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79feDtl96Wg?si=O1F3VR-qcHvB-Zrg
Schumann: Introduktion, Scherzo und Finale ∙ hr-Sinfonieorchester ∙ Paavo Järvi
슈만의 교향곡 작품 배경
슈만은 6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 중 4곡은 제1번에서 4번까지 일련번호가 붙여져 있다. 나머지 2곡 가운데 하나는 작은 교향곡이라는 의미에서 "Symphonette" 또는 "Sinfonietta"라고 명명한 마장조 곡(Op.52)인데, 이 작품은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로 곡명을 변경했고, 나머지 한 곡은 1, 2악장과 마지막 악장의 스케치만 남아있는 미완성의 사단조 교향곡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의 교향곡들은 초연 당시 그 어떤 작품도 청중들의 반응이 신통치 못했다는 것이다.
슈만의 교향곡 가운데 최초의 것은 '사단조 교향곡'이다. 곡이 완성되기 전에 고향 츠비카우(Zwikau)에서 연주기회를 가진 슈만은 우선 제1악장을 연주했다(이 곡은 일명 "츠비카우 교향곡"이라 불리워진다). 그러나 당시, 청중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고, 작곡가 자신도 관현악법에 대한 자신의 취약점을 인식해서인지 이후 교향곡 작곡에서 손을 뗀다.
슈만이 교향곡에 다시 돌아온 시기는 1841년이다. 이 해에 두 곡의 교향곡 제1번(내림 나장조, Op.38)과 제4번(라단조, Op.120)의 첫 번째 버전이 작곡된 것이다. 그리고 비록 약 55마디 정도의 스케치만 만들어졌지만 '다단조 교향곡'이 시도되었고, '서곡, 스케르조와 피날레(마장조, Op. 38)‘ 역시 이 해의 작품이기 때문에 1841년은 "교향곡의 해"로 일컬어지고 있다.
슈만이 교향곡 작곡에 다시 정열을 쏟게 된 가장 큰 계기는 1838년에 빈을 방문 했을 때(1838년 9월말부터 1839년 4월까지), 슈베르트의 동생으로부터 얻은 슈베르트의 '다장조 교향곡'("그레이트 교향곡")에서 받은 감동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1840년 9월에 클라라와 결혼한 이후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비롯된 정신적 안정감 역시 그의 창작의지를 뒷받침 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교향곡으로 작곡되었지만 교향곡에서 제외되어 관현악곡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작품 마장조(Op.52)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는 곡 전체에서 교향곡으로서의 드라마도 탄탄하면서도 화려하게 그려 나갔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슈리히트 (Schuricht, Carl, 1880.7.3~1967.1.7)
단치히 출생. 아버지는 오르간 제작자.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훈버딩크 및 루돌프에게 배우고, 다시 라이프치히에서 레거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후 마인츠·도르트문트·비스바덴 등지에서 지휘자로 활약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스를 피하여 스위스에 체재하였는데, 당시 유럽 여러 곳에서 초청받아 명지휘자로서 이름을 떨쳤다.
특히 J.브루크너, G.말러, R.슈트라우스 등의 작품의 명지휘자로 알려졌다
글쓴이 : 판테온[홍형국]
https://youtu.be/_dGaIO1rxPc?si=3_Fu_gUMfPP5WQmc
Schumann: Ouverture, Scherzo and Finale / Heras-Casado · Karajan-Acade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