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터질 줄 진작부터 알았다.
아니, 나 혼자가 아니고 불교계 소식을 웬만큼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벌써 오래 전부터 ‘납골당’ 문제가 일반 사회 언론에 크게 터질 것이라 예감 · 예상하고 있었다.
위로는 한국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조계종 종정의 법호를 딴 팔공산 도림사 · 가야산 고불암 무량수전과 파주의 해인사 미타원에서부터 전국 곳곳의 크고 작은 절들이 납골 사업을 ‘마지막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고 피와 땀을 흘리며 이 사업 추진에 매달리고 있었으니, 이 문제가 세상 사람들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면 이렇게 믿은 사람들은 아주 순진하거나 아니면 매우 영악스러워서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법망과 여론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갖추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 불교의 중심 도량인 해인사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납골당 사업을 둘러싸고 귀로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려오고 코로 들이마시기에 너무나도 역겨운 구린내가 풍겨 나오고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시큰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상에 압류 딱지가 붙었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나오면 그제서야 “이래서는 안 되지!”라면서 걱정하는 척하고, 그러다가 ‘그럭저럭 수습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또 모른 체하고 그랬던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된통 걸린 것 같다. 여론에 미치는 파급력이 교계 언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MBC 문화방송의 <PD수첩>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했으니, 그냥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2일 <PD수첩>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오래 전부터 나는 문제가 된 ‘송광사 말사 보은사’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았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공사 진행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사찰 불사의 최종 책임자가 이른바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지내고 ‘환경과 복지 문제의 전문가’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인물인데다, 비록 잠시이기는 했지만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자리도 맡았던 인사이기에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고 기다려보았다.
해당 지역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는데, 이 사찰 불사 추진 책임자는 물론이고 이 사찰(보은사)의 본사인 송광사도 모른 체 하고 있었다. 급기야 지난 6월 16일에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군청에 몰려가 항의 집회를 열었고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안 된 시점에 <PD수첩>에서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지만, 본사인 송광사와 조계종 총무원은 정말로 사태를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체 하면서 ‘그저 주민들의 반발이 수그러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회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으니 끝까지 버텨보겠다. 법치주의 국가의 준법정신 함양을 위하여 앞장서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불교계 내부뿐 아니라 바깥세상에서 불교 집안을 바라보는 눈은 별로 곱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잃게 된 것이 매우 크다,
보은사가 정말로 ‘사찰로 위장한 납골시설’인지 아니면 ‘불자 대중을 위한 수행공간’인지에 대하여는 내가 답을 내릴 수도 없고,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보은사 불사의 책임자인 ‘ㅎ’모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일이다. 세속에서 흔히 탈세 등을 목적으로 하는 무리들이 이른바 ‘바지 사장’을 내세우듯이, 아무런 실권도 없는 인물을 주지로 해놓고 본인은 뒷짐 지고 실리나 챙기려는 속셈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납골 시설이 꼭 필요해서 이 불사를 추진했다면 비겁하게 뒤에 숨지 말고 앞으로 당당하게 나서서 전후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이런 일은 꼭 해인사나 송광사 말사 보은사에서만 터지거나 앞으로 터질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사찰의 주지들이 ‘납골 시설’이 가져올 ‘돈’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추진을 하고 싶은 불사가 이것이다. 여기에는 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꼬드기는 업자들의 치밀한 작전도 한 몫을 한다. 그렇지만 이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좇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이 공인된 원칙이기 때문이다. 슬픈 것은 업자들의 작전에 넘어가는 승려들이 있다는 우리의 현실이다.
잘 살펴보자. 현재 건설 중인 납골 시설만 문제인가. 아니다.
이미 완공되어 운영하고 있는 납골당에서도, 종종 비리 문제가 터져 나오고 “주지의 속가 형제가 지분 몇 %를 인수해서 내분이 일어났다. ……” 등등의 소문이 떠돌고 있고, 대개의 경우 이 소문은 ‘사실’로 확인되는 수가 많다. 그러니 ‘돈’을 조금 벌어들여 사찰 재정 구조를 미약하게 개선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비하면, 여기서 잃게 되는 것이 너무 크다. 그래서 납골 사업의 긍정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본다면, 부정적인 쪽으로 크게 기울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납골당 사업의 난립으로 불교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악화되고, 그래서 잠재적 불교인들뿐 아니라 정기적 신행활동을 해오던 능동적 불교인들마저도 불교를 떠나게 한다는 점이다. 오로지 ‘돈’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승려들의 모습을 보고 누가 불교 신도로 남기를 원하고, 누가 불교인이 되고 싶어하겠는가 말이다.
이런 걱정이 결코 우려가 아님은 이웃나라 일본 불교의 모습에서 쉽게 예상해볼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일본 불교는 ‘학문 불교’와 ‘장례 불교’의 두 바퀴 수레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장례 불교’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말자는 주장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 주장에 일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일반 대중들을 사찰과 불교에 가깝게 다가오게 하는 데에 일정 부분 기여했던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이 ‘장례 불교’에 빨간 등이 켜졌다. 7월 15일 《불교포커스》에 실린 유정길의 글 <청소년, 청년 불교의 부흥은 사찰의 지역공동체와 더불어 - 일본 참여불교운동의 중심 진 히토시(神仁) 스님> 중의 ‘일본불교의 개혁: 제사불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모색’이라는 단락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신문인 중외일보(中外日報)는 6월 21일자 칼럼에서 "오늘날 일본의 사찰은 농촌의 인구가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 단가(檀家)신도들이 감소하고 있어 제사에 의존해 왔던 불교는 큰 경영난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들이 수시로 돈 이야기를 해서 신도들에게 더욱 거부감을 준다고 한다. 몇몇 스님들은 도시 거대한 빌딩에 납골당을 짓거나 묘원을 건설하지만 역시 팔리지 않아 빚을 안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 3월 1일 NHK조사에 의하면 불교의 가르침을 신뢰하는 사람은 일본인구의 90%로 나왔다. 불교 가르침에 대한 신뢰는 높다. 그러나 사찰을 믿을 수 있다는 설문에는 20%, 스님을 믿을 수 있다는 설문에는 10%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신뢰하지만 사찰이나 승려들에 대해서는 결코 신뢰를 보낼 수가 없다”는 이 구절이 꼭 일본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한국 불교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면서 “괜찮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제발 솔직해지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납골 사업의 정당성과 불교와의 관련성’을 떠들어대지 말고, “돈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사실을 사실대로 털어놓자. “만약 납골 사업이 아니면 어떻게 해야 사찰과 승려들이 ‘돈’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 달라”고 큰소리로 말을 해보자. 그러면 그 솔직함에 놀라서 사찰과 승려들이 필요한 ‘돈’을 크게 시주할 대단한 단월(檀越)이 여러 명 나타날 지도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최대 종단의 최고 어른이 주석하는 사찰에서 납골당 문제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승보사찰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지낸 인사가 납골당 문제로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공중파 TV 방송에 낯 뜨거운 장면이 나오는 것과 같은 불상사는 이제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역 주민과의 마찰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납골당 사업’이 갖고 있는 ‘돈’의 위력 때문에 자칫 승가의 부패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고, 그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세상 사람들이 불교와 승려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놓게 되고 그래서 이 땅에서 불교가 점차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무엇보다도 납골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게 만든다.
납골당이 벌어들일 ‘돈’ 몇 푼 때문에 불교와 승가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잃는 일만은 피해보자. ‘돈’ 문제는 그 다음에 해결해도 늦지 않다. “사람 나고 돈 나왔지, 돈 나고 사람 나왔느냐?”는 세속의 농담이 우리 교단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때이다.
[불교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