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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 (24) 영적 패션의 완성, 그리스도로 옷 입음
롬13:13-14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성 어거스틴의 회심 도구가 된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자신의 내면적 고통과 회심의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따르고 싶었지만, 육체의 정욕과 과거의 습관이 자신을 붙잡고 있어 극심한 영적 번민을 겪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 그는 밀라노 집의 작은 정원 무화과나무 아래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왜 나의 이 더러운 죄악이 지금 끝장나지 않습니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톨레 레게, 톨레 레게"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방으로 돌아와 사도 바울의 서신서(로마서)를 무작위로 펼쳤습니다.
그게 바로 로마서 13장 13~14절인데 그는 그 말씀을 읽자 바로 그의 마음에 평안의 빛이 가득 차올랐고, 오랜 시간 그를 괴롭히던 모든 의심과 번민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는 말씀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해석됩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그 본문을 살펴보려교 하는 것입니다.
앞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13:8-10)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과거의 은혜만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소망이 오늘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임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들에게 "잠에서 깨어나라", "어둠의 일을 벗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명령합니다.
얼핏 들으면 이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바로 살라"는 훈계나 결단을 촉구하는 윤리적 설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권면을 던지는 근거를 보아야 합니다.
1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성경이 말하는 구속 역사의 시계는 단순한 세월의 흐름(크로노스)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 창세기에서 인간이 범죄함으로 온 세상에는 죄와 사망이라는 깊은 '어둠의 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둠 속에 구원의 빛을 약속하셨고, 마침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낮의 빛'을 침투시키신 것입니다. 이제 빛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1. 그러기에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빛이 영적 잠을 깨우기에 충분합니다 (11절)
11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성경에서 ‘잠’은 하나님을 향한 영적 무감각과 사망의 그늘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은 영적인 깊은 잠, 즉 영적 죽음 상태에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잠에서 깨어날 수도, 어둠을 헤쳐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속사의 은혜는 찾아오시는 은혜였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잠들어 있던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깨우셨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내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어둠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건이 우리를 영적 무감각에서 깨우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젔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나 자신의 열심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깨우신 그리스도의 구원 은혜에 반응하여 깨어 있게 됩니다.
11절 하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예수 믿을 때 얻은 칭의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최종적인 영화(Glorification)를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마지막 날에 죄와 사망의 모든 흔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고, 부활의 몸을 입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은 구원을 크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칭의 → 성화 → 영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롬 8:30에서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놀라운 것은 바울이 영화를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과거형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은 반드시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셨고 → 부르셨고 → 의롭다 하셨고 → 마침내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영화의 절정은 하나님을 영원히 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최종적인 구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계21: 3-4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죄도 없고, 죽음도 없고, 눈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최종적인 영화는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부활한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그리스도인의 최종적인 영화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몸까지 완전히 구속하시고, 죄와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게 하시며,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하시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게 11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하는 의미입니다.
2. 이러한 구원의 빛이 우리 어둠의 옷을 벗게 하는 것입니다. (12절)
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여기 “밤이 깊고”에서 '밤'은 문자적으로는 밤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죄의 시대, 죄와 사망, 사탄이 지배하던 시대를 뜻합니다, 죄와 어둠이 지배하는 현재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반대로 “낮”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곧 구원의 완성이 드러날 때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바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밤이 깊다 → 그러나 낮이 가까워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밤이 깊다”가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시대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죄가 있고, 악이 있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밤이 깊으니 절망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낮이 가까웠다!”
밤이 깊다는 것은 동시에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종말론적 소망입니다.
그런데 왜 “밤이 깊고”라고 표현했을까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역설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시간이 갈수록 어둠이 깊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보면 역사의 방향은 어둠에서 빛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세상은 가장 어두워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역사는 어둠 →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둠 → 새벽 → 그리스도의 재림 → 영광으로 나아갑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세상의 죄악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다툼과 시기와 욕망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
밤이 깊다는 것은 새벽이 멀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성도여러분, 어둠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잠들 때가 아닙니다.
깨어날 때입니다. 어둠의 일을 벗을 때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을 때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밤이 깊다”는 것은 세상의 죄와 어둠이 절정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구원의 완성이라는 ‘낮’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망의 선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도를 두렵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깨어 거룩하게 살도록 격려하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또 12절 “낮이 가까웠으니”
‘낮’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새 시대(New Age)를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어둠의 권세를 치명상 입히셨기에, 이 세상의 밤은 이미 기우뚱 기울었고 참 빛의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이미 와 있다'는 완료형 의미가 강합니다.
이는 긴박성을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구원의 날이나 천상적 영광이 임박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구속사적 전환점 앞에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벗고 "입으라" 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죄를 버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거룩을 입어야 합니다.
빛의 갑옷”은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졌으므로,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왜 ‘갑옷’이라고 했을까요?
갑옷은 전쟁할 때 입는 방어 장비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적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죄와 유혹과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는 세상 가운데서 어둠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빛의 옷”이라고 하지 않고 “빛의 갑옷”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빛 가운데 살아라”는 말에는 “어둠과 싸우며 살아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왜 ‘빛’이라고 했을까요?
성경에서 빛은 하나님께 속한 영역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어둠은 죄와 거짓과 방탕함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로마서 13: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그러므로 빛의 갑옷이란 추상적인 종교적 감정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고, 사랑으로 행하고, 욕망에 끌려가지 않고
다툼과 시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빛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바울은 “빛을 만들어 갑옷을 입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결국 “빛의 갑옷” =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나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 또 “빛의 갑옷을 입으라 했느냐”하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와 연결됩니다.
12절의 핵심은 사실 여기에 있습니다.
밤이 깊다 → 낮이 가까워졌다 → 그러므로 갑옷을 입어라.
여기서 밤과 낮은 단순히 시간의 변화가 아닙니다.
밤 = 현재의 죄악된 시대
낮 =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성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둠에 속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이미 다가오고 있는 그날의 백성답게 살아라.”
이것이 “빛의 갑옷”이라는 표현에 담긴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말씀하신 성도의 최종적인 영화와도 연결됩니다.
영화될 날이 가까우므로 → 오늘은 빛의 갑옷을 입고 →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갑옷은 천국에 가기 위해 입는 옷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입고 싸우는 옷입니다.”
거듭해 강조하지만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전쟁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승리로 결정되었습니다.
3. 그래서 영적 패션의 완성은 그리스도로 옷 입음입니다.(13-14절)
여러분은 어떤 옷이 취향입니까?
우리는 날씨와 보호를 위한 실용적인 옷부터 개성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패션까지, 일상에서 편안한 캐주얼, 단정한 업무용 복장, 기능성 의류 등 다양한 목적과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옷의 용도는 신체 보호, 체온 유지, 사회적 표현 및 예의범절 등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집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옷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소속과 신분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다양한 옷들이 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옷을 입는게 좋을까요?
패션의 완성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義)로 옷 입는 생활방식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기 위하여
어둠의 행실들(대조적인 세 쌍의 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13-14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방탕과 술 취함 :방탕이라는 단어 ‘코모이스'의 원래의 뜻은 '승전 축하 행렬’이었으나 나중에 난잡한 밤의 술잔치로 변질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방탕과 술취함은 무절제한 쾌락과 중독적 태도를 경고합니다.
-음란과 호색 : ‘음란’은 불법적인 성관계를, '호색'은 수치심 없는 무절제와 방종을 뜻합니다.
-다툼과 시기 : '다툼'는 우월감을 다투는 비열한 갈등을, '시기'는 타인에 대한 강한 원망과 분노를 포함합니다.
이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분열의 씨앗으로 간주됩니다.
여기 13절에 나열된 방탕, 술 취함, 음란, 다툼, 시기는 모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채우려 할 때 나타나는 죄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론적으로 어둠의 죄들을 이기는 핵심 비결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13절의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그리스도의 삶은 이제 '생활 방식'이나 '행실'을 '품위 있게', '어울리게'하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보는 대낮에 행동하듯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정직한 삶을 살라는 촉구입니다
그래서 14절하.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영적 패션의 완성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의 뜻은 중동의 언약 관습에서 옷을 바꿔 입는 것은 상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옷 입는다"는 표현은 당시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흔히 사용되던 관용구로, 그 사람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본을 따르며, 그 사람처럼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고대 유대 관습에서 '신의 영광(Shekinah)을 입는다'는 표현은 영혼이 불멸의 옷을 입고 광채를 발하게 됨을 뜻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겉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친밀하고 내밀한 확인을 의미합니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합하여 옷 입은 '신분적 변화'를 선포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로 옷 입혀졌음을 깨달을 때, 더 이상 육신의 정욕을 도모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나를 만족시키는 참된 영광과 기쁨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은 이를 매일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하는 '윤리적 성화'를 강조합니다.
여기 “입으라” 이 말은 "지금 당장 효과적으로 입으라"는 긴박함과 함께, 하나님이 강제로 입혀주시는 것이 아니라 신자 스스로가 믿음을 통해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참여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즉 매일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듯, 매일 아침 그리스도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그리스도의 주재권(Lordship)을 인정하고, 모든 동기와 욕망, 행동을 그분의 통제 아래 두어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삶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입니다.
이걸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채우려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즉 죄를 짓기 위해 미리 기회를 만들거나 마음속으로 범죄를 계획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4. 우리가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기 위한 수칙이 있습니다.
1) 생각의 단계에서 차단하기 :
모든 죄는 하나의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어떻게 죄를 짓고도 들키지 않을까'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거나 상상하는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이 마음에 떠오르는 즉시 죄가 생각 속에서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하고 바로 생각의 내용 바꾸어야 합니다.
2) 환경적 유혹 요인 제거하기 :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핑계로 유혹의 매개체를 주변에 두지 않는것입니다. 육신에게 기회를 주는 행위 인터넷 게임, TV 채널, 특정 잡지 등 자신을 영적으로 나태하게 만들거나 정욕을 자극하는 환경적 요인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합니다.
유혹이 예상되는 장소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책입니다
3) 선제적 대응 계획 수립하기 :
자신의 취약점 파악하는 것인데 자신이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 약한지 미리 공부하고 파악하여, 유혹이 왔을 때 협상하거나 달래려 하지 말고,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필요하다면 요셉처럼 피신해야 합니다.
4) 영적 무장하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육신의 정욕을 대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의지력만으로는 육신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매 순간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육신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 그리고 영적 전쟁의 패션의 근본적인 완성은 그리스도로 옷 입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실제 옷을 입듯이, 매일 아침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모셔 들이고 그분의 통제 아래 자신을 두기로 결단하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 있으십시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가십시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성도는 다가오는 새벽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깨어 기도하며, 빛의 자녀답게 행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허물과 죄로 죽어 깊은 어둠의 잠에 빠져 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수치를 가리려 했던 헛된 무화과 잎의 옷을 벗겨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지으신 완전한 '의의 옷', '구원의 옷'을 입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세상의 어둠과 육신의 정욕에 미혹되어 다시 예전의 어둠의 옷을 기웃거리지 않게 하옵소서. 이미 참빛이 시작되었고 주님의 완성될 나라가 가까웠음을 구속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내 행위가 아닌 주님의 의를 의지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온전히 덮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