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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키라 잠언 4:23-27
교회오면서 항상 knots berryfarm 옆을 지나옵니다. 그런데 그때 자주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요. 으악 하는 비명이죠. 청룡열차가 바로 길가에 있습니다. 열차가 뒤집힌채로 밑으로 곤두박질 치며 떨어지는것 보면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못 견딜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재미있어서 지르는 소리만은 아닌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옛날 공부할때 제가 사역하던 러시아신학교 졸업생들이 몇명 초청되어 왔습니다. 제가 인솔해서 데리고 다녔는데 일정중에 디즈니 관광이 있었어요. 처음 탄것이 배를 타고 동굴 같은데로 가는거 였어요. 아주 예쁜 노래가 나오면서 아름답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동굴안에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줄 따라 서서 아무 생각없이 기차 같은것을 또 타게 되었습니다. 이 기차도 캄캄한 굴속으로 들어가는거에요. 아무것도 보이지 보였어요,
천천히 올라가는데 배 탔을때처럼 재미있는 광경들이 또 펼져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 갑자기 속력을 내면서,,,, 오른쪽으로 비틀고 왼족으로 비틀고 올라가고 거꾸로 쳐 박히고 하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세울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고 더군다나 캄캄하니까 어느 방향인지 전혀 예측을 못하잖아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몸의 군형을 잃으니까 정말 죽을것 같더라고요. 속도 다 뒤집힐것 같고 머리가 깨지는것 같고 정신이 없는거에요. 진짜 고백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좀 안좋은 욕이 나왔어요. 옆에 탄 사람이 러시아 사람들이라서 그나마 참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지나간일을 후회해본적이 사실 별로 없는데 그때는 정말 내릴때까지괜히 탔구나. 괜히 탔구나 후회했어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인생이란것도 이런 롤라코스터 같은것 아닙니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좌우로도 돌고 거꾸로도 돌고 물도 지나가고 소리도 지르고 ……..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인생속에서 또 지켜야 할것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건강도 지켜야죠. 물질도 지켜야죠. 사업도 직장도 지켜야 합니다.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부모의 자리도 지켜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하고 교회도 지켜야 합니다. 심지어 롤라코스터를 타면서도 그래도 품위도 지키고 체면도 지켜야 하잖아요. 지킬것이 참 많아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 지키기가 정멀 쉽지 않다는거에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느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 보니까 주님께서 그런 우리의 형편 다 아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그 모든 지켜야 하는것….. 그 핵심이 무엇이냐? 바로 마음이다. 마음을 지기는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 하시는거에요. 23절 다시한번 읽어 볼까요? “무릇 지킬만한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근원이라는 단어는 샘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물이 퐁퐁하고 올라오는 샘이에요. 여러분 마음이 바로 생명이 퐁퐁 솟는 샘이라는거죠. 영적인 생명 혼적인 생명 육신적인 생명이 솟는거에요. 여러준 자난 한주도 롤러코스터 같은 삶속에서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생명이 솟아 오르신줄로 믿습니다.
그럴러면 사실 마음을 잘 지켜야합니다. 마음을 잘 지키면 다른것도 지켜지기가 쉽다는거에요. 여기 쓰인 지키라는것은 막으라는 말입니다. 감시하라는 말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것들이 너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것들도 있고, 더러워지게 하는것들도 있고, 썩게 하는것들도 있고, 못참고 뚜겅 열리게 하는것들도 있고……….. 중요한것은 그러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은 마음이란 단어를 천번이나 넘게 사용을 해요. 비숫한 단어까지 합치면 정말 엄청날거에요.
여러분 가롯 유다보세요. 요한복음을 보면 그는 먼저 자기가 맡은 돈궤 앞에서 자기 마음을 지키지를 못했어요. 유혹앞에서 마음이 먼저 흔들린거죠. 이런 마음의 무너짐은 결국 주님을 배반하고 그 대가를 제사장들과 협상하도록 하는 그런 자리까지 그를 이끌었어요. 예수님을 배반한 댓가로 당시로는 큰 돈인 은 삼삽냥을 챙겼어요. 마음을 지키지를 못한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 습관을 잘아는 그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군인들을 인도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 문안의 입맞춤을 합니다. 이 사람이 예수다 하는 미리 짠 신호에요. 예수님은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셨어요.
그런데 성경보면 그런 그에게 또 한번의 마음을 지킬 기회가 주어졌어요.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자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것입니다. 이런 생각 해 봅니다. 만약 그가 마음을 새롭게 자켜 그때라도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죄 많은곳에 은혜가 더 있다고 어쩌면 그 어떤 사도보다도 더 큰 쓰임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는 결국 지키지 못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극심한 자책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배신의 댓가로 받은 돈은 성전의 성소에 던져 넣어 버렷지만 결국 스스로 목애어 자살하고 말았어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한거에요. 마음을 지키지 못한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전혀 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보세요. 약관의 나이로 골리앗을 무찌르고 그의 인생은 승승장구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일개 양치는 목동이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의 칭송을 받게되고, 왕의 사위가 되고, 정권의 실세로 떠 오르고 거칠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또 하루아침에 그는 롤라코스트를 탑니다. 장인인 사울왕이 시기하여 죽일려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아내의 도움으로 간신히 밤중에 집을 빠져 나와 도망자의 삶을 삽니다.
한번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수염에다가 일부러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사람 행세도 했어요
. 여러분 그 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얼마나 그의 마음이 비참했겠어요. 골리앗을 무찌른 사람인데 그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요. 내가 이게 무슨 꼴인가 원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굴이 많은 광야지역으로 가서 한 깊은 아들람이란 동굴에 숨어 들어갔어요. 여러분 광야는 인간의 가장 기본 욕구인 주린배 채우기마저 쉬운곳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곳입니다. 그 광야에 있는 동굴속에 숨은거에요. 앞이 안보이는 캄캄한 현실속에서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겠어요. 자기를 따라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음에 따라서 오히려 짐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을거에요.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서 마음을 지켰습니다. 흔들리는대로 그냥 자신을 내벼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시편 57편이 그 마음을 지킨 결단 아닙니까?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결국 자신이 살 뿐 아니라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속에서도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 흔들리고 무너지기 쉬운 마음을 지킬 수가 잇을까
? 본문 23절 앞뒤를 보면 거기에 대한 해답이 있어요. 먼저 20-22절까지 다시 한번 보실까요?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 하며 나의 이르는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이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여러분 내말 나의 이르는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거죠, 눈에서 떠나게 말라고 하십니다, 마음속에 지키라. 여기에 쓰인 지킨다는 말은 keep하라는 말이에요. 마음속에 굳게 간직하라는 말입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얻는이에게 무엇이 된다고요? 생명이 된다는거에요. 심지어 그 온 육체의 건강마저 될 수 있다는거에요” 여러분 지난 한주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정말 얼마나 귀를 기울이셨습니까? 얼마나 눈에서 떠나지 않게 했나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몸부림 친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참 생명이 된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생명이 된다는 이 귀절이 23절에 나오는 “우리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귀절과 서로 연결이 됩니까? 결국은 우리의 눈과 귀가 하나님 말씀에 늘 집중되고 그래서 마음이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차면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가 있다는 말이에요. 마음이 생명의 근원인데 그 마음을 붙잡이 주는 더 중심적인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 말씀이라는거죠. 그래서 말씀 바르게 붙들고 살면 마음을 지킬 수가 있고, 마음을 지키면 우리의 영이 살아나고 혼이 살아나고 육신마저 살아난다는거에요. 말씀을 얻는이에게 주시는 생명의 축복인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 말씀으로 인한 생명의 축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요
, 그 달고 오묘한 말씀의 맛이 느껴져요. 시편 119편의 기자는 그 말씀의 맛을 이렇게 기록해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여러분 이 고백이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참 고백이 되기를 저는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에요.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짊어지시고 나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에요. 문 열어놓고 늘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시고, 돌아온 탕자를 맨발로 뛰어나가 두팔들어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사랑 이 은혜를 깨달으면 모든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느껴지게 됩니다. 이 말씀의 능력이 우리 마음의 무게추를 굳건히 잡아주심을 믿습니다.
세상은 당연히 우리를 흔들어 댑니다. 대적인 사탄마귀는 호사탐탐 마음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도곡 난리를 칩니다. 인생의 롤러커스트 때로는 겁도 나고 두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또 시도 때도 없는 사탄마귀의 등쌀이 버겁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말씀으로 딱 무게추가 잡혀 있으면,,,,, 그만큼 흔들리지 않는거에요. 말씀의 무게추가 크면 클 수록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내 마음의 중심에 잡히면 잠힐 수록 더 빨리 모든 흔들림이 멈추는 거에요. 여러분 오뚜기 세워 보셨죠? 무개추가 밑중심에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빨리 중심을 다시 잡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특별히 저는 정말 여러분의 담임목사로서 우리교회 성도간의 모든 나눔이 이런 말씀에 대한 고백을 바탕으로 서로 서로 나눔이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진짜 생명이 있는 교회는 이런 교회에요. 이런 교제가 없다면 이런 나눔이 없다면 이런 생명이 없다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죽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그저 두 세람이 모여도 말씀이 내 마음을 어떻게 지키게 하였나, 말씀이 어떻게 나를 변화 시켰나? 어떻게 말씀이 나를 살렸나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 따르는 삶이 되고 그런 구역이 되고 그런 교회가 될까? 그런 나눔이, 그런 간증이 서로간에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분위기가 넘치는 거에요. 집사님 힘 내세요. 말씀속에서 서로 나누고 서로 격려해 주고 용기를 주고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그런 교회입니다. 장로님 권사님 제가 큰 힘은 못 되도 열심히 기도할께요. 말만 그렇게 하지않고 서로를 위하여 정말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에요. 그럴때 자신의 마음도 지켜지는것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지킴이도 되는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지키어 기주장로교회는 예수의 참 생명이 있는 그런 교회다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3절 뒤에 나오는 말씀들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지킬 수가 있나?
그 실천사항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먼저 24절입니다. “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 한 마디로 말하면 말 조심하라는거에요. 궤휼이란 왜곡하다 굽다는 뜻이에요
, 사곡이란 빗나가는 것 거역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결국 내 판단 내 생각이 왜곡된 것인지 삐딱한것인지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것인지 불평과 불만의 말이 입에 배어 잇지는 않는지 잘 생각하라는거죠. 그리고 조심하고 삼가라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마음을 잘 지킬 수가 있는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그런 말이었어요. 결국 자신들의 말로 인하여 자신들의 마음이 다 깨어져 버렸어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공동체의 마음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깨어지셧습니다. 그들의 말로서 그렇게 된거에요. 그래서 가나안땅에 입성하여 첫 공격인 여리고성을 돌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침묵해라.” “너희들 조상이 말대문에 광야에서 평생을 돌앗다” 분명히 엿새동안 성을 돌기만 할때에 별별 말 다 나올것 아셨기에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나의 말만 따라라. 말씀하신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 서로 살리는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용기의 말, 소망의 말, 사랑의 말을 하는거에요. 특별히 서로 서로 진정한 축복의 말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영광이 들어나도록 서로를 축복하는거에요. 그럴때에 나의 마음이 지켜지고 남의 마음도 지키고 그래서 참 생명이 우리교회안에 넘쳐날줄 믿습니다
또
25절은 볼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 여러분 요즈음 정말 눈에 보이는게 많죠?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유혹하는것들이 눈에 너무 많이 들어와요. 갖고 싶다 좀 누려 보고싶다 이런것들이 끝이 없습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러워 보이는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몰라요. 사탄마귀가 절대 직접 공격 안합니다. 이런것들을 자꾸 자꾸 세워나가고 자꾸 더 쎄게 만들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대로 눈에 보이는대로만 살아도 감각을 자꾸 잃어 버리게 만듭니다. 마음을 무디어지게 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심지어 폭력적으로 만들어 버려요. 죄의 근본인 욕심을 욕심으로 여겨지지 않게 만들어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보는 사람들입니까
? 히브리서 12장 2절입니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는것입니다. 눈을 거기에 고정을 시키는 거에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그렇게 믿음의 길을 달리는것입니다.
또
26-27절은 바른길을 가야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말씀 합니다. “네 밭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기뻐 하시는 삶을 살라는것입니다. 발이라는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흔적 아닙니까? 이 삶의 흔적이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라는거에요. 말씀으로 든든히 다져진 그런 삶의 바탕속에서 하나님 싫어 하시는 그런 모습으로 살지말고 하나님 기뻐 하시는 자녀의 삶을 살아가라는거에요.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이 산 삶의 흔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기뻐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되었나요? 또 하나님 싫어하시는 모습이 있지는 않앗습니까? 여러분의 발걸음은 하나님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얼마나 관계가 있었나요?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이 걷고 있는 발걸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좆아가노라”
말씀 맺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말씀으로 늘 잘 지켜지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을 바탕으로 사랑의 말 축복의 말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눈을 고정시키어 볼것 안 볼것 잘 구별하며, 모든 삶의 흔적의 발걸음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발 걸음이 되어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생명이 늘 샘솟아 오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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