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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5일 수요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신심 미사)
제1독서 : 2역대 24,18-22
제2독서 : 로마 5,1-5
복 음 : 마태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한때 저의 나약함과 재능 부족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힘없는 저의 모습에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왜 저를 이렇게 힘없고 보잘것없이 만드셨냐면서 하느님께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때’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약함과 재능 부족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가장 강력한 힘을 드러내셨을까요?
빵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병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실 때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힘을 드러내셨을 때는 바로 십자가에서였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십자가에 못 박하신 그 장면은 가장 무능해 보이는 순간이며,
가장 나약해 보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가장 큰 힘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가장 나약하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쓰실 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불평불만을 하며 그분의 손길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나약함과 부족함 자체를 볼 것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믿고 더 의지해야 할 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성장해 갑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나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지우고, 대신 세상 것에 관한 관심과 믿음으로
하느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인께서는 아주 짧은 사제 생활을 하셨습니다.
1845년 8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그해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문초를 받으면서 보여준 신부님의 모습에, 조정에서는 회유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는 세상의 기준보다 하느님의 기준이 더 중요했습니다.
특히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느님 나라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잘 아셨기에
어떻게든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하느님께 철저하게 의지하셨습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성녀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순교의 영광이 가장 큰 힘을 드러내는 증거임을
지금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후손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도 성인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 큰 힘을 세상에 남길 수 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구 사제 모임을 마치고 멀리 남부에서 온 신부님들이 뉴욕에서 며칠 더 머물렀습니다.
제가 뉴욕에 있기 때문에 잠시 뉴욕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신부님들이 뉴욕에서 머무는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숙소는 신문사에 마련하였습니다.
첫날은 부르클린 다리를 건너보고, 밤에 야경을 보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모시고 다녔는데 모두들 좋아하였습니다.
둘째 날은 ‘타임 스퀘어’를 중심으로 ‘센트럴 파크’까지 걸어보려고 하였습니다.
뉴욕의 맛과 멋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이 원하는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아침미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성당을 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날은 ‘예수성심 대축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제성화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퀸즈성당에 부탁을 드렸고, 우리는 ‘예수성심 대축일’ 미사를 함께 봉헌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은 제가 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부르클린 한인성당’에도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신부님들에게 제가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을 보여주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성당에서 조배하였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난 신부님들은 뉴저지에 있는 ‘뉴튼수도원’엘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뉴욕에서 2시간 넘게 이동하는 거리에 있는 수도원입니다.
원장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본인은 독일로 성지순례 중이라고 하면서
그래도 수도원 방문을 환영한다고 하였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신부님들을 위한 식사를 마련해 주었고,
부원장 수사님께서 뉴튼수도원의 ‘역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뉴튼수도원에는 ‘마리너스’ 수사님의 무덤이 있습니다.
마리너스 수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의 주인공이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화물선의 선장이었던 수사님은
흥남 부두에서 피난민 1만 4천 명을 배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2월 23일에 흥남 부두를 출발한 배는 12월 25일 성탄절에 무사히 거제도로 입항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였던 선장님은 미국으로 돌아와 수도자가 되었고,
평생 뉴튼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선종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신부님은 ‘성극 모세’를 관람했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성극을 보기 전까지는 모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성극을 보면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고뇌에 찬 인물이었음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을 보면서
주교님의 지팡이는 악의 유혹을 물리치는 도구임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10가지 표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는데
마지막 표징은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결국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놀라운 업적과 능력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였음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지난 5월에 ‘성극 모세’를 보았지만 그런 묵상은 못했습니다.
다만 모세와 예수님의 삶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가 두 팔을 벌리면서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이는 사제가 미사를 마치면서 팔을 벌려 강복을 주면서
교우들을 파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으면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듯이
우리들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성극이 주는 교훈이라고 하였습니다. 피정 중에 강의를 듣는 것처럼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천상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뉴욕에 머물렀던 ‘사제들’을 보았다면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사제성화의 날’에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제들에게 있어 결코 변할 수 없는 본질적인 측면은,
오늘의 사제나 내일의 사제 모두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제는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맡겨주신, 성사를 집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입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제 한명 한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또 하느님께서는 그 사제 한명 한명을 통해 교회와 신자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소중한 소명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
부르심을 받들어 가슴 벅차오르게 응답했던 그 체험과 열정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어제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봉헌하였듯이,
오늘의 사제들도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보여주었던 ‘수선탁덕’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며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 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 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는데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이고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는데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1845년 8월17일에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39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으며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때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차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 주었습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 입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 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박해를 각오하여라.
조욱현 토마스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6살 때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의 골배마실로 이사를 하고
1836년 은이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해 12월 모방 나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니 16세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조국에 몰래 입국하였다가
다시 4월에 주교와 신부를 영입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항해 후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니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가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해 10월 12일 주교와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무사히 입국하였다.
8개월 동안 국내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몰래 출항하려다
황해의 순위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군문 효수 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에 불과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에서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신다.
그분 때문에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17절)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인 양, 회당에서 그들을 채찍질 할 것이다.
기도와 찬양을 바치고 성경을 읽는 그곳에서 사도들을 처벌할 것이다.
사실 사도들이 겪은 고통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절)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시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
즉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21절)
한 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다툴 것이다.
이것은 꼭 가족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부모와 친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이 일치하고 있었지만, 이 믿음 때문에 사악한 믿음과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믿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시작은 많이 하지만 끝에까지 가는 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라고 하시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신앙을 묵상하고 항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인간의 본모습을 잘 깨닫고, 알고 사랑한 분이시며,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죽기까지 효애를 드린 분이시다. 끝까지 항구한 분이시다.
우리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같은 항구한 믿음과
온갖 박해도 이길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거듭되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께서 반드시 내 인생 여정에 동반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때 이른 불볕더위에 한 며칠 주방장 역할을 해보니,
조리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뼛속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머릿속은 차려내야 할 메뉴 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몸은 상습 피로에 시달립니다.
아침 식사 끝나면 삭신이 노곤해지고, 체력이 바닥을 쳐서,
잠시라도 머리를 바닥에 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점심 식사 두 시간 전에는 몸을 일으켜야 합니다.
매일 누군가의 소중한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조리 노동자들의 삶이
더없이 감사하면서도, 짠한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입니다.
불과 25세의 젊은 사제였던 그가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그 나이에 그토록 주님을 향한 열렬한 신앙심을 지녔다는 것,
보기조차 끔찍한 사형 집행인의 날카로운 칼날 앞에서도
그리도 의연하고 당당했다는 것, 참으로 놀랍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실감합니다.
신앙의 깊이는 나이나 연륜에 비례하는 것도 절대 아님을 깨닫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내가 어디를 가든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주님 현존 의식입니다.
그런 의식의 소유자는 죽음도 결코, 두렵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대대적인 종교 박해가 없는 이 시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지니셨던 순교 영성을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의 힘겹고 부담스러운 일들을
짜증 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 바로 이 시대 순교입니다.
매일 직면해야 하는 결코 나와 호의적이지 않은 관계나 사건들을
그저 담담히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이 시대 순교입니다.
거듭되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께서 반드시 내 인생 여정에 동반하심을
굳게 믿는 것, 이 시대 순교입니다.
김대건 신부님 관련 글을 읽다 보면 그는 분명 환난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 환난이 김대건 신부님에게 인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지니게 도와주었습니다.
그 희망은 그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민동규 다니엘 신부
찬미 예수님
오늘의 주님 말씀을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읽었다면 혹은 들었다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는 이들은 믿음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은 세상에 반하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많은 순교자가 세상의 법도와 규율을 어겼다 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해외로 유학을 다녀왔고, 여러 나라의 말을 할 줄 알았으며
서양 문물을 직접 접했던 사람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나라 안팎을 둘러봐도 이런 인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믿음이라는 신앙 위에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사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걸으셨습니다.
기억납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서품되신 그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기억,
신부님께서 첫 미사를 봉헌했던 그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기억 말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분명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세상 편이 되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와 선함과 밝음을 져버리라고 다그칠 것입니다.
그날이 온다면 그 순간 우리가 오늘의 복음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하여도 우리가 조금씩 주님의 나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늘 우리의 시선이 선함과 따뜻함과 주님의 나라로 향해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름에 생각나는 것.
냉면
팥빙수
화채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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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네 집 대청마루
시골 할머니네 옥수수
시골 할머니네 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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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생각나는 것은
사람입니다.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한모금 / 수도자매일복음묵상
최 코르디아 수녀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오랜동안 이복음을 접할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당장에 보이지도 않고 증명도 안 되고,,
관람객인 나로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대충 넘어가면
사람들 눈에는 중간은 되는 그런 상황이니까요.
얼마 전 접한 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다리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가 몇 달 동안은 최대한 걷지도 말고,
걸어야 한다면 꼭 목발을 쓰라고 해서
그 아이는 의사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습니다.
가족들도 가능한 한 쉬라며 아무도 그 아이에게
"네 다리가 왜 그렇게 느리게 낫는 거니?" 하고
책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상처는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의사의 지시사항을 잘 따라야 하는 걸 아는데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책은 이야기했습니다.
서둘러 괜찮아지길 바라며 애써 못 느끼는 척 누르고.
주변도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라 채근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대하는 마음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홀대합니다.
죄로 얼룩진 상처 받은 마음, 감옥에 갇혀있는 마음은 어땠을까요?
서운하고 억울하고 분통 터져 하지 않았을까요?
오늘 보이지 않아 홀대했던 제 마음을 토닥토닥 해줘야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늘 살펴주시고 빛으로 꺼내주시는 주님께 감사 찬미드립니다.
[출처] 마태 9,1-8 연중 제13주간 목요일|작성자 베네지기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