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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 부강이 낙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순종이 낙원.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어달릴 때에 행악자 둘이 함께 매어달렸습니다. 그래서 한 강도는 예수님을 보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누가복음 23:39)고 하며 예수님을 자신들과 같은 동급 죄인으로 취급해 비웃었으나, 다른 한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누가복음 23:40~42)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하셨습니다.
동일한 강도임에도 불구하고 한 강도는 예수님의 참혹한 죽음에 대해 조롱하였으나 다른 한 강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아들 곧 낙원의 실체로 알고 공경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두 강도들이 생각는 낙원관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을 비웃은 강도의 낙원관은, 높은 관직이나 풍성한 재물들로 호의호식하고 음란방탕을 즐기는 일들을 낙원 같은 삶으로 취급하였으나, 다른 한 강도는 예수님이 비록 처참한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렸을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상태라면 그것을 낙원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이런 낙원관을 지닌 강도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명기 10:13) 하신 것처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을 때가 고통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불법불의로는 아무리 왕후장상의 직위에 올라 쾌재를 부르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참옥한 지옥 형벌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자신들의 말씀을 거역하였을 때가 가장 큰 고통인 것처럼, 하나님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말씀을 불신해 거역할 때가 가장 큰 진노를 느낍니다. 사람의 원수가 차라리 자신과 아무런 은원 관계가 없는 남남이라면 쉽게 의법 처리해 버릴 수 있지만, 그 원수가 자신의 은혜를 입은 처·자식들이거나 부하직원들이거나 동족의 피를 지닌 종북 반역 세력들이면 총검으로 죽여서도 그 통한이 씻겨지지 않아 결국 참혹한 지옥 불구덩이 던져 넣어 영원히 고통당하게 하여야만 비로소 그 통한이 씻겨집니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미가 7:6) 하셨고 또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편 41:9) 하셨고 또,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찐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찐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시편 55:12~13) 하심 같이, 사람이 부모 중에도 으뜸 부모가 되시고 친구 중에도 참된 친구가 되시고 형제 중에도 맏형이 되신 예수님을 원수 취급해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죗값 때문에 이처럼 사람들의 원수가 거의 다 자신과 가까운 집안 식구나 측근이나 동족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품까지 닮게 하시려고 자신의 성품이 담긴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하신 까닭은,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의 외형적인 형상만 닮은 상태에서 하나님처럼 신기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런 상태의 사람들이란 한낱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천지처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세기 1:2) 하신 것처럼, 사람의 심령이 혼돈과 공허로 조성되어 낙원의 실체가 되신 하나님(말씀)과 함께 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품과 공의가 담겨 있는 말씀을 주셔서 그것을 순종하는 일들로 그들의 성품과 형질을 하나님처럼 거룩하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도 자기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외형적인 형태만 닮은 것으로는 만족해 하시지 않고, 자신들의 내면의 성품마저 닮도록 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말씀으로 애써 권면합니다. 즉 자신이 일어서 걷는 것처럼 자식들도 일어서 걷기를 바라고, 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이웃 사람들과 상생협력하는 것처럼 자식들도 그러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이 아내와 함께 의좋게 살아가는 것처럼 자녀들도 자신들의 아내와 남편과 의좋게 살길 바라며, 자신이 나라의 국법을 존중해 충직한 국민이 된 것처럼 자녀들도 국법과 국민들에게 충직하길 바라며, 자신이 나라의 주적들을 대적해 목숨 바쳐 싸운 것처럼 자녀들도 나라의 주적들을 대적해 싸우길 바랍니다.
이런 뜻에서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모본을 보입니다. 그런데도 자식들이 이런 모본에서 벗어나 달리 행동할 때에는, 반드시 세상 만민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문재인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자들이 됩니다. 이런 반역적 괴물들이 되기 전에 어렸을 때에 저들의 악한 기운을 뿌리 뽑아 자라지 못하도록 엄한 꾸중과 채찍을 가하는 것이 부모님의 몫입니다. 부모님의 이런 수고를 통해 자식들이 말을 잘 들으면, 그 때에는 부모님들이 그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고통과 애환을 씻은듯이 잊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자식들이 부모님의 이런 권면을 무시해 반항하게 되면, 그 때에는 부모님도 하나님과 같은 진노의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 봅니다.
하나님은 세상 부모들에게 자녀들의 행태를 통해 그들을 교육합니다. 즉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대로 잘 양육되면 부모님의 생애에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이 되지만, 부모님의 말씀대로 성장치 못하고 사회와 이웃들에게 해악을 끼치게 되면 부모님의 오장육부가 갈라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언행으로 부모님 자신들이 하나님께 대한 행동들이 그러하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거울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부모님들은 일순간이라도 자식들의 언행에 대해 안심할 수가 없어서 주야장천 채찍과 훈계와 권면의 말씀으로 그들을 돌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부모님들은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자녀들의 불효불충을 모두 제 팔자로 취급해 단념하고, 오로지 그들의 육적인 부강만 갖도록 하기 위해 허리가 휠 정도로 고생합니다.
즉 자녀들이 먹고 마시고 입고 거주할 문제만 해결되면, 그들이 무슨 생각과 꿈과 마음 씀씀이를 지니든 상관하지 않다가, 막상 자녀들이 촛불 반역 집단에 뛰어들어가 국가와 사회와 국민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을 저지르게 되면, 그때에는 부모님들이 동분서주하며 자신들의 안일한 삶, 곧 부귀영화와 음란방탕한 쾌락을 좇았든 지난날의 삶을 비로소 후회하게 됩니다. 즉 자녀들이 김일성 일가들의 총포탄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먼저 부모님 자신들이 지금껏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짐승들처럼 육적인 부강과 쾌락만 탐닉하였던 죗값 때문으로 취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자체가 되신 말씀은 사랑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소유물들만 탐닉한 도적들이 된 죄악 때문에 자식들이 이처럼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반역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국법에 충성치 못한 죗값으로 인해 자신에게도 말 잘 안 듣는 불효불충한 아내와 자녀와 제자와 부하직원과 청소년들이 태어나 반국가, 반사회, 반인륜의 암적 존재들, 곧 촛불 반역 세력들 같은 자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들은 육적인 부강만을 탐하여 갖고 음란방탕한 쾌락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행복과 성공으로 취급합니다. 하나님(부모님)의 말씀과 국법을 거역한 망나니들은 오직 지옥 같은 세상(나라)만 만듭니다. 이 시대 동북아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에 탄생된 반역자들이 바로 한반도 거민들을 천갈레 만갈레 찢고 있습니다. 이들은 구중궁궐을 만들어 거하며 온갖 종류의 내시 같은 아첨배들과 탐관오리 같은 정치인들과 이적행위자들을 돌보며 그들로 하여금 사리사욕과 이념투쟁으로 국가와 사회를 혼돈 속으로 몰아 넣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9) 하셨고 또,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잠언 19:13~14) 하심 같이, 그 나라의 아내된 공직자들은 나라와 사회 구성원의 대표와도 같은 통치 세력들이며, 촛불 반역 집회의 도구가 된 청소년들은 그들 행위의 보응과도 같은 독충들로 행세합니다. 사람이 육적인 부강으로 낙원 같은 요새에서 경국지색의 미녀들로부터 허다한 자녀들을 낳고 키울지라도 그 곳은 참혹한 전장터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구더기들이 됩니다.
이 시대의 부모 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국법에 대해서는 직무유기죄와 같은 불효불충한 죄악을 마구 저지르면서도 자기 집 거실과 정원만은 아방궁처럼 꾸며 만듭니다. 이런 짓들에만 올인하기 때문에 저들에게는 말 잘듣는 아내와 자녀들이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의 유명 인사들 중 어느 누가 그 집 규모와 화려함에 걸맞는 정절 있는 아내와 충효의 자식들을 양육해 거느린 분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슬기로운 아내와 충효로운 자녀들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유명인들의 그 잘난 지혜와 능력들로 찾아 구한 낙원(천국)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뿐인 지옥 같은 장소일 뿐, 충효와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이 강 같이 흐르는 참된 낙원(천국)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찰거머리 같은 아내와 미련한 자식들과 어울려 살벌한 약육강식 투쟁을 마음껏 펼쳐 즐길 수 있는 화려찬란하고 드넓은 무대를 만든 것이 저들의 치적일 뿐, 하나님의 사랑(말씀)을 받아들여 순종할 수 있는 슬기로운 아내와 그로부터 양육 받은 충효로운 자녀들이 두려움 없이 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낙원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는 자들입니다. 남편의 진정한 사랑이 되는 말씀을 받아들여 순종하는 아내가 없고, 부모님의 진정한 사랑(재산)이 가득 담긴 말씀을 순종해 지키려는 자식들이 없고, 오직 남의 소유물과 국가(남편)의 국고(재물)만 악착 같이 챙기려는 찰거머리 아내(공직자)들과 또 부모님(나라)의 재산(권력)만 챙기려는 찰거머리 촛불 종북 반역 세력들 같은 자식들만 태어나 남편과 부모님의 등골(국고)만 뽑아 먹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이스라엘 민족에게 속은 것으로 만족하실 뿐, 세상 모든 인간들의 철부지 어리석은 간구에 또 속아 저들에게 가나안 복지 같은 재물과 권력으로 먼저 배불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교인들은 끝끝내 자신들만은 결코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배반하지 않을 터이니 더욱 물질적인 축복과 부귀영화부터 먼저 달라고 주야장천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들로 저들의 인성이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혼돈과 공허와 흑암 뿐인 재물과 권력으로 옷입혀 주어도 그들은 예외 없이 사단의 길로 치닫습니다. 이때문에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내려 보내시어 자신의 자녀(인간) 사랑이 이제부터는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길부터 먼저 오르게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세아 2:10~15)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하심 같이,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신 증거가 바로 예수님을 보내신 일이며, 예수님의 언행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나타낸 일입니다. 예수님은 행동으로 말씀을 증거하셨기 때문에 그의 교훈은 말씀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순종하여야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의 발자취인 그의 말씀은 지키고 실행치 않습니다. 말씀의 유일한 증거는 오직 행동일 뿐, 말씀만 교묘히 풀어 해석하는 짓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켜 순종치 않고 해석만 하는 자들은 결코 자신의 아들들로 세상에서도 인정해 주시지 않거니와 또 장차 최종 심판 때에도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만 사람들을 쉽게 사랑하였다는 지적과 비판을 없에기 위해 결국 그 말씀을 증명하는 사랑의 증거로 자신의 하나 뿐인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들이 저지른 추악한 죗값의 대속물이 되도록 내 주었으니, 이게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산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예수님처럼 말과 행동이 일치한 신앙생활을 하여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그들을 세상에서 자기의 자녀들로 인정해 주실 수 있을 뿐, 그렇지 않으면 모두다 거짓말하는 자들로 취급하여 어두운 곳에서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 악인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도록 버려둡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이 사랑(말씀)을 받아 실행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 잘듣는 통치자와 아내와 자녀들과 제자들과 부하직원들과 국민들을 저들에게 주어 낙원 같은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되게 하실 뿐,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육적인 부강들로는 아내와 자식들과 제자들과 부하직원들과 국민들과 동족과 이웃들과 이를 악물고 싸우는 약육강식의 병기들이 되게 합니다. 궁궐 속에서 살벌한 투쟁을 하며 사느니보다 차라리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1)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비로소 하나님이 실제적인 낙원을 펼쳐보여 주십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말씀을 순종해 지키는 낙원의 거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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