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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작전명 에버-레디(Ever-ready)를 아십니까? 韓·美 동맹 없이 휴전 없다는 이승만의 對美 필사 투쟁 동맹 거부 美, 李 제거 작전... 두 나라, 살벌한 갈등 연속 한·미 동맹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 모두가 알아야 에버-레디(Ever-ready)는 6.25전쟁 중이던 1953년 5월 유엔군사령부가 극비리에 수립한 작전 계획이다. 중공군 격파 작전이 아니다.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를 붕괴시키고 이 대통령을 감금하는 작전이다. 이승만의 피눈물 나는 대미(對美) 투쟁과 파국 직전의 한·미 갈등 끝에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51년 시작된 휴전 회담을 한국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국토와 국민이 결딴났는데 통일도 없이 분단된다는 것은 새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7만명 이상의 미군 인명 손실에 대한 국내 여론 악화와 막대한 전쟁 비용 때문에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이승만은 이대로 휴전이 이뤄지면 미군은 한국을 떠날 것이고 고립된 섬으로 남는 한국이 중·북·소련에 의해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아니더라도 일본 세력권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었다. 미국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 이승만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1953년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이승만 대(對) 미국'의 살벌한 갈등은 약소국이 살아남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교과서다. 노르웨이 대사를 지낸 최병구씨가 지은 '외교의 세계'는 그 드라마 같은 3개월을 잘 기록하고 있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자 휴전 회담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승만은 4월 22일 중공군의 북한 주둔을 허용하는 휴전 협정이 맺어지면 한국군은 유엔군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클라크 주한 유엔군사령관은 이승만 보호 감금과 임시정부 수립을 미국 정부에 건의하기에 이른다. 미 국무부까지 동조해 5월 에버-레디 작전이 수립된다. 한국은 독자 전쟁이 불가능했다. 전쟁 유류가 단 2일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승만이 독자 전쟁을 선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한·미 동맹(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그것만이 공산 세력과 일본의 재침을 막는 유일한 방패라고 보았다. 예지(叡智)였다. 미국에선 한국과의 동맹은 불필요하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한국은 가치 없는 나라였다. 한국이 미국을 동맹으로 만들려면 '너 죽고 나 죽자'고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국무부, 국방부, 합참의 합동 회의에서 격론이 이어졌다. 5월 30일 이승만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외에는 6.25전쟁을 중단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에버-레디는 폐기됐다.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날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친서를 보내 한·미 동맹을 맺으면 휴전에 동의하겠다고 했다. 아이젠하워는 동맹이 아니라 미 정부의 '한국 방어' 성명과 군사 지원 행정 협정을 맺자고 했다. 10억달러 경제 원조도 제시했다. 이승만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조약'이 아니면 미국을 붙잡아둘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가운데 6월 8일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 송환 문제가 타결됐다. 한·미 동맹을 못 얻었는데 휴전이 목전에 온 것이다. 이승만은 6월 18일 3만5,000여 명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린다. 휴전 회담을 무산시킬 조치였다. 이승만은 그 다음 날 주한 미 대사에게 "이것이 자살 행위라 해도 그것은 우리의 특권이다"고 했다. 한·미 동맹 없이 휴전이 되면 자살도 불사하겠다는 결의였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을 '정신착란자'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승만은 굴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에 편지를 보내 '한·미 동맹 없이 휴전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사형 집행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7월 9일, 휴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약속과 함께 한·미 동맹 조약 초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이승만이 어떤 행동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하워는 어쩔 수 없이 방위조약을 맺을 특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그러나 미국 측 초안에는 '한쪽이 공격받으면 다른 한쪽이 자동 개입한다'는 동맹 조약의 핵심 부분이 없었다. 이승만은 미 특사에게 한·일 합방과 한반도 분단에 대한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쟁 참여는 행정부 아닌 상원의 권한이었다. 이승만은 우회로를 택했다. '한쪽에 대한 공격을 다른 쪽에 대한 공동 위험으로 보고 각자 헌법에 따라 행동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바로 그다음에 '미군의 한국 주둔'을 규정했다. 미군이 주둔하면 유사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 귀재의 발상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됐고 8월 8일 서울에서 한·미 외교장관이 동맹 조약에 서명했다. 한·미 동맹은 국민의 피와 모든 것을 건 한 지도자의 필사적 투쟁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승만은 한·미 동맹으로 "우리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적중했다. 한강의 기적은 한·미 동맹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에 힘이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많이 성장했으나 더 큰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의 지도자는 한·미 동맹사(史)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날강도 이승만 '이승만 날강도 짓에 당한 트루만대통령'의 말 '선지자인줄 알았는데 날강도네' 이승만은 미국에 건너가서 수 십 년동안 미국의 학자 정치인 외교관 언론인 군인들을 만나 한결같은 주장을 늘어놓았다. 그 내용으로 강연회에서 연설하고 그 내용으로 책을 썼다. 그 책의 제목은 Japan Inside Out '일본의 속내를 폭로한다!'(Japan Inside Out) 일본이 조선 반도를 집어 삼켰으니 그 다음은 만주를 먹고 중국을 침략하고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나서 그리고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쳐들어올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할 것! 일본의 팽창을 막고 일본을 다시 일본 본토로 돌아가게 하려면 조선을 독립시켜라! 그러자 미국 학자들과 정치인들은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당시 일본과 미국은 좋은 관계였고 그 넓은 태평양을 넘어 일본이 공격하리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 된 지 반 년이 못 되어서 하와이 진주만 공습이 터진다! 이승만의 책은 단숨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미국의 학자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수 십 년에 걸쳐 일본의 침략을 예언한 인물을 못 알아보았구나... 그러면서 이승만을 하나님이 그 시대에 세운 선지자로 알고 존경했다. 그 후 태평양전쟁에서 이승만의 절친 더글라스 맥아더가 지휘하는 미군은 일본군을 몰아냈고 일본은 패망했다. 우리나라는 큰 피흘리는 전쟁 없이 독립을 얻었다.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중국 조선족 부대를 앞세운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민족의 비극 6.25! 3년 간의 혈전 끝에 휴전협정이 맺어지려 할 때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고 북진통일을 외쳤다. 미군도 소모전에 지쳐갔고 미국 내 여론도 휴전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을 때 유독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승만이 내놓은 휴전의 조건은 한미상호방위조약! 1953년 10월 1일 조인, 1954년 11월 18일 발효... 미국 앞에 이승만은 거의 날강도였다. 거제도 반공포로를 맥아더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석방시킨 사건을 듣고 맥아더는 친구 이승만을 "오~ 나의 십자가"라고 불렀다. 이승만이 내놓은 휴전 조건을 볼 것 같으면 미국아 ~ 6.25 전쟁 휴전을 하려면... 1. 경제 지원해달라!... 그래서 결국 당시 한국의 1년 수출액의 34배 되는 돈을 받았다. 그래서 전쟁 후 잿더미 위에서 굶어죽지 않고 다시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다. 2. "in and around Korea에 미군을 주둔 시킨다고 약속해라!" 그래서 오늘까지 미군이 이 나라 지켜준다. 한반도에 미군 주둔은 북한 인민군 복무기간이 10년에 비해 내 아들 군 복무기간 1년 6개월! 이를 가능케 했고 한국 경제발전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만약 한국 군대 의무복무기간이 5년이라면 이 나라 경제는 결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승만은 고약한 코미디언이었다. 3. "너희 미국이 침략을 받으면 그 때는 우리가 가서 싸워주겠다" (태평양 건너갈 배 한 척도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태평양 헤엄쳐 건너가서?... ㅎㅎㅎ) 이렇게 미국과 한국 사이에 "상호방위(相互防卫)" 조약을 맺자. 상호 조약이니까 평등한 조약 맞지? 여기 싸인 하셔! 이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이다. 미국이 외국에게 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불평등조약이었다. 이 약속을 해주면 휴전할 때 내가 큰 인심 써서 입 다물고 있어줄 게...!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그렇게도 못 된 사람이었다. 평생의 친구 맥아더 뒤통수 치던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에 참전해서 3만 6천 여 명이 죽은 미군... 그 미국에게 더 내놓으라고 말하는 뻔뻔스런 이 나라의 아버지였다! 33대 미국 대통령, 투르만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 왈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후) "이승만 그 날강도에 또 당했어! 도대체 한국이 무슨 힘이 있다고 미국에 전쟁 나면 한국이 도와줄 테니 한반도에 전쟁 나면 한국 병력의 9배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내야 하는 거야? 또 인계철선은 뭐야. 우리 청년들을 북한이 내려오는 길목에 박아 놓고 공격받으면 미국이 자동 참전해야 된다니. 그리고 한국이 제자리 잡을 때까지 한국 국방비를 미국이 전액 대라는데 아무리 스탈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이런 조약에 사인을 하고 온 거야?" ㅎㅎㅎ 이쯤되면 이승만은 날강도였다! 인정! 미군이 없었으면...김구가 김원봉이 300여 명(제일 많았을 때) 광복군 이끌고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수 백만 일본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 당시 일본군의 규모를 보자면... 중국 본토에 관동군 125만 만주국군 40만 일본 본토에 200만 이상 필리핀 버마 베트남... 태평양에... 어마어마 한 일본군 항공모함이 십 여 척....항공기, 탱크, 대포... 제일 많았을 때 300여 명에 불과했던 광복군이 그 엄청난 일본군을 무찌르고 독립할 수 있었을까? 1940년에 창설된 광복군은 1945년 일본 패망할 때까지 일본군과 단 한차례의 전투도 치르지 않았다.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군대에 예속되어 국민당에서 군복도 주고 국민당에서 총도 주고 국민당 군대가 훈련도 시켜주고 밥 먹여주고 월급 주고 지휘권은 당연히 장졔스에게 있었고 독자적인 작전권한은 없었다. 미군이 없었으면... 그 큰 쏘련 그 큰 중국을 등에 없고 쏘련제 탱크 앞세워 조선족 중공군 앞세워 김일성과 공산당이 선전포고 없이 기습남침으로 처내려온 6.25! 그 피눈물 나는 비극의 전쟁을 이만큼이나마 막아내고 이만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이룰 수 있었을까? 미군이 없었으면... 북한군 10년 넘게 군생활 할 때, 우리 나이 때 30개월, 지금 전방 간 울아들 18개월로 병역을 필할 수 있었을까? 미군이 없었으면... 벌써 뙤놈들 세상 로스깨(소련) 세상 되었고 미군 없었으면 김가왕조 치하에서 굶어 죽었든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이 부끄러운 역사 이 부끄러운 현실이 우리 민족의 팩트이다. 이제 박정희 이후에 밥 좀 먹고 사냐? 과거를 잊고 눈 먼 족속아 학교에서 전교조 멍청이가 뭐라 가르치는가 이승만이 독재자란다 세계 3대 독재자였단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우리는 김가왕조 치하에서 위대하신 수령 찬양하다 밥 굶어 죽었든지 영양실조 펠라그라로 빌빌거리며 살고 있을 거다. 현대자동차 삼성 스마트폰은 꿈 속에 나타날 수나 있었을까? 뭐 교회 다녀? 예수 믿어? 풋! 공개총살! 선지자 같은 날강도 이승만 덕에 이만큼 살고 있는 줄 알고 감사하십시오. |
국내 종북주사파 빨갱이들이 지금까지도 독재자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탁월한 인물이었고 세계 역사속에서도 길이 남는 그런 인물이기도 했다.
전 세계를 통털어봐도 미국과 대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있는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밖에 없다.
미일방위조약 등이 있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못 미치고 격이 한참 떨어진다. 현실에서도 보라, 주일 미군은 48,000여 명으로 한국(28,500여 명 주둔)의 거의 2배이고 전략자산은 몇배가 되지만 주일미군사령관은 중장으로 대장인 주한미군사령관의 직속 예하부대인 것이다. 즉,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주한미군을 지원하는
단순 부대인 것이다.
다시 한번 국부 이승만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하며 하늘에서 살피고 계신 덕에 대한민국이 있고 우리 국민이
있는 것이다.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건국 전쟁]은 온 국민에게 권장할 영화.
*이승만 국부는 앞을 예견하는 선지자*임을 알 수 있고 현재 한국의 위험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민들은 영화가 이해하기 쉽고,
전파력이 짱.^^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우남 이승만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의 국력을 가장 잘 알고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외교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여 국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이 있는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대한민국을 공산 세력으로부터 지킬 수 있게 했습니다. 지금 미군은 우리나라 안보에 절대적인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