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또 한명의 한국인 빅리거가 탄생할 전망이다. 몬트리올 엑스포스 산하 에드먼턴을 이끌고 있는 부동의 에이스 송승준이다.99년 메이저리그 향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지 5년만에 이루는 꿈같은 일이다.
송승준은 오는 2일(한국시간) 40인 확대 로스터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미국 현지 언론은 또한 유망주 송승준의 빅리그행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하지만 정작 본인은 "저 메이저 가는 거 맞나요?"라며 애써 담담해 한다. 그리고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말한다. "당장 지금이 아니라도 상관없어요.아직 여기서도 배워야 될게 많거든요."
◆1막 1장 -엉덩이가 뜨거워!
"유리창 깨뜨린 사람 누구야?"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교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이내 반 아이들의 시선은 뒷자리에 앉아 있는 까만 사내아이에게 쏠렸고 송승준은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들었다."승준이 또 니가? 니 앞으로 나온나! 니 때문에 학교 유리창이 남아나질 않는데이."
그랬다.송승준은 시도 때도 없이 학교 유리창을 깨먹는 아이였다.미술시간에는 찰흙으로 야구공을 만들었고 청소시간에는 빗자루로 방망이 연습을 했으니 유리창이 온전할 리 없었다.선생님의 회초리 찜질에 엉덩이가 성할 날 없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승준아! 니 야구 한번 해볼래? 니가 깨뜨린 유리창 값으로 글러브하고 방망이를 사도 수십개는 더 샀겠다.그리 던지고 치는 게 재밌으면 야구 한번 해봐라." 그렇게 담임 선생님은 고사리같은 송승준의 손을 잡고 야구부로 향했다.
◆1막 2장 -하늘이 보살핀 어깨
그렇게 시작된 송승준의 야구인생은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5학년 시합때 상대편 선수와 부딪혀 왼쪽 손목이 부러지는 골절상을 당했다. "부모님이 제일 놀랬죠.야구를 그만두라 하셨어요.하지만 이 재밌는 놀이를 그만 둘 수 있나요" 웬만해선 송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중학교때는 허리가 안좋아 고생했다.공을 던질 수도 없었고 방망이를 잡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때는 달랐다.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한 송승준은 누구못지 않게 싱싱한 어깨로 씽씽투를 뿌렸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부상으로 쉬었던 어깨가 오히려 약이 된 셈이다.
◆2막 1장 -직구로 승부한다
우리나라 아마야구 사정이 다 그렇듯 팀의 에이스는 전경기 시도때도 없이 등판한다.어제 9이닝을 던진 선수가 오늘 5이닝을 던지는 것이 학원야구의 현실이다.혹시라도 무리한 등판으로 혹사를 당하지 않았을까. "언지예(아니요).정연회 감독(경남고)님이 많이 배려해 주셨습니다.좋은 동기들도 많았고요.저는 준결승이나 결승전처럼 큰 경기만 출전했습니다.덕분에 무리하지 않았고요." 그렇게 송승준은 98년 모교 경남고등학교에 봉황대기 우승을 안겼다.
당시 경남고를 이끈 정연회 감독은 송승준의 구위를 이렇게 회상했다."오로지 직구만 던졌습니다. 150km가 넘는 직구를 쳐낼 타자가 없었죠." 그랬다.송승준은 150km를 넘나드는 묵직한 직구로 고교 타자들을 윽박질렀다.고교생 어깨에 가장 무리가 가는 낙차큰 변화구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3막 1장 -혹독한 신고식 '실력으로 보여준다'
박찬호나 김병현 등 샛별같은 메이저 선배들이 다 겪은 통과의례.바로 신고식이다.특히 유망주 송승준은 90만달러라는 거액의 계약금으로 입단했기에 동료들의 시샘이 하늘을 찔렀다."미국 진출 후 첫 등판일이었습니다.스파이크와 글러브가 없어져 한참을 찾았죠.헉.냉동실에 있더라고요.뿐만 아닙니다.수건에 치약을 발라 놓질 않나.속옷을 숨기질 않나….화가나서 쌈박질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매서운 한국 주먹만으로 동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실력으로 보여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내가 왜 유망주인지 증명하겠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렇게 송승준은 매경기 최선을 다했고 그가 승수를 쌓아나갈 때마다 동료들의 비아냥도 줄어들었다.
미국생활 첫 해(걸프 코스트리그) 5승 5패 방어율 2.30을 기록한 송승준은 결국 동료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이듬해 뉴욕 펜리그로 승격했다.2000년 뉴욕 펜리그 성적에서는 5승 2패 방어율 2.60의 성적을 거뒀다.
episode #1 - 미국이 놀란 장난끼
송승준의 장난끼는 가히 국제적이었다.한국 미국을 가리지 않고 발동했다.송승준은 지난 1999년 4월 31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야구만 했던 제가 영어를 어디 알겠습니까? 오로지 yes, no 만 알고 LA로 향했습니다." 용감한(?) 송승준은 미국에서 무조건 'yes'만 하라는 충고를 가슴에 새기고 물설고 낯설은 땅을 밟았다.
"입국심사를 받는동안 계속 yes만 했습니다.한데 심심하더라고요. 살짝 장난기가 발동해서 이번에는 no라고 당차게 말했죠.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진 백인이 다시 한번 묻더라고요.표정이 슬슬 재밌었습니다. 또 한번 용감하게 no를 외쳤죠. 그렇게 두세 번 no라고 말하자 갑자기 덩치 큰 흑인 경찰 세명이 제게 수갑을 채우더라고요." 송승준은 급기야 엉엉 울었고 나중에 한국 직원이 도와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 입국 심사관은 송승준에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고 겁없는 송승준은 계속해서 no만 되풀이 했던 것이다. 그러니 덩치큰 흑인 경찰관에게 체포당할 수 밖에. 그 이후로 송승준은 당분간 yes만 말했다는 후문이다.
◆4막 1장 -몬트리올에 둥지를 틀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송승준은 2001년 싱글 A 오거스타 그린쟈켓(사우스 어슬레틱 리그)과 사라소타 레드삭스(플로리다 스테이트리그)에서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특히 사라소타 레드삭스 시절 5승 2패 1.68을 기록, 꿈의 1점대 방어율을 선보이기도 했다.그리고 그해 마이너리그 올스타에 선정되는 행운도 누렸다.
그러나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2002년 2년 연속 퓨쳐스 게임에 출전해 1이닝을 삼진 2개로 셧아웃시켰던 유망주 송승준이 선배 김선우와 함께 트레이드 대상에 오른 것이다.그것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말이다.당시 보스턴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거포 영입이 시급했고 결국 김선우와 송승준을 내주고 클리프 플로이드를 영입했다.
"사실 눈앞이 깜깜했습니다.몬트리올은 재정이 약해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매우 부족했거든요.펜웨이 파크에서 데뷔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송승준은 이내 마음을 바꿨다."어디서든 자신이 하기 나름이죠."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렇게 송승준은 몬트리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막 2장 -마이너 최고 투수 '송승준'
명필이 붓을 안가리듯 송승준 역시 마운드를 안가렸다.송승준은 몬트리올 산하 더블A와 트리플A에서 완투승과 완봉승을 한번씩 일궈내며 메이저리그를 항해 쾌속질주 했다.특히 지난 4월 29일 더블A 이리 시울브스(디트로이트 산하)전에서는 마이너리그 최초의 '노히트 게임'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이날 선발등판한 송승준은 9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도 허용치 않는 빼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이어 지난 29일에는 솔트레이크 스팅어스(애너하임 산하)와의 원정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둬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53km를 넘나드는 묵직한 직구와 투심, 커브와 체인지업, 스플리터(SF볼)를 절묘하게 섞어 던지며 상대타선을 절묘하게 요리했다.
물론 5이닝도 못채운 채 강판당한 적도 있다. "경기가 안풀릴 때는 빨리 잊어버립니다.예전에는 경기 도중 화를 표출하기도 했는데 올해는 속으로 삭이고 경기 후에는 다 잊어버리죠.대신 타자를 분석하고 투구내용을 다시 살펴봅니다." 마이너리거 송승준은 이렇게 값진 경험을 쌓아가며 서서히 메이저리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5막 1장 -내일을 향해 던져라
"지난 5년간 마이너 생활에 몇점을 줄 수 있을까요?" 뜬금없는 질문에 송승준은 머뭇거림없이 얘기했다. "10점 만점에 6점요.아직 배워야 할게 많습니다.트리플A 만 해도 잘치는 타자들이 수두룩해요. 밀어치고 당겨치고. 변화구 대처능력도 상당하고요.아직 전 경험이 부족합니다."
자신에게 겨우 'D학점'을 준 송승준은 "이번 9월에 나머지 4점을 채울 겁니다.만약 9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경기에 나서지 않아도 좋습니다.벤치에 앉아서 많이 보고 많이 배울겁니다."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송승준의 빅리그 진출은 다소 늦춰질 것 같다.몬트리올 산하 트리플A 에드먼턴 트래퍼스가 퍼시픽리그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에이스 송승준이 1차전 선발을 맡게됐다.따라서 송승준은 플레이 오프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 뒤 오는 5일 이후에나 승격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송승준에게 넓고 넓은 5막 2장의 무대가 활짝 열릴 날도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
◆에필로그 -부모님의 이름으로!
"마이너리그는 전쟁터입니다.서로을 짓밟아야 올라갈 수 있죠.정말 외로운 곳입니다." 승승장구 송승준 역시 여느 메이저리거 선배들처럼 눈물 젖은 빵을 곱씹으며 담금질의 시간을 보냈다.한국행 비행기표를 만지작거리며 수없는 밤을 눈물로 지샌 적도 있다.
"힘들 때마다 부모님을 생각합니다.부모님은 부산에서 조그만 김밥 체인점을 운영하십니다.어머니가 오전부터 오후까지 계시고 아버지가 뒤를 이어 야간을 맡습니다.작년에 한국에 들어와 부모님 가게에서 함께 김밥을 말고 배달을 하고 서빙도 했습니다.정말 힘들더라고요.제가 하는 야구는 힘든 축에도 못끼었습니다."
외아들 송승준은 효자다.부산에서 24시간 자신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오던 눈물도 절로 들어간단다. "전 마이너 생활이 힘들다고는 해도 좋은 아파트에서 묶고 좋은 호텔에서 잡니다.한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잠 한숨 제대로 못주무시고 제 뒷바라지를 해요.어떻게 감히 힘들다고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송승준은 올시즌을 끝내고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130이닝 이상 던져 지친 어깨에 휴식을 주기 위해서다.그러나 송승준은 부모님과 여자친구 핑계를 슬쩍 들이밀었다. "제가 가서 가게 매출 좀 올려 드려야죠.작년에 직접 서빙했을 때 손님들이 버글버글 했거든요. 그리고 여자친구도 보고 싶네요. 제가 힘들 때마다 위로해준 친구가 있습니다. 아주 예뻐요.한데 얼굴 까먹겠네요." 이제 곧 빅리그 입성을 앞두고 스타자리를 예약해둔 송승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장난끼가 가득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긍정적인 성격이 송승준을 5년만에 예비 메이저리거로 만든 힘인지도 모른다.
제일 빠른 투수는 박찬호입니다. 한때 마이너에서 100마일을 찍은적도 있습니다. LA에 있을때 패스트볼이 가장 많은 내셔널 투수였을 정도로 구위가 무시무시 했습니다. 지금은 삭악지만 구위만큼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빨리 해복해서 강력한 모습 다시 보길 기원합니다.
첫댓글 궁금한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짐 메이져 리구 올라간 투수 중에 스피드 젤 빠른사람이 누구에요 ?? 궁금하네여
재미있게 잘 봤어요^_^ 송승준선수 화이링!!
제일 빠른 투수는 박찬호입니다. 한때 마이너에서 100마일을 찍은적도 있습니다. LA에 있을때 패스트볼이 가장 많은 내셔널 투수였을 정도로 구위가 무시무시 했습니다. 지금은 삭악지만 구위만큼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빨리 해복해서 강력한 모습 다시 보길 기원합니다.
메이져에서 뛰는 선수중에선 박찬호 선수가 젤 많이 나왔었구요... (물론 지금은 ㅡㅡ;;;) 마이너에 있는 선수들 중에선 류제국 선수가 98마일까지 던진다고 하네요... 평균은 94마일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