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빅5가 정답일까?
서울의 소위 ‘빅5’’ 병원은 대한민국 의료의 정점으로 불린다. 최고의 의료진과 최첨단 장비가 모여 있는 곳이니, 중한 병을 진단받은 환자나 보호자가 가장 먼저 이곳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병원’이 ‘나에게 가장 좋은 병원’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표준 항암치료 단계에 있는 지방 환자분들(특히 서울과 거리가 먼 분)이 그러하다.
암이라고 하면 큰 병이니 무조건 큰 병원에 오겠다며 무리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한두번의 치료를 끝나면 되는 수술이나, 지방에서 안되는 고난도 치료라면 서울의 빅5에 오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표준 항암치료의 단계에 있는 암환자라면 무리한 수도권 원정보다 거주지 인근의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다닌 것이 환자의 예후와 삶의 질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외래 진료를 보면서 지방 환자분들, 특히 거리가 먼 지방에 사는 환자분들께 자주 이야기 드린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무척 싫어한다. 아니 그래도 서울이 낫지 어떻게 지방이 낫냐며 말이 되냐고 하는 경우도 많고, 지방 사람 차별한다며 화를 내는 분도 많다.
욕을 먹더라도 환자분들께는 현실적으로 중요한 이슈여서 오늘은 빅5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많은 지방 환자를 마주해 온 의사의 관점로 빅5 병원이 환자에게 항상 정답이 아닐 수 있는 이유를 나누어 보려 한다.
1. 표준 항암치료는 전국 어디나 동일하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서울 큰 병원에 가야 더 좋은 항암제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현대 의학의 암 치료는 전세계 표준 지침을 따른다. 특수 신약 임상시험이 아닌 바에는 표준 항암치료는 전국이 동일하다.
즉, 서울의 유명 명의가 처방하는 약이나 지방 병원이 혈액종양내과 전문의가 처방하는 약은 동일한 성분이다. 병원마다 똑같은 약이 들어간다. 만일 서울에는 좋은 항암제가 들어가고 지방에는 후진 항암제가 들어간다면 이는 상당히 비윤리적인 일이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항암치료를 하는 종양내과의사들은 늘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최신 지견을 함께 공부하며 표준적인 치료가 이루어 질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회에 가면 지방 병원에서 오신 종양내과 선생님들을 늘 만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토론하고,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곤 한다. 지방에 계신 종양내과 교수님들도 만나보면 정말 공부 열심히 하신다. (종양내과가 원래 공부하는거 좋아하는 의사들이 선택하는 과이다. )
2. 명의 보다 시스템이 환자를 돌본다
사람들은 명의가 있어야 치료 성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만, 명의 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가령 이렇다. 내가 외래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런 질문들이다. 왜 서울대병원은 입원이 안되냐, 왜 서울대병원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없느냐, 왜 이렇게 많이 기다려야 하느냐, 왜 내가 원하는 시간에 CT를 찍을 수 없느냐…
이런 질문들은 내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스템 실패 (system failure)와 관련된 질문들이다. 환자분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나에게 항의하는 것이겠지만, 나 역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니 괴롭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내가 교수니까 빽을 쓰면 입원시켜주고 하소연을 하면 어떻게든 자기만 예외적으로 편의를 봐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나에게 시스템에 역행하는 권한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시스템 실패를 개인의 실패로 치환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이완용 때문이고, 응급실 뺑뺑이는 응급실 의사들 때문이고… 사회에 문제가 있을 때 개인을 탓함으로써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완용이 없었어도 당시 조선의 사회시스템을 보면 조선은 망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소위 명의를 찾아가면 다른 의사들은 못 고쳐주는 병도 명의는 고쳐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스템보다 의사 개인을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명의들이 있다는 빅5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 고착화 된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혼자서 할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제 아무리 명의여도 시스템 앞에서는 무력하기 마련이다. 명의보다는 시스템이 백배 천배는 중요하다. 현실은 의학드라마와 전혀 다르다.
따라서 소위 빅5라는 어찌 보면 공장처럼 돌아가는 시스템이 나에게 적합한 시스템인지를 먼저 냉정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3. 치료만큼 중요한 '삶의 질'과 '접근성'
지방에서 혹은 먼 거리에서 서울의 큰 병원을 다니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 소모이다.
1) 왕복에 따른 체력적 한계
항암 치료나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에게 장거리 이동은 그 자체로 큰 부담이다. 의사 3분 만나려고 왕복 7시간을 길 위에서 버린다면, 그 시간과 에너지는 정말 무시하기 힘들다. 한두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게 2주에 한번 3주에 한번씩 반복된다고 하면 항암치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왕복 자체가 문제가 된다.
처음 암을 진단 받고 공포감에 휩싸이는 시기에 무조건 서울에서 치료 받겠다고 했던 지방 환자분들도 한 3달쯤 지나면 다시 지방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왕복이 너무 힘들어서이다.
2) 대기 시간의 증가
최근 의료 시스템이 더 무너지면서, 지방은 지방대로 환자가 없어서 무너지고, 서울은 서울대로 환자가 너무 많이 쏠려서 무너지는 악순환이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면역 항암제가 도입되며 환자의 생존기간이 늘어나면서 환자가 더 많아지고, 고령화가 되면서 암 자체가 늘다보니 환자는 더 많아지고 있다. 항암주사를 맞는 주사실 과밀화가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다.
오늘 진료 보고 당일에 항암주사 맞고 가야하는데, 주사실이 마감되어서 내일 다시오라고 하면, 지방환자들은 참 애매해진다. 호텔에서 하루 자고 오기도 하고, 번호표 뽑고 다시 집에 가서 내일 다시 오기도 하는데, 시간이 곱절로 들게 된다.
3) 응급 상황의 대처
이게 가장 중요한데, 치료 중 갑작스러운 고열이나 통증이 발생했을 때, 내가 다니는 병원이 너무 멀리 있다면 적기에 대처하기가 힘들다. 항암치료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했는데, 응급상황이 생겨서 인근 병원 응급실에 가면, “우리 병원 기록이 없어서 당신이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알 수도 없고, 환자 파악이 어렵습니다. 다니던 큰 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진료 거부가 아니라, 인근 병원 입장은 그럴 수밖에 없다. 무슨 치료를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응급 상황 대처가 되겠는가… 그렇게 인근병원에서 거절당하면 구급차 불러서 3시간 4시간 걸쳐 다니던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막상 가보면 응급실 과포화로 수용 불가, 인근 병원 응급실로 전원 이런 소리를 듣게 된다. 이렇게 응급실을 전전하다 보면 정말 이게 사람이 할 일이 못되는 구나 하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4) 보호자의 피로도
문제는 또 있다. 이렇게 하염 없이 의료 난민 생활을 하다보면 환자 곁을 지키는 가족들의 삶도 무너진다. 서울에 왕복 한번 하려면 KTX 비용, 호텔 비용, 식사 비용, 등이 만만치 않게 되는데, 동행해야 하는 보호자도 함께 지치게 된다. 보호자의 눈치를 안볼수가 없게 된다. 보호자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라도 하면, 온 가족이 무너질 수 있다. 장기전이 필요한 투병 생활에서 '거리'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고식적 항암치료의 경우 치료 기간을 정해 놓고 하는게 아니라, 기약없는 치료가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남들이 뭐라 하던 말던, 나 스스로의 기준과 나의 사정에 맞추어서 병원을 선택해야 나에게 더 유리해진다.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지방병원에 대한 불신이 강한 분 중에서는 나의 말이 틀렸다고 하는 분들이 계신다. 게다가 요즘 필수의료가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지방의 종양내과 의사들이 버티지 못하고 사직하는 경우도 늘었고, 예전에는 지방에서 다 가능했던 치료들이 이제는 불가능해져서 울며 겨자먹기로 서울 오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지방의 인구 소멸이 이를 가속화 시킬 수 있다. 아마 몇 년 더 지나면 지방에서 치료받고 싶어도 필수의료가 무너져서 서울로 올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든다.
이렇게 큰 병원 쏠림현상이 생기는 일도 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의 실패인데, 모두가 원인을 알지만 시스템은 고치지 않고 방관하며, 문제 생길때 나와 내가족의 안위만 챙기다 보니, 그 피해가 모두에게 돌아가서 참 안타깝다...
아무쪼록 어려운 의료 여건이지만 지방에 사는 분들이 편안하게 치료 받으시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출처: https://blog.naver.com/bhumsuk
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암과 항암치료에 대한 정보, 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발행됩니다
blog.naver.com
힐링어드바이저ㅣ김동우 010-7216-6789
현대의학 자연의학 그리고 의용공학의 세계
[암중모색/현대의학 자연의학] 네이버밴드로 초대합니다.
아래 링크를 눌러 들어오세요.
http://band.us/@can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