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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일 화요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고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이날 교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의미를 묵상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며, 생태계를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2026년 제11차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2026년 9월 1일)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 2,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요한 10,10 참조). 이 생명의 선물은 우리가 제자로서 받은 사명 그리고 우리가 공동으로 받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라는 부르심의 중심에 자리합니다. 올해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생명의 선물을 묵상하고 그 생명을 지탱해 주는 지구를 소중히 여기도록 다시 한번 초대받습니다. 이는 우리의 창조주께 찬미를 드리는 구체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위기와 인간의 고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창조 세계의 조화로운 균형이 깨지는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는 곧, 상처 입은 세상에서 터져 나오는 치유와 평화를 향한 하나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생명의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이 평화는 피상적인 평화도, 일시적인 평화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한결같은 사랑과 모든 인간에 대한 그분의 보살핌에서 샘솟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이처럼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화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나라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이사 2,4)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변화되는 시대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폭력과 전쟁에 힘을 쏟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정반대의 상황을 목격합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전쟁터를 넘어 멀리까지 퍼져 나갑니다. 전쟁은 목숨을 앗아가고, 가족을 해체하며, 수많은 강제 실향민을 만들고, 공포와 불의와 분열을 심화시킵니다(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77-82항 참조). 또한 전쟁은 후대까지 지속되는 사회적 생태적 파괴를 남깁니다. 게다가, 흔히 무장 분쟁과 환경 훼손이 서로 맞물려, 생태계를 파괴하고 물과 공기와 같은 필수 자원들을 오염시키며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냅니다. 이는 또 다른 충돌을 빚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빈곤, 불평등, 새로운 사회적 긴장을 부채질합니다.
더 나아가, 전쟁은 생명의 그물 전체를 훼손하는 상처를 만들어 내어, 각 개인과 공동체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류 가족 전체와 맺는 더 넓은 관계망 그리고 피조물과 이루는 조화도 해칩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대로 살아가며 생명을 존중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지구를 돌보는 데 실패하였음이 드러납니다. 이는 정치적 실패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실패이기도 합니다. 비뚤어진 욕망에 뿌리내리고 인간의 자유와 힘을 오용하는 데에 기초한 전쟁은 평화의 복음에 반대되는 증거입니다.
앞서 말한 위기들은 책임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에 대한 더 깊은 충실성, 서로에 대한 사랑, 창조 세계의 선물에 대한 존중 안에서 열매 맺는 마음의 회개도 요구합니다. 폭력, 불의, 생태 훼손 등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격하는 불화는 단순히 체계나 구조의 오류에서 비롯되는 결과만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박힌 더욱 근본적인 저 불균형에 직결되어 있[습니]다”(사목 헌장, 10항). 실제로 인간의 마음은 가장 근본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타락한 우리 상태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저 감정을 담는 곳이 아니라 한 사람의 중심, 곧 이성과 욕망, 의지와 양심이 하나로 모이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마음에서, 우리 안에 서로 모순되어 존재하는 갈망들, 곧 사랑과 무관심, 진리와 허상,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씨름합니다(야고 1,14-15 참조). 그러므로, 전쟁의 상처와 지구의 훼손은 인간 마음의 상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류를 괴롭히는 분쟁들은 내적 불화와 분열을 외적으로 다양하게 표출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비뚤어져 있을 때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우리가 건설하는 구조들도 이러한 무질서를 반영하기 시작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일깨워 주셨듯이,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즉위 미사 강론, 2005.4.24.). 이는 우리 주변에서 무너진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안에서도 무너져 있음을 깨닫도록 촉구합니다.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구조를 개혁할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또한 새롭게 해야 합니다. 분쟁과 피조물 착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들은 하나의 윤리적 문화적 위기에서 나옵니다. 여기에는 한계에 대한 감각의 상실, 지배하려는 욕망, 즉각적인 이익의 추구,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부여하신 존엄성을 깨닫지 못하는 무능력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어라.]”(이사 2,4)고 한 예언자의 호소는 국가들을 향한 전망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을 향한 호소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해악을 생명으로 바꾸라는 초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이루려면 외적인 변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하느님 은총에 협력하여 더 깊이 회심해야 합니다. 곧, 우리의 욕망을 바로잡아 주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며 덕행을 기르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느님께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변화가 없으면, 평화는 여전히 취약하고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질 때,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파괴를 위하여 사용되던 것들이 그 방향을 돌려, 생명을 살리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굶주린 이들을 배부르게 하고 피조물을 보호하는 데에 쓰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생태적 회개의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결실이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프란치스코,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ì], 217항 참조). 평화는 이처럼 마음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관계들, 공동체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우리 앞에 엄청난 도전들이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치유와 변화의 수단을 마련해 주십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는 전쟁의 무기 대신, 치유하고 화해하며 사랑의 문명을 건설할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많은 ‘생태계’, 곧 창조 세계, 인간관계, 인간 마음 그 자체의 생태계들을 지켜 나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지금 전쟁에 쏟아붓고 있는 에너지들이 그 방향을 돌려, 온전한 인간 발전, 빈곤 척결, 인간 존엄성의 수호, 갈라진 민족들의 화해를 위하여 사용되는 세상을 떠올려 봅시다. 이러한 전망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믿음을 반영합니다.
평화를 건설하는 진정한 도구는 파괴의 무기가 아니라, 바로 진리, 대화, 인내, 선함, 정의, 자비, 이해, 배려, 사랑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복음으로 빚어지고 하느님 은총으로 살아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질들만이 개인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쇄신하며 세상의 상처를 치유할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쉽지 않지만 분명한 길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평화를 추구하고 피조물을 돌보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음을 지키라고 권고합니다. 모든 행동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잠언 4,23 참조).
겸손과 믿음으로 이러한 임무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 활동을 돕는 협력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광야에서 낙원으로, 분열에서 친교로, 폭력에서 평화로 나아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이 길을 걸어갈 용기를 주시어, 우리 시대에 참으로 칼을 쳐서 보습으로 바꾸고, 복음의 약속을 세상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하며, 창조 세계 전체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득 차게 해 주시도록 기도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26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레오 14세 교황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61393 ]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2,10ㄴ-16
형제 여러분,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축일9월 1일 성녀 데레사 마르가리타 레디 (Teresa Margaret Redi)
신분 : 수녀
활동 연도 : 1747-1770년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테레사, 테레시아
이탈리아 중부 아레초(Arezzo) 사람들은 흔히 성녀 테레사 마르가리타 레디(Teresia Margarita Redi, 또는 데레사 마르가리타 레디)를 안나 마리아 레디(Anna Maria Redi)라고 불렀다. 그녀는 10세 되던 해에 피렌체(Firenze)로 가서 성 아폴로니아 공동체의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후 계속하여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지 몇 개월 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의 책에 나오는 그녀의 초자연적인 권고에 이끌려 카르멜 회원이 되려고 하였다. 그래서 1764년 9월 1일 그녀는 피렌체에 있는 성녀 테레사의 맨발의 카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특히 예수성심 신심에 있어서 뛰어났으며, 숨은 생활이 오히려 남을 위해 희생하기 좋은 기회임을 잘 이해하고 실천했던 뛰어난 성녀였다. 그녀는 주로 공동체 내에서 아픈 동료들을 돌보았는데, 수녀이기보다는 간호사에 더 적합한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1770년 3월 7일 23세의 일기로 피렌체에서 선종한 그녀의 유해는 현재까지 부패되지 않고 있으며, 피렌체 주민들로부터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34년 3월 19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데레사 마르가리타 레디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