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예상액 월 167만원 넘을 땐, 조기 수령 고려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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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 중 하나가 건강보험 재정이다. 보험료 부과 기준인 소득은 많이 늘어나지 않거나 줄어들 수 있는 반면, 노인 의료비는 많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지난해 9월부터 보험료 면제 피부양자의 연소득 기준이 대폭 낮아졌고, 연금소득의 보험료 반영률은 크게 올랐다. 건강보험료를 감안한 연금수령자의 실효 소득이 줄어든 셈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건강보험 재정부터 살펴보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입 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현금 흐름 기준 3.6조원의 흑자를 기록함에 따라 2022년 말 현재 건강보험 적립금은 23조9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3조6000억원의 흑자는 10조5000억원에 달하는 정부지원금에 기인한다. 연간 보험료 수입(76조6000억원)은 보험급여비(83조2000억원)에 비해 6조6000억원 정도 모자란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적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문제는 건보 재정을 지탱하는 정부 지원이 한시적이라는 점이다. 정부 지원은 일몰제로 운용되고 있으며, 지난해 말로 종료되었다가 2027년까지 5년 더 연장된 상태이다.
올해 6월 13일 개정, 시행된 국민건강보험법은 국가가 2027년 말까지 건강보험공단에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보 입장에서 시간을 번 셈인데,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건강보험은 적립방식이 아닌 부과방식(pay as you go)으로 매년 지출하는 보험급여를 그해의 보험료로 충당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보험료율은 가입자·소득·보험급여 등을 감안해 매년 말 대통령령으로 정해지는데, 법에 따라 8% 이내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치게 된다. 지난해 12월 27일 정해진 직장가입자 기준 보험료율은 7.09%이다.
재정의 관건인 보험급여는 최근 6년간 연평균 8.7%씩 증가했고,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가 그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 2021년 기준 노인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전체 1인당 진료비의 2.74배에 달한다. 2017년 3.06배에 비해서는 낮아졌지만,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인진료비가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3.4%로 2017년 40.0%에 비해 3.4% 포인트 높아졌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보험급여의 증가 외에도 보험료 수입의 감소를 초래한다. 재정수지 관점에서는 최악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지역과 직장으로 구분되는데, 소득과 재산 점수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는 지역가입자는 나이로 인한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다. 하지만, 보수와 소득에 비례하여 정률로 보험료를 납부하는 직장가입자는 고령으로 은퇴하는 경우 건강보험료 수입은 크게 줄어든다.
은퇴자가 가족의 직장 피부양자로 등재될 경우 연금소득·금융소득·사업소득 등 보수 외 소득이 일정 금액 이하일 경우 보험료를 아예 내지 않는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노인 인구의 건강보험 가입 유형은 2019년 기준 직장 피부양자(52.7%), 지역세대주(19.4%), 직장가입자(11.1%), 지역세대원(10.2%), 의료급여 세대주(5.9%), 의료급여 세대원(0.7%) 등의 분포를 보인다. 직장 피부양자가 절반 이상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해 9월부터 보수 외 소득 기준이 종전 연 3400만원(월 283만원)에서 2000만원(월 167만원)으로 강화됐다. 기준 초과 시 직장 피부양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보험료를 내야하며, 보험료 산정 기준인 소득월액도 연금·근로소득의 경우 소득의 30%에서 50%로 강화됐다. 2000만원 초과 3400만원 이하의 연금소득이 있는 직장 피부양자 노인들은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다가 납부하게 됐다.
건강보험법령상 연금소득에는 소득세법에 명시된 바와 같이 공적연금소득 외에 연금으로 수령하는 퇴직연금, 세제적격 연금 계좌 연금수령액 중 세액공제분과 운용으로 증가한 금액 등의 사적연금소득도 포함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적연금소득만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고 부과하고 있다. 법령을 지키지 않은 셈인데, 지난해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이를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보험료 부과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적연금소득에 대한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 강화로 당장 타격을 입은 계층은 상대적으로 연금수령액이 많은 은퇴 공무원, 군인, 교원 등 직역연금 가입자들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예상수령액이 월 167만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입자들이 건강보험료 부과를 피하기 위해 조기 수령을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 수령은 법정 시기보다 최대 5년 일찍 수령할 수 있는 제도인데, 연 6%씩(월 0.5%씩) 감액된다.
향후 이슈는 보수 외 소득에 사적연금 소득까지 포함할 것인지 여부다. 법령을 바꾸지 않는 한 불가피해 보인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공적연금 소득은 당연히 과세 대상이고 사적연금 소득도 연간 1200만원 이하이면 저율 과세, 초과하면 종합 또는 분리 과세하게 되어있다. 소득세는 내는데, 건강보험료는 내지 않는다.
재정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부과해야 하는데, 연금소득 감소와 노후 불안이 문제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고 있다.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장기신용은행, 기획예산처 등에서 근무한 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모바일 연금자문회사 웰스가이드를 설립해 ‘좋은 사회를 위한 금융’이라는 미션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