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가 바꾸어 놓은 많은 풍경 중에 간과할 수 없는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자유발언 시간’이었다. 낯설었던 그 장면이 많은 이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학생들의 발언이 오히려 어른들의 그것보다 훨씬 신선하고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의견을 갖는 것 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획일화된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은 촌철살인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정치를 염려했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간 대한민국에서 학생이 무언가 자신의 의견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들은 의견을 가져서도 안되고 설혹 가졌어도 ‘어린 자(무언가 미성숙하고 덜 완성된, 부족하다는 의미로)의 치기’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교육 시스템 안에서도 쌍방 소통이라기 보다는 학교의 일방적인(one-way) 커뮤니케이션이 주를 이룬다.
최근 미국에서는 학교를 재설계(re-design)하자는 움직임이 거세다. 국내에서도 ‘거꾸로 교실’과 같이 기존의 교육방식과는 상반된 교육 시스템을 거론하는 일이 많아졌다. 전세계적인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학생이 주체가 되는’ 방식이 있다. 교육의 시스템의 가장 핵심인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학생이 결정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학생들은 학교와 선생님에게 학교가 고쳐나가야 할 것들을 건의하고 학교는 이를 수용한다.
이렇듯 ‘학생에 의한’ 교육의 변화와 시도들은 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처럼 다변화된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 학교는 기본의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된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이며 변화와 위기에 대응력이 뛰어난 인재는, 학교 안에서 그런 연습과 훈련들을 충분히 해볼 수 있을 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학교 혁명의 중심에는 ‘학생’이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하였고, 변화의 주역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육변혁’의 해외 사례들을 살펴보며 어떤 변화가 가능한 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학생주도 교육(Student-Driven Learning)
먼저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육의 가장 핵심은 교육의 주체가 선생이 아닌 학생이 되는 교육 시스템을 의미한다. 홍콩교육대학(The Education University of Hong Kong : EdUHK)은 최근 미래의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중요한 교육 트렌드 6가지를 소개했다. 그 첫 번째로는 나만의 컴퓨터와 같은 디바이스를 지니고 수업하는 것(Bring your own device). 이것은 개인화된 학습 기회를 증대시키고 잘 개발된 교육 어플들을 활용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학생 스스로 독립적인 학습도 가능하게 하는 등 수많은 장점들이 있다고 안내한다. 두 번째는 학습 공간의 개선(Revamped Learning Spaces)이다. 디지털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책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좋은 습관을 들이게 하느냐는 요즘 교육이 직면한 큰 딜레마. 이를 위해 도서관 공간을 오픈 공간으로 하고 학습 공간이 독립적으로 나뉘면서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를 줄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공간의 변화들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 번째는 3D 프린팅(3D Pringting), 네 번째는 난독증 학생들을 위한 더 좋은 도구들(Better tools to support dyslexic students)에 대한 지원을 꼽았다. 다섯 번째로는 다양한 문화와 글로벌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주는 교육의 세계화(The internationalization of education)가 있다.
(출처: http://www.topuniversities.com/courses/education-training/top-6-trends-education-today)
마지막으로 제안한 여섯 번째 트렌드가 바로 지금 주목하고 있는 학생주도학습(Student-driven Education)이다. 선생님들의 역할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지시하고 주도하는 역할이 아닌 조력자, 즉 촉진자(facilitator)의 역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교실 안의 주인공 역할을 자처하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선생들은 그 무대의 중심을 학생들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존의 교육이 ‘학생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이슈였다면, 미래의 교육은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는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즉 교사가 무엇을 알려주느냐 보다는 기존의 자료들을 가지고 어떻게 학생들이 그것들을 다루고 활용할 것인가를 돕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는 의미다. 학생들에게 더 깊은 질문을 하고 무한한 데이터와 정보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사는 학생들이 호기심 많은 문제해결사와 혁신가가 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한 트렌드 중에 하나로 등장한 학생주도학습은 선생님이 가진 정보의 양보다도 훨씬 많은 정보를 디바이스만 있으면 접근할 수 있는 지금의 시대에 기인한다. 학교의 역할은 정보를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입력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사고하며, 활용할 것인가를 안내해주는 역할이 주를 이룰 것이며 결국 교육의 주도를 학생이 쥐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 개혁, 학생의 목소리를 반영하다.
또 다른 의미의 학생 주도는 ‘학습과정’뿐 아니라 ‘학생들의 의견’이 학교 변화에 적극 반영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크 필립스1(Mark Philips교사이자 교육 저널리스트)는 그의 칼럼에서 학교 개혁에 실패하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비효율적인 학교 개혁에 대한 한 가지 원인은 개혁의 과정에서 교사를 상대적으로 제외시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학생들에게 학교의 약점과 그들이 보길 원하는 변화를 학생들에게 묻지 않아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는 많은 경우 학생들이 학교의 실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해결책을 내놓는지 경험했다고 전한다.
▲ 강연하고 있는 고등학생 Nikhil Goyal의 모습 (출처 : Clinton Global Initiative University (CGIU))
마크 필립스의 말처럼 학생은 학교를 가장 잘 관찰하고 조언할 수 있는 중요한 조언자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학생의 학교 평가: 한 가지 크기가 모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One Size Does Not Fit All: A Student’s Assessment of School)’라는 책을 펴낸 닉힐 고얄(Nikhil Goyal)은 학생이 학교에 대한 평가를 아주 매서운 눈으로 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지금 21살인 그는 최근 ‘재판을 받는 학교: 자유와 창의력이 우리의 교육 과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Schools on Trial: How Freedom and Creativity Can Fix Our Educational Malpractice)’라는 제목의 두 번째 책을 출판했다. ‘‘학생’ 관점에서 현재의 교육제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으며 많은 교육 개혁가들이 그의 책을 앞다투어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청년이 교육개혁의 핵심에 이렇듯 명쾌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학생들이 학교를 평가하고 공립교육을 검토하고 그들이 보는 것에 대한 의견을 제공하고 해결 방법을 충분히 제안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다른 고등학생 혁명가 샘 레빈(Sam Levin)은 실제로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큰 변화와 혁신을 일으켰다. 비키는 스스로를 모범생으로 지칭하였다. 실제로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성적도 우수했고 다른 학생과의 트러블도 없었으며 선생님과의 관계도 몹시 좋았다. 그러나 주변에 친구들이 학교 시스템에 부적응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 그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왜 그들은 학교에 적응할 수 없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까?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부모의 동의 하에 그는 학교의 선생님들과 교장선생님들을 만나 이 문제들을 상의하며 학교의 변화에 힘썼다. 그는 그레이트 배링턴 (Great Barrington)의 Monument Mountain Regional 고등학교의 독립 프로젝트인 ‘대안학교 내 학교(alternative school-within-a-school)’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학생이 주도가 되어 학교의 변혁을 꾀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학생의 주도로 이루어진 학교의 변화가 긍정적인 결과를 낫는다는 점은 짧은 영상인 ‘Beyond Measure’에서 잘 드러난다. 이 짧은 영상은 미국 전역, 농촌 켄터키부터 뉴욕시에 이르기까지 구식의 시험중심교육에서 벗어난 학교들을 탐방해 그 학교의 특징을 설명한다. 이들은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탐구, 실험, 협동 및 창의력을 훌륭한 교육의 열쇠로 보는 학교들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자기가 배울 것들을 정하고 교사에게 당당히 이걸 더 알려달라고 요구한다거나, 하나의 프로젝트 아래 영어, 수학 그리고 다른 교과목이 묶여서 진행되기도 한다. 이들 학교에서는 모든 배경의 아이들의 성취가 극적으로 향상되었으며 거의 모든 학생이 졸업한다.
(출처: beyondmeasurefilm.com)
물론 이들이 처음 변화를 시도했을 때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머무르려는 특징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학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그 위험부담에 직면했고, 학생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으며 이전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성과들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학생’들이 있었다. 곧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지만 올바른 교육환경을 위해 그들이 내어야 할 ‘목소리’를 주저 없이 냈고 학교는 이를 수용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학생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앞서 학교들은 각 반마다 학생자치회를 두어 학교에 건의하고 싶은 친구들의 의견들을 수렴해 학교에 제안하기도 하고, 자치회가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직접 안건을 상정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교육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고무하고 독려하는 단체인 미국의 ‘Student Voice’[2]는 대화를 확대하고 아이디어를 수렴하기 위해 올해 미국 전역을 돌며 ‘청취 투어(Listening Tour)’를 실시했다. Student Voice의 디렉터인 앤드류 브렌넨 (Andrew Brennen)은 필라델피아에서 아이오와, 켄터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학생들과의 토론을 진행했다. 그는 "학생들은 100 년이 넘은 학교의 모델을 다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대한 미개척 자원입니다."이라고 말한다. 그는 21세기 교육이 비판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학교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른다고 말하며 학교 발전을 위해서 학교는 지속적으로 학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파한다.
앞서 설명한 두 가지의 예는 중요한 한 가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바로 ‘듣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미 의견과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반영될 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예측에도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교육은 그 비판을 수용하고 학생이 중심이 되고,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교육의 주체가 바뀌고 있다. 학교 개혁의 출발점이 ‘학생의 의견을 듣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미국의 교훈을 간과하면 안되겠다.
글_김수향(더시안교육연구소)
[1] Mark Philips, Student Voices Needed in School Reform, GEORGE LUCAS EDUCATIONAL FOUNDATION
[혁신·교육思考]에서는 사회혁신 프로젝트, 문화예술교육, 청소년 교육 등을 주제로 새롭고 흥미로운 국내외 사례를 전달합니다. 너무 바쁘고 일에 치여 무언가 새로운 생각과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