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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는 축구 선수의 기본이다. 밸런스라던가 순발력... 축구의 모든 면이 다 스피드와 연결된다. - 누군가 김병지 선수에 대해 프로선수로서의 마인드를 언급하며 예전에는 몸 관리 때문에 콜라도 안 마시더라는 얘기를 한 적 있다. 요즘은 어떻게 체력관리 하나. 음식을 특별히 가리지는 않고 좋아하는 음식은 골고루 잘 먹는게 몸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체력관리라고 해도 이제는 다른게 없고, 어떻게 보면 마음가짐의 문제다. 일단 술담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체중의 변화도 없다. 올해로 프로 13년차인데, 13년 동안 단 1kg의 변화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골키퍼의 정년, 은퇴시기는 나이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라고 본다. 예를 들어 스피드가 떨어지고 근력이 떨어진다면 뛰고 싶어도 뛸 수 없다. 그만큼 체력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까 언급된 스피드가 중요하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피드에는 순발력, 점프력이 다 포함되는데, 100m 기록이 13초가 넘어가면 사실상 은퇴할 때가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12초 왔다갔다 하니까 앞으로 관리만 잘 하면 몇 년은 더 현역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웃음). - 항상 느끼는 것인데 팬서비스가 정말 뛰어난 선수인 것 같다. 팬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제대로 나누고 있는 선수라고나 할까. 선수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고, 팬들의 성원이 있을 때 자연스레 실력향상으로 이어진다. 경기장에서 많은 팬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는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않은 동작과 움직임이 나온다.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이다(웃음). 팬들의 사랑이 느껴지면 120% 혹은 150%, 내가 갖고 있는 그 이상의 실력이 나온다. 외부환경에서부터 느껴지는 체력적, 정신적인 상승이 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꽁지머리, 튀는 염색 등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 왔는데, 본인에게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어떤 의미인가. 팬서비스 차원이기도 했고, 나를 알리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단지 외형적인 부분에서만 어필하게 될까봐 많은 생각을 했다. 95년에는 염색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라 하면 ‘불량소년’의 이미지로 찍히던 때였다. 그런 부분을 감수하고 튀는 이미지를 가진 상태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모험이었다. 내 플레이를 보고 긍정이냐 부정이냐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팬들의 몫이다. 잘 했을 때는 찬사가 오겠지만 못 했을 때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외형적인 것이 아닌 경기장에서의 모습을 보고 평가를 받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 도전을 던진 것이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키고 싶었고… 모두 다 ‘도전’이라는 큰 틀로 이해하면 정확할 것이다. |
김도훈 선수. 일단 정확한 선수를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든데, 김도훈이 그런 선수 중 한명이다. 사실 ‘막 때리는’ 선수들은 별로 무섭지 않다. 강하든 약하든 골대 안을 향해서 슈팅하는 선수가 어렵다. 간혹 수비수 맞고 굴절되거나 튕겨나가기도 하지만. - 가장 막기 어려운 볼도 같은 맥락이겠다. 정확히 때리는건 상관없는데 사람 맞고 굴절되거나 예전처럼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잔디에서 불규칙하게 바운드 되는 볼들이 막기 어렵다. 그런데 매 시즌을 보면 그런 골을 꼭 한두 번씩 먹는다(웃음). 나 뿐 아니라 모든 골키퍼들의 공통사항인데, 예측이 어려운 볼이기 때문에 막기 어렵다. - 김병지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 결정적인 것들은 잘 막아내는데 한두 번씩 어이없이 골을 허용할 때가 있다. 사실 그런 평가 자체가 내가 그만큼 인정 받는다는 의미 아닐까. 관심의 대상이 되니까 논쟁의 여지가 생기는 부분들이다. 사실 프로 입단 초기에는 내가 감히 논쟁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고 ‘어, 어린애가 잘 하네?’ 정도의 의미가 더 강했다. 그런데 이 자리까지 오르면서 소위 ‘뉴스메이커’가 되니까 내가 한번 실수하면 ‘김병지가 왜 저러지’라는 평가로 바뀌었다. 잘 했을 때는 ‘역시’, 못 했을 때는 ‘왜 저러지’(웃음). 인식의 차이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식의 평가는 사실 기분 좋은 것 아닌가 싶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면. 아무래도 98년 헤딩골 넣었던 경기(플레이오프 2차전 울산:포항)다. 스포츠를 드라마로 만든다면 그보다 극적인 드라마가 있었을까 싶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패하고 2차전에서 인저리타임에 골키퍼가 골 넣어서 무승부 만들고, 다시 승부차기 들어갔는데 승부차기까지 막아내면서 이긴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도 쓸 수 없는 드라마다(웃음).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드라마니까 가능하지’라고 했을 경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경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불가능한... - 사실 그 해 플레이오프 1, 2차전은 모두 명승부였다. 포항 입장에서는 1차전이 극적인 드라마였다. 뛰는 우리도 진짜 재미있었다. 당시 울산현대 소속이었는데, 우리가 계속 끌려다니다가 후반 45분에 2-2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저리타임에 다시 역전골 내주면서 3-2로 졌다. 2차전에서는 우리팀이 먼저 먹고 다시 넣고, 또 인저리타임에 골 넣고 승부차기까지 갔으니까 참 대단했던 플레이오프였다. - 98년 월드컵 네덜란드전도 나름대로 기억에 남을 듯 한데. 그런데 그건 어쩔 수 없이 먹은 골들이었다. 실수했던 경기들이 아무래도 기억에 남긴 하지만, 그런 경기들은 무수히 많아서 그냥 넘어간다. 오히려 아쉽게 느껴지는 경기들은 내가 실수했던 경기들이 아니라 ‘못 뛰어서’ 지켜보기만 했던 경기들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이 그랬고. 2002년에는 후배 선수들이 잘 해줬기 때문에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했다는 점에서 기쁜 마음과 내가 뛰지 못했던 경기들이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반반이다. |
대표팀 발탁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교체가 자연스럽지 못한 듯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대표팀이 한국 축구의 비전을 제시하는 팀은 맞다. 하지만 세대교체라는건 억지로 끼워 맞춰서 되는게 아니다. 실력으로 냉정하게 평가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 솔직히 아쉽다. 실력보다 비전에 다소 치우쳐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 이운재(수원)를 의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결국 앞서 말했던 세대교체와 같은 맥락이다. 내가 다시 대표팀에 들어가서 혹 벤치에 앉아있게 된다면, 나는 괜찮지만 오히려 주위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는 자체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이건 실력 자체를 논하는 문제와 다른 것이다. 결국 대표팀의 방향은 대의를 따라 가는 것이니까… 나는 지금도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가 이운재 선수보다 은퇴를 더 늦게 할 것 같다. -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후배 골키퍼가 있다면. 기대하는 선수들은 있지만 그 기대와 5년 후의 실제 모습과는 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감히 내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 사실 내가 프로에 입단할 때만 해도 주위에 92년 올림픽 대표 출신의 걸출한 선수들, 쟁쟁한 골키퍼들이 무척 많았다. 나는 고졸인데다 무명이었고,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인정을 받고 나름대로 대접 받고 있지 않은가. 지금 최고로 평가 받는 이운재만 보더라도 그 또래였던 서동명(울산)과 비교해 볼 때 주목을 덜 받았다.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멤버에서는 서동명이 월등한 평가를 받았었고. 그 이후로 김용대(부산)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김영광(전남)이 더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 아래 차기석(서울체고)이 또 주목을 받고 있고… 이런 흐름에 있어서 누가 더 기대된다, 아니다 라는 답이 없다.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다른 인물이 어떻게 새롭게 등장할지 모르는 것이다. 다만 현재 대표팀의 계보를 잇는 골키퍼들이 유리한 점이 있다면, 다른 선수들보다 눈에 띌 기회라는 것이 좀더 자주 주어진다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대표팀 출신 골키퍼들이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진정한 평가를 받고 싶다면 일단 프로무대에서 성공을 해야만 인정 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경기에서 안 뛰는데 대표팀에 있다는건 아이러니다. 프로팀에서 인정을 받아 대표팀에 뽑히고, 대표팀에서 잘 한 선수들이 또 프로축구의 인기를 살리고… 그게 맞는 그림 아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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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은퇴 후 구단주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는데 참 독특하다 생각했다. 김병지 선수가 꿈꾸는 구단은 어떤 구단인가? 내가 구단을 살 수 있을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구단 운영에 참여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돈도 모은다. 물론 구단을 운영하려면 그에 맞는 조건을 갖춰야 될 테니 준비할 것이 아주 많다. 일단은 흑자 구단을 만들고 싶다. 한국 대부분의 축구팀들이 기업에 속해있고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프로로의 진화는 덜 되지 않았나 싶다. 프로축구팀이라면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그리지 않았지만 이익을 내는 구단을 만들고 싶다. 한국 축구도 세계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어느 시점이 되면 흑자 구단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지금은 그런 분위기 익어가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마케팅도 좀더 차별화하고, 선수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해주는 구단을 만들고 싶다. - 남은 시즌에 대한 각오나 목표가 있다면. K리그에서 뛰는 동안 최종 목표는 500경기 출장을 기록하는 것이다. 올시즌 포항과 3년 계약을 했는데, 팀을 위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500경기 출장을 위해서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목표를 위해서는 특별히 부상을 조심해야 될 것이고, 부수적인 것들은 다 성적으로 나타날 것이라 기대한다. 올시즌만 본다면 일단 절반의 우승을 성취했으니 후기리그도 잘 치러서 또 우승을 일궈냈으면 하는 것이다. 플레이오프 치르지 않고 바로 통합 우승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이기타나 칠라베르트 모두 두 자리수 골기록이 있는데, 500경기까지 뛰는 동안 김병지 선수도 골기록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웃음) 지금까지 3골을 기록 중이다. 사실 내 실력으로는 골을 넣기 어려울 뿐더러 골에 대한 목표도 정하지 않았다(웃음). 페널티킥이나 프리킥 기회라도 생기면 넣게 되는 것인데 혹 그렇게라도 맡겨준다면 또 부단한 연습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 득점이다. 골키퍼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상황은 그 정도이고, 솔직히 98년 헤딩골은 기적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 해 리그 방식이 무승부면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렸는데, 페널티킥을 나한테 맡겨주고 밀어준 적이 있기는 했다. 당시에 내가 12개를 차서 11개를 성공시켰다. 프로 경기 뛰면서 내가 골 넣을 확률이 가장 높았던 시절이었다(웃음). - 좀 더 멀리 바라본 계획이나 목표라면. 나이 들면서 언제부턴가 ‘뭔가 준비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해왔다. 일단 은퇴 후에는 유학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어학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선수 권리와 이익을 제대로 찾고 보호해주는 일도 하고 싶고, 축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깊숙이 많은 영역에서 축구를 활용한 일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내가 받은 많은 사랑을 다시 팬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사회 공익 프로그램에도 몇 번 참가했지만, 그럴 때마다 도와주고 베푸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낀다. - 긴 시간 인터뷰 감사 드린다. |
=인터뷰첫번째글은 제 아이디로 검색하시거나 제목에 김병지를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첫댓글 진짜 그때 포항과의 플옵은 대박이었지요.. 김병지 선수 나와서 진짜 골 넣을 줄은.. 김현석 선수의 크로스였던거 같은데.. ^^ .. 프리킥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