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볕 따스한 날
양지바른 소파에 앉아 뜨개질 하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그사람은 날 참 가정적인 여자로 볼 것이다.
볼품있는 요리로
근사한 식탁 세팅하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그사람은 내가 현모양처 임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 몇 권을 골라 책상에 쌓아놓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책 속에 빠져든 나를 누군가 봤다면
그사람은 날 참 학구적인 여자로 볼 것이다.
열이 펄펄 끓는 자식의 체온을 낮추기 위해
밤새 곁에서 물수건 갈아 이마에 얹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그사람은 내게서 진한 모정의 본성을 느낄 것이다.
현란한 싸이키 조명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에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열정적인 춤 속에 빠져든 나를 누군가 봤다면
그사람은 내게서 잦은 나이트클럽 출입을 추측할지 모른다.
장르 구별없이 노래 소화하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그사람은 내가 노래방에 갖다바친 돈을 계산할지 모른다.
그러나...
뜨개질하는 나만 내가 아니고
요리하는 나만 내가 아니고
책 속에 빠져든 나만 내가 아니고
아픈 자식을 간호하는 나만 내가 아니고
나이트클럽에서 춤 추는 나만 내가 아니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나만 내가 아디다.
여기 예로 열거한 상황 말고도
수 십, 아니 수 백 가지의 상황 설정을
다 합친 내가 나다.
뜨개질만 잘하는 여자.
요리만 잘하는 여자.
일년에 서 너 차례만 가도
천성적으로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는 여자도 있다.
당신, 나 알어?
언제 봤는데?
어디서 봤는데?
어떻게 알았는데?
얼마나 알고지냈는데?
까르르 웃는 해맑은 미소 뒤에
가려진 슬픔 알어?
일상의 농담 속에
파묻힌 진한 외로움 알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작아지는 초라함에 전율하는 거 알어?
대지도 철없이 잠든 새벽
성전에 나가 울면서 간구하는 기도 들어봤어?
같은 나뭇잎 색깔도
햇살과 그늘에서 틀리다는 거 알어?
제발...
한 두 번 만나서
그사람과 매우 친한 척
그사람을 아주 잘 아는 척 하지 않았음 좋겠다.
어느 한 단면을 보고
그사람 전체를 속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음 좋겠다.
그래서...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진가를 발휘하나보다.
난
누구든
속단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만 듣도
섣불리 평가하지도 않는다.
내가 알고지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더...
그러면...
진짜 보석같은 사람을 놓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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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켁......나.......야단 맞나봐.....-.-:
꽤 긴글인데...읽다보니 한자도안 놓치고 다 읽었네요.......그렇군요....
님의 글을 접할수록 빠져드는 저를 발견합니다.멋지십니다.
유하님 놀라시긴........................발 저린거 있어요.??ㅋ
ㅋㅋ.....알어?알어?하는데 무서워서 혼났어요,,.ㅎㅎㅎ
아무래도 혼날일을 하신거구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