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서정오(53) 선생은 10여년째 옛이야기를 수집해 다시 쓰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수집해 책으로 펴내는 것이다. 28년 근무해온 초등학교 교사직에서도 2005년 떠났다. 수집한 이야기로 지금까지 300편에 20여권 책을 펴냈다. 자신의 창작집 2권(20여편)에 비해 훨씬 많은 분량이다. 최근에 가을 이야기 '도토리 신랑'에 이어 겨울 이야기 '범아이'를 내놓았다. 역시 수집한 옛날 이야기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창작하고 싶어한다. 수집과 다시 쓰기에 열중하는 까닭은?
"옛이야기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 모두가 참여해 만든 것이다. 개인의 창작품이 작가의 개인적 경향을 담고 있다면, 옛이야기는 오랜 세월 구전되는 동안 우리 민족의 정서,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자 손녀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 그래서 옛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이고 사랑이다."
-교직까지 그만두고 나섰는데?
"급하게 됐다. 옛이야기를 아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나중에는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개인 혹은 동호회 차원의 수집과 다시 쓰기는 성과가 적다. 더 늦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옛이야기를 수집하고 다시 써야 한다. 영어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의 100분의 1만 투자해도 성과가 클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옛이야기를 수집하나.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며 노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또 국문학자의 연구논문이나 연구실에 자료로 머물러 있는 이야기를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방식이다. 요즘은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노인들이 많지 않다. 시골에 아이들이 없으니 이야기할 기회가 없고, 그래서 노인들은 이제 '이야기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요즘처럼 아이들이 힘든 때는 없었다. 어떤 세대를 막론하고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고 자랐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공부와 경쟁을 강요받는다. 어른들이 흔히 '요즘 아이들 정서가 메말랐다'고 말하지만 그런 구조를 만든 것은 어른들이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구조, 상대를 부적격자로 만들고, 부적격자를 내치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메마를 수밖에 없다. 옛이야기는 상처받은 아이들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희망과 용기를 준다. 세상에 경쟁만 있는 게 아니라 따뜻함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옛이야기는 약자이지만 선한 주인공이 결국 행복에 이른다는 주제가 많다. 경쟁과 이기심을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는 꼭 필요하다."
-그런 점 때문에 '천편일률,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틀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옛이야기를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큰일날 소리다. 흔히 흥부와 놀부를 재해석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흥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가장이지만 놀부는 유능한 경제인이다. 그러니 옛이야기는 재해석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가 중요하고 성공이 중요한 세상이 됐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 동생을 내쫓고,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손님 내쫓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놀부를 두둔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람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책이 좋은 책인가?
"이야기를 통해 읽기 쓰기 등 언어능력을 길러주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동화의 목표는 무엇을 잘하도록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이다. 옛이야기를 교훈이나 숙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특히 교훈이 많이 드러나는 작품은 억지로 짜낸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기 어렵다.
-세계명작동화와 위인전은 어떤가?
"세계명작 동화 중에도 좋은 작품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식민지 시대 유럽과 북미 몇몇 나라에서 나온 것이다. 그 시대 그 나라 사람들의 보통 정서를 담고 있어 우리 정서와 맞아떨어지기 어렵다. 많은 위인전은 위인이 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엇인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어린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읽고 꿈과 용기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위인전이 오히려 아이들의 꿈과 용기를 꺾을 수 있다."
-아이들이 동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많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의무감에서, 건성으로, 기계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주는 부모가 이야기 자체를 즐겨야 한다.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로 질문하거나 설명을 장황하게 할 필요는 없다. 아이에게 질문을 강요하지 말고 상상의 여백을 주는 게 좋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서정오 작가는….
1955년 경북 안동 출생. 안동교육대학·대구교육대학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28년 근무. 1984년 「이 땅의 어린이문학」에 소년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으로 옛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옛이야기 들려주기' '옛이야기 보따리' '도토리 신랑' '정신없는 도깨비' '팥죽할멈과 호랑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옛이야기' '범아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