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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재위, ′의료영리화′ 줄다리기 결론낼까
○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재도약을 위해 2월 임시국회 통과를 강력히 주문한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의료 영리화′ 논란에 막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 28일 국회에서도 여야간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인 만큼 서비스산업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야당과 의약계는 보건·의료 부분의 규제 완화를 ′의료 영리화′로 규정하고 이 부분을 빼지 않고는 서비스산업 발전법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 최대 쟁점은 현행 의료법상 의료법인은 장례식장이나 식당 등 병원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의료법인에 외부투자를 받는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영리를 위한 부대사업 범위를 연구개발·의료관광·의료 연관산업 등으로 대폭 확대를 추진하려 한다. 이를 통해 의료법인이 자법인으로부터 얻은 수익은 주로 의료기관의 시설과 장비 및 종사자 처우 개선에 사용하는 등 결과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아울러 학교법인과 장학재단 등이 다양한 부대사업으로 수익을 얻어 학교 운영과 장학금 지급에 사용하는 것처럼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은 말 그대로 부대사업을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므로 의료 민영화나 영리추구 병원과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이같은 자법인이 설치되면 병원이 수익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아 결국 의료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의료 영리화로 갈 것으로 규정했다. 이에 박 대통령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여야는 또 정부가 추진하려는 원격진료에 대해서도 정면 충돌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원격진료 기술 적용이 되면 거동이 불편한 오지의 노인과 장애인이 갑자기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진료비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 대통령은 전날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와 관련 "원격 의료서비스 등을 허용하면 큰 시장이 나오고,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이 나온다"며 "눈 앞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훤히 보이고 있는데 규제와 법에 가로막혀서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인가"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원격진료는 고혈압·당뇨·만성정신 질환 환자에 처방·투약하겠다는 것으로, 환자 스스로 혈당을 재고 컴퓨터를 다뤄야 하므로 실효성이 없다고 맞선다. 아울러 콜센터처럼 의사를 다수 고용해 전국의 환자를 모으고, 약국에 약을 배달토록 해 전화만 하면 약을 뿌려주며 돈을 버는 일부 의사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건강관리와 오지에 있는 환자들의 의료 혜택과 관련된 사안은 이미 참여정부 때 의료법을 개정해 근거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에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는 지금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 이같은 이견이 존재함에도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비스업 육성 법안이 2월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문한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 왔음을 비춰봤을 때 ′무조건 관철′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은 서비스산업법 처리가 정부 입장이므로 당연히 하려고 할 것"이라며 "다만 민주당에서 의료 부분을 빼지 않고는 전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처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정부 약가정책, 약가인하 효과 없고 병원 리베이트만 합법화
○ 정부는 28일 보험약가제도개선협의체(이하 협의체) 회의를 열고 시장형실거래가제 폐지 여부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시장형실거래가제는 의약품의 실거래가를 파악해 가격인하를 유도하여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2010년에 도입돼 시행되다가 2012년 중단됐다가 올해 2월부터 재시행될 예정이다.
○ 제도의 실효성과 부작용 등 논란이 되자 정부는 1월 초 정부(5인)와 공급자(6인), 공익(6인) 등 17인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 도입 전부터 실효성 문제로 논란이 됐던 시장형실거래가제는 1년 6개월 시행결과 실거래가 파악에 따른 약가인하 효과는 거의 없었다. 반면 약가 리베이트를 합법화해 우월적 지위를 지닌 대형병원들은 ‘1원 낙찰’이라는 기형적인 계약으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최대의 약가구매 이윤을 챙기고 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 2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 소비자를위한시민모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시장형실거래가제는 약가 구매이윤을 인정하지 않는 건강보험제도를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약가인하 효과도 거의 없어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제도로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서 병원계의 이해를 대변하며, 정부 중심의 협의체를 운영하며 제도를 존속시키려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지출 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한심한 행태’라며 ‘이에 건강보험가입자 단체인 시민, 사회, 소비자, 환자단체는 정부가 실효성 없는 시장형실거래가제 재시행을 즉각 중단하고, 합리적인 약가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 시장형실거래가제를 1년 6개월간 시행한 결과, 건강보험에서 지출한 총 인센티브 지급액 1996억원 중 54.6%인 1000억원 가량을 상급종합병원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도운영 결과, 2012년). 그러나 약가 인하율과 그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은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즉 실거래가 파악을 통해 약가인하를 위해 도입된 제도 도입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 반면 의사에게는 처방료를, 약사에게는 조제료를 지급해 약가 구매로 인한 이윤을 인정하지 않는 건강보험 지불체계를 왜곡시키며, 우월적 지위를 지닌 대형병원의 약가 리베이트를 합법화해 주며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시장형실거래가제가 상급종합병원의 배만 불리며, 약가인하 효과도 거의 없고,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합법화해 양성화하는 백해무익한 제도라고 밝히고 있다.
○ 시장형실거래가제는 시행 전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정부가 강행했다. 이들 단체들은 “제도가 정책효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정부는 정확한 진단을 통해 개선방안을 제시해야 했었다”며 “그러나 정부는 제도 재시행을 앞두고 공청회조차도 하지 않았다. 슬그머니 장관 결재로 재시행을 결정하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덮겠다는 무능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그들은 또 “정부가 제도 재시행 한 달여를 앞두고 급하게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협의체 구성과 운영에 있어 과연 약가제도 개선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정부의 정책이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논란이 되면 정부는 합리적으로 결정되도록 조력적인 역할을 하면 된다. 하지만 정부가 전체 “협의체” 구성의 3분의1 비중으로 직접 참여하며 사실상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합리적인 정책결정보다는 정무적 판단으로 정부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협의체를 들러리로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 우리나라 연간 약제비 지출은 약 13조원에 이르며 건강보험 재정의 30%에 육박하고 있다.
○ 이번에 성명서를 발표한 단체들은 “소득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약가와 의약품 유통과정에서 나타나는 의약품 리베이트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부담과 제약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철저하게 근절돼야 한다”며 “실효성도 없고 부작용만 양산하는 시장형실거래가제는 폐기되어야하며, 합리적인 약가제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단체들은 정부가 협의체를 통해 시장형실거래가제도를 존속시키려한다면 보험료를 내는 국민보다는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 건강보험 옹호, 민간보험 비판…의협이 바뀌었다
- 의협의 건강보험 강화론과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 운동 (김종명 가정의학과 의사)
○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민간 의료보험에 들어가는 돈은 재벌의 주머니만 불립니다. 이제는 국민건강보험을 튼튼히 키워야 합니다"라는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나는 이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간 대한의사협회가 보였던 태도(국민건강보험에 비판적이고 민간 의료보험에 호의적이었던)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최근 변화는 의료 영리화를 적극 반대하는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그간 대한의사협회의 주요 주장과 행동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의료 영리화 반대에 나서면서부터는 오히려 국민과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는 의료 영리화를 저지하고,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의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은 그간 진보 쪽 건강보험 강화 운동인 ‘민간 의료보험 대신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운동과 맥락이 상당히 유사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하고 있는 필자는 최근 의사협회의 의료 영리화 저지와 건강보험 강화 주장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 그러다보니 오히려 대한의사협회 내부에서는 의사협회가 너무 진보 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사협회가 제안하는 건강보험 강화 주장이 진보 쪽이 제시한 건강보험 ‘하나로’와는 다르다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 노환규 회장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과 같이 민간 의료보험의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건강보험이 훨씬 우수하므로 건강보험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점으로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의료의 질 향상보다는 의료비 부담 절감에만 치우쳐 있고 보험수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의사협회와는 달리 지불제도 개선 요구로 의사를 옥죄려 한다는 점을 들었다.
○ 나는 최근 의사협회의 변화를 보면서 드디어 우리의 의료 개혁이 이제야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분명히 의사협회와 건강보험 하나로는 서로 입장이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또한 다른 것이 당연하다. 서로 입장을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여 공통된 부분을 넓혀나가고, 다른 점에 대해서는 토론과 소통을 해나간다면, 충분히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 나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운영위원으로, 그리고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건강보험 하나로 팀장으로 활동해왔다. 노환규 회장의 언급을 보면, 민간 의료보험의 문제점을 통찰하고 있고,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한 이해도 높다. 하지만 일부 오해를 하고 있는 측면도 적진 않다고 본다. 이 글은 그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 성격의 글이다.
○ 노환규 회장은 민간 의료보험이 건강보험에 비해 7배나 사업비가 높아 경제성이 떨어지고 가입은 쉽지만 지급이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또한 기존 환자의 가입은 배제되고, 실손 의료보험의 경우 갱신 시마다 보험료가 급등하고 있는 문제점 등도 비판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의사협회 전 집행부는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에 호감을 가졌던 데 반해 현 집행부는 민간 의료보험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고, 민간 의료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의료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긍정적이다. 민간 의료보험이 안고 있는 폐해가 너무도 크기에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건강보험을 강화하여 건강보험 ‘하나로’만으로 의료비 걱정을 해결하려 한다.
○ 하지만 민간 의료보험의 장벽을 넘기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민간 의료보험의 벽만 넘어선다면 의료 개혁의 절반 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간 의료보험은 의료 민영화를 요구하는 핵심 동력 중 하나이다. 민간 의료보험을 대변하는 보험 자본은 정부(기재부-금융위), 새누리당, 보수 언론, 재벌(삼성)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건강보험의 강화를 반대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진보가 의사협회와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 노환규 회장의 언급처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국민이 부담하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의료의 질 향상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보건의료 현실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의료비 부담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의료비란 공적 지출이 아니라, 가계와 국민에게 떠넘겨져 있는 사적 지출, 즉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를 말한다. 따라서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의료비 부담의 공적 지출(건강보험 급여 지출)을 늘리고 사적 지출(환자 본인 부담)을 줄여 의료비 부담을 해소하자는 운동이다.
○ 구체적으로 건강보험 하나로는 비급여를 급여화하여 건강보험 보장률을 대폭 높이자는 것으로 연간 100만 원 상한제, 입원 보장률 90%, 건강서비스 급여화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연 14조 원의 재원은 국민, 기업, 국가가 함께 보험료를 인상(대략 30%씩)해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이 실현되면 의료비 부담이 완전히 해소될 뿐 아니라 비싸고 지속가능성 없는 실손 의료보험에 더 이상 가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 물론 우리는 단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의료의 질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의료 개혁 과제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런 과제들은 그 자체만으로 풀어내긴 쉽지 않다. 바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의사협회가 의료의 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반갑고 환영할 만하다. 이 문제에 대해 의료 공급자인 의사협회가 제기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하다.
○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의료 체계에서 바라는 목표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의료비 부담 없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또 하나는 질 높은 의료 서비스 혜택을 누리는 것. 우리가 만들어내려는 의료 개혁이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이 목표에 부합한가 아니한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의료비 문제에 우선 초점을 맞춘 것이 맞다. 이것이 의료의 질 문제를 경시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는 아니라는 것도 언급했다.
○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필요한 재원 계산이 간단하다. 또한 이것만으로도 지금의 취약하고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상당 부분 정상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의 질을 추가로 대폭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사회적 논의와 재원 논의가 요구된다.
○ 예를 들어, 건강보험 하나로가 실현되면, 입원했을 때 병원비 부담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실손 의료보험과 같은 사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치의를 만나기 어렵고, 제대로 상담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외래의 경우 여전히 2분, 3분 진료 관행도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료의 질적 수준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이때가 되면 의료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순차적으로 한국 사회의 보건의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법 논의가 전개될 것이다.
○ 의료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의료 인력뿐 아니라 의료 수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예로, 우리의 보건의료 인력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병상 수 대비 의사 및 간호사 인력이 부족한 관계로, 많은 의료인들이 과중한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것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의 질과 만족도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병원에서 주치의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 인력을 대폭 증가시켜야 한다.
○ 여기에는 당연히 추가적인 재원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보장성 문제가 워낙 시급한 과제라, 의료의 질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협회가 앞장서 의료의 질 문제를 제기한 함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조짐이다.
○ 노환규 회장은 건강보험 하나로는 지금의 수가가 적정하다고 여긴다고 보았다. 이것은 오해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그간 수가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 연대적 보험료 인상으로 민간 의료보험 대신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을 해결하자는 운동이었기에 굳이 수가 문제에 구구절절 의견을 표출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문답 형태로 간단히만 언급한 바 있는데, 비급여의 급여로 전환시 '총액 보전' 원칙을 제시하였다.
○ 우리는 보험수가가 원가 대비 저수가*라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비급여 수가는 원가 대비 고수가이다(보험수가의 저수가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얼마라고 정확히 수치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신뢰할 만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의 보험수가의 수준과 비급여의 고수가 수준을 수치로 정량하고, 그것을 합의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 불충분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 아래 그림을 보면, 건강보험 보험급여 항목의 원가 보전률은 75% 수준인 반면, 비급여 항목의 원가 보전률은 190%라고 한다. 의료공급자는 보험수가의 저수가를 보충하기 위해 과잉진료과 비급여를 고수가로 책정해 오고 있다. 이는 환자의 본인 의료비 부담을 늘리고 의료의 질을 하락시키는 요인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악순환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
▲ 127개 의과계 의료기관 회계조사 자료. 출처: 강길원, <비급여 현황과 관리 방안>, 국민건강보험공단 금요조찬세미나 발표 자료, 2011.5.13
○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비급여를 급여화하여 보장성을 확대할 경우, 총액 보전의 원칙으로 비급여의 고수가는 낮추는 대신 그 차액은 급여항목의 저수가를 정상화하는 데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보장성을 확대하더라도 수입은 보전되는 셈이다. 이런 방식이 되면 기존의 의사협회가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다. 지금은 비급여가 급여화될 경우 상대가치 점수 제도에 의해 비급여수가가 기존 보험의 저수가 수준으로 하락해버린다. 이런 이유로 그간 의사협회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반대해왔던 것이다. 이를 십분 이해하기에 총액보전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 한편 노환규 회장은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포괄수가제, 총액계약제 등 지불제도 개선을 주장하고 있어 의사협회의 입장과는 다르다고 언급한다. 맞다. 건강보험 하나로를 주장하는 시민사회 단체는 지불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 하지만 그 이유가 의사들을 통제할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지불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건강보험과 보건 의료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국민 의료비를 우리 사회가 지불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의료인의 진료 환경을 침해하거나 의료의 질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여야 한다.
○ 현행 행위별 수가제는 그 폐해가 적지 않다. 과잉 진료뿐 아니라 국민 의료비 수준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건강보험 하나로가 실현이 된다면,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우리가 예측하고 있는 재원보다 더 많이 소요될 수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측이 목표하는 재원은 14조 원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좀 더 상회할 것이다.
○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미충족 의료 서비스의 증가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낮아, 의료이용을 하지 못했던 저소득층의 미충족 의료 서비스가 충족됨으로써 전체적인 의료 이용량은 증가할 것이다.
○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이유, 즉 과잉 진료의 증가다. 그간 행위별 수가제에 익숙해져 있기에 그런 진료 행태가 보장성이 대폭 확대된 이후에도 지속된다면, 과잉 진료로 인한 지출이 늘어날 수 있다. 이때 지출의 증가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그것은 통제되어야 한다. 만일 기존 행위별 수가제하에서 보장성이 확대되어도 과잉 진료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지불제도 개선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이 과잉 진료 문제는 얼마든지 합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 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매우 높다.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구구조가 급격히 고령화되고 있고,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국민 의료비의 급격한 증가에 과잉 진료도 한몫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엔 국민 의료비 증가를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야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 물론 어떤 수가 제도도 완벽하지는 않다. 각기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 사회의 의료 체계를 국민을 위한 최선의 제도로 만드는 데 가장 유용한 지불 보상 제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선택되는 것일 뿐이다. 여기에 의사협회 역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주장할 권리가 있다.
○ 지금까지 노환규 의사협회 회장의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대한 견해에 대해 나의 의견을 밝혔다. 의사협회를 포함한 의료 공급자 측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서로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이 글을 썼다.
○ 나는 최근의 의사협회의 변화가 매우 반갑다. 드디어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보건의료 문제에 대해 국민과 시민사회, 의사협회가 조금씩 다른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고 소통한다면, 얼마든지 합리적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다. 거기에 희망이 있다. 의사협회의 건투를 빈다.
■ 與野, 나란히 환자안전법 제정안 제출
○ 여야 의원들이 나란히 환자안전 강화법안을 발의했다.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28일 대표발의한 환자안전 및 의료 질 향상법 제정안에는 보건복지부로 하여금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에 관한 자료·정보를 수집·분석·제공하기 위해 환자안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운영토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통과되면 보건복지부는 정기적으로 환자안전 및 의료 질 보고서를 발행·공표해야 한다. 또 보건복지부는 환자안전 관련 자율보고와 제3자 의료분쟁 해결기관의 상담·조정·중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된다.
○ 지난 17일 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같은 명칭의 법안에도 보건복지부로 하여금 환자안전사고에 관한 정보를 조사·연구 또는 공유하는 데 필요한 환자안전사고 보고·학습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토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오 의원의 법안의 경우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된 보건의료인 등 관계인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그 사실을 보고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환자안전사고를 발생시킨 사람이 그 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자율보고를 한 경우에는 의료법 등 보건의료 관계 법령에 따른 처분을 감경 받거나 면제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환자안전 관련 정보를 의료기관 간에 공유하고 나아가 의료오류 재발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 이처럼 여야가 비슷한 내용의 환자안전법안을 제출하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입법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야가 나란히 환자안전법을 추진하는 것은 백혈병 치료 중 정맥에 맞아야 할 항암제(빈크리스틴)를 의료진 실수로 척수강에 맞아 2010년 사망한 고 정종현군 사건 이후 정치권 차원의 대책 마련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 박근혜 정부, 환자 가계 파탄 막을 수 없다 (김철웅 충남대 보건대학원 부원장)
○ 우리나라 국민이 사용하는 의료비 규모는 크지 않다. 2011년 우리나라의 국민 의료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7.4%로, OECD 회원국의 평균인 9.3%보다 낮다. 구매력지수로 환산한 1인당 국민 의료비는 2198달러로 34개 국가 중 26번째이다.
○ 이렇게 우리나라의 국민 의료비 비중은 낮지만, 개인과 가계의 부담은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 매우 높다. 국민 의료비 중 공공 재정의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2011년 우리나라 국민 의료비 지출 중 공공 재원에 의한 지출은 55.3%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72.2%보다 크게 낮다. 그래서 국민 의료비 중 가계 부문의 지출은 35.2%에 달한다. OECD 평균인 19.6%보다 약 1.8배 높은 수준이고, OECD 34개 회원국 중 가계부담률 수준이 3위이다.
○ 이에 따라 의료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우리 국민의 70%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한국의료패널 자료에 의하면, 2010년 기준으로 현재 가구당 평균 3.8개의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월 평균 23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
○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으로 나타났다. 크게 두 가지인데,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공약이 하나이고,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환자 본인 부담 의료비 경감' 공약이 다른 하나이다. 이 글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내걸었던 두 개의 의료 보장 공약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서 국민의 의료 불안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 첫 번째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공약인데, 전체 중증질환의 76%인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의 보장률(비급여 부문 포함)을 2013년 85%, 2014년 90%, 2015년 95%, 2016년 100%로 확대하겠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직 인수위 단계에서 4대 중증질환의 보장에서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비, 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은 제외되었다. 4대 중증질환 이외에도 고액 진료비를 부담하는 다른 질환들이 많은데 이들 질환을 차별화한다는 큰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국민이 이 공약에 박수를 보냈던 것은 전반적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2013년 6월에 발표한 정부의 보장성 강화 계획에 의하면, 초음파와 심장질환에 대한 MRI, 생존률 개선 효과가 큰 고가 의약품, 수술 치료 재료 등 비급여로 분류되었던 항목들을 필수 급여로 지정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현재 76% 수준인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이 2016년 이후 82~83%가 되어 지금보다 6~7%포인트 정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그러나 이 보장성 강화 계획에서 간병비는 제외되었다. 본인 부담금 총액이 2조 원으로 추정되는 간병비는 본인 부담률을 추정할 때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다. 비록 필수 급여로 분류된 항목들의 건강보험 적용으로 4대 중증질환에 한해 본인 부담률이 낮아지겠지만, 실질적으로 환자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 또한, 4대 중증질환에 해당되지 않는 상위 50위 고액 진료비 환자들의 보장성은 낮아져서, 본인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급여 본인 부담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4대 중증질환 이외의 고액 진료비 환자의 비급여 본인 부담금을 낮출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 보장성 강화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공약은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환자 본인 부담 의료비 경감' 공약이다. 이는 현재 1년간 총 본인 부담 급여 진료비가 건강보험료 하위 50% 계층은 200만 원, 중위 30% 계층은 300만 원, 상위 20% 계층은 4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한 본인 부담 금액을 국민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있는데, 현재의 3계층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10등급으로 구분하여 저소득층에게 더 유리하도록 '본인 부담 상한제'를 운영하겠다는 공약이다.
○ 여기서 말하는 본인 부담 상한제에서 본인 부담은 법정 본인 부담 비용을 말하는 것으로, 비급여 본인 부담 비용을 제외한 법정 본인 부담 비용 내에서 상한을 정한 정책을 말한다. 법정 본인 부담만 낮추는 공약으로는 저소득층의 의료 비용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없다. 2011년도 건강보험 환자 진료비 실태 조사에서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전년도에 비해 낮아진 원인은 비급여 본인 부담률이 커졌기 때문이다.
○ 비급여 본인 부담률을 낮추지 못하고 현재와 같이 법정 본인 부담 비용 내에서만 '본인 부담 상한제'를 적용한 상태에서는, 총 진료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경우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을 개선할 수 없다. 결국, 이들은 고액 진료비 부담으로 경제적 파탄을 겪은 후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쉽다.
○ 이는 실증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임승지·김승희·백종환·김나영, <저소득층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책 개선 방안>, 건강보험정책연구원, 2013). 건강보험에 가입된 1912만5386가구를 대상으로 의료비 부담을 알 수 있는 2개의 변수를 측정한 연구이다. 이 연구에서는 소득 대비 의료비 부담률과 비급여 포함 본인 부담이 소득의 10%, 20%, 40%를 초과하는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의 비율을 측정한 후, 2008년과 2011년의 변화를 비교하였다.
○ 정부는 2009년부터 형평적 본인 부담 경감을 위해 소득 수준을 3단계로 나눠 차등화된 본인 부담 상한제를 적용하였는데, 이러한 정책으로 의료비 부담의 소득 수준별 불형평성이 개선되었는지를 계량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08년과 비교해 2011년의 소득 대비 의료비 부담률이 모든 소득 분위에서 증가하였다. 특히, 최하위 소득 구간의 경우, 직장가입자는 소득 대비 의료비 부담률이 2008년에 15.3%였는데, 2011년에 17.6%로 증가하였고, 지역가입자는 2008년 20.3%, 2011년 27.7%로 지역가입자의 의료비 부담률이 더 많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지역가입자의 경우, 최하위 소득 구간과 최상위 소득 구간 간의 격차도 3.3배에서 4.1배로 증가하였다.
○ 둘째, 비급여 포함 본인 부담 의료비가 소득의 10%, 20%, 40%를 초과하는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의 비율도 모든 소득 분위에서 증가하였다. 그리고 최하위 소득과 최상위 소득 간 재난적 의료비 지출 경험 가구 비율의 격차가 직장과 지역가입자에서 모두 2008년과 비교해 2011년에 증가하였다.
○ 이와 같이 2009년부터 형평적 보장성 확대를 위해 적용된 소득 구간별 본인 부담 상한액을 적용했음에도, 2008년보다 2011년 의료비 부담률이 증가하였다.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의 비율도 증가하였으며, 최하위 소득 구간과 최상위 소득 구간 간의 소득 대비 의료비 부담률 및 재난적 의료비 경험 가구 비율의 격차가 증가하였다.
○ 재난적 의료비의 발생은 미충족 의료를 야기한다. 미충족 의료란 의료적 필요가 있어도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국민건강 영양 조사 결과, 2011년 우리나라의 미충족 의료 경험률은 18.7%로 유럽연합 평균 6.4%의 2.9배였고, 소득이 낮을수록 미충족 의료 경험률이 더 높았다.
○ 미충족 의료 경험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높은 의료비 부담과 같은 경제적 이유이다. 보장성 수준이 높으면 그 만큼 미충족 의료 경험률을 낮출 수 있다. 우리나라는 본인 부담 비중이 높기 때문에 유럽에 비해 미충족 의료 경험률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 이처럼 법정 본인 부담 내에 국한된 '본인 부담 상한제'만으로는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없다. 오히려 의료비 부담의 격차를 더 크게 만든다. 저소득층을 포함하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비급여 비용을 포함하여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본인 부담 상한제'를 기획해야 한다.
○ 그러나 이 또한 기대가 무망하다. 올해는 건강보험료가 1.7% 인상에 그쳤다. 지난해 6월 정부가 건강보험 정책 심의 위원회를 통해 그렇게 정한 것인데, 가입자의 입장에서는 보험료 인상분이 작아져서 좋을지 모르지만,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릴 수 있는 보험 재정을 확보할 수 없어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없게 된다.
○ 정리해 보면,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대표적인 2개의 의료 보장 공약으로는 국민의 의료 불안을 해결해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소득 계층별로 의료비 부담의 격차를 크게 만들어서 저소득계층의 미충족 의료를 늘릴 뿐만 아니라, 고소득층을 포함하여 전 소득계층이 재난적 의료비 부담을 경험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 보장성 강화는 건강보험 재정 확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그렇게 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재원 확보 방안은 누적 적립금 사용과 재정의 효율적 관리에 국한되어 있다.
○ 물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최근 3년간 누적한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재원 확보 방안은 상당히 단기적이어서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다. 국민건강보험의 당기 수지가 최근 3년간 흑자를 기록한 이유는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발 국가 부채 위기로 인해 불황이 지속되면서 가계의 실질 소비가 5분기 연속 감소했기 때문이다.
○ 결국, 서민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재정 흑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앞으로 경기가 회복되고 보장성 확대 정책이 추진된다면, 국민건강보험의 당기 수지는 다시 적자로 돌아설 것이 뻔하다.
○ 우리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자고 정부에 제안해보자. 나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2010년 출범한 이래 '건강보험료 더 내기' 운동을 해왔다. 2014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24%를 인상하여 월 평균 1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종합 소득과 금융 소득 등의 소득에 대해서도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부과체계를 개편하고, 국고 지원 사후정산제 등의 시행을 통해 14.3조 원을 확보한다면, 비급여 본인 부담을 포함하여 '100만 원 본인 부담 상한제'를 실시할 수 있고, 간병 비용도 건강보험이 책임질 수 있다.
○ 건강보험료는 올해 6월에 결정될 예정이라서 곧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라는 합의 기구에서 건강보험료 인상률과 더불어 건강보험 보장율과 급여 범위도 결정한다. 여기에는 25인의 위원이 참여하는데, 위원장(보건복지부 차관) 한명, 정부 및 공익대표 8명, 의사협회 등 의료 공급자 8명, 그리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농민단체, 기업대표 등 가입자 대표 8명으로 구성된다.
○ 그동안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논의 과정이나 내용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정책 결정도 정부의 의도대로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국민을 대표하는 가입자 대표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고,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 공급자들도 보장성 강화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 그런데, 최근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을 통해 국민을 대표하는 가입자 대표들과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 공급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가입자 대표들과 의료 공급자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이나 원격 의료 허용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대 투쟁도 중요하지만, 반대 투쟁만으로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는 없다.
○ 가입자 대표에게 요청한다. 올해 6월 건강보험 정책 심의 위원회에서 건강보험료를 올릴 테니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을 해결할 수 있도록 보장성을 확대해 달라고 건의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 공급자에게도 요청한다.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방안을 지지해주기 바란다. 보험료 인상을 통해 확보된 건강보험재정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 이외에도 적정 수가 보장을 통해서 과잉 진료를 하지 않고 환자를 중심에 두고 진료할 의료 환경을 갖추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 문형표 복지 "급여 확대, 병원 손실 없도록 하겠다"
○ "공공성 강화 정책이 추진되고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되면서 보상에 대한 병원들의 걱정도 커지는 것 같다. (3대 비급여 등) 대책을 마련할 때 최대한 병원 손실이 없도록 하겠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8일 응급의료 현장시찰차 서울대병원을 찾아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3대 비급여, 4대 중증질환 등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병원 손실이 없도록 손실을 보전한다는 원칙을 갖고 정책을 마련하겠다"며 "의료계와 상의하면서 추진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 이날 병원 대한의원 제1회의실에서 진행된 현안보고 자리에서는 병원 측이 정부의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와 4대 중증질환(암, 심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인한 진료비 손실을 설명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정진호 기획조정실장은 "2011년부터 의료손실이 크게 늘고 있다"며 "경제사정 등의 이유로 아파도 병원에 오지 않는 환자가 늘면서 지난해에만 648억원의 의료손실이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대 중증질환의 초음파 급여화로 50억원 정도 손실을 봤고 3~4년 뒤 300억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된다"며 "선택 진료비(650억원), 상급병실료(340억원) 손실을 고려하면 연간 1339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급여로 포함되는 비급여 분야의 원가 보전을 하기 위해서는 상급 병원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 이에 대해 문 장관은 "의료분야 전반적으로 적자가 늘고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정부에서 병원의 해외진출, 해외환자 유치 등을 통해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고 수익구조도 개선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기회를 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문 장관은 설 명절 연휴기간 24시간 진료체계를 가동하는 응급의료 상황을 점검하고 의료기관 종사자를 격려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본관 응급의료센터와 어린이병원 응급실을 시찰하고 장관이 직접 심폐소생술을 체험하기도 했다.
○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서울지역의 유일한 권역 응급의료센터로 연간 6만3000명의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일평균 173명의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데 다른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 설 연휴의 경우 환자가 230여명까지 늘어난다.
■ 병원인건비 비율 ‘마지노선 60%’ 깨지나
○ 각 병원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 일부 병원은 6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인건비 비율이 경영 위기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계는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통상임금의 신의성실원칙(신의칙) 적용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가능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작년 12월 이뤄진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과 지난 24일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 지도지침으로 인해 통상임금 항목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은 일할임금(매 근무일마다 일정액 지급), 기술수당·자격수당, 최소한도가 보장되는 성과급 등이 포함된다. 또한 복리후생수당을 근무기간 반영해 퇴직자에게도 지급한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 이에 비례해 통상임금의 1.5배인 야근 수당 상승폭을 고려한다면 현재 50%대인 대형병원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특히 일부 대형병원의 경우 인건비 비율이 60%에 근접하고 있는 곳도 있어 만약 야근 수당이 늘어난다면 인건비 비율이 60%를 상회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병원의 이상적인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 50% 미만인 경우를 고려할 때 60%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적자인 병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 이를 막기 위한 병원 경영진의 고심도 한층 깊어지고 있다. 각 병원들은 서로 눈치만 주고받으면서 어떤 병원이 먼저 행동을 시작할까 주시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병원 노조에 신의칙을 적용, 올해 예정된 임금협상 전까지는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한 대형병원 경영진은 “현재 한국에서 병원 경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병원 임직원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면서도 “어느 누가 양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병원 재직 의사 매출 기여도 '급감'한국병원경영연구원 분석,, 간호사·약사 상승
○ 병원 재직 의사들의 업무 생산성이 줄어들고 있다. 병원 매출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전문직능 중 유독 의사들의 생산성 하락이 눈에 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2012 병원경영통계’에 따르면 전문의 생산성이 전년대비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간호사, 약사 등 다른 직능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 2012년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전문의 1인 당 월평균 8449만원의 의료수입을 올렸다. 이는 전년 8697만원 보다 248만원 줄어든 수치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3000만원에 달한다. 이에 반해 간호사와 약사 등 다른 전문직의 생산성은 전년대비 뚜렷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간호직 1인 당 월평균 의료수입은 2011년 1992만원에서 2012년 2002만원으로, 상승 폭은 적었지만 첫 2000만원 대 매출을 올렸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 병원 전문직 중 생산성이 가장 높은 약사의 경우 여전한 상승세를 보였다. 2012년 약무직 1인 당 월평균 의료수입은 4억5481만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대비 422만원 늘어난 수치다. 병원 규모별로 살펴보면 1000병상 이상 상급종합병원 약사들이 1인 당 5억3334만원의 매출을 올려 가장 많았고, 500~1000병상 상급종합병원 약사가 4억7626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 의료기사의 1인당 월 의료수입은 2011년 1억54만원에서 2012년 1억1637만원으로, 무려 1583만원이나 증가했다. 이는 영상검사나 병리검사 등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 한편 전문직 생산성이 대체적으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전체의 수익성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생산성 저하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다. 실제 2011년 2171만원이던 병상 당 월평균 의료수입은 2012년 들어 1807만원으로 감소했다. 병상 당 의료수입이 2000만원 대 이하로 내려 간 것은 근래들어 처음이다.
○ 병상 당 월부가가치 역시 2011년 1039만원에서 2012년 810만원으로 크게 줄었고, 총자본투자효율도 2011년 46.1%에서 2012년 43.5%로 떨어졌다.
■ 화순전남대, 토 진료 이어 암 등 중환자 수술…"위기상황 사전 대처"
○ 지방의 한 대학병원이 토요일 진료는 물론 암환자 등 중증환자 수술에 나서 의료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급증하는 적자로 인해 토요 진료는 물론 비상경영에 돌입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중증환자의 역외유출 가능성 우려에 따른 조치다. 화순전남대학교병원은 중증 암환자들을 위해 그동안 휴진했던 주말에도 수술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주말 수술은 대기 기간이 긴 중증 암환자가 우선 대상이다. 환자예약 상황을 고려, 부분 시행하면서 확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 한편, 빅5 병원 중 토요진료를 실시하고 있는 곳은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등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주5일제, 주40시간 제도가 정착됐지만 병원계 만큼은 예외다. 실제 서울대병원은 18개과에서,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전 진료과가 주말에 진료를 본다. 의정부성모병원, 부천성모병원 등도 후발주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 현재 주 5일 근무를 준수하는 곳은 경북대병원, 경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고신대복음병원, 동아대병원, 부산대병원, 영남대병원, 원광대병원, 원주세브란스병원, 전남대병원, 충북대병원 등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지방의 대학병원 중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보여 왔던 화순전남대병원의 이 같은 선택이 이들 병원들의 고민을 깊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