뻐꾹 소리
며칠 전부터 앞산 뒷산에서 특유한 음정으로 호호호호 울어대는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있으면
뻐꾹뻐꾹 하는 뻐꾸기 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동물의 세계 역시 인간 세계 못지않게 오묘하지만, 그중에서도 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게 바로 새들의 ‘탁란
(托卵)’이 아닐까 싶다. 이건 어찌 보면 엽기스럽기까지 하다.
탁란이란 새가 제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까서 그 둥지의 주인에게 제 새끼를 대신 키우게 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렇게 새끼를 위탁하는 새를 탁란조라고 하며, 본의 아니게 남의 새끼 키우기를 떠맡은 새를 가짜 어미 또는 숙주라고 부른다.
탁란조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 철새라는 점이고, 두견이과와 오리과 등 5과, 약 80종이 있다고 한다. 탁란조의
대표적인 새가 바로 뻐꾸기인데, 이들 탁란조는 자기 둥지를 짓지 않는다. 따라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잭 니콜슨의 영화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뻐꾹 소리는 사실 수컷 뻐꾸기의 울음 소리다. 수컷은 잘 드러난 장소에서 경쟁 상대인 다른 수컷 뻐꾸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운다. 그러나 종종 주변에 암컷이 없어도 운다.
탁란조는 자기 새끼를 기르기 위해 주로 텃새들의 둥우리를 이용하는데, 그 목록에 드는 것이 뱁새를 비롯해 멧새, 개개비, 검은딱새, 알락할미새 등 하나같이 덩치가 작은 새들이다. 그래서 탁란 과정에 더 극적인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5월 하순에서 8월 상순까지가 산란기인 뻐꾸기 암컷은 뱁새 같은 숙주 새가 둥지를 비운 틈에 둥지 속 알 한두 개를 부리로 밀어내 떨어뜨리고는 재빨리 자기 알을 둥지 속에 산란한다. 한 둥지에 알 한 개를 위탁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때 탁란조가 낳는 알이 정말 절묘하다. 숙주 새의 알과 색깔과 무늬가 흡사한 알을 낳는 것이다. 예컨대
두견이는 숙주인 휘파람새와 비슷한 초콜릿색 알을 낳고, 매사촌은 숙주인 쇠유리새와 비슷한 푸르스름한 알을
낳는다. 여러 종류의 숙주 새에게 탁란하는 뻐꾸기와 벙어리뻐꾸기는 같은 종도 숙주에 따라 서로 다른 색의 알을
낳으며, 두견이가 없는 지방에서는 벙어리뻐꾸기가 휘파람새의 둥우리에 초콜릿색의 알을 낳기도 한다. 가히
동물세계의 속임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개개비 둥지에 있는 알 중 제일 큰 것이 뻐꾸기 알이다.
속임수는 이뿐이 아니다.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암컷 뻐꾸기는 개개비 등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낳고는 둥지 주인이 돌아오면 포식자 새매가 내는 소리 같은 ‘킥-킥-킥’ 하는 소리를 낸다. 암컷 뻐꾸기가 내는 이 소리는
사실 새매의 소리와는 많이 다르다. 새매는 ‘키이-키이-키이’ 하고 운다.
그러나 소리 자체는 새매 소리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주변을 한 번 더 경계하는 편이
현명하기 때문에 개개비는 이 포식자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따라서 자기 둥지에 낯선 알이 들어와
있는 걸 미처 눈치 채지 못 하게 된다.
실제로 조사해본 결과, 개개비 등 숙주새가 낯선 알을 골라내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암컷 뻐꾸기가 이 속임수를 쓰는 경우 탁란 성공률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숙주새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이 야바위꾼의 숫법이 뻐꾸기로서는 탁란을 완성시키는 최후의 속임수인 셈이다.
이렇게 탁란새 암컷은 산란기에 12∼15개의 알을 여기저기 다른 둥지에다 낳는다. 그리고 그 새끼는 보통 숙주새의 알보다 며칠 먼저 알을 깨고 나와서는 숙주새의 알과 새끼를 밀어내 밖으로 떨어뜨리고 둥지를 독점한 후 숙주인
양엄마 새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다. 제 둥지에서 태어난 새끼를 받아들이는 건 어미새의 본능이다.
탁란새와 숙주새의 체급은 정말 차이가 나도 보통 나는 게 아니다. 여름 철새인 뻐꾸기 몸길이는 36㎝이고, 알은 3.5g이다. 반면, 텃새인 뱁새는 몸길이가 뻐꾸기의 1/3 정도인 13㎝의 아주 작은 새로, 몸무게는 1/20도 채 안
된다.
얼마 안 가서 새끼는 어미새의 덩치보다 훨씬 커져서, 양부모들은 그 가짜 새끼를 먹여살리기 위해 그야말로 뼈골
빠지게 쉴새없이 먹이를 물어다주는 참극이 벌어진다. 그리고 얼마 후면 뻐꾹뻐꾹 신호를 보내는 생모를 따라
양부모에게는 인사 한마디 하지 않고 둥지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둥지에 돌아온 숙주 어미새님은 텅 빈 둥지를
보고는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사람의 잣대로 볼 때 이런 폐륜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뻐꾸기 같은 탁란조를 배은망덕한 새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잣대일 뿐, 이 또한 자연의 오묘한 섭리니,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닐 듯싶다.
개개비가 새끼뻐꾸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 그렇다면 이 탁란조들은 어째서 자기 새끼를 스스로 키우지 않고 남의 손에 맡겨
키우게 하는 것일까? 그것도 교묘한 속임수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거기에는 탁란조에게도 피치 못 할 사정이 있다. 그걸 한번 알아보자.
먼저, 뻐꾸기과의 새들처럼 탁란을 하는 새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여름철새들 중에서 다른 철새들보다 서식지에
머무는 기간이 아주 짧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5월 초순에 찾아오는 뻐꾸기는 겨우 3개월만 머물다가 8월 초순이면 다시 남쪽지방으로 날아가야 한다. 추위와
먹이 부족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지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은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를 만한 시간이 도저히 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또 뻐꾸기의 경우에는 먼 거리를 이동하여 날아오는 철새여서 날아오는 도중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바람에 둥지를 만들 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탁란 외에 이 새들이 종족을 보존하며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탁란은 이들
새에게는 최후의 눈물겨운 생존전략인 셈이다.
탁란의 순기능도 있다. 탁란은 대부분 텃새나 일찍 찾아온 다른 여름철새들의 둥지를 이용함에 따라, 그들의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막아서 생태계에 적절한 조절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또 탁란을 당하는
새들의 입장에서는 제 새끼는 못 키우고 뼈골 빠지게 고생만 하는 셈이지만, 탁란조가 떠난 후 다시 알을 낳아
번식하게 되므로 개체수 유지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뻐꾸기가 비록 탁란을 해서 다른 새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그것은 일종의 '더불어 살아가기'라고 볼 수도 있다. 새들의 세계의 범아일체라고나 할까. 덩치 작은 새들이 십시일반으로 생물 다양성 유지에 기여하는
셈이다. 자연은 이처럼 오묘하고 조화롭다.
탁란조가 자기 새끼를 남에게 맡겼다고 어미나 아비새의 관심마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비 뻐꾸기는
틈만 나면 둥지 주변 나무 꼭대기 같은 데 앉아서 자신의 새끼가 남의 손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뻐꾹뻐꾹 자신의 울음소리를 새끼에게 들려주는데, 이것은 새끼에게 보모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나른한 늦은 봄날,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자주 들리는 애끊는 뻐꾸기 소리는 그러한 뻐꾸기의 기구한 부성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뻐꾸기가 우리 주변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석 달, 그리고 그 서정적인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간도
봄날처럼 덧없이 짧다. 뻐꾸기의 몸통은 청회색빛을 띠고, 배와 가슴팍에는 검은 가로줄들이 보이며, 눈은
주황색이다. 뻐꾹뻐꾹 울 때는 긴 꼬리를 연신 아래위로 까딱거린다. 그리고 날개가 몸통의 앞부분에 붙어 있어
하늘을 나는 모습만 봐도 뻐꾸기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숲에서 산에서 뻐꾹뻐꾹 저물도록 우는 뻐꾸기 소리. 그들의 눈물겨운 생존전략과 애끊는 모성애에도 불구하고
지난 25년간 개체수가 격감해 관심필요 종이 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뻐꾸기 역시 워즈워스의 시 속에서나 만나는 새가 될까 두렵다.
뻐꾸기에게
오오 쾌활한 새 손님이! 일찍이 들은 바 있는
그 소리 이제 듣고 나는 기뻐한다.
오오 뻐꾸기여! 너를 새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방황하는 소리라고 부를 것인가.
풀밭 위에 누워 듣고 있노라면
너의 두 갈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멀리서 또 가까이서 동시에 울려
언덕에서 언덕으로 건너가는 듯하다.
너는 골짜기를 향하여 햇빛과 꽃 이야기를
다만 재잘거리면서 말하고 있을 뿐이지만
내게 가져다주는 것은
꿈 많던 소년 시절의 이야기로다.
잘 와주셨다, 봄철의 귀염둥이여!
지금도 역시 너는 내게 있어서
새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하나의 목소리요, 하나의 신비로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 귀를 기울였던
그것과 같은 소리. 그 소리를 찾아서
나는 사방팔방을 둘러보았었지.
숲과 나무와 그리고 하늘을.
너를 찾느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숲과 풀밭을 헤매었었다.
너는 언제나 희망이었고 사랑이었다.
언제나 그리움이었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네 소리를 들을 수 있구나.
들판에 누워 귀를 기울이면
어느 덧 꿈 많고 행복스러웠던 소년시절이
나에게 다시금 되돌아온다.
오오 행복스러운 새여!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이 대지가
다시금 멋진 꿈나라가 되고
네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되는 듯하구나.
-워즈워스('세계의 명시' 중에서)
뻐꾸기에 부쳐(To the Cuckoo)
【시 전문】 -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오, 유쾌한 새 손(客)이여!
예 듣고 지금 또 들으니
내 마음 기쁘다.
오, 뻐꾸기여!
내 너를 '새'라 부르랴,
헤매는 '소리'라 부르랴?
풀밭에 누워서
거푸 우는 네 소릴 듣는다.
멀고도 가까운 듯
이 산 저 산 옮아가는구나.
골짜기에겐 한갓
햇빛과 꽃 얘기로 들릴 테지만
너는 내게 실어다 준다.
꿈 많은 시절의 얘기를
정말이지 잘 왔구나
봄의 귀염둥이여!
상기도 너는 내게
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하나의 목소리요, 수수께끼.
학교 시절에 귀 기울였던
바로 그 소리,
숲 속과 나무와 하늘을
몇 번이고 바라보게 했던
바로 그 울음 소리
너를 찾으려
숲 속과 풀밭을
얼마나 헤매었던가.
너는 여전히 내가 그리는
소망이요 사랑이었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들판에 누워
네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일라치면
황금빛 옛 시절이 돌아온다.
오, 축복받은 새여!
우리가 발 디딘
이 땅이 다시
꿈 같은 선경(仙境)처럼 보이는구나.
네게 어울리는 집인 양.'
【원문】
To the Cuckoo
O blithe New-comer! I have heard,
I hear thee and rejoice.
O Cuckoo! shall I call thee Bird,
Or but a wandering Voice?
While I am lying on the grass
Thy twofold shout I hear,
From hill to hill it seems to pass,
At once far off, and near.
Though babbling only to the Vale,
Of sunshine and of flowers,
Thou bringest unto me a tale
Of visionary hours.
Thrice welcome, darling of the Spring!
Even yet thou art to me
No bird, but an invisible thing,
A voice, a mystery;
The same whom in my school-boy days
I listened to; that Cry
Which made me look a thousand ways
In bush, and tree, and sky.
To seek thee did I often rove
Through woods and on the green;
And thou wert still a hope, a love;
Still longed for, never seen.
And I can listen to thee yet;
Can lie upon the plain
And listen, till I do beget
That golden time again.
O blessed Bird! the earth we pace
Again appears to be
An unsubstantial, faery place;
That is fit home for Thee!
【시어풀이】
<유쾌한>: 청각으로부터 유발되는 시적화자의 심리적 반응. 맑고 명랑한 느낌, 반가움.
<새 손>: 새봄을 맞아 처음 듣는 소리. 반가움, 그리움.
<‘새'로 부름의 의미>: 다른 새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가 되며, 시적 화자의 심리적 의미가 투영되지 않은 상태의
'객관적 대상물로서의 새'가 된다는 의미임
<헤매는 소리>: '헤매는' 뻐꾸기 소리는 화자의 꿈과 소망, 동경을 유발시키는 대상이며, 동시에 화자와 심리적
공감을 같이 하는 소재임. 화자의 꿈, 소망, 동경의 의미가 투영.
<멀고도 가까운 듯>: '묘한 거리감'의 표현
<골짜기, 햇빛, 꽃>: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인 사물'로서, 시적 화자의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은 상태
<꿈 많은>: 현재보다 더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과거를 회상하게 해 줌
<귀염둥이여>: 의인화, 예찬적 성격, 태도
<상기도>: 아직도
<수수께끼>: 뻐꾸기로부터 받는 인상: 신비감, 경이감(驚異感), 미지(未知)의 세계. 곧, 자신의 꿈의 세계.
<귀 기울였던>: 자기 '내면적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은 의미임
<하늘을 몇 번이고 바라보게 했던>: 그리움, 동경, 소망, 지향성
<바로 그 (소리)>: 변함없는 소리임을 강조
<여전히 내가 그리는 소망이요 사랑>: 뻐꾸기 소리의 궁극적 의미: 사랑, 소망.
<황금빛 옛 시절>: 학교 시절, 추상적인 시간. 꿈 많던 젊은 시절의 시각화
<선경(仙境)>: 함축성 - 열정, 정열, 희망, 소망, 그리움. 꿈 많던 젊은 시절의 의미를 담고 있음
【개관】
▶갈래: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낭만시, 번역시
▶운율: 내재율(시적 화자의 감정)
▶제재(題材): 뻐꾸기 '울음 소리'
▶성격 및 어조(語調): 회상적, 예찬적, 낭만적, 주정적(主情的), 전원적(田園的)
▶시어: 평이하고 소박한 시어
▶심상: 청각적 영상(독자의 상상력 자극)
▶시점: 1인칭 시점(뻐꾸기와 대화를 건네는 형식)
▶시상의 전개: 현재와 과거회상의 교체(交替) -뻐꾸기 울음소리는 시적 자아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물.
▶주제(主題)
- 꿈과 소망에 대한 희구(希求)
- 뻐꾸기와의 교감(交感)
- 자연과의 교감(交感)과 그 신비로움
- 옛 시절에 대한 회상(回想)
▶창작연대: 1802년 3월
【표현상(表現上)의 특징】
- 시적 화자에게 뻐꾸기는 의미있으며 신비로운 대상(존재)으로 표현
- 영탄법의 사용으로 대상에 대한 예찬적 태도를 보임
- 주로 의인법, 은유법, 직유법을 사용함
【구성】
▶제1연: 뻐꾸기를 보는 인상(기쁨)
- 새: 객관적 대상
- 소리: 주관적 의미 형상화
▶제2연: 뻐꾸기 울음소리 들음
▶제3연: 과거를 생각하게 하는 뻐꾸기
- 대조(對照)의 표현 효과
▶제4연: 뻐꾸기 소리의 의미 예찬
▶제5연: 소망과 꿈의 소리 회상
▶제6연: 젊은 시절 회상과 현재
▶제7연: 예찬(禮讚) - 현실이 선경으로 보임
(1) 고양(高揚)된 현실
(2) 자연(뻐꾸기)과 인간(우리)의 공존
(3) 물아일체(物我一體)
【감상】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시. 1802년 3월에 씌어진 작품으로 『2권의
시집(Poems in Two Volumes)』(1807)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소박한 시어로 노래함으로써 영국 낭만주의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윌리엄
워즈워스의 면모를 잘 드러내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柳宗鎬)의 번역시로
널리 알려졌다.
전 7연으로 이루어진 낭만적 서정시로서, 어른이 된 시인이 신비로운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고는 꿈 많던 소년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시의 제재는 뻐꾸기(의 울음소리)이며, 주제는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과 동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연은 함축성을 지닌 표현으로, 아직도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뻐꾸기를 매개로 해서 삭막한 현실
(어른)의 세계를 벗어나 꿈과 소망을 찾아헤매던 학창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고픈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들판에 누워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기뻐하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 한 인생에
대한 꿈과 기대가 상실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낭만주의 시의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전 7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뻐꾸기의 출현으로 시작하고 작중 화자는 풀밭에 누워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화자에게 뻐꾸기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작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낭만적 지향의 대상이기 때문에 뻐꾸기는 화자에게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학창시절을 회상하게 해 준다.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수수께끼 같은 소리는 자신의 소망과 꿈을 찾아 헤매는 화자의 모습과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 화자는 뻐꾸기, 곧 자신의 소망과 꿈을 찾아 헤맨다. 뻐꾸기의 상징적 의미가 이와 같은 것이므로
그것을 찾아 헤매던 학창시절은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회상된다. 여전히 그 때와 같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한
뻐꾸기는 현재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까지도 꿈처럼 아름답게 여겨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뻐꾸기는 자연을 대표하는 상징이며, 시인은 뻐꾸기를 청자로 설정하여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한다. 시인은 들판에 누워 봄의 뻐꾸기 노래 소리를 듣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학창시절,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사랑과
이상을 상상하게 하며 희망을 주던 뻐꾸기를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어른이 된
지금도 현실을 이상으로 변형시키고 긍정하게 하는 힘을 주고 있다고 찬미한다.
이렇게 자신이 동경하던 희망과 사랑이 가득한 이상향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관심을 이끌어 찾아 나서게 하고 추구하게 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전형적인 낭만시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자연은 현실에서 지친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이자 인간에게 도덕적인 지혜를 알려주는 최고의 안내자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어 전형적인 낭만적 자연시에 속한다.
1, 2연에서 시인은 예전에 들었던 뻐꾸기 소리를 다시 듣게 되어 반가운 심정을 전달한다. 3연에서는 그 노래 소리가 과거의 꿈과 같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자신에게 뻐꾸기는 그저 하나의 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존재라고 말한다. 이어 4, 5, 6연에서 학창시절, 그 노래 소리는 시인에게 하나의 사랑 혹은 하나의 희망과 같이
그리운 존재여서 언제나 그것을 찾으러 다녔으나 결코 눈에 보이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7, 8연에서 시인은 어른이 된 지금도 뻐꾸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며, 그 소리가
과거의 찬란하던 시절을 기억나게 해주어 그 새의 존재로 인해 이 세계를 이상향과 같은 아름다운 곳으로 보게
된다고 찬미한다. 여기서 워즈워스는 자연은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에게는 언제나 열려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을 다시 보게 해주고 변형하게 하는 적극적인 힘을 지녔다고 그 가치를 예찬한다.
뻐꾸기와 새매는 깃털 무늬까지 매우 비슷하다. (Wiki)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