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다는 믿음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어느 네티즌의 질문.
안녕하세요. 전 23살이고 정말 몇년 전부터 이걸 풀지 못해서 교회를 못다녔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주신다고 했는 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만 믿어서는 안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서 죄를 사한 것까지 같이 믿어야 구원을 주신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만 영접하면 십자가 지신건 몰라도 이미 구원은 왔다고 하고요. 이게 별 문제가 아닌거 같지만, 정말 저한테는 오래전부터 고민한 거였습니다. 성경 구절까지 찾아주셔서 답변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립니다.
◈답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구원에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혼잡(의심)에 빠져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혼잡(의심)은 대체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기 때문에 발생되는 죗벌입니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린도후서 2:17) 하심 같이, 엄밀히 말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곧 그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단순한 일입니다.
일례를 들어, 어느 시골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 볼일을 다 보고 난 후 고향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붙들고, "서울역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행인이 "다음 사거리에서 오른 쪽 방향으로 꺾어 5백 미터쯤 가면 역광장이 보입니다."라는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이 때 시골 분이 그 행인의 말을 곧장 믿고 그 말대로 따라 행하가만 하면 반드시 서울역이라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누구를 믿는다고 하였을 때에는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 되고, 또 말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르쳐 주는 말대로 따라 행동하는 것이 비로소 그 사람의 말을 믿은 것이 됩니다. 만일 시골 분이 앞서 가르쳐 준 행인의 말을 듣고도 자신이 예전에 서울에 왔다 간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서울역은 그 쪽이 아닌데?" 하면서 그 행인이 가르쳐 준 말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그것은 그 행인의 말을 믿은 것이 이니라, 도리어 그 행인의 말을 믿지 않은 불신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며, 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신학자와 목사들과 전도자들이 이런 간단한 믿음을 몸소 실행해 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전하여 가르치지 않고, 별의별 신학적 해석과 논리를 만들어 믿는 자들을 혼잡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즉 그들 대부분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한 것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예수님의 언행을 자기 육신의 생각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연구하고 풀이하고 해석만 하기 때문에 수많은 교인들도 그들의 그러한 행습을 본받아 따라 행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의심(방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제를 그토록 어려운 문제들로 취급해 방황(혼잡)하게 만드는 까닭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며, 또 예수님 하신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라는 평범한 상식을 통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런 평범한 상식을 신앙생활에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의 발자취가 되신 그의 언행을 믿고 따르는 일이, 육신적으로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실체가 되신 그의 말씀을 받아들여 실행하고자 하는 결심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주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성경 말씀을 단순히 기억하기만 하고 실행해 지키지 않게 되면, 마치 시골 분이 "이곳 서울 사람들은 서울역 가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기만 할 뿐, 실지 서울 사람들의 말대로 믿고 따르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시골 분이 서울역 근처를 지나가는 행인을 붙들고, “서울역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행인이 "다음 사거리에서 오른 쪽 방향으로 꺾어 5백 미터쯤 가면 역광장이 보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 말대로 따라가면 그 행인의 말을 믿은 것이 되어도, “오른 쪽이 아닌데?" 의심하면서 다른 쪽 길로 가게 되면, 그 행인의 말보다 자신의 육감적(肉感的)인 지식만 의지해 믿고 다른 사람의 말은 불신해 믿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누구를 믿는다 할 때의 믿음의 대상은 그 사람의 말이며, 또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행동에 옮기려 하거나 행동하였을 때에만 그 사람의 말을 믿은 것이 될 뿐, 실지 행동에 옮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다만 참고적으로 듣고 아는 것으로만 끝내는 자들은 모두 불신 범죄자들이 됩니다." 이런 불신 범죄자들은 어느 누구로부터 태어나 누구에게 소속되어 살든지 간에 그 주인되신 분들의 말씀을 믿음으로 따라 실행하려 하지 않고, 다만 자기 육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주인되신 분들의 말씀을 판단해 해석하기만 합니다. 즉 에덴 동산의 사단처럼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였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알기만 할 뿐, 결코 그 말씀을 믿고 따라 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하셨습니다. 천하보다 귀중한 목숨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보다 더 소중한 직위와 재산과 보화가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떠한 부귀영화나 왕후장상 같은 직위나 지혜와 재산과 능력과 보화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같은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발생됩니다. 그런데 이 '들음'은 단순히 전도자의 말을 귀로 듣거나 복음서를 눈으로 보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들음'은 단순히 귀로 받아 들이는 청각적인 소리를 뜻한 것이 아니라, 귀로 받아들인 말씀을 반드시 실행해 지켰을 때가 참된 '들음'이 됩니다.
아버지가 한 아들에게 “얘야! 음료수 한 병 사오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순종하지 않게 되자 다른 아들에게 똑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들이 순종하여 음료수를 사 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 세우고, 순종한 아들에게는 “넌 내 말을 잘 들었으니 이걸 가져!" 하면서 심부름 값을 주었으나, 불순종한 아들에게는 “넌 왜 내 말 안 들었어, 종아리 걷어!” 하며 매질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두 아들이 똑 같이 아버지의 말씀을 청각적으로는 받아 들여 인식하였으나, 말씀을 순종한 아들에겐 “넌 내 말 잘 들었다” 하며 상금을 주고, 불순종한 아들에겐 “넌 왜 내 말 안 들었니?” 하며 매질하였습니다. 이처럼 '들음'이란 말은 결코 성경말씀을 보고 설교를 듣는 것만이 '들음'이 아니며, 오직 듣고 본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만이 참된 '들음'이 됩니다. '실세자 예수'는 '들음'을 근거로해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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